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
힐통령 302화
97장 자유의 날개(3)
힐긋.
블리자드가 뒤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스터. 계속 쫓아옵니다만.”
“……그러게.”
그의 말처럼 이카루스는 두 사람을 끈질기게 쫓아왔다.
제 딴에는 미행이랍시고 쫓아오는 것 같았지만 블리자드와 카이.
두 사람 앞에서 기척을 숨기기에는 그 수준이 한참이나 모자랐다.
“이상하네.”
카이는 그런 이카루스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스트는 분명 조인들이 숲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는데.’
그런데 이카루스는 두려움을 모른다는 듯, 숲의 외곽에 도착해서도 꾸역꾸역 잘도 쫓아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일단 냅둬. 숲을 나서면 알아서 포기하고 돌아가겠지.”
“예.”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위치한 숲은 굉장히 넓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법 거대한 섬의 대부분이 숲으로 이루어졌으니까.
“여기부터는 제가 앞장 서겠습니다.”
“그러든가.”
곡도 한 자루를 빼든 블리자드가 선두를 자처했다.
누구도 방문하지 않은 숲의 외곽은 수풀과 덩쿨이 무성했으며, 야생 짐승들의 표식도 가끔씩 보였다.
서걱!
덩쿨을 자르며 험난한 길을 뚫던 블리자드가 돌연 걸음을 멈추곤 돌아섰다.
“도착했습니다.”
“오.”
이에 반색한 카이는 곧장 블리자드에게 다가갔다.
“이야, 진짜 끝이네.”
숲의 가장자리에 도착한 두 사람을 싱그러운 녹색 초원이 맞이했다.
바닷가의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며 초원의 잔디를 좌우로 흔들었다.
“먹구름이 잔뜩 껴있지만, 그럼에도 멋진 경치입니다.”
“……그러게. 조인족들도 이 초원을 봤으려나?”
넋을 놓고 초원을 바라보던 카이가 숲의 그늘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뒤쪽에서 빼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나가면 안 돼요!”
펄럭, 펄럭!
두 사람에게 날아온 이카루스는 그들의 손을 붙잡고는 낑낑거리며 잡아당겼다.
땅에 철심이라도 박아넣은듯,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던 블리자드가 물었다.
“마스터. 이제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글쎄다. 일단 이야기나 좀 들어볼까?”
이카루스의 손에 몸을 맡긴 카이는 그를 따라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갔다.
“휴, 휴우…….”
두 사람이 무사히 숲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이카루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물론 두려운 심정은 알아요. 평생 섬에서 살아야하고, 숲 밖으로는 나갈 수 없어서 답답하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목숨을 포기하기에는 앞으로 보낼 시간들이 너무 아깝잖아요?”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카이가 입을 열었다.
“블리자드, 해석 좀.”
그러자 블리자드는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와 마스터가 숲을 나가려는 모습을 보고, 목숨을 끊는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흐음. 대체 왜?”
카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묻자, 이카루스는 눈을 깜빡였다.
“혹시 장로님과 족장님한테 못 들으셨어요? 숲 밖으로 나가면 죽어요.”
“누가 날 죽이지?”
“할리, 혹은 할리의 부하들이요.”
“숲 밖으로 나오면 죽이고, 안 나오면 안 죽인다? 걔는 대체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한데?”
“그야…… 저희는 할리의 애완용 새이니까요.”
이카루스가 눈을 내리깔며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숲 밖으로 나오면 죽이겠다. 하지만 자신의 새장 속에 갇혀 살면 굳이 건드리지는 않겠다. 할리가 예전에 족장님과 장로님들에게 하셨던 말이래요. 놈은 저희를 완전히 애완동물로 생각해요.”
“새장이라, 확실히 그럴 듯한데?”
“비, 비웃지마세요!”
“그래서 그 녀석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어온 건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어, 어쩔 수 없잖아요. 거역하면 죽음뿐인데…….”
이카루스가 몸을 잘게 떨며 중얼거렸다.
“마스터, 그는 현재 엄청난 공포를 느끼는 중입니다.”
“그런건 말 안 해줘도 보면 알아.”
할리를 향한 압도적인 두려움.
그것을 실제로 목격한 카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게 거스트가 말했던 건가.’
일족의 젊은 새들을 답답해하던 그의 심정이 백분 공감되었다.
‘게다가 이래선 나도 곤란해.’
현재 카이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이용해 조인족들을 구출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일한 방법은 정면 돌파뿐.
‘하지만 그것도 나 혼자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야.’
자신이 할리와 전투를 벌일 때, 조인족들은 스스로 날아서 섬을 빠져나가야 한다.
허나 지금 같은 상태라면?
‘할리를 향한 공포심이 너무 뿌리 깊이 박혀있어. 이러면 새장의 문을 열어줘도 나가지 못할 거야.’
그들의 뼛 속 깊이 박혀있는 공포심.
카이는 그 공포를 뿌리부터 뽑아내야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럼 너와 조인족들은 평생 숲을 빠져나가본 적이 없는 거야?”
“빠져나가기는커녕 수, 숲의 외곽에 온 것도 이번이 처음인걸요.”
이카루스는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았는지,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댔다.
그런 그를 쳐다보던 카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런 겁쟁이가 일족 최고의 반항아라니…….”
“거, 겁쟁이라뇨!”
귀 하나는 밝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카이는 몸을 비켜서며 잘린 넝쿨을 가리켰다.
“여기 처음 온 거면, 한 번 볼래? 숲의 바깥쪽은 어떤 풍경일지.”
“수, 숲의 바깥쪽이요?”
“그래. 와본 적은 없어도 상상해본 적은 있을 거 아니야.”
“그야…….”
이카루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푸르른 하늘, 눈부신 태양과 함께 그의 상상에 단골로 등장하던 것이 바로 숲의 바깥쪽이었으니까.
“뭐가 그렇게 두려워?”
“두, 두렵기는 누가…….”
꾸욱.
카이는 몸을 덜덜 떨어대는 이카루스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그와 함께 발동하는 큐어 스킬.
동시에 이카루스는 자신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놀란 눈으로 카이를 올려다봤다.
“좀 진정됐지?”
“어, 어떻게 하신…….”
“내가 원래 능력이 좀 많아.”
어깨를 으쓱거린 카이는 툭툭, 이카루스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자. 네 눈으로 직접 봐. 숲의 바깥은 과연 어떤 풍경인지. 네 상상 속 모습 그대로일지.”
꿀꺽.
카이의 거듭된 설득에 이카루스의 마음이 한 쪽으로 기울었다.
‘자, 잠깐만이라면…….’
어른들은 숲의 바깥쪽이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라고 했다.
게다가 강한 바람이 불고 있어 조인족의 힘으로는 날 수가 없는 지옥 같은 장소라 하였다.
‘그러니까 절대 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지.’
그것이 조인족이 어린 시절부터 받는 교육이었다.
저벅, 저벅.
이카루스가 천천히.
보는 이가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덩쿨 쪽으로 걸어갔다.
이어서 덩쿨 너머의 풍경을 두 눈에 담는 순간.
이카루스의 눈동자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솨아아아아아아아.
얼굴을 강타하는 거센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이 밀어대는 푸르른 잔디의 바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가슴이 뻥 뚫릴 듯한 시원한 광경이었다.
그 풍경을 눈에 담은 이카루스는 저도 모르게 한 줄의 눈물을 흘렸다.
“어…… 어어?”
본인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도 알지 못하는 어리숙한 꼬마.
카이는 넋을 놓은 이카루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멋있지? 이게 초원이라 는거다.”
“초……원…….”
할 말을 잃어버린 이카루스는 멍하니 초원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멋있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멋있는 광경은 처음 봐요…….”
“네가 상상으로 그리던 숲의 밖과 현실은 다르지?”
끄덕끄덕.
이카루스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멋있는 장소가…… 숲 밖에 존재했다니. 뭔가 큰 손해를 본 듯한 기분이예요.”
“넌 아직 어리다.”
카이의 뜬금없는 말에, 이카루스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책에서 배운 지식과 어른들의 말에는 물론 삶의 지혜가 녹아들어있지. 하지만 그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야.”
카이는 싱그러운 초원에 발자국을 새기며 말을 이었다.
“네 눈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직접 체험한 것들만 믿어.”
“제가 직접…….”
이카루스가 홀린 듯이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숲을 나서려던 그는 누군가가 잡아당기기라도 한듯, 쉽사리 발을 떼어 내지 못했다.
“물론 네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면. 새장 속에 갇혀서 사는 것을 원한다면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기억해. 네가 변하고자 노력한다면, 그 뒤는 내가 책임질게.”
“…….”
카이의 진심이 담겨 있는 말을 듣게 된 이카루스의 눈동자에 단단한 각오가 떠올랐다.
“전…… 전 바뀌고 싶어요. 더 이상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비하하는 것도 싫고, 보고싶은 것도 많아요. 숲보다 높이 날아보고 싶고, 저 먹구름 너머의 하늘이란 것과, 태양이란 것을 보고 싶어요.”
“그럼 뭐하고 있어?”
카이가 짓궂게 웃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직접 보고 와. 너의 새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여태까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장소.
심지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조차 떠나본 적이 없던 장소.
하지만 그 장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난 알고 싶어.’
푸드득, 푸드득.
각오를 세운 이카루스가 날갯짓을 시작하자 그의 몸이 조금씩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이카루스가 허공에서 1미터 이상 날아올랐을 때.
카이는 그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었다.
“중력장.”
화아아아악!
“으, 으아아아악!”
갑작스럽게 몸이 가벼워지며 허공으로 붕 떠버린 이카루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태어나서 이렇게 높이 날아본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매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조인족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그를 자극했다.
‘아…….’
그것은 해방감.
전신이 찌릿찌릿해지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강렬한 해방감이었다.
“나, 날고 있어. 제가 숲보다 높이 날았다구요! 하하하하!”
그 강렬한 쾌감에 엄청난 희열을 느낀 이카루스가 두 날개를 활짝 피며 허공을 날아다녔다.
그러기를 잠시, 그는 자신이 평생을 자고나란 ‘새장’을 내려다보았다.
“아…… 아아…….”
고작 저 정도 크기였던가?
자신을 묶어두고 있던 새장은.
이토록 쉬운 것을 하지 못해서, 지난 십수 년을 불만에 잠겨 있었던가?
이카루스는 눈을 질끈 감으며 크게 소리쳤다.
“나는……! 나는 날고 있다!”
펄럭, 펄럭.
조인족 최강의 혈통을 자랑하는 매답게, 이카루스의 비행 속도는 굉장히 쾌속했다.
“호오, 어떻게 생각해?”
“저 정도면 와이번으로 변한 미믹보다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그렇지? 하면 되잖아. 하면…… 음?”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이카루스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카이가 돌연 인상을 굳혔다.
“블리자드. 저거 뭐야?”
“음…… 가고일로 추정됩니다. 마스터.”
그의 말처럼, 먹구름을 뚫고 들어온 세 마리의 가고일은 곧장 이카루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생전 처음으로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은 이카루스는 날개를 허우적거리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부딪친다!’
이카루스는 높은 곳을 날다가 중심을 잃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
그야 가르쳐주는 어른이 없었으니까.
‘이, 이렇게 죽는 건가!’
결국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초원을 보는 이카루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없었고, 이를 대신하여 부드러운 음성이 그의 귓가를 울렸다.
“난 한 입으로 두말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중력장을 이용해 이카루스를 가볍게 받아낸 카이는 자신을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카루스를 보며 낮게 웃었다.
“말했잖아? 네가 변하고자 노력한다면. 뒤는 내가 책임진다고.”
“책임……? 아! 맞아! 도망쳐야 돼요!”
이카루스가 다급한 표정으로 허공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저, 저 괴물들……!”
카이가 그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블리자드.”
“예, 마스터.”
“저것들. 치워버려.”
“예, 마스터.”
두 자루의 곡도가 뿜어내는 예기는, 초원의 바람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