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08화 (308/441)

# 308

힐통령 308화

97장 자유의 날개(9)

할리의 머리에는 총 3개의 뿔이 달려 있었다.

중앙에 하나,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에 하나씩.

카이의 하늘을 가르는 검은 세상을 세로로 베어나가며 할리의 뿔 하나를 반으로 절단했다.

그것이 바로 중앙에 위치한 뿔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할리가 자신의 거대한 몸을 비틀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띠링!

[할리의 첫 번째 뿔을 파괴하셨습니다.]

[할리의 마법 공격력이 30% 감소되었습니다.]

[할리의 마나 억제력이 30% 감소되었습니다.]

‘음?’

사실 카이는 수압포를 베어내려고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한 마디로 할리의 뿔이 잘린 것은 얻어걸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소리.

운 좋게도 용의 머리에 달린 뿔은 마나를 다루는 역할을 맡고 있는 급소였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밟은 격이었지만, 전투의 판도를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주, 죽여 버리겠다!]

할리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허나 카이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발악처럼 보였다.

‘하나도 무섭지 않아.’

중력장을 통해 빠져나가는 마나가 줄어들었다.

일대를 잠식하고 있는 할리의 지배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녀석의 마법 공격력이 30% 감소했지.’

반면, 자신은 사룡 시네라스를 죽이고 스페셜 칭호인 해츨링 슬레이어를 얻은 적이 있었다.

칭호의 효과는 무려 드래곤 족에게 30%의 추가 데미지를 입히는 것.

‘거기다가 지금의 난…….’

무려 태양교의 전설적인 삼인방 중 하나인 패트릭을 몸에 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검술이 훨씬 더 깔끔해진 것 같은데.’

카이는 아직 파악하지 않은 패트릭의 강림 스킬 하나를 빠르게 훑었다.

[광휘의 검술(패시브)]

등급 : 레전더리

검의 달인이 되어, 위력이 300% 증가합니다.

‘이것 때문이었나.’

성검을 잡고 있는 손에서 느껴지는 그립감부터가 달라졌다.

이전에도 검이 딱히 불편하다고 느껴진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뭐랄까.

마치 태어날 때부터 한 몸이었던 것과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무협에 나오는 신검합일이라는 건가?’

덕분에 절대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빙그레 미소를 지은 카이가 제2타를 준비했다.

“미믹, 다시 한 번.”

“까아아아악!”

미믹은 그대로 허공을 크게 선회하더니, 할리를 향해 수직 하강했다.

마치 안전 장비 없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

게다가 카이는 미믹의 등 위에 서 있는 상태였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추락할 수도 있어.’

카이가 집중력을 끌어올리자, 전신의 세포가 새롭게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죽인다…… 죽여 버리겠어!]

할리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입을 크게 벌렸다.

펑! 퍼펑!

그의 입에서 생성된 압축된 물의 구체가 연신 미믹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렇겐 안 되지.”

미믹이 현란하게 날아다니며 그것들을 피했고, 미처 피하지 못한 공격은…….

서걱!

카이가 마무리했다.

[쥐새끼 같은!]

미믹이 자신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바짝 접근하자, 두 개 밖에 남지 않은 할리의 뿔이 빛났다.

안 그래도 수증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바다 위로 먹구름까지 걸쳐져 있다.

당연히 일대의 수증기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많을 수밖에 없었다.

쩌저저적!

그 수증기들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생성된 수십 개의 얼음의 창이 미믹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으음!”

할리에게 접근하면서 저 공격들을 모두 피해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카이의 시야로 솟아오른 바위섬이 들어왔다.

“미믹! 우선 저 바위섬을 방패로 삼아!”

카이의 명령과 동시에 미믹은 앞에 보이는 바위섬의 뒤쪽으로 도망쳤다.

[소용없다!]

할리가 이를 지켜보고 있을 리 없었다.

쩌저저저적!

그가 뿜어낸 얼음의 파도는 순식간에 바위섬을 뒤덮으며 빙산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공격을 여유롭게 회피한 미믹은 바위섬의 뒤쪽에서 솟아오르며 먹구름으로 향했다.

[도망칠 셈인가?!]

그 때부터는 할리의 뿔이 미친 듯이 빛나기 시작했다.

번쩍번쩍! 뿔이 한 번 빛날 때마다 수십 다발의 마법이 소환되어 미믹을 향해 날아갔다.

미믹이 피하고, 카이가 열심히 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그들조차 수백 개의 공격을 모두 피해내지는 못했다.

푸욱!

결국 날카로운 얼음의 창 한 자루가 미믹의 복부를 꿰뚫었다.

[크하하하하하!]

기쁨의 웃음을 터트린 할리는 입을 크게 벌리며 마무리 공격인 수압포를 뿜어냈다.

콰아아아아아아!

큰 부상을 입은 미믹은 수압포를 피해내지 못했고 그대로 역소환을 당했다.

[비행 수단을 잃어버렸으니 네놈도 이제 끝이구나.]

와이번이 역소환되자 그 위에 타고 있던 카이도 실 끊어진 연처럼 떨어졌다.

[물의 감옥!]

바닷물이 치솟아 오르며 카이의 사지를 붙들었다.

쩌저저적!

물은 순식간에 얼어버리며 이를 얼음 감옥으로 변모시켰다.

[벌레 같은 녀석. 간만에 애를 먹게 만드는군.]

“…….”

할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카이를 비웃었다.

[아까는 그렇게 입을 잘 놀리더니, 이제는 못하겠나 보지?]

결국 이자 또한 다른 인간과 똑같다.

코웃음을 친 할리가 입을 벌렸다.

[이제 끝이다. 죽어라. 벌레 같은 인간이여.]

그의 입을 통해 엄청난 양의 물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상대는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확실히 끝내주지.’

할리는 방심하지 않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패를 꺼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압포를 뿜어낸 순간.

푸욱!

그의 왼쪽 눈이 붉게 물들었다.

[……?]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인식을 하기도 전에.

서걱!

그의 왼쪽 뿔이 잘려나갔다.

신음은 그 후에 터져 나왔다.

[크윽…… 크아아아아아악!]

띠링!

[할리의 두 번째 뿔을 파괴하셨습니다.]

[할리의 마법 공격력이 30% 감소되었습니다.]

[할리의 마나 억제력이 30% 감소되었습니다.]

“오케이.”

할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전체 전력의 60%나 깎이고 나면 카이를 상대로 도저히 우세를 점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띠링!

[하얀 죽음의 용 세트 효과, 약자멸시가 발동합니다.]

[상대를 향한 모든 공격에 10%의 추가 공격력이 붙습니다.]

‘됐다.’

약자멸시.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전투를 할 때 발동되는 효과!

할리는 더 이상 카이를 이길 수 없음을 알려주는 최후의 선고나 다름없었다.

“네 말대로, 이제 정말 끝이야.”

콰드드드드드득!

카이의 성검이 할리의 마지막 남은 뿔을 잽싸게 베어냈다.

띠링!

[할리의 마지막 뿔을 파괴하셨습니다.]

[할리의 마법 공격력이 30% 감소되었습니다.]

[할리의 마나 억제력이 30% 감소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카이를 옥죄고 있던 할리의 지배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양이다.”

하늘을 가르는 검이 베어낸 먹구름은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할리가 모든 힘을 잃어버리자, 비로소 먹구름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카이는 밝은 태양빛이 비추는 바다를 쳐다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쿠우우우우우웅!

할리의 거체가 근처의 바위섬에 떨어졌다.

푸욱!

카이는 할리의 목덜미에 검을 쑤셔 박아 녀석을 마무리했다.

‘이런 녀석을 상대로 방심할 수는 없지.’

[……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할리는 최후의 순간에 지적 호기심을 해소하려 했다.

[분명 나는 네놈의 와이번을 처치했다. 그리고 네 놈도 저곳에 단단히 속박을 해놨…… 음?!]

얼음 감옥을 올려다보던 할리가 한쪽밖에 남지 않은 눈을 부릅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아직도 카이가 묶여 있었으니까.

[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해가…….]

“간단해. 네가 줄기차게 노리던 건, 내가 아닌 내 분신이었으니까.”

태양 분신.

그것이 바로 카이의 조커 패였다.

[분신이라니…… 대체 언제 바꿔치기를…… 아!]

할리가 비명을 터트렸다.

[바위산!]

전투 내내 자신의 시야에 고정되어있던 카이가 사라졌던 건 단 한순간.

바로 미믹이 바위산의 뒤쪽으로 돌아갔을 때뿐이었다.

[설마 공방을 주고받는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 작전을……?]

“아니. 이런 건 이미 한참 전에 생각해 놨어.”

푸욱!

할리의 목에서 성검을 뽑아내며, 카이가 침착하게 말했다.

“언제, 어떤 식으로, 어떤 상대와 어떤 장소에서 싸우게 될지 모르니까. 생각 정도는 해놔야지.”

그야말로 랭커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세였다.

격전이 이루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적의 시야에서 벗어나, 분신을 미믹 위에 태우고 자신은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수중에서의 움직임이 원활한 카이였기에 실행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내가 졌군.]

할리가 시원하게 인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뒷말이 나오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전술적 패배였다.

동시에 그의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뾰족한 바위섬에 떨어진 순간, 그의 전신은 이미 걸레짝이 된 상태였으니까.

“잘 가라.”

카이의 마지막 인사에, 할리는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잘 있어라, 징그러운 인간.]

***

“내가 깜빡하고 못해준 말이 있어.”

[…….]

카이의 태연스러운 말에 할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이게 뭐지? 나는 죽은 것이 아니었나?]

“아, 넌 죽었어. 시체도 여기 있고.”

카이가 자신이 서있는 장소를 발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할리의 시체는 여전히 뾰족한 바위산에 박혀 있는 상태였다.

한 마디로 현재의 그는 영적인 상태.

“잠깐 대화를 좀 하고 싶어서 불러냈거든.”

성환 페트라에 내장되어 있는 체란티아의 스킬.

영원한 안식의 효과였다.

[……후우, 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군. 하고 싶은 말이란 게 뭐지?]

할리가 짜증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카이는 자신이 쭉 생각해오던 말을 천천히 뱉어냈다.

“생각을 계속해 봤거든. 과연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애완용 취급을 받기 위해 태어나는 존재가 있는가에 대해서.”

[흥, 그래서?]

“없어.”

카이의 단호한 목소리에 할리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없다고? 하지만 너는 분명 저번에…….]

“그래. 조인족은 그럴 취급을 받을 존재가 아니라고 했지. 하지만 다른 이들이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어. 오해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어차피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 할 말이 끝났다면…….]

“하나 더 있어.”

[할 말 있으면 빨리 해라.]

카이는 반투명한 할리의 머리 위에 자그마한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분명 많이 힘들고 무섭고 외로웠을 거야.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했을 테지. 인간들을 대표해서 사과하마. 뮬딘 교가 다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게 내 손으로 박살 내주지. 이 자리에서 약속한다.”

[…….]

그것은 할리로서는 상상도 못해본 말이었다.

오만하고 건방진 인간이, 자신들 밖에 모르는 더러운 인간이 사과를 하다니?

‘……웃기는 인간. 이렇게 사과를 한다고 내가 감동이라도 받을 줄 아나 보지? 어이가 없군.’

할리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해봐도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카이가 말했다.

“울지 마라.”

주르륵.

카이의 말에 할리는 괜히 신을 탓했다.

‘이건 모두 신의 탓이다. 육신이 죽어서 나자빠져있다고 감정 작용에 문제가 생기다니.’

할리는 눈을 꾹 감으며 으르렁거렸다.

[닥쳐라. 운 적 없다.]

“어? 울어? 진짜 우냐?”

카이가 실실 웃으면서 놀리자, 얼굴이 벌겋게 물든 할리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우, 운 적 없다! 이 하등한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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