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7
힐통령 317화
99장 신의 한 수 (2)
“그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이것이니라!”
팔짱을 끼고 있는 헬릭의 표정에서는 대단한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던 카이가 시선을 내리자,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수정구가 보였다.
바로 폰이었다.
“이건 폰이잖아요?”
“응응. 대단하지 않느냐?”
딱히 대단할 건 없었다.
왜냐하면 이 폰은 자신이 사주었던 것이었으니까.
“뭐가 신기해요? 이거 제가 사드린 거잖아요.”
“그, 그건 그런데…… 끝까지 들어보거라.”
살짝 당황한 헬릭이 고개를 붕붕 저으며 폰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마치 쇼핑호스트처럼 제품을 요리조리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사준 폰은 마력 기반으로 움직이는 도구인 터라 천계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랬죠. 그래서 흥미가 떨어지신 것 아니었어요? 한참 가지고 노시더니 안 그러시길래 흥미 다 떨어지신 줄 알았는데.”
“헤헤. 나는 태양신이라서 포기를 모르는 신인 것이다.”
헬릭이 폰을 번쩍 들어 올리자 그녀의 머리 위 광채가 빠르게 반짝였다.
“이것은 보통 폰이 아니니라. 바로 내가 개조한 폰이지.”
“개조? 헬릭 님께서요?”
그제야 살짝 흥미가 생긴 카이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폰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응응. 개조했느니라.”
“뭐가 달라졌죠?”
“결과부터 말하자면 천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겠지.”
“오?”
새삼 그녀가 대단하게 보인 카이가 작동 원리에 대해 물었다.
“간단하니라. 기존의 마력 회로를 모두 들어내고, 신성력이 소모되게끔 기반을 바꾸었다.”
“헐. 제법 고난이도 작업처럼 들리는데요?”
“괜히 신이겠느냐.”
으쓱으쓱.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 그녀를 쳐다보던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이걸로 연락이 가능한 거네요?”
“응응. 그대가 나에게 주었던 폰들을 모두 개조해서 다른 신들에게도 나누어줬느니라.”
왜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제법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게 그대의 폰이니라.”
헬릭이 내미는 폰을 받아든 카이가 수정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흐음. 나도 폰을 사용해 보는 건 처음인데.’
애초에 폰을 통해 연락을 할 만큼 친한 유저도 없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미드 온라인에는 메시지 시스템이 있다.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기본 메시지 시스템은 휴대폰의 메시지 앱.
그리고 폰은 따로 다운로드를 받은 메신저 앱이라고 보는 편이 간단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아세요?”
카이가 폰을 흔들며 묻자, 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웠느니라.”
“오, 그럼 시험 삼아 한 번 사용해 보실래요?”
“응!”
잔뜩 신이 난 헬릭이 폰을 집어 들었다.
잠시 후, 카이가 들고 있던 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진짜 사용할 줄 아시는구나.’
피식 웃은 카이는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헬릭 : 쨘. 나 이거 사용할 줄 아느니라. >_<]
“헐.”
귀여운 이모티콘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아하니 큰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카이는 헬릭에게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주 잘 사용하시네요. 그래도 계속 보면 눈 나빠지니까 너무 많이 사용하시면 안 돼요?”
“으응. 알겠느니라.”
그녀의 머리를 쓱쓱 문질러준 카이가 떠날 채비를 했다.
“……또 가느냐?”
“네. 다음에 올 때는 한정판 케이크 사올게요. 제국 쪽 도시에 진짜 유명한 파티쉐가 새로운 빵집을 차렸다고 하더라구요.”
“흐응.”
묘하게 시무룩해 보이던 헬릭이 폰을 흔들었다.
“문자 보낼 것이니라.”
“하하하. 언제든지 보내주세요.”
“응! 기대하거라!”
헬릭과 카이는 서로를 향해 두 손을 열심히 흔들며 인사했다.
***
화요일이 되자 정우는 자연스럽게 유하린과 만났다.
처음에는 그녀와 행복 보육원에서만 만났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곳을 약속 장소로 삼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물론 만남의 본질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행복 보육원은 이미 유하린의 손길이 군데군데 닿아서 정우가 딱히 더 도와줄 일이 없었다.
때문에 그녀에게 상담을 했고, 화요일마다 자신과 함께 다른 보육원에 봉사를 하러 가자는 제법 기묘한 결론이 나게 된 것이었다.
“일찍 나오셨네요, 하린 씨.”
한정우는 약속한 거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유하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활동하기 편한 기능성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림이 되었다.
패션의 완성은 옷이 아닌 얼굴과 몸매라는 것을 입증한 유하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이제 막 도착한걸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오늘은 어딥니까?”
“서초동에 위치한 한빛 보육원이에요. 최근에 후원해 주던 분들이 후원을 끊어서 재정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대요.”
“봉사할 맛이 나겠네요. 바로 가시죠.”
두 사람 모두 차가 없는 관계로, 이동은 보통 대중교통을 통해 이루어졌다.
“제가 좀 찾아봤는데, 버스를 타면 보육원 앞 정류장까지 바로 갈 수 있어요.”
“그래요? 그럼 버스 타시죠.”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 두 사람에게 수많은 시선이 모여들었다.
“헐, 야 저기 봐봐.”
“존예…… 여신이 따로 없네, 용기 있는 남자가 미녀를 쟁취한다는데, 번호라도 한 번 물어봐?’
“아서라, 아서. 옆에 남자친구 있는 거 같은데.”
“에이, 설마 남자친구겠어?”
엄청난 미모의 유하린과, 깔끔한 외모를 자랑하지만 미남이라기엔 턱없이 부족한 정우.
두 사람의 조합은 이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 저 여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였지?”
“또, 또 되도 않는 뇌피셜 나온다. 저런 여자를 봤으면 바로 기억났겠지.”
“그건 그래.”
어딜 가나 시선을 잡아끄는 유하린과 함께 이동을 하는건 처음엔 제법 고역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이제 와서는 정우도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뭐.'
아이돌 매니저들이 이해되는 심정이랄까.
버스 좌석에 앉은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공통분모인 게임으로 이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 레벨이 아예 오르지 않고 계시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뇨. 그냥 최근에 너무 달렸던 것 같아서 잠시 휴식기를 가지는 것뿐이에요.”
“헐. 부러워요…… 전 언제쯤이면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을까요.”
정말로 부럽다는 눈빛을 보낸 유하린은 자신의 눈 밑에 드리워진 다크서클을 문질렀다.
“전 하루라도 사냥을 쉬면 크리스. 그 남자한테 랭킹이 빼앗겨서 쉴 수가 없어요.”
“하린 씨는 의외로 랭킹에 신경 안 쓸 것 같았는데, 아니네요?”
그녀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쿨하고 도도하다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연히 신경 쓰이죠. 사람이라면 다 그렇지 않을까요?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더군다나 저는…… 아, 방송은 보셨죠?”
“절대자의 던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당연히 봤습니다.”
지금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알 것 같았다.
“그럼 아시겠지만 전 직업이 없잖아요.”
“사실 그 부분이 좀 궁금하긴 했습니다. 대체 왜 전직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랭킹 2위인 그녀는 아직까지 전직을 하지 않은 노비스 플레이어.
그것이 밝혀지고 난 뒤 그녀를 향한 평가는 훨씬 더 올라갔다.
‘아마 내가 태양의 사제 같은 직업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타고난 천재인 그녀의 발치에도 도사리지 못했겠지.
그래서 정우는 더더욱 궁금했다.
‘직업을 하면 저기서 더 강해진다. 이건 정해져 있어.’
전직 보너스로 주어지는 스탯, 그리고 직업 전용의 스킬들.
마지막으로 특정 클래스만이 착용할 수 있는 장비들까지.
전직을 하게 되면 따라오는 부가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유하린은 그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초보자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음…… 설명하자면 조금 긴데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보육원 도착할 때까지는…… 32분 정도 남았네요.”
휴대폰의 지도 앱을 확인하며 대꾸하자, 유하린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거 뭔가, 고등학교 다닐 때 진로 상담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부끄럽지만…….”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지금 게임 직업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 맞죠?”
“네에.”
“저번에 보니까 하린 씨는 근접전을 엄청 잘하시던데, 그럼 기사나 무도가 같은 거 하시면 되잖아요?”
“그게, 처음에는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막상 전직을 하려고 하니 끌리지가 않아서요.”
“포지션 변경을 해보고 싶으시다는 겁니까?”
붕붕.
유하린이 고개를 저었다.
“전투 자체는 지금이 좋고 재미있어요. 마법사랑 궁수의 직업 체험도 해봤지만, 근접전만큼의 재미는 없었거든요. 지근거리에서 몬스터랑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서로의 심리를 읽는 그 순간이 저는 정말 즐거워요.”
근접 클래스가 제격인 사람이다.
“하지만…… 저도 뭐라고 잘 설명하지는 못하겠네요. 그냥 일반적인 직업은 안 끌려요.”
이어서 그녀는 부러운 듯한 시선으로 카이를 쳐다봤다.
“그래서 정우 씨가 더 부러운 걸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왜요?”
“멋있으시잖아요. 근접에서 싸우는 성기사 클래스에, 약자들을 도와주며 성자라고 불리기까지 하시니까. 저도 그렇게 싸우면서 뭔가 남들에게 도움이 되고 뜻깊은 직업을 가지고 싶어요.”
“…….”
정우가 굉장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사제라는 것을 알면 이 여자는 대체 무슨 반응을 보일까.
‘물론 그걸 말할 날을 안 올 것 같지만…….’
정우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속상해하는 유하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심성 만점에 전투 센스 만점…… 거기다가 아름답고 레벨도 높음…….’
이유는 모르겠지만, 카이 캐릭터의 인벤토리에 보관되어 있는 반지 하나가 떠오른다.
‘칼 라샤의 반지.’
라이넬은 자신에게 교단을 부흥시킬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며 그 반지를 맡겼다.
그 직업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직업은 무려 ‘칼 라샤의 이단심판관(영웅)’.
‘히든 클래스이고, 그건 진짜 강력한 직업일 거야.’
물론 태양의 사제만큼은 아니겠지만, 못해도 미네르바의 직업인 성녀에 비견될 것이다.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정우가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린 씨, 혹시 신을 믿으시나요?”
“……에, 갑자기요?!”
그녀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질문이었다.
***
보육원에서 뜻깊은 봉사를 마치고, 후원을 하기로 결정한 정우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한번 보자고 했지.”
사실 유하린에게 그 반지를 맡기는 건 정우의 입장에서는 미안하기도 했다.
‘칼 라샤의 이단심판관은 분명 강력할 거야. 하지만 그만큼 발목을 잡는 것들도 많지.’
우선 교단의 부흥.
이미 잊혀진 신이 되어버린 변화의 신 ‘칼 라샤’의 교단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재건해야 한다.
그 길은 분명히 외롭고 힘들며, 무척이나 많은 시간이 들 일이 분명했다.
특히 랭킹 2위인 유하린이 그 일을 병행하기 시작하면, 분명히 사냥에도 지장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선택할 문제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밖에.
곧장 게임에 접속한 카이는 유하린이 사냥하고 있다는 사냥터로 향했다.
최상위 랭커들만이 사냥을 할 수 있는 나힐름 협곡.
그곳에는 이미 생을 마감한 불쌍한 몬스터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 일찍 오셨네요.”
“……접속하자마자 사냥하신 거예요?”
“이 주변에서는 딱히 할 일도 없어서요.”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유하린이 화제를 돌리고자 입을 열었다.
“그런데 꼭 하고 싶으시다는 말이 대체 뭐예요? 일부러 제가 있는 장소로 찾아오시기까지 하고.”
현실에서 그 말을 하는 한정우는 마치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한 사람처럼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사실은…….”
카이는 인벤토리를 열어 고급스러운 반지함 하나를 꺼냈다.
칼 라샤의 반지를 보관해놓은 반지함이었다.
“이 반지를 드리고 싶…….”
“자, 잠깐! 잠깐만요! 스톱!”
어느샌가 뒤로 다섯 걸음 정도 물러나 있던 유하린이 두 손바닥을 앞으로 뻗으며 소리쳤다.
자세히 살펴보니 귀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는 상태.
‘왜 저러시지? 감기라도 걸리셨나?’
영문을 알 수 없던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