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
힐통령 301화
97장 자유의 날개(2)
“이카루스!”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조인족 여성 하나가 이카루스를 껴안으며 소리쳤다.
“왜, 왜 이래요, 엄마. 새들 다 보는데 창피하게…….”
“시끄러워! 엄마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니?”
마을 한복판에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게 된 이카루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달래느라 바쁠 때, 조인족들은 카이를 보며 수군거렸다.
“그런데 저기 저 새는 누구지? 처음 보는 종인데?”
“어쩜, 부리가 부러졌나 봐. 밥 먹을 때 불편하겠다. 불쌍해라…….”
“털도 없어서 겨울이 되면 추울것 같아.”
카이를 향한 동정의 여론이 이어질 때, 조인족 하나가 입을 열었다.
“내가 들었는데, 그는 새가 아니라 인간이래.”
“째애액! 인간이라고?”
깜짝 놀란 새들이 반문했다.
“응. 수색조의 친구에게 들었어.”
“인간이라면…… 가끔씩 장로님이나 족장님들이 얘기해주시던?”
“그 분들이 하시는 말씀은 전부 만들어낸 이야기 아니었어?”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인간이 여긴 어떻게 왔대.”
수색조와 함께 조인족의 마을에 입성한 카이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언노운 시절, 이와 같은 대우에 익숙해졌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을을 둘러보았다.
‘음.’
드워프와 인어, 엘프들의 마을을 모두 방문해본 카이였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조인족들의 마을치고는…… 뭔가 이상한데?’
여태 방문했던 아인종들의 도시는 모두 그들만의 문화와 특성이 엿보이는 구조였다.
하지만 조인족의 마을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카이가 대체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하고있는 순간, 묵직한 음성이 퍼졌다.
“모두 조용히.”
그러자 거짓말처럼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카이는 저 멀리서 일련의 무리를 이끌고 다가오는 조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야를 강탈하다시피 앗아간 것은 선두의 존재였다.
‘대머리 독수리잖아?’
심지어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그 새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수염을 지니고 있었다.
“흐으음. 보고를 듣고는 설마 싶었는데, 정말 인간이라니.”
카이에게 다가온 그는 깊은 침음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의 뒤에 서있던 조인들도 다들 나이가 지긋했는데, 그들도 카이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군. 따라오시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대머리 독수리가 앞장서자, 마치 모세의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조인족들이 길을 쫙 비켜섰다.
잠시 후 그들은 마을 회관으로 추정되는 큰 저택에 도착했다.
“미안하지만 대접할 음료라고는 숲에서 나는 차밖에 없네.”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싹싹하구먼.”
자리에 앉은 대머리 독수리는 카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통성명부터 하지. 이 늙은이의 이름은 거스트라고 하네. 조인족을 이끌고 있지.”
“카이입니다.”
“카이, 카이라…… 기억해 두겠네. 그럼 어쩌다가 이 섬에 오게 되었는지를 말해줄 수 있겠나?”
그 질문과 동시에 카이를 둘러싼 수많은 조인들의 눈빛에 강한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답을 통해서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를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전 여러분을 구출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응?”
그 대답에 모든 조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늘을 날지도 못하는 인간이 이곳에 들어온 것도 신기한데,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니?
카이는 눈만 깜빡거리는 그들을 쳐다보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쿠우웅!
그러자 책상 위로 수백 개의 텔레포트 스크롤이 들어있는 배낭이 떨어졌다.
그것을 바라본 거스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건……?”
“텔레포트 스크롤입니다.”
카이가 듬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가 예상했던 것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환호를 터뜨리는 조인들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싸늘했다.
“후우…….”
거스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도는 좋았네만, 이곳에서는 텔레포트 스크롤은 사용할 수 없네.”
“예? 그게 무슨…….”
“이 섬의 주변이 해룡 할리의 영역이라는 것은 알고있겠지?”
“물론입니다.”
“그가 뿌려놓은 먹구름은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네.”
“마나의 흐름을 방해한다니요?”
“쉽게 말해서…… 텔레포트 같은 공간 이동 마법은 사용할 수 없네. 그 밖에도 마나를 사용하면 평소보다 더 짧은 시간밖에 사용할 수 없을 게야.”
부욱.
거스트는 카이가 들고온 텔레포트 스크롤 한 장을 과감하게 찢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텔레포트 스크롤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아…….”
순간 카이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이번에 자신이 영지에 설치한 강화보호결계였다.
‘그것과 비슷한 원리인가? 하지만 해룡이 시전한거니 효과는 더 뛰어나겠지.’
이곳에 오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던 카이는 실망을 금치 않았다.
‘그럼 조인족들을 직접 이끌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소리잖아?’
할리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태에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다.
‘이거 난이도가 갑자기 확 올라가버렸는데.’
머리가 아파온 카이가 인상을 찌푸리자, 거스트가 물었다.
“우리를 위해 노력을 해주어 고맙네.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말씀하세요.”
“인간들이 우리를 구출할 것 같지는 않군. 대체 누구인가? 자네에게 구출을 의뢰한 이는.”
타당한 질문이었다.
그의 말처럼 조인족들이 이 섬에 갇힌 지 수백 년이나 흐른 시점에서, 인간들이 뜬금없이 그들을 구출하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카이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공신 이스카. 그분께서 절 보내셨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이 불쌍하니 구해달라고 친히 부탁하셨지요.”
“처, 천공신께서……!”
“오오…… 그렇다면 자네는 신이 보낸 사자란 말인가!”
축 처져 있던 조인족들의 기분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그것은 거스트 또한 마찬가지.
그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것 참…… 몰라봐서 미안하군. 자네가 그 정도로 대단한 인간인지는 몰랐네.”
“아닙니다. 모를 수도 있지요. 혹시 광휘의 성기사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거스트를 비롯한 조인들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것은 그들이 잔뜩 흥분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패트릭, 그는 내가 봐왔던 인간들 중 가장 강력한 기사였네.”
“그가 함께하는 전장이라면 무서울 것이 없었지.”
“패트릭이라…… 그리운 이름이군. 그는 나에게 가끔씩 지렁이를 줄 정도로 착했지.”
조인들이 저마다의 영광스러웠던 추억에 잠겼다.
오직 거스트만이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갑자기 패트릭의 이름은 왜 꺼내는 것인가?”
“왜냐하면, 제가 그분의 힘을 계승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우우웅!
동시에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수백 장의 텔레포트 스크롤들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 엄청난 압력을 뿜어낸 것은, 어느새 탁자 위에 소환되었던 한 자루의 성스러운 검이었다.
“허, 허억…… 성검……!”
“정말로 패트릭의 후예였군!”
“내, 내가 살아서 이 검을 다시 보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조인족들은 닭살이 올라오는 깃털을 만지며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오, 오오오오…….”
이번에는 거스트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성검 프리우스를 쳐다보며 옛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가 생각나는구먼…… 내가 전장의 시야를 보고 그에게 이야기를 해주면, 그는 항상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고 말했었지.”
잠시 시간이 흘러 조인족들이 흥분을 가라앉히자, 거스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뒤를 이었다는 것은, 카이 그대가 당대의 사도라는 의미겠지?”
“예, 제가 패트릭 님의 뒤를 이어 네 번째 사도가 된 카이입니다.”
“과연. 천공신께서 그대에게 이리 어려운 부탁을 하신 이유도 알겠군.”
거스트가 환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카이의 손을 꽈악 잡았다.
“우리를 구해주러 와주어서 정말 고맙네.”
“아, 저기 그런데…….”
카이가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저도 딱히 할리와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온 건 아니거든요? 천공신께서도 싸우면 제가 질 테니 조인족들의 구출만 해달라고 하셨고…….”
“그게 무슨…… 설마?”
거스트는 사방에 흩뿌려진 텔레포트 스크롤을 쳐다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해룡 할리의 마법 때문에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한 마디로 카이가 그들을 구출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뜻이었다.
“후우. 그럼 결국 또 제자리 걸음이군.”
조인족들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런 그들을 보던 카이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선 조인족들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상황이라…….”
그 말을 내뱉는 거스트의 목소리는 무겁기 짝이 없었다.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네.”
이어진 거스트의 말은 현재 조인족의 참담한 현실을 가감없이 설명해주었다.
“심각하군요.”
현재 조인족이 놓인 처지를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할리가 두려워 숲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고, 이것은 비행 또한 마찬가지다.
게다가 수백 년 동안 드리워진 마법의 먹구름 때문에, 대다수의 조인족들은 진정한 하늘을 본 적도 없고, 태양을 본 적도 없었다.
‘이카로스가 신성한 빛을 보고 태양이 아니냐고 물었던게 그런 이유였구나.’
가장 큰 문제는, 높이 날지 않다보니 날개의 성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 어린 조인들의 몸을 살펴보면, 상체보다는 하체의 근육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경향이 있네. 이건 큰일이라고 할 수 있지.”
하늘의 제왕이라고까지 불리던 조인족들의 날개가 퇴화된다니.
과연 천공신 이스카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걱정을 할 만 하다.
“후우,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탈출 방법을 강구해보도록 하죠.”
말은 그렇게했지만, 카이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섬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할리와 싸워서 이기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 * *
“인간이다!”
“신기하게 생겼다!”
“진짜 털이 없어!”
조인족 마을의 아이들은 아침부터 잔뜩 신이 났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마을에, 재미있는 장난감이 나타났으니까.
물론 그 덕에 죽어 나가는 것은 카이였다.
“애들아. 난 이제 바빠서…….”
“인간이 도망친다!”
“쫓아라!”
아이들에게 한참을 시달리던 카이는 어쩔 수 없이 블리자드를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이 애들 좀 어떻게 해봐.”
“……이 아이들 말입니까.”
듬직한 블리자드는 눈에 힘을 주며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히, 히익…….”
“히끄윽…….”
“괴, 괴물이다! 도망쳐!”
그 눈빛에 겁에 질린 조인족 아이들은 사방으로 도망쳤다.
“왜 애들 겁을 주고 그래?”
“죄송합니다, 마스터.”
“아니, 잘 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운 카이는 마을에서 빠져나오며 블리자드와 함께 숲속 길을 걸었다.
그 때였다.
“마스터…….”
“알아.”
카이가 블리자드의 말을 끊었다.
마을을 나올 때부터 미행이 붙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꼬맹이. 이름이 이카루스라고 했나?’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조인족이었다.
“그냥 가만히 냅둬. 거스트의 말이 맞다면, 어차피 따라오다가 말 테니까.”
왜냐하면, 카이는 오늘 숲을 나설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