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
힐통령 300화
97장 자유의 날개(1)
번쩍번쩍!
엄청난 빛을 뿜어내는 빛의 구체를 쳐다본 조인족 아이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누, 눈이 부셔…….’
어른들이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태양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 것만 같았다.
힐끔힐끔.
아이는 곁눈질로 태양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아, 미안. 너무 눈부신가?”
머쓱한 목소리와 함께 사과가 건네졌고, 빛의 구체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어!?”
조인족의 아이는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괘, 괜찮은 거예요? 태양이 꺼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응? 태양이라니?”
신성한 빛 스킬을 시전했던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치만 이 구체의 빛이…… 빛이…….”
그제야 남자에게 시선을 돌린 아이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이 새는 무, 무슨 종이지?’
그는 성인 조인족보다 신장이 작았는데, 조인족의 상징인 날개는커녕, 상반신도 털로 덮여 있지 않았다.
심지어 부리는 어디서 얻어맞고 부러졌는지, 보이지조차 않는 상태.
“이, 이상한 새…….”
어두운 숲, 태양을 다루는 이상한 존재.
심지어 모습도 이상하다!
두려움을 느낀 아이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얏!”
그러자 날카로운 덤불 숲에 스친 왼쪽 날개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쓰라린 상처!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사내를 올려다봤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남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우선 오해는 나중에 풀고. 상처부터 치료해 줘도 괜찮을까?”
“…….”
아이의 경계심 어린 눈빛에 빙그레 미소를 지은 남자는 한쪽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햇살의 따스함.”
우우우웅!
신성한 황금빛 입자는 곧장 날개로 내려앉았고,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그 기적 같은 광경을 목도한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제 안 아프지?”
남자가 묻자, 조인족 아이는 자신의 왼쪽 날개를 더듬거리더니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안 아파요.”
“다행이다. 앞으로는 조심해서 다녀.”
“네…….”
“그럼 이제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남자의 질문에 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름은 이카루스예요.”
“이카루스라…… 좋은 이름이네. 내 이름은 카이다.”
서로 이름을 주고받자, 경계심이 약간 풀린 이카루스가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무슨 새예요? 날개는 왜 없죠? 털이랑 부리도 없잖아요.”
“그야 나는 새가 아니니까?”
“네? 그럼…… 아저씨는 조인족이 아니에요?”
“그래, 난 조인족이 아니라 인간이야.”
“인간!”
이카루스가 자리에서 펄쩍 뛰며 소리쳤다.
“어른들에게 들어봤어요! 그러고 보니 들었던 대로 생겼네!”
카이를 한창 신기하게 쳐다보던 이카루스는 돌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
“아, 그건 말하자면 좀 긴데…….”
어색한 웃음을 흘린 카이는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을 올려다봤다.
* * *
30분 전, 천공신 이스카가 표시해준 위치에 도착한 카이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게 대체 뭐야?”
바다는 넓다.
특히 칠흑의 해역에서는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수평선밖에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카이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먹구름의 바다가 존재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광활한 먹구름의 파도.
다른 곳은 여전히 밝은 대낮이었지만, 먹구름이 드리워진 지역은 비가 오는 날처럼 어두웠다.
‘여기부터가 시 서펜트 할리의 영역인가.’
침을 꿀꺽 삼킨 카이는 미믹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미믹, 여기까지 온다고 수고했어. 이제 조금만 더 고생해줘.”
“까아악!”
알겠다는 듯 힘차게 대꾸한 미믹은 카이의 명령에 따라 인근의 섬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조인족들을 만나고 텔레포트 스크롤만 넘겨주면 되는 건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던 그때.
주변의 공기가 요동쳤다.
“까아아아악!”
미믹이 열심히 날갯짓하며 몸의 중심을 잡아 보려 했지만, 그를 흔드는 바람의 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런 바람이 절대 자연풍일리가 없어.’
미믹의 등을 꽉 붙잡고 있던 카이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동시에 그의 귓가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 간인가.]
카이는 목소리의 주인에게 누구냐는 멍청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러는 너는 시 서펜트 할리겠군.”
[수백 년이 흐른 지금…… 나의 존재를 아는 인간들은…… 역시 또 너희들인가…….]
저 멀리서 할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물속에 잠겨 있던 머리를 치켜든 것만으로 바다가 요동치며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봐주는 건…… 지난 한 번뿐이라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뭐?”
[나의 경고를…… 무시한 죄는…… 목숨으로 갚으라.]
“잠깐,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
콸콸콸콸콸!
바닷물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할리의 입가로 빨려들어 갔다.
꽤나 먼 거리에 있었음에도 카이의 감각은 경종을 울렸다.
“젠장, 미믹. 저건 위험해. 지금 당장…….”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 소름이 돋은 카이가 명령을 내리려 했지만, 할리가 한 발 더 빨랐다.
콰과과과과과!
극한으로 압축된 물, 수압포가 쏘아지며 미믹을 그대로 관통했다.
“까…… 아아악!”
“미믹!”
띠링!
[소환수, ‘미믹’이 역소환되었습니다.]
공격 한 번에 역소환을 당해 버린 미믹!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보다 더한 문제가 카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비행 수단이 없어!’
와이번 폼의 미믹을 타고 이곳까지 온 카이로서는 허공에서 날아다닐 방법이 없었다.
‘아니, 잘하면…….’
빠른 속도로 바다에 떨어지던 카이의 시야로 섬이 하나 들어왔다.
‘이스카가 표시한 위치는 저 섬이다.’
곧장 시선을 섬에 고정한 카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거리가 제법 멀어. 이건…… 모 아니면 도다.’
현재 카이가 허공에서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중력장!”
스킬의 시전과 동시에, 마나가 쭉 빠져나가며 중력의 작용 방향이 뒤틀렸다.
“끄으윽……!”
순식간에 신형이 90도로 꺾인 카이가 섬 쪽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체력이 떨어지고 몸의 여기저기가 고장 났다는 알림음이 계속 울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섬을 아주 조금 남겨놓은 그 순간, 절망과도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나가 부족합니다.]
[중력장 스킬의 사용이 취소됩니다.]
‘이런!’
쭉쭉 나아가던 카이의 몸이 멈추더니, 이내 바다 쪽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카이가 할 수 있던 것은 단 하나뿐.
“빛의 군단!”
띠링!
[소환하실 빛의 전사를 지명해 주십시오.]
[1. 데스몬드.]
[2. 비어 있음.]
[3. 비어 있음.]
카이는 눈앞에 떠오른 인터페이스 창을 쳐다보며 꽥 소리를 질렀다.
“데스몬드!”
그와 동시에 어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데스몬드가 소환되었다.
번쩍!
그는 밤의 귀족인 뱀파이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홍안을 빛내며, 앵두처럼 붉은 입술을 천천히 달싹였다.
-아아, 간만의 세상…….
“야, 진짜 미안하다!”
콰드드득!
-……!?
등장 대사를 끝내기도 전에, 데스몬드의 정수리에는 커다란 발자국이 새겨졌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 정수리를 스윽스윽 문질러보더니, 버럭 화를 냈다.
-가, 감히! 지금 뱀파이어 일족의 로드인 나의 머리를 밟은 것이냐!
그가 노성을 터뜨렸지만 이미 그를 발판으로 삼은 카이는 섬 끄트머리에 도착한 상태였다.
“방법이 없었어! 미안해!”
-이이…….
데스몬드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인간에게 욕이라도 한가득 해주려는 순간.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음?
할리가 쏘아낸 수압포가 그의 몸을 관통했다.
-끄으윽! 감히……!
빛의 전사 데스몬드가 최초로 소환되어 한 일은, 카이의 발판이 되는 것.
그것뿐이었다.
* * *
“음음.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지.”
짧은 회상을 마친 카이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대체 뭔데요?”
이카루스가 삐딱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설명을 해주는가 싶더니, 혼자 눈을 지그시 감고 저런 말이나 하다니.
“그건 말로 설명하려면 조금 기니까 나중에 들려줄게.”
“그럼 요약이라도 해줘요.”
“요약…… 음…… 요약이라? 잠시만.”
그 요청에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하던 카이는 돌연 박수를 쳤다.
“오케이, 정리 끝. 쉽게 요약하자면 나는 와이번을 타고 바다를 건너고 있었는데, 할리가 튀어나와서 수압포를 쐈어. 거기에 직격당한 내 와이번은 사라졌고, 나는 뱀파이어 로드의 정수를 밟고 가까스로 이 섬에 도착했지.”
“…….”
이카루스가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카이를 올려다봤다.
“와이번이라면…… 그 날개가 달린 용족의 하위 몬스터 아닌가요?”
“맞아.”
“혹시 보여 주실 수 있으세요?”
“아, 그건 좀…….”
역소환 된 미믹을 다시 불러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럼 뱀파이어 로드는요?”
“아, 걔도 좀…….”
카이가 난색을 표하자, 이카루스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아저씨는 와이번이랑 뱀파이어 로드도 부릴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네요?”
“그렇지, 이해력이 참 빠르네. 혹시 구몬 하니?”
“후우.”
이카루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장로님들이 인간은 허풍이 심한 존재랬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잖아?”
“음? 잠깐. 누구 목소리가 들리는데.”
카이의 말에 이카루스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딱히 의심하는 건 아니고…….”
“무슨 소리야? 너 찾는 것 같은데?”
“네?”
그 말에 이카루스는 눈을 꼭 감고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이카루스!
-들리면 말해라!
-어디 있느냐!
“아!”
이카루스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분명 마을의 수색조가 그를 찾기 위해 나온 것이리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황급히 소리쳤다.
“여기예요!”
-엇! 이 목소리는…….
-저쪽이다!
펄럭, 펄럭!
순식간에 날갯짓을 하며 도착한 수색조는 멀쩡한 이카루스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아, 밤늦게 어딜 그리 돌아다니느냐. 너희 어머니가 지금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다.”
“하, 하지만…… 순찰조가 태양을 봤다고 하길래, 저도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그 녀석들, 입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그렇게나 말했건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수색조의 대장은 이카루스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런데 괜찮으냐? 오던 길에 피 냄새가 나길래 분명 네가 흘린 거라 생각했는데…….”
“아, 그거 제 피 맞을 거예요. 상처는 카이가 치료해 줬어요.”
“카이라니?”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수색조 대장은 올빼미를 쏙 빼닮아 있었다.
그 질문에 병풍처럼 서 있던 카이가 머쓱하게 손을 올렸다.
“제가 카이입니다.”
“아이, 깜짝이야. 기척 좀 하고 서 있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올빼미 대장이 크고 동그란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신기하게 생긴 새로군. 자네는 대체 무슨 종인가?”
“……으음.”
아무래도, 조인족들은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