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29화 (329/441)

# 329

힐통령 329화

102. 북부탈환전 (1)

“웬 소란이냐.”

베오르크가 평소의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헬릭은 그 대사와 톤이 조금 멋있었는지, 옆에서 계속 ‘웬 소란이냐, 웬 소란이냐’를 반복해서 중얼거리고 있다.

“왕명을 받들어 군대를 모집했습니다만…… 저희가 한발 늦었습니다.”

“한발 늦었다니? 자세히 설명해 보아라.”

베오르크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그 표정에 맞게 무거워진 알현실에서, 귀족들이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배신자들이 먼저 선수를 쳤습니다. 놈들이 군을 일으켜 북상(北上)하고 있습니다.”

“카이 백작이 밝힌 귀족들 이외에도 배신자들이 더 있었습니다. 무려 10명이옵니다.”

“42명의 배신자들은 모두 동부와 서부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일으킨 군대의 창끝이 지금 이 순간에도 북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군세는 15만으로 추정되는 바입니다.”

“……15만이라?”

꿈틀.

베오르크 국왕의 눈썹이 거칠게 요동쳤다.

생각보다 반군의 규모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보고를 같이 듣던 카이도 그 규모에 살짝 혀를 내둘렀다.

‘치열하겠어.’

물론 큰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입장에서야 15만이 크지만, 라시온 왕국이 작정하고 칼을 뽑으면 단숨에 그 수의 세 배가 넘는 군대를 일으킬 수 있다.

‘무엇보다 북부에는 사령관인 하인드 백작이 있지.’

침공 때는 운 나쁘게 근처에 상급 게이트가 두 개나 열리며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시간은 라시온의 편이야. 하인드 백작이 성문을 굳게 잠그고 수성만 해줘도 라시온의 본대가 반군을 섬멸할 테니까.’

베오르크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코웃음을 쳤다.

“고작 15만의 군세로 반역을 일으키다니…… 감히 그런 오합지졸의 군으로 중앙까지 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건가.”

베오르크는 자신이 있었다.

15만의 군대는 왕궁은커녕, 수도에조차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헌데 비보(悲報)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전하. 보고드릴 것이 하나 더 있사옵니다.”

“편하게 말하라. 이제는 더 놀랄 힘조차 없는 것 같으니.”

몸서리치는 배신감과 분노에 맥이 쭈욱 빠진 베오르크가 살짝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보고를 올리던 귀족들이 조금 이상하다.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면서 입을 꾹 다문 것이다.

“……내 말해보라 하지 않았느냐.”

귀족들의 태도에서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베오르크가 그들을 다그쳤다.

그제야 귀족 하나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혹시 블랙드래곤이라는 모험가 세력을 아십니까?”

“음?”

그 질문에는 베오르크보다 카이가 먼저 반응했다.

‘블랙드래곤이라면…… 흑룡 길드인데? 걔네는 알데바란 왕국 소속이잖아.’

그런 녀석들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의문은 빠르게 풀렸다.

“그들이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알데바란 왕국의 국경선으로 남하(南下)하는 중입니다. 이에 북부사령관인 하인드 백작이 군과 기사들을 이끌고 국경으로 향했습니다.”

“이런 미친…….”

카이가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흑룡 길드는 미드 온라인의 모든 길드를 통틀어 길드원이 가장 많은 길드였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길드원은 무려 20,000,000명.

2천만 명이다.

물론 그 숫자는 단순히 길드에 가입된 길드원들의 수.

모두가 알데바란 왕국에서 활동하지는 않는다.

대륙 전역에 흩어져서 이 시간에도 사냥을 하거나, 퀘스트를 깨거나.

혹은 현실에서 잠을 자고 있을 수도 있다.

“가만, 하인드 백작이 국경선 쪽으로 향했다면, 북부의 영지들 태반이 비어 있다는 소리 아닌가?”

“예. 하인드 백작과 그를 따르는 열 다섯 개의 가문들이 병사들과 함께 영지를 비었습니다.”

“으음…….”

한 마디로 현재 북부의 영지들은 비어 있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지민들은 물론이고, 귀족들의 목숨 또한 위험하다.

“……반군들이 북부를 향하고 있다고 하였나.”

“예. 처음부터 그들의 목적은 중앙이 아니었습니다.”

“……북부.”

베오르크가 침음성을 삼켰다.

뮬딘 교는 바보가 아니었다.

15만으로 라시온 왕궁을 쓸어버리겠다는 오만한 생각은커녕, 지극히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15만 명이라면…… 평소에도 북부를 밀어버리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숫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영지를 지켜야 할 북부의 병력들이 국경선을 강화하기 위해 이동한 상태였으니까.

“……본대의 준비는 언제 끝나지?”

“중앙 병력 20만명의 편성은 여섯 시간 이내로 끝낼 수 있습니다.”

“반군과 북쪽 군의 충돌 예상 시간은?”

“……네 시간 이내입니다. 그들은 수베르 운하를 따라 빠르게 북상하고 있습니다.”

“여섯 시간과 네 시간이라…….”

타임 랙은 두 시간.

베오르크는 그 간격을 좁힐 방도를 도저히 떠올리지 못했다.

수백 명도 아니고, 무려 수십 만 단위의 대군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서 옮길 수도 없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했다면, 마법사 최다 보유국인 오곤 제국이 진작 대륙을 정복했을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베오르크가 입을 열었다.

“군 편성 시간으로 다섯 시간 주지.”

“부, 불가능합니다 전하! 수만 명도 아니고, 무려 20만명이나 되는 대군이옵니다!”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게하라! 이대로 북부가 멸망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셈인가?”

“으음…….”

귀족들은 당황한 표정을 한껏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선을 다해보겠…… 아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라시온에 영광을!”

그들이 서둘러 알현실을 나가자, 옥좌로 터덜터덜 다가간 베오르크가 그 위로 쓰러지듯 앉았다.

“15만 명의 반군에 더해…… 2천만 명이 가입한 초거대 세력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다니.”

베오르크는 피곤한지 눈가를 계속 주물렀다.

그 모습을 조용히 쳐다보던 카이는 계산을 하는 중이었다.

‘뮬딘 교와 흑룡 길드 사이에 무슨 거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베오르크는 몰라도, 유저인 카이는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흑룡 길드? 걔네는 절대 라시온 왕국에게 싸움 못 걸어.‘

그들이 싸움을 거는 순간, 그건 라시온 왕국과 알데바란 왕국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당연히 알데바란 측에서 이를 용인할 리가 없었다.

물론 흑룡 길드가 알데바란 왕국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크다면 모를까, 아직은 시기상조다.

’특히 다른 국가에게 선전 포고를 하는 건, 현재 흑룡의 위치에선 절대 무리야.‘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 알데바란의 왕이 급격히 세를 불리는 흑룡 길드를 견제하기 시작했으니까.

당연히 흑룡 쪽에서는 그 정도의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쥐지도 못했고, 알데바란 국왕에게 밉보일 짓을 하지도 못한다.

‘흑룡 길드가 알데바란 왕국의 국경에 본격적으로 참여를 하려면, 못해도 1년은 지나야 해.’

흑룡의 길드원 수는 세계 제일이지만, 그건 저레벨 유저까지 포함한 숫자다.

당연히 그들의 전력은 국가를 상대하기에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한 마디로 지금 흑룡이 국경선에 몰려든건 독자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소리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렇다면 흑룡과 북부 군의 충돌은 없다. 확실해.‘

전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룡이 군대를 이끌고 남하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하인드 백작과 다른 영주들이 영지를 비우게 만들기 위해서다. 일종의 허수아비 역할이지.‘

영지의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반군이 북부를 밀어버리는 것은 굉장히 쉬워진다.

주인 없는 성채를 차례차례 수복해나가는 것은 물론.

종국에는 하인드 백작의 군대와 평원에서 소모전을 할 수 있게 되니까.

’누가 이기든, 결과적으로 북부는 궤멸에 가까운 상태를 맞이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것이 뮬딘 교가 바라는 일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카이가 입을 열었다.

“베오르크 국왕 전하.”

“……뭔가.”

힘없는 음성이 카이의 귓가를 맴돌았다.

카이는 그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절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자리에 제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언제나 기대를 주는 사람.

언제나 기대한 것 이상을 해내는 사람.

베오르크 국왕은 지난 번 카이를 그렇게 평가했었다.

때문에 그의 눈동자로 한 줄기 희망이 피어올랐다.

카이라면 이번에도 무언가를 해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 전쟁,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 말에 베오르크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자네는 강하네. 누구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아. 허나 개인이 군대를 압도할 수는 없는 법이라네. 그건 자네의 해골 군대를 일으켜도 마찬가지일 터. 무려 수십만의 병력들이 맞붙는 무대라네.”

“전하. 전 그들과 맞붙어서 이길 생각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알아듣도록 설명해 주게.”

베오르크가 재촉했지만, 카이는 짓궃은 생각을 떠올린 개구쟁이마냥 웃기만 했다.

“아무래도 저, 라시온 왕국의 복이 맞나 봅니다.”

***

“보고드립니다. 벌써 북부의 영지 두 개를 손에 넣었습니다. 성채에는 최소한의 관리 인원만 남기고 본대는 다음 성을 점령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좋군.]

간만에 흡족한 보고를 듣게 된 아트록 추기경이 옅은 웃음을 흘렸다.

보고를 올리던 부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추기경님, 궁금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냐.]

“이제 라시온 왕국의 북부 귀족들은 물론이고, 백전무패의 노장인 하인드 사령관 또한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알데바란에 심어놓은 세작들까지 동원하여 아예 라시온 왕국을 깨끗하게 밀어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부하의 말은 듣기에는 제법 그럴듯 했다.

북부가 궤멸되어 큰 혼란에 빠진 라시온을 밀어붙이는 것은 생각보다 쉬워 보였으니까.

[쯧쯔쯔…… 한심하고 어리석구나.]

허나 아트록 추기경은 그런 부하의 무지한 생각을 꾸짖었다.

[어찌 이렇게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느냐. 왜 다들 제 앞의 길만 보고 걸음을 뻗어. 그 길 끝에 도사리는 것이 까마득한 낭떠러지라는 것은 보이지가 않는단 말이냐. 한심한 것들.]

“시, 심기를 어지럽혀서 죄송합니다.”

[생각해보아라. 너 따위도 생각해내는 것을 내가 몰랐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그,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부하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아트록 추기경이 천천히 설명했다.

[잘 들어라. 이번 기회에 알데바란 왕국의 병력을 차출하면 라시온을 정리하는건 쉽겠지. 하지만 본교가 노리는 것이 라시온의 멸망이더냐?]

“아닙니다. 이 땅 위의 모든 국가를 파멸시키고 단일 종교국을 건설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알긴 아는구나. 생각해 보거라. 지금쯤 세작 문제로 다른 국가들은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맞습니다. 벌써부터 두 제국은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야 뻔하지. 라시온 왕국에서 세작이 나왔으니, 혹시 우리에게도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증거를 찾을 수는 없겠지.]

“물론이지요. 게다가 아직까지는 의심의 단계일 뿐입니다.”

[처음에는 의심이었던 것도, 두 번이면 확신으로 바뀌는 법이다. 라시온에 이어 알데바란에서도 세작들이 나온다면 다른 국가들은 자국에도 세작이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몸을 웅크리고 경계하고, 세작 색출에 모든 힘을 쏟아 붓겠지.]

“아…… 세작들은 그들의 눈을 피해 활동하는 것이 힘들어지겠군요.”

부하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실체가 없는 존재를 계속해서 경계하고, 서로를 의심하는 행위는 매우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지.]

“……아!”

부하는 그제야 아트록 추기경이 진정 원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반목하면서 혼란에 빠지기를 바라시는 거로군요!”

아트록 추기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끌끌 웃었다.

[의심이란 녀석은 말이다. 씨앗만 뿌려놓아도 알아서 무럭무럭 자라는 녀석이다. 종국에는 서로를 물어뜯을 거대한 열매를 피우는 녀석이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정도까지 내다보실 줄이야…….”

[항상 명심해라. 우리의 적은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세력이라는 것을. 어설픈 머리와 힘으로는 그들을 이겨내지 못한다. 수백 년 전, 나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다짐했다.]

아트록 추기경의 텅 비어 있는 해골 눈두덩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두 번 다시 패배하지 않겠노라고.]

그 시각, 뮬딘 군은 북부의 다섯 번째 영지를 손에 넣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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