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26화 (326/441)

# 326

힐통령 326화

101. 꼬리 밟기 (2)

“메디프 백작이 당했습니다. 본교와의 접점이 공개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

부하가 건넨 예상치 못한 보고에 아트록 추기경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그것은 현재 그가 느끼고 있는 분노가 제법 거대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잠시 후, 겨우 화를 억누른 아트록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카이의 영지를 염탐하러 갔다가 녀석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또 그 녀석인가.]

카이, 카이, 카이…….

아트록 추기경은 사사건건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모험가의 이름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그러기를 잠시, 그가 이상하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메디프 백작의 영지에는 본교가 지원한 암흑 기사들이 다수 있을 터.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을 텐데?]

“태양교가 나섰습니다. 메디프 백작령에 있던 신전으로 대거 이동된 성기사와 이단심판관들이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에는 불과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잠깐. 태양교가 나섰다고? 성혈단을 말하는 건가?]

“아닙니다. 본단의 성기사와 이단심판관들이 3천이 메디프 백작령을 방문했습니다.”

[호오?]

아트록 추기경의 텅 비어있는 눈두덩이가 순간 이채를 발했다.

“일개 성기사인 주제에 어찌 본단에 그런 힘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어리석기는. 아직까지 모르겠느냐.]

아트록이 부하의 무지를 꾸짖었다.

[일개 성기사나 사제, 아니 하다못해 대주교라고 해도 절대 그런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

“경청하겠습니다.”

[예로부터 태양교 본단의 모든 권력을 한 손에 넣고 흔드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아느냐?]

부하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야 교황이 아니겠습니까.”

[틀렸다.]

아트록 추기경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외부에 공개되는 허수아비일 뿐. 진정한 교단의 주인은 단 세 명만이 존재했었다. 바로 사도라 불리는 존재들이었지.]

“사도……! 혹 태양의 사제를 언급하시는 겁니까?”

부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바닥만 쳐다보고 있던 얼굴을 들었을 정도였다.

[그게 아니라면 교단을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아, 이제야 의문점들이 풀리는구나. 처음부터 의심을 했어야 했거늘…….]

항상 궁금했었다.

어찌 일개 성기사로 추정되는 녀석이 번번히 본교의 일을 방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혼자서 인어 족을, 엘프 족을, 드워프를 구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오사와 자탄을 죽였다.

게다가 최근에 들어서는 무려 씨 서펜트 할리까지 처치했다.

‘그렇군. 녀석이 사도라면 가능하다.’

그들은 신의 힘을 인간의 몸으로 행사하는 괴물들이다.

실제로 단 세 명의 사도는 태양교를 대륙 최고의 집단으로 만들었다.

‘설마하니 모험가가 사도일 줄이야…….’

아트록 추기경은 자신의 기분이 나아졌음을 느꼈다.

‘차라리 지금에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군.’

메디프 백작, 확실히 아깝긴 하지만 버리지 못할 패는 아니다.

그 하나를 희생해서 사도의 정체를 밝혀냈다면 딱히 손해는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메디프 백작과 연결된 자들은 어떤 이들이 있지?]

“그는 라시온 왕국에서 순수 혈통의 귀족만이 가입 가능한 사교 집단, ‘더 퓨어’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곳의 대다수가 본교가 접촉한 이들인 걸 생각하면…… 아마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쯧, 생각보다 출혈이 크군. 거사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이지.]

아트록 추기경이 혀를 찼다.

골리앗이 발의했던 작전은 바로 ‘더 퓨어’의 구성원을 이용해 라시온 왕국을 격전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뮬딘 교가 메디프 백작을 비롯한 몇몇 귀족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

그들은 현 왕국의 귀족 체제에 반감을 느끼고 있었고, 자신들만이 진정한 귀족이라 생각했으니까.

적당히 자존심을 높여주고 당근을 주니 옳다구나 싶어서 뮬딘 교의 손을 잡았다.

[제법 오랜 시간 공들인 탑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군.]

라시온 왕국의 귀족들을 구워삶는 건 모두 제16 암살단장, 카쿤이 진행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 역시 카이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의심 중인 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국왕을 살해하고 라시온 왕국을 무주공산의 상태로 만든다는 골리앗 신도의 작전이 시작부터 수틀리게 됩니다.”

물론 이 작전의 베이스는 골리앗이 아닌 스팅의 머리에서 나왔다.

[흐음. 눈을 가릴 방법은 없을 것이다.]

뮬딘 교의 흔적을 다름 아닌 태양교가 발견했다.

녀석들은 눈에 불을 켠 채 메디프 백작과 티끌만큼이라도 관련된 자들을 조사할 것이다.

[어차피 정체가 탄로 날 것이라면…… 거사를 앞당기는 것이 낫다. 준비는 어디까지 되었지?]

“14개의 암살단이 모든 준비를 마친 채 라시온 왕국에 잠입했습니다. 게다가 본교에서 포섭한 라시온 왕국의 귀족은 총 42명. 그들의 영지에는 14만 명의 암흑 기사가 있습니다. 그들이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활동을 개시한다면, 라시온 왕국이 혼란에 빠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딱, 딱딱.

아트록 추기경의 뼈 손가락이 의자 손잡이를 두드렸다.

잠시 머릿 속에서 승산을 점치던 아트록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군. 하지만 14만이라, 아직 준비가 덜되어도 한참이나 덜되었군. 아마 좋은 결과는 나오기 힘들겠지.]

“그 말씀은……?”

[저 병력으로 국왕을 살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선택과 집중의 시간이지. 어디…….]

라시온 왕국의 지도를 살펴보던 아트록 추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섭한 귀족들 대부분이 동부와 서부에 위치해 있군. 그렇다면 북부 괴멸로 목표를 바꾸겠다.]

북부가 궤멸당하면 알데바란, 하란 왕국을 견제하는 국경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 말은 추가적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뜻.

아트록 추기경의 기지에 감탄한 부하가 고개를 낮게 숙였다.

“모든 것은 뮬딘 님의 뜻대로.”

***

카이는 알버트 교황의 다급한 호출을 받고 아르칸 아카데미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버트가 기거하고 있는 신전을 방문했다.

“교황님,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카이의 질문에 알버트 교황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보고서를 건넸다.

“우선 이것부터 읽고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보고서를 받은 카이는 그것을 단숨에 읽어 내렸다.

“잠깐만요. 메디프 백작의 저택 지하에서 어둠의 정수를 대거 확인? 게다가 기사들의 태반이 뮬딘 교의 신성력을 사용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그 말 대로입니다. 메디프 백작은 뮬딘 교와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혹시 저번에 카이 님이 구속하셨던 베이스커 남작을 기억하십니까?”

“기억 합니다.”

베이스커 남작은 과거 카이가 자리를 비웠을 때의 아르칸 영지를 노렸던 녀석이다.

뮬딘 교의 제16 암살단장에게 딸랑거리며 영지를 수집하던 녀석으로, 현재는 수감 중.

“그때만 해도 라시온 왕궁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뮬딘 교의 손길이 자국의 귀족에게까지 드리웠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때 귀족들을 대대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압니다만?”

“맞습니다. 그리고 그 수색을 진두지휘했던 자들 중 하나가 메디프 백작입니다.”

“쯧,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네요.”

“예. 아무래도 라시온 왕궁도 이번 일로 크게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저에게 베오르크 국왕의 친필 서신이 왔습니다.”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사실 묻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귀찮아 질 것 같은 예감이 무럭무럭 자라났으니까.

슬프게도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질 않았다.

“과거 태양교의 간자들을 모두 쓸어낸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는 요청이 담긴 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잘 아실 테지만, 태양교에 숨은 뮬딘 교의 세작들을 색출해낸 건 다름 아닌 카이 님이셨지요.”

“음.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닌 사실이었다.

태양교의 간자를 색출해 낼 때는 헬릭이 정말 큰 도움을 줬었으니까.

‘헬릭님도 은근히 뒤끝이랑 집착이 있어서…… 신도가 자신을 배신했는지 안 했는지, 뇌물을 몇 번 받아먹었는지, 비리를 얼마나 저질렀는지를 꼬박꼬박 메모장에 기입하고 계셨지.’

괜히 등골이 으실으실해진 카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때는 대상이 신관들이었기에 아주 티끌만큼이라도 뮬딘 교의 기운이 섞여 있으면 저도 대강 구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귀족들은 잘 모르겠네요.”

하얀 도화지 위에 검은색 점 하나가 찍힌 것과, 검은 돌 위에 검은색 점 하나가 찍힌 것.

당연히 후자 쪽을 알아채는 것이 압도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카이는 얼마 전 베오르크의 탄신일 때 왕궁을 방문했지만, 뮬딘 교의 기척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으음,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답변을…… 음?”

얼굴 가득 수심이 내려앉은 알버트 교황이 돌연 눈을 깜빡였다.

카이의 다리 뒤에 숨어있는 두 소녀를 발견한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십니까?”

“아, 그게…….”

차마 ‘사실 이분이 당신이 믿는 신이예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헬릭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기도 했다.

“허어, 그나저나 두 분의 기운이 정말 정순하군요. 마치 오랜 시간 고행을 쌓은 고위 신관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애, 애들은 원래 순수하니까요. 지닌 기운도 정순하겠죠.”

카이가 대충 얼버무리자, 알버트 교황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답신은 뭐라고 보내면 되겠습니까.”

“으음.”

고민에 빠진 카이가 살짝 눈을 감자, 누군가가 소매를 꼬옥 쥐고 흔들었다.

당연히 라샤나 헬릭, 둘 중 하나일 터였다.

“……부르셨어요?”

살짝 몸을 낮춘 카이가 속삭였다.

범인은 헬릭이었다.

그녀는 기분이 굉장히 좋아보였는데,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가려는 것을 간신히 참는 것처럼 보였다.

‘왜 이러시지? 아까 케이크 드셔서 그런가?’

그 이유는 금세 밝혀졌다.

“어휴, 카이여. 그대는 정말이지 내가 없으면 어쩌려구 그러는 것이냐?”

팔짱을 낀 헬릭은 고개를 45도 각도로 돌리며 나름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한 번은 내가 도와주겠다는 말이니라.”

“……직접 도와주신다고요?”

“웅. 헬릭이 알버트랑 그대의 이야기를 좀 들어봤자너. 그런데 지금 쫓고 있는 것이 나와 라샤의 식사를 방해한 녀석들의 동료들 아니더냐?”

“그렇죠.”

“엄청 괘씸하자너. 그러니 이번에는 특별히 도움을 주겠느니라.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그야 안 되겠지.

천계에 있어야 할 신이 아무리 힘을 봉인했다고는 하나, 중간계로 내려와서 활약하는 것은…….

‘버그 아닌가?’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손해가 아니었다.

‘오히려 압도적인 이득이지. 게다가 페가수스에서 안 된다고 뭐라고 하면 그만인 거고. 대신 그만두는 대가로 또 뭐 받아내면 되겠지.’

하지만 유일하게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녀의 안전이었다.

“위험하지 않으시겠어요? 힘도 대부분 봉인되셨는데.”

“그대가 옆에서 지켜줄 텐데 무슨 걱정이더냐?”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게다가 뮬딘 교와 전면전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귀족들을 살피며 뮬딘 교의 세작인지 아닌지 구별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뮬딘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스쳐 지나간 녀석들은 기가 막히게 찾을 수 있느니라.”

옆에 있던 라샤도 덩달아 손을 들며 자기 어필을 시작했다.

“저, 저도 도움이 될 거예요. 코가 좋아서 냄새를 잘 맡거든요.”

그게 단순히 후각이 좋다고 찾을 수 있는 부분인가?

잘 모르겠지만 본인들이 할 수 있다는데 어쩌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럼 한 번만 도와주세요.”

카이는 다시 몸을 일으키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알버트 교황에게 말했다.

“답신 보내주세요. 제가 직접 가겠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