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15화 (315/441)

# 315

힐통령 314화

98장 동부의 신성 (5)

카이에게 받은 선물 상자를 시종에게 건넨 베오르크가 낮게 웃었다.

“이제 안쪽으로 들어가지. 그대에게도 줄 것이 있으니.”

“줄 것이라뇨?”

“미리 말해주면 재미가 없잖나.”

한쪽 입꼬리를 올린 베오르크는 테라스를 떠나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카이는 고개를 돌려 할리를 쳐다봤다.

움찔.

할리가 저도 모르게 뒤로 살짝 물러났다.

[이 비늘은 안 된다. 이놈아.]

푸른색 비늘이야 이미 죽어버린 육신의 비늘이었지만, 지금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황금색 비늘은 절대 내어줄 수 없었다.

그야 이쪽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으니까.

할리는 드래곤의 성정을 쏙 빼닮았기에 반짝이는 것을 좋아했다.

“안 뽑아가. 사람을 뭘로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이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또 부를 테니 들어가 있어.”

[이렇게 시답잖은 일로 부르지 마라.]

할리가 빛의 입자가 되며 역소환되자, 카이도 앞선 베오르크를 따라 테라스를 떠났다.

“동부의 신성이 최근 떠오르는 이유가 있었군요.”

“설마 해룡을 수하로 다룰 줄이야…….”

“이거, 동부 쪽에서도 드디어 내세울 만한 귀족이 나오는거 아닙니까?”

“능력이 제법 있는건 인정하지만, 그래봐야 남작 아닌가.”

홀의 귀족들은 어느새 카이에 관한 이야기만 떠들고 있었다.

마치 파티의 주인공이 베오르크가 아닌 카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러면 베오르크 국왕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데.’

걱정이 된 카이가 슬쩍 그의 기분을 살폈으나, 딱히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베오르크가 특유의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 조용.”

뚝.

다시 한 번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든 것처럼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베오르크가 말을 이었다.

“짐은 능력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을 곁에 두면 손과 발, 머리까지 편해지는 법이니까.”

사실 능력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는 그리 없다.

특히 국왕, 한 나라를 운영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능력있는 수하가 절실하다.

“그래서 짐은 사람을 보면 세 가지 부류로 분류한다.”

베오르크 국왕이 가볍게 검지를 올렸다.

“첫 번째 부류는 한 가지 일을 맡았을 때 그 일조차 제대로 못 해내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지. 곁에 두면 두고두고 피곤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이다.”

추가적으로 중지가 올라왔다.

“두 번째는 일을 맡겼을 때 그 일을 그럭저럭 잘 해내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에는 가능성이 제법 보이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곁에 둬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하자, 베오르크가 스윽. 카이를 쳐다봤다.

“마지막 부류는……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무엇을 기대하던 항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사람이지. 이런 사람을 휘하에 거둘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거두어야만 한다.”

‘……왜 날 쳐다보시는 거지.’

베오르크와 눈이 마주친 카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말을 마친 베오르크가 슬쩍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궁중 집사가 다가와 두 손으로 날카로운 검을 바쳤다.

망설임 없이 그것을 쥔 베오르크는 성큼성큼.

카이를 향해 걸어왔다.

‘무, 무슨.’

갑작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카이의 안색이 딱딱해졌다.

그사이, 카이의 앞에 도착한 베오르크가 명령했다.

“한쪽 무릎을 꿇으라.”

“저, 전하의 명 받았습니다.”

카이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는 순간.

베오르크의 검은 웬만한 기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척, 척.

카이의 왼쪽 어깨를 한 번, 그리고 이어서 오른쪽 어깨에 한 번.

‘이건…… 서임 의식?’

기사로 새롭게 임명될 때나 귀족으로 임명될 때 받는 의식이다.

카이가 고개를 들어 베오르크를 빤히 쳐다보자, 그가 피식 웃으며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안심해라. 그대를 붙잡을 목줄이 되지는 않을 테니.”

이어서 그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종족 교류 도시인 리버티아를 만든 뒤 어떠한 문제도 없이 도시를 잘 운영한 점. 게다가 황무지나 다름 없던 아르칸 영지를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 시설로 탈바꿈시킨 점. 마지막으로 과거부터 뮬딘 교가 만들어낸 끔찍한 재앙들인 아오사, 자탄 그리고 할리까지 처치한 점을 감안하여…….”

시종에게 검을 돌려준 베오르크가 툭툭, 카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 이 시간부로, 카이 남작의 작위를 백작으로 승작시킨다.”

“……!”

“배, 백작……!?”

“이런 파격적인…….”

연회장의 모든 귀족들이 눈을 부릅뜨며 베오르크의 폭탄선언에 놀라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험가가 백작이 되는 케이스는 전 대륙을 뒤져봐도 이번이 처음.

게다가 그들의 입장에서 카이는 보유한 영토도 고작 세 개뿐인 애송이였기 때문이다.

“저, 전하.”

신바 백작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카이 남작이 훌륭하기는 하나, 그는 아직 보유한 영지가 세 개뿐입니다. 백작의 위(位)를 받아들이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옵니다.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신바 백작.”

“예, 전하.”

신바 백작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꾸했다.

“짐이 방금 전에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눈다고 하였네. 그렇다면 과연 카이 백작은 어떤 부류의 사람일 것 같나?”

“……기대가 되는 사람. 즉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일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틀렸네.”

“……!”

베오르크의 말에 신바 백작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틀렸다니? 그럼 카이 남작에게 별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는 뜻인가?

그러면 왜 굳이 승작을……?

신바 백작의 눈동자로 수많은 의문을 내포한 눈빛이 깃들었다.

“굳이 기대를 안 해도 되는 사람. 무조건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

베오르크의 말에 카이는 감동을, 이를 듣던 수많은 귀족들은 부러움을 느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신기한 모험가 중 한 사람일 뿐이었지만, 이제 그는 그 어떤 귀족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단신으로 척척해내는 중이네. 짐은 타국에 인재를 빼앗기고 후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붙잡아놓을 수밖에.”

신바 백작은 입을 꾹 다물며 뒤로 물러났고, 카이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전하.”

“감사는 하인드 백작에게 하게나. 그대에게 양도한 두 개의 영지가 아니었다면 백작의 위를 받지는 못했을 테니까.”

시종이 베오르크에게 두 장의 문서는 공손히 내밀었다.

이를 집어든 베오르크가 그 문서들을 고스란히 카이에게 전달했다.

“지금부터 로잔과 트라반 영지는 자네의 것일세.”

“로, 로잔과 트라반.”

“동부 쪽에 위치하고 있는 하인드 백작의 영지.”

“그 도시들이 카이 남작…… 아니, 카이 백작의 소유가 된 건가?”

“그렇다는 말은…….”

귀족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연회장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있는 모험가를 쳐다봤다.

거대해보였다.

그저 흥미의 대상에 불과했던 그는 어느새 왕국을 주름 잡는 폭풍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의 영지들이 밀집된 장소가 모두 ‘동부’라는 것이 또 중요했다.

‘로잔과 트라반은 모두 건실한 도시들.’

‘영주 된 입장에서는 자금을 투자할 필요도 없이, 즉시 수익을 뽑을 수 있는 영지다.’

‘그런 장소가 단숨에 두 곳이나 손에 들어온다면…….’

‘당분간 동부를 주시해야겠군. 새로운 격전지가 되겠어.’

마치 고여있는 물처럼 정체되어있던 동부의 장기판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꼴이었다.

그것도 당장이라도 동부를 대표하는 대영주가 되어도 모자람이 없는, 초대형 뉴페이스였다.

***

제법 해프닝이 있던 파티였지만, 기본적으로 베오르크의 탄일 파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귀족들과 모두 인사를 나눈 그는 쿨하게 연회장을 나섰고, 그 때부터 귀족들은 본격적으로 인맥을 쌓기 시작했다.

그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린 것은 단연 카이였다.

“다종족의 도시인 리버티아의 풍경이 그리 아름답다고 했네. 한 번 구경 가보고 싶군.”

“내 딸 아이가 아르칸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는 중이네. 나중에 같이 차라도 한 잔 마셔보지 그러나?”

영혼이 쏙 빠질 정도로 많은 귀족들에게 둘러쌓인 카이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끼는 찰나.

“적당히들 하게.”

“카이 백작이 많이 난처해 보이는군.”

하인드, 스텐 백작이 나타나 그에게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대영주들의 등장에 다른 귀족들은 어색한 미소만 지으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가, 감사합니다.”

카이의 감사 인사에 하인드 백작이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솔직히 나도 전하께서 백작 작위를 주신다고 했을 때는 굉장히 놀랐다네.”

“너무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정말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 이유는 간단했다.

띠링!

[다섯 개의 영지를 지배하는 영주가 되셨습니다.]

[라시온의 국왕에게 승작 서임을 받으셨습니다.]

[스페셜 칭호, ‘최초의 백작’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무려 스페셜 칭호를 얻게 되었으니까.

‘자작 칭호를 받은 플레이어는 제법 많아도, 확실히 백작은 처음이지.’

잔뜩 흥분한 카이는 곧장 칭호의 효과를 살폈다.

[최초의 백작]

등급 : 스페셜

내용 : 최초로 백작 위(位)를 지닌 유저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30, 위엄 +300, 스킬-선전포고 사용 가능.(이 효과는 칭호를 장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훌륭한 칭호였다.

모든 스탯과 위엄을 상승시켜주는 것은 물론, 스킬까지 내장되어 있었으니까.

‘선전포고는 또 뭐지?’

카이는 곧장 스킬 설명을 읽어보았다.

[선전포고]

영지 혹은 세력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일주일 동안 아군 세력의 모든 능력치를 5% 증가시킵니다. 이 효과는 선전포고를 한 세력과 싸울 때만 적용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30일.

“오오…….”

과연 백작의 힘은 강력했다.

아군의 실질적인 능력치를 무려 5%나 증가시킬 수 있다니.

‘재사용 대기시간이 30일인 건 조금 아쉽지만, 지속 시간이 일주일이야.’

다른 세력과 전쟁을 1년 365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좋은 스킬이었다.

‘얻은 게 많아.’

유난히 바빴던 하루를 떠올린 카이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흑석으로 이루어져있는 음침한 신전, 여기저기 걸려있는 횃불에는 푸른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확인 결과, 할리는 사망한 것이 맞습니다.”

“…….”

그곳은 다름 아닌 뮬딘 교의 본단.

수 만 명의 신도가 거주하며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조그마한 규모의 왕국 같은 장소였다.

“할리는 본교가 만들어낸 작품 중 가장 강력한 존재 중 하나. 나중에 회수해야 할 녀석이었거늘…….”

예전에 알버트 교황을 타락시키려던 모략을 꾸몄던 아트록 추기경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처럼, 뮬딘 교에서는 할리를 가만히 방치해두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신도 중 하나를 보내 얌전히 돌아올 생각이 없냐고 의중을 물었던 적도 있었다.

‘조만간 힘으로 데려와서 다시 세뇌를 시킬 생각이었는데, 아쉽군.’

조금만 더 빨리 일을 진행했다면 좋았을 것을.

진한 아쉬움을 드러낸 아트록 추기경이 제 부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 녀석이 제안한 작전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골리앗 신도가 발의한 작전 말입니까?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성공률은 어느 정도로 보고 있지?”

“정말 참신한 작전입니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잘 진행되기만 한다면, 적어도 라시온 왕국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이번 작전의 결과가 훌륭하면 다른 왕국과 제국에도 같은 방법을 시도하면 되겠군.”

아트록 추기경이 탐욕에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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