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
힐통령 305화
97장 자유의 날개(5)
“아아, 이 기분이야!”
이카루스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힘껏 날갯짓을 했다.
지난 한 달간, 이 기분을 잊지 못해 죽기 살기로 훈련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두 눈을 가득 채우는 푸르른 초원.
게다가 자신을 부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조인족들까지!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이카루스는 마음껏 자신의 비행을 뽐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조인족들의 마음은 세차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저, 저거 괜찮은 건가?”
“진짜 즐거워 보이네…….”
“이카루스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거 있어?”
“그, 그렇지? 그럼 나도 한 번 날아볼까?”
하나, 둘.
쭈뼛거리면서 날개만 움찔거리던 조인족들이 천천히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던 젊은 조인족들이었다.
펄럭! 펄럭!
숲을 빠져나와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수십 마리의 조인족들.
이카루스는 그들을 반기듯 쾌활한 날갯짓을 선보였다.
“나, 날고 있다…… 하늘을 날고 있어!”
“으하하하! 이거 기분 죽이는데?”
“크으윽…… 젠장…….”
“어라? 울어요?”
“울기는 누가!”
저마다의 기쁨을 표시하는 조인족들.
본인의 의지로 새장을 벗어난 새들은 드넓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파아앙! 파앙!
먹구름을 뚫고 들어온 가고일들이 새빨간 눈을 빛내며 포효했다.
“캬아아아악!”
“크라락!”
“뭐, 뭐야 저것들은!”
“저 날개는…… 이카루스가 보여줬던 날개잖아?”
새장을 빠져나온 새들을 징벌하기 위해 파견된 가고일들.
이카루스는 다급한 표정으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카이와 블리자드, 두 사람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땅에 못이라도 박아놓은 듯 움직일 생각조차 안했다.
‘왜…… 왜? 어째서?’
조인족을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은인들이, 어째서 위기의 순간에 도와주지 않는 거지?
이카루스는 공격을 받고 꽁무니를 빼는 일족들을 보며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
“정말 괜찮겠습니까?”
블리자드가 살짝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이가 그들을 도와주지 않겠다는 말을 꺼냈으니까.
“너무 위험하면 어쩔 수 없이 나서야지. 하지만 우선은 이카루스에게 맡겨보려고. 그러려고 훈련한거잖아? 자질도 좋고, 배움도 빨라.”
“하지만 훈련을 시작한 지 고작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한 달.”
블리자드의 설득이 계속되자 카이는 못 참겠다는 듯 웃으며 그를 쳐다봤다.
“너 되게 재미있다?”
“……예?”
“일단 팔이나 내놔.”
블리자드가 황급히 팔을 뒤쪽으로 숨겼지만, 카이는 이를 낚아채며 그의 비늘을 확인했다.
블랙 리자드맨 특유의 강력하고 단단한 비늘은 잔뜩 균열이 나있는 상태였다.
“이거 봐, 이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
“부끄럽기는. 이카루스의 말처럼 너가 전력으로 임한 것도 아닌데 뭘.”
이카루스와의 실전 연습에서 당한 상처다.
햇살의 따스함을 통해 블리자드의 상처를 치료한 카이가 물었다.
“자, 다시 물어볼게. 너에게 이 정도의 상처를 낼 수 있는 존재가 과연 가고일에게 당할까?”
“……하지만 그에게는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래, 그러니까.”
카이는 맑은 눈빛으로 위기에 빠진 조인족들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를 쳐다봤다.
“지금부터라도 채워야지.”
***
“이, 이것들 뭐야! 왜 갑자기 공격을……!”
“크윽! 저리 가!”
가고일들의 공격을 받은 조인족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애초에 하늘을 날지 않는 그들은 비행전을 배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가고일들은 칠흑의 군도를 관리하는 몬스터들!
가고일들은 과거 하늘의 제왕이라 불리던 조인족들을 동네북처럼 두드려 팼다.
“크윽, 손톱, 발톱에 긁히면 아프긴 하지만…… 치명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야.”
“모두 그냥 버티면서 도망쳐!”
“숲으로 들어가면 우리를 찾지 못 할거야!”
잔뜩 겁을 먹은 조인족들이 숲으로 돌아가기 위해 날갯짓을 했다.
그러던 중, 가고일 하나가 아직은 어린 조인족 소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크라락!”
“꺄아아악!”
어린 조인족들의 깃털은 계속해서 성장을 한다.
그 과정에서 조인족은 자신의 깃털을 더 날카롭게 만들거나 부드럽게, 혹은 더 단단하게 만드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소녀는 그러한 지식을 갖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다.
때문에 가고일의 날카로운 발톱이 자신을 향할 때,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안젤라!”
숲의 가장자리에 서있던 그녀의 언니가 두 발만 동동 구르며 부르짖었다.
그 순간.
콰드드득!
마치 동굴 벽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가고일의 날개 한쪽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크랴아아아아악!”
비명을 토해내며 추락하는 가고일.
그 강력한 한 방을 먹인 것은 다름 아닌 이카루스였다.
“허억, 허억…….”
이카루스는 멍한 표정으로 추락하는 가고일을 바라봤다.
본인이 해놓고도 차마 믿을 수 없다는 기색.
“고, 고마워요 오빠!”
눈물을 글썽거린 안젤라는 그 와중에도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숲을 향해 도망쳤다.
‘통한다…….’
하늘을 부유하던 이카루스가 문득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지난 한 달간의 훈련으로 부쩍 성장한 몸.
그 과정에서 자신은 과거 조인족의 전사들이나 배웠을 법한 기술들을 모두 터득했다.
거스트 족장은 과거 숱한 전장을 겪으며 단련된 베테랑 전사.
그는 자신의 모든 정수를 아낌없이 이카루스에게 전수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블리자드님…….’
전투라는 것은 이론만 배운다고 단시간에 이렇게 늘어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이카루스가 이 정도의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건, 블리자드의 공헌이 실로 지대했다.
‘마지막으로 카이 형까지.’
이카루스의 두 눈동자에 결의가 치솟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왜 두 사람이 조인족들을 도와주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 주시는구나.’
가고일을 무찌를 이는 다름아닌 자신이라고.
그들은 눈빛으로, 행동으로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이게 진정한 실전 테스트네요.’
지금까지 블리자드와 해왔던 것이 예행연습이라면.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실전이었다.
‘그렇다면…….’
펄럭!
이카루스가 평소보다 자신의 날개를 더 활짝 펼쳤다.
순백의 날개는 먹구름 아래에서도 반짝일 정도로 고고했고, 눈부셨다.
“캬아악!”
“크라아악!”
조인족을 사냥감으로 보던 가고일들의 시선이 이카루스에게 집중되었다.
조인족 중에서는 처음으로 자신들에게 반항한, 건방진 사냥감이었으니까.
“키야아아아악!”
가고일들이 단단한 날개를 움직이며 이카루스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고일들은 돌로 만들어진 존재.
‘저 녀석들의 움직임은 무거워.’
거스트 족장님은 항상 말했다.
‘더 빠르게.’
파아아아아앙!
그들을 향해 마주 날아가는 이카루스의 속도가 음속을 돌파했다.
가고일들은 날개가 달려 비행을 할 수 있다뿐이지, 이카루스처럼 빠르게 날지는 못했다.
아니, 대부분의 조인족이라 한들 그처럼 빠르게 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캬르륵!”
결국 아홉 마리의 가고일들은 이카루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자 포위망을 형성했다.
촘촘한 거미줄처럼 대열을 맞춰 날아오는 가고일들.
‘조인족은 그 어떤 종족보다도 자유롭다. 더 자유롭게……!’
음속비행을 하던 이카루스가 도중 돌연 날개를 세로로 세웠다.
동시에 그의 속도가 대폭 줄어들더니, 직각으로 꺾어지며 위쪽을 향해 날아갔다.
“캬, 캬아악?!”
위쪽에 위치하던 가고일이 비명을 질렀다.
설마 그 각도에서 자신에게 날아오다니?
하지만 잘 훈련된 가고일은 본능적으로 발톱을 내리그었다.
이카루스가 지닌 매의 눈이 번뜩였다.
‘공격로가 단순해.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무 느려.’
촤악!
이카루스의 날개를 한쪽만 펼치자, 그의 몸이 빙글 돌아가더니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한 번을 피했으면 자신의 차례.
휘리리릭!
날갯짓을 통해 몸을 360도로 회전시킨 이카루스의 회전 발차기가 가고일의 머리에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앙!
바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고일의 머리가 시원하게 박살 났다.
***
“어때? 감상은.”
“……훌륭합니다.”
지상에서 이카루스의 전투를 바라보던 카이와 블리자드가 담소를 나누었다.
이카루스가 열 마리의 가고일을 모두 처치하는 데 걸린 시간은 18분.
두 사람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느린 시간이었지만, 이카루스는 이것이 첫 전투였다.
그것을 감안하면 합격점을 줄 수밖에 없는 훌륭한 결과였다.
펄럭, 펄럭.
이카루스가 순백의 날개를 느릿하게 저으며 숲으로 돌아왔다.
지상에서 그를 쳐다보던 조인족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의 귀환을 조용히 반겼다.
‘내, 내가 뭘 잘못했나?’
그들의 멍한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이카루스에게, 카이가 다가갔다.
“수고했다. 멋있었어.”
“……제가 멋있었어요?”
“물론이지. 네가 조인족들을 위기에서 구해냈잖아? 안 그러니?”
카이가 제 옆에 서있는 조인족 소녀, 안젤라에게 물었다.
그녀는 자그마한 머리를 끄덕이며 크게 외쳤다.
“맞아요! 정말 고마워요, 이카루스 오빠!”
그녀의 감사 인사가 시작이 되었다.
가장 먼저 눈물을 펑펑 흘리던 안젤라의 언니가 와서 이카루스에게 감사를 표시했고.
이어서 수많은 조인족들의 그의 영웅적 활약을 칭찬했다.
“어, 어어…….”
이카루스는 조인족을 겁쟁이라고 생각하며 그들과 거리를 두고 생활하던 존재.
당연히 이 정도로 많은 관심과 축하,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후아…… 전투보다 이게 더 지치네요.”
조인족들이 모두 마을로 돌아가자, 이카루스는 그제야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하지만 기분은 좋지? 좋은 일을 하고, 누군가에게 감사를 받는다는 거.”
낮은 웃음을 흘린 카이는 잘 알고 있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이카루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
정말 그랬다.
카이 형의 말이 사실이었다.
아까부터 심장이 쿵쿵 뛰는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확실해졌다.
‘기쁘다…… 기분이 좋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
위기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던 순간.
정신없이 폭풍처럼 지나간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고마운 마음은 자신에게 확실히 전해졌다.
그 감정은 아직까지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심장을 세차게 뛰게 만들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뭔가…… 좋네요.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건. 누군가에게 진심을 선물 받는다는 건…….”
“그렇지?”
카이가 해맑게 웃으며 이카루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사가 된 걸 축하한다. 이카루스.”
이카루스는 씨익 웃으며 그 손을 강하게 마주잡았다.
***
“……그렇게 되었으니, 이제 슬슬 날을 잡아야겠습니다.”
“으음…….”
카이와 독대를 나누던 거스트가 신음을 흘렸다.
“물론 최근 일족의 새들 중 일부가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을 강하게 느끼는 건 사실이오. 게다가 이카루스라는 영웅의 탄생으로 용기도 얻었고, 가고일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었지.”
“물론 모든 조인족들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나가려면 지금이 최적의 시기입니다. 더 늦어지면 할리가 무슨 짓을 할 지 모릅니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요.”
“끄응.”
거스트는 카이의 재촉에도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카이의 말에 백분 공감했고, 또 동의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반면에 그는 조인족을 이끄는 리더.
당연히 다수의 새들이 안전하게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해야 했다.
“할리는 그대가 완벽하게 잡아둘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오?”
“예.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할리는 붙잡아 두겠습니다.”
“으으음…….”
사실 할리의 방해만 없다면 칠흑의 군도를 빠져나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고일들의 추격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지만, 조인족들의 속도가 그들보다는 더 빨랐으니까.
“후우, 알겠소.”
결국 거스트는 결정을 내렸다.
“그대의 말이 맞소. 완벽을 추구하다가는 끝이 없는 법이지. 지금이 최적의 시기라는 데에 동의하오.”
“소중한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내일, 어떤 형태로든 새장은 부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