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
힐통령 299화
96장 칠흑의 해역(2)
“시 서펜트?”
카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몬스터의 이름이었다.
“강한 녀석입니까?”
“물론이지. 혹시 대부분의 드래곤이 뮬딘 교가 친밀한 관계인 건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예전에 사룡 시네라스를 잡고 나서 시미즈에게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모든 드래곤은 아니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뮬딘 교와 관계되어 있다고.
“뮬딘 교는 드래곤이 지닌 힘에 강력하게 매료되었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드래곤을 만드는 것은 그들 일족의 분노를 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지. 때문에 뮬딘 교는 시선을 세외로 돌렸다.”
“세외라면……?”
“동대륙.”
천공신 이스카가 짧게 대꾸했다.
“뮬딘 교는 동대륙의 용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했다.”
“용과 드래곤은 다른 존재입니까?”
“다르다. 동대륙의 용은 천계에서 추방된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용으로 존재했었으니까.”
“드래곤과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하죠?”
“개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드래곤이 강하지.”
이스카에 설명에 납득을 한 카이는 계속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뮬딘 교는 새로운 용족을 만들어내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심지어 직접 동대륙으로 가서 용을 해부하고, 세포를 가져올 정도로 열심이었지.”
“지독하군요.”
“그 지독한 독기가 결국 시 서펜트, 할리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옅은 한숨을 내쉰 이스카가 미간을 찌푸렸다.
“할리는 베이스만 용일 뿐, 기존의 용과는 차원이 다르다. 포악한 성정은 물론, 드래곤을 의식하면서 만들었기에 마법에도 능하지. 심지어 지성 또한 높다.”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 아직까지 살아있나요? 뮬딘 교가 패배하고 망한 게 언젠데…….”
“말하지 않았나. 그 녀석은 뮬딘 교가 준비했던 비장의 한 수였다고. 만약 뮬딘 교가 할리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대륙의 역사는 판이하게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할리를 지능이 뛰어난 놈이라고 소개한 것은 빈말이 아니다. 뮬딘 교에서는 녀석을 통제할 마법을 걸어두었지만, 녀석은 그것을 스스로 풀어버리고 사라졌다. 시 서펜트를 이용해 대륙 연합군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던 뮬딘 교 입장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지.”
이스카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난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녀석이네요. 그래서 저에게 하실 부탁이라는 건 뭔가요?”
“뮬딘 교가 할리를 이용하려고 할 때,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한 가지 계시를 내렸다.”
“설마……?”
카이의 질문에, 이스카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를 막으라는 계시였지.”
“바다에서 싸우는 건 인어들이 더 낫지 않을까요?”
“시 서펜트는 엄청난 마법 저항력을 지니고 있다. 인어들의 마법으로는 상대할 수 없지.”
“끄응. 그래서 조인족들은 현재 칠흑의 해역에 갇혀있는 겁니까?”
“그렇다. 그들을 구출해주는 것이 나의 부탁이다.”
띠링!
[천공신의 부탁]
등급 : A
용맹스러운 조인족들은 현재 칠흑의 해역에 위치한 섬에 수백 년간 갇혀 있습니다.
바다의 지배자인 시 서펜트, 할리의 눈을 피해 그들을 구출하십시오.
보상 : 레벨 10 상승, 명성 100,000.
‘퀘스트 등급은 A, 보상은…… 나쁘지 않아.’
만약 퀘스트의 내용이 시 서펜트를 죽이라는 것이었다면 등급은 S로 책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천공신이 바라는 것은 그저 조인족들을 구출해내는 것뿐이었다.
“조인족들의 정확한 위치가 필요합니다.”
“위치가 기록된 지도일세.”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출하려면 대량의 텔레포트 스크롤이 필요하지만…… 그건 일전에 천공의 주시자 스킬을 받았으니 서비스로 해드리겠습니다.”
“고맙군.”
이스카에게 건네받은 지도를 펼쳐 위치를 확인한 카이는 떠날 채비를 했다.
“언제 출발하는가?”
그 질문에 카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 * *
미드 온라인에서 바다 지역을 모험하는 유저의 수가 적은 이유는 간단했다.
배가 비싸니까.
심지어 항해 스킬이 없다면 배를 운전할 조타수는 물론, 배를 관리할 선원들도 고용해야 했다.
하지만 카이는 그 귀찮은 과정을 단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강화 소환, 미믹.”
그의 명령에 따라 소환된 미믹을 와이번 폼으로 바꾼 카이는 그 위에 올라탔다.
“자, 여기 지도에 표시된 위치 보이지? 오늘 목적지는 여기야.”
“까아악!”
잔뜩 흥분한 미믹이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요즘 들어 주인이 자주 불러주기에 세상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펄럭, 펄럭!
일반적인 와이번보다 덩치가 큰 미믹은 힘찬 날갯짓과 함께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끼룩, 끼룩!”
아오사의 핵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미믹은 인간으로 치면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새로운 장소를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최고로 좋아했다.
때문에 생에 처음 ‘바다’라는 것을 목격한 미믹의 입에서는 절로 기쁨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까가각, 까가가각!”
그러나 본래 대부분의 여행은 출발하는 순간만 설레는 행위다.
네 시간 동안 하늘을 날아다닌 미믹은 급격히 피로해졌고, 당연히 날갯짓 속도도 느려졌다.
“이런.”
미믹의 등 위에서 책을 읽고 있던 카이가 눈을 깜빡였다.
속도가 느려진 것이 피부로 확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범한 체력을 지닌 미믹이라도, 칠흑의 해역까지 단번에 날아가는 것은 무리였나?’
하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녀석의 등 뒤에 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힐, 큐어, 블레스.”
정성이 가득 담긴 버프를 받은 미믹의 체력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미믹아. 조금만 더 힘내자.”
게임이 아닌 현실이었다면 노동청에 신고를 당해도 할 말이 없을 혹사!
하지만 아쉽게도 미믹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였다.
“까아악!”
지친 몸을 치료해준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미믹은 다시 날갯짓 속도를 높였다.
‘이제 두 시간 정도 남았나.’
카이는 시선을 다시 읽고 있던 책으로 돌렸다.
* * *
펄럭!
조인족의 아이 하나가 울창한 나무로 이루어진 숲속을 비행하고 있었다.
하나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앞이 아닌, 나뭇잎 너머의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높이 날고 싶다.’
그는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한참을 날고 있었지만, 비행 욕구는 채워질 줄을 몰랐다.
‘저 넓은 하늘을 내 집처럼 누비며 날고 싶어.’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한때는 조인족이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바다의 지배자.
시 서펜트 할리가 일대를 돌아다니며 조인족을 사냥하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조인족은 울창한 나무들이 가려주는 숲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비행 또한 숲속에서만 해야 했다.
나무의 높이를 넘어가는 순간, 할리는 귀신처럼 나타나서 조인족들을 잡아먹었으니까.
“빌어먹을 할리.”
현재 조인족이 살고 있는 섬은 일 년 내내 먹구름이 잔뜩 껴있는 상태였다.
그것 또한 시 서펜트 할리가 만들어낸 마법의 산물이었다.
‘나도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은데…….’
어른들이 입에 닳도록 설명하던,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밝게 빛난다는 새하얀 구체.
“젠장!”
결국, 오늘도 비행 욕구를 풀어내지 못한 아이는 욕지거리를 뱉어내며 천천히 하강했다.
“왜 이렇게 늦게 다니니?”
숲속의 마을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누누이 말하지만, 절대 높이 날면 안 된단다.”
“……알겠어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아이는 수건을 챙기며 말했다.
“씻고 올게요.”
마을의 공용 호숫가로 다가간 아이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
매.
조인족 중에서도 강렬한 핏줄을 타고난 그의 상반신은 하늘의 제왕이라고까지 불리는 매의 모습을 쏙 빼닮아 있었다.
고고한 백색으로 덮여있는 상체.
사냥감을 뜯어먹기 좋게 날카롭고 단단한 부리.
마지막으로 인간보다 8배는 족히 멀리 볼 수 있는 용맹한 눈동자까지.
친구들은 그를 항상 부러워했지만, 그는 이러한 조건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젠장, 하늘의 제왕은 무슨…….”
아이는 조인족들이 싫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숲속의 나무 위로는 비행조차 못 하는 겁쟁이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똑같은 겁쟁이지.’
그래서 본인을 포함한 모든 조인족들이 싫었다.
할리가 무서워 마음껏 날개조차 펼치지 못하는 겁쟁이들의 일족이었으니까.
‘하루하루가 쳇바퀴 돌아가는 것처럼 똑같고, 따분해.’
아이가 옅은 한숨을 내쉬는 순간, 호숫가 주변에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뭐? 그게 정말인가?”
“예, 그것 때문에 장로회가 소집되었습니다.”
“잘못 본 건 아니고?”
“아닙니다. 순찰조에 포함된 모든 이들은 서쪽 지역에서 태양을 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할리의 먹구름이 있을 텐데…….”
“그 부분만 먹구름이 뚫려있었다고 합니다. 확인해 본 결과 현재는 막혀있었습니다.”
솔깃!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아이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태양이라고? 먹구름이 뚫려있어?’
그의 따분하던, 쳇바퀴 같던 일상에 변화가 생긴 순간이었다.
* * *
“오늘 순찰할 서쪽 지역이라면 여기일 텐데.”
황급히 마을을 빠져나온 아이는 엿들었던 대화를 토대로 서쪽 지역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순찰조는 분명 태양을 봤다고 했지. 그렇다면 혹시 나도…….’
두근두근.
어쩌면 오늘 태양을 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 때문에 아이는 하루 종일 비행을 하느라 힘든 것도 잊고 힘차게 날개를 움직였다.
‘어디…… 어디냐.’
그의 시선은 항상 그랬듯이 하늘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하나 먹구름이 뚫려있는 장소는 물론, 태양으로 추정되는 구체는 보이지 않았다.
“후욱, 후욱.”
기대감은 차올랐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식어갔고, 흥분으로 잊고 있던 피로감이 몰려왔다.
“잠시 쉬어야…… 크윽!?”
잘 날아가던 아이의 몸은 순식간에 균형을 잃더니 땅에 처박혔다.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는 왼쪽 날개는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크게 베여 피가 흐르는 중이었다.
“으으으…….”
숲의 서쪽 지역은 아이가 평소에 자주 오던 장소가 아니었다.
평소의 비행 코스는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기에 하늘을 보면서도 날 수 있었지만.
초행길에서는 당연히 앞을 보며 날아야 한다는 것을 까먹은 대가였다.
‘어, 어떻게 하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
식량은 없고, 부상까지 당했다.
심지어 자신은 이곳으로 오겠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다.
조건만 나열해보면 영락없는 미아!
덜컥 겁이 난 아이의 눈가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어, 엄마아…….”
서럽게 울어봤지만 대답해 주는 이가 있을 리 만무.
오히려 밤을 맞이한 숲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때문에 더욱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흐윽, 흑…….”
겁에 질린 아이가 이도 저도 못하고 울고 있는 순간.
“음? 거기 누구 있습니까? 신성한 빛.”
번쩍!
그의 앞에 태양(?)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