# 297
힐통령 297화
95장 고품격 예능 방송(2)
미드 온라인에는 다양한 현대의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입점한 상태였다.
그중 NPC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은 건 단연 치킨이었다.
닭 요리라고는 굽거나 튀겨서 소금, 후추 간을 하던 게 전부인 이들에게, 현대의 온갖 맛이 나는 치킨은 보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퇴직금을 부어 미드 온라인에 치킨 집을 차리면, 제2의 전성기가 열린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치킨집은 항상 손님들로 붐볐다.
“사장님! 여기 맥주 두 통 주세요!”
“양념 치킨 네 마리 더 주문할게요!”
화이트홀 영지에 위치한 한 치킨집에는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드디어 이날이 오고야 말았군.”
카운터에서 몰려드는 손님들을 쳐다보던 치킨집 사장이 중얼거렸다.
“사장님. 오늘 왜 이렇게 손님이 많아요?”
쉴 새 없이 치킨을 나르던 알바생이 잔뜩 울상을 지으며 묻자, 사장이 한쪽 벽면에 달아놓은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을 쳐다보며 말했다.
“매출의 신께서 방송에 나오시는 날이거든.”
“예?”
“기억해라. 그분이 방송을 타시는 날에는, 전국 치킨집의 매출이 최소 두 배는 상승한다.”
“그게 무슨…….”
혼란스러워하는 알바생을 뒤로한 사장은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동시에 사람들이 맥주잔을 머리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광고 시작한다!”
“부어! 마셔!”
“건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 천상계의 랭커들을 섭외하려고 눈에 불을 키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만큼 시청률이 잘 나오니까.
하물며 자타공인 넘사벽 플레이어인 카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흐흐. 오늘만 기다렸다고.”
“게임의 최강자는 과연 어떤 식으로 사냥을 하는지 볼 수 있겠어.”
“방송을 통해 그의 사냥법을 일부나마 배운다면, 정체된 내 레벨 업 속도도 빨라지겠지.”
카이가 평소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사람들.
“어디, 안드로메다계의 랭커님은 어떤 식으로 사냥을 하는지 구경이나 해볼까?”
“언노운의 던전 공략기라. 기대되는군.”
심지어 그를 경쟁 상대로 여기는 8대 길드의 마스터들마저 본방송 시간을 사수했다.
모두의 기대 속에서, 프로그램 ‘절대자의 던전’이 천천히 방영되었다.
***
2부작으로 편성된 절대자의 던전은 한 편 당 1시간 정도의 런닝 타임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며칠 동안 이루어진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하지만 영상 편집의 대가인 마이클 레이놀드와 예능국 출신의 김인하 PD는 분량의 완급 조절과 유머 포인트를 예술적으로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방송은 시작과 동시에 파란을 몰고 왔다.
“아니, 언노운 인맥 실화냐? 파티원에 무슨 설은영이 있어?”
“대박은 따로 있지. 랭킹 2위의 그 유하린이 있는데.”
“그런데 발터? 이 듣보잡 탱커는 누구냐?”
“휘몰이 길드의 서브 탱커라는데? 언노운 친구래.”
“앗, 나 이 사람은 잡지에서 봤어. 마이클 레이놀드면 해외에서 엄청 유명한 사람이잖아?”
이타카 밀림에서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다섯 명의 사람들.
특히 약탈자들의 왕 베이거스 레이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설은영과 유하린의 재결합을 재밌어했다.
“한때는 고용주랑 용병의 관계였는데, 이번엔 파티원으로 만나네.”
“역시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거라니까.”
시청자들은 그런 깨알 같은 재미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던전 내부로 진입하는 파티원들.
동시에, 카이가 예전에 느꼈던 감정을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주었다.
“보는 내가 다 열받네. 개미굴 타입에 섬멸형, 거기에 플로어 형식까지?”
“페가수스 놈들 양심 없는 거 보소.”
“나 같으면 저기서 던전 때려치우고 나갔다. 아, 섬멸형이라서 못 나가지?”
“어? 그런데 바로 사냥 시작하네?”
듣보잡 탱커라 불리던 발터는 우려와는 달리, 안정적인 방어 능력을 보여주며 선두를 맡았다.
“발터라고 했나? 생각보다 실력이 쓸 만해.”
“하긴, 휘몰이 길드는 세계적인 레벨이 아니다 뿐이지, 국내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편이니까.”
사냥은 큰 위기 없이 아주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휴식 시간마다 카이는 깨알 같은 팁들을 알려줬고, 마이클의 인터뷰는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어하는 부분은, 평소에는 만나는 것조차 힘든 멤버들이 서로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장면이었다.
“설은영은 엄청 깐깐한 여자일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잖아?”
“유하린은 그대로네. 말이 없어.”
“언노운은 생각보다 훨씬 평범한데? 뭔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위엄이 넘칠 줄 알았는데.”
예능을 보던 시청자들은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멤버들에게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
사실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항상 자극적인 내용이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힐링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바쁘고 고단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별것 아닌 소소한 행복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법이었다.
카이가 출연한 예능이 딱 그러했다.
던전이 진행되면서 점점 친해지는 멤버들.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소소한 대화조차도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신선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것이 방송 내용의 전부는 아니었다.
마이클 레이놀드와 김인하 PD는 자신들의 천재적인 감각을 이용하여, 시청자들이 다섯 명의 멤버들에게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내용 구성을 잘 짜놓았다.
그 결과, 시청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거대한 공터에서 발터가 천 마리에 이르는 돌연변이 구울들을 막아낼 때는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를 응원했고, 마이클의 몸이 번쩍번쩍 빛나며 폭업을 할 때는 모두가 부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심지어 카이와 유하린이 갑작스럽게 선보인 호흡을 맞춰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장면에서는 치킨집 곳곳에서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윽고 전투가 끝났을 때.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이 사냥을 끝낸 것 같은 노곤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 질질 끌 것 없이 다음 층으로 가죠.]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하는 법.
[새로운 타입의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발견된 던전의 타입은 '도시'입니다.]
[모든 도시 주민들을 처치하여 던전을 공략하십시오.]
마이클은 1부의 결말을 아침 드라마처럼 절묘하게 끊어놓았다.
1부를 시청한 사람들이 2부를 보지 않으면 아주 찜찜한 기분이 느껴질 정도로, 기가 막히게.
당연히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도시형 던전이라고? 이거 세계 최초 발견 아니냐?”
“주민들을 해치우는 게 던전 클리어 조건이라니…… 대체 주민들이 누구길래?”
“아니, 일주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라고?”
“주변에 NET미디어에서 근무하는 친구 누구 없나? 궁금해서 미치겠네.”
여운에 잠긴 시청자들은 빈 맥주잔과 치킨 바구니를 쳐다보며 각자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들은 추가 메뉴를 시키며 자신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랄까, 굉장히 서정적인 프로그램이었어.”
“응. 조미료를 넣지 않은, 그래서 굉장히 순한 맛이 나는 음식을 먹은 기분이랄까.“”
마이클과 김인하 PD가 절대자의 던전을 편집하며 노린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1부는 잔잔하게, 그리고 2부에서 쾅!’
사람의 감정이란 세게 흔들기만 한다고 출렁이는 것이 아니었다.
마이클은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1부를 최대한 잔잔하게 구성했다.
애초에 대본도 없이 찍은 예능이라 모두가 솔직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흠.”
자신의 방에서 프로그램을 모두 시청한 정우도 살짝 여운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던전을 공략할 때는 잘 몰랐는데,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대화를 나눴구나.’
물론 유하린은 1층에서 단 한마디도 안 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은 것이 전부였지만.
“이거, 나도 일 주일을 기다려야 하나?”
정우가 맥주를 홀짝이며 중얼거렸다.
***
심리적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본인의 기분에 따라 평소와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수도, 더 짧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영국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겠는가?
“사장님! 여기 맥주 두 통…… 아니, 네 통 주세요!”
“양념 치킨 여섯 마리 갖다 주세요!”
사실 절대자의 던전 1화의 초반 시청률은 생각보다 저조했다.
온갖 자극적인 소스와 양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다른 예능에 비해, 절대자의 던전은 초반의 화려한 파티 구성원을 보여줬던 것을 빼면 별다른 임팩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자의 던전은 봄비에 옷을 적시듯, 잔잔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이탈을 막았다.
덕분에 시청률은 줄어들지를 않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 수록 쌓여가면서 총 27%.
동시간 대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막을 내렸다.
“어우, 무슨 일주일이 한 달처럼 느껴졌어.”
“이제 즐기자고. 2층의 도시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기만 하면 되니까.”
사람들의 기대 속에 절대자의 던전 2층이 천천히 쓰고 있던 베일을 벗었다.
***
결과적으로 절대자의 던전 2화는 대박을 터뜨렸다.
카이의 손에서 지옥의 불길이 튀어나오고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을 때.
거기에 더해 도시 전체에 푸른 역병의 독안개가 퍼졌을 때.
마지막으로 그가 일으킨 죽음의 군단이 흑색 성채에서 도망쳐 나오는 뱀파이어 군단을 도륙했을 때는 커뮤니티가 폭주하는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서버가 멈출 정도였다.
차박, 차박.
뱀파이어들이 흘린 피의 웅덩이를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언노운의 모습은 오싹할 정도.
그 모습에 시청자들도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와…… 간지 작살난다.
-아니, 침공 이벤트 때 저 듀라한들 본 적은 있는데, 그때는 이렇게까지 안 강했는데?
└듀라한들이 입고 있는 장비를 봐. 웬만한 플레이어보다 장비 수준이 높구만ㅋㅋㅋㅋ
그리고 이어지는 대망의 파이널 매치!
데스몬드의 흡혈을 견뎌내며 그의 옆구리를 미친 듯이 찔러대는 모습이 방영되자, 시청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놈이네…….
-완전 목숨 내놓고 싸우는데?
-확실히 랭킹 1위를 하려면 저 정도 똘끼랑 독기는 있어야 하는 거구나.
-근데 이게 왜 예능이야?
└모르지. 카이 입장에서는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설렁설렁 찍었을 수도.
└에이 설마…….
데스몬드가 쓰러지고, 그가 카이의 펫이 되는 장면은 당연하지만 삭제되었다.
그것은 이제 카이가 지닌 비장의 한 수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마지막 순간 달을 보고 싶어 하던 뱀파이어라…….
-짜식, 몬스터 주제에 시큰하게 만드네.
폭풍 같던 전쟁 장면이 지나가자, 절대자의 던전은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쿠구, 쿠구구궁.
모든 전투가 끝나자 일행들이 서있던 던전이 지상으로 솟아올랐고.
뱀파이어들의 성지, 브룩하임은 세상에 공개되었다.
-브룩하임! 종족을 뱀파이어로 변경할 수 있다고 알려진 곳 아니야?
-아직 아무도 방문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언빌리버블! 뱀파이어가 나올 때 설마 했는데, 이걸 발견한 게 카이였어?!
└진짜 혼자 다 해먹는 것 같음ㅋㅋㅋㅋㅋ.
-주변 지형 파악 끝났다. 지금 당장 브룩하임으로 간다.
-혹시 아무나 브룩하임을 발견하시면 좌표 좀 주세요. 사례금은 드리겠습니다.
프로그램에 맛집이라고 음식점 하나만 소개되어도 다음 날이면 그 가게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물며 브룩하임은 뱀파이어들의 성지이자 종족을 바꿀 수 있다고 알려진 도시였다.
여태껏 수많은 플레이어가 찾아다녔지만, 이타카 밀림의 특성상 쉽게 찾을 수 없던 장소!
그런 장소의 위치가 방송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났다.
-가즈아! 브룩하임으로!
-크큭, 밤의 귀족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날 밤, 전 세계의 미드 온라인 동시 접속자 수는 전날과 비교해 7%가량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