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30화 (330/441)

# 330

힐통령 330화

102. 북부탈환전 (2)

평원에는 총 3만 명의 유저들이 도열을 맞춘 채 서있었다.

입고 있는 장비는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가슴에는 하나 같이 검은 용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흑룡의 제3단주, 쿤 팽이 수정구를 들고 있었다.

[적들의 동향은?]

수정구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흑룡의 마스터인 쟈오 린의 목소리였다.

그는 오늘 작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해 빠져나갈 구멍을 파놓은 것이었다.

쿤 팽은 국경선에 세워진 알데바란의 성채 위에서, 저 멀리 떨어진 성채를 쳐다봤다.

바로 라시온 왕국의 국경선에 세워진 성채였다.

“그대롭니다. 하인드 백작을 비롯한 다른 영주들이 주기적으로 성채에 올라와서 저희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입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는군.]

“예, 저희는 녀석들의 발목만 잡고 있으면 손도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습니다.”

[뮬딘 교 녀석들이 일을 잘 끝내준다면 말이지.]

수정구를 통해 자신의 군대를 쳐다보던 쟈오 린이 중얼거렸다.

[연결책이 골리앗과 스팅, 그 머저리들이라서 걱정되는군.]

“큰 걱정하지 마십시오. 용주(龍主)께서 심려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벌써 라시온 북부의 영지 십수 개를 손에 넣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잖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용주는 마스터인 쟈오 린을 높여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었다.

[만약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최대 수혜자는 골리앗도, 스팅도, 심지어 뮬딘도 아닌 우리 흑룡이 될 것이다.]

“흐흐…… 그야 물론이지요.”

쿤 팽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만약 뮬딘 교의 군대가 이번 기회에 라시온 왕국의 북부를 회생 불가 상태로 만들어 준다면?

그 최대 수혜자는 다름아닌 알데바란 왕국이 될 것이다.

[일이 거기까지만 진행된다면, 내가 직접 알데바란의 국왕을 설득할 것이다.]

도둑질을 쉽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집집마다 문을 굳게 잠궈놓기 때문이다.

헌데 그 문이 버젓이 열려있고, 집을 지키는 개마저 없다면?

[소심한 알데바란의 국왕이라고 해도, 출정을 막을 수는 없겠지. 애초에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 NPC 귀족 놈들에게 뇌물을 먹인 이유이기도 하고.]

쟈오 린은 벌써부터 즐거운 상상을 펼쳤다.

[라시온의 북부만 뚫리면 리버티아. 그 영지를 손에 넣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물론이지요. 카이 녀석이 강하다고 해도 고작 한 명. 아니, 심지어 언데드 군단을 부린다고 해도 저희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개인과 단체의 차이다. 물론 녀석은 강하겠지. 어쩌면 수백, 수천 명의 길드원이 놈에게 죽을지도 모른다.]

하나 상관없다.

쟈오 린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압도적인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수만, 수십만의 공세를 혼자서 막을 수는 없다.]

“물론입니다. 그건 녀석이 여포 봉선의 환생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홀짝.

찻잔을 기울인 쟈오 린이 눈을 스르륵 감으며 리버티아를 떠올렸다.

[리버티아는 굉장한 전략적 요충지다. 물론 지금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걸린 격이지만.]

쟈오 린은 카이의 무능함을 비웃었다.

‘멍청한 녀석, 보물이 있어도 사용할 줄을 모르다니.’

그는 리버티아에 엘프와 인어들이 거주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다짐했다.

‘미드 온라인은 NPC들의 힘이 강대한 세계. 강해지려면 그들을 등에 업어야 한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권력자들은 미남, 미녀를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들을 고위 귀족에게는 판매하기만 해도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심지어 수많은 고위 귀족들의 연락처를 챙길 수 있고, 동시에 그들의 치부도 하나 쥐게 되는 셈이지.’

생각만 들어도 짜릿한 계획이다.

헌데 카이는 그런 보물들을 데리고 한다는 것이 고작 연극이나 노래, 춤이다.

‘멍청한 녀석.’

쟈오 린은 코웃음을 치며 쿤 팽에게 명령했다.

[그럼 주기적으로 보고를…… 마침 골리앗 녀석에게 연락이 하나 더 왔군.]

“녀석이 뭐라고 합니까?”

[뮬딘 교의 본대는 바로 국경선 쪽으로 간다더군. 제 2부대는 시리스 협곡에 진입했다.]

“시리스 협곡이라…… 그곳을 뺏기면 라시온 쪽에서 속이 좀 쓰리겠군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

완전무장을 마친 5만 명의 암흑 기사와 마법사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사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고급스러운 마차였다.

품종이 좋은 명마가 이끄는 마차는 바퀴부터 시작해서 내부의 쿠션까지 고급이 아닌 것이 없었다.

“순조롭군.”

그 안에 타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메디프 백작이었다.

그는 뮬딘 교와 손을 잡고, ‘더 퓨어’라는 사교 클럽 회원들을 포섭한 프로 매국노였다.

반대쪽 좌석에 타고 있던 그의 아들은 살짝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정말 괜찮겠죠? 혹시라도 잘못되면 저희는 다 반역죄로…….”

“쯧쯧쯧.”

메디프 백작이 혀를 차며 아들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이렇게나 상황을 파악하는 눈이 부족해서야. 자식 농사는 대실패로군.”

“죄, 죄송합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메디프 백작이 현재의 상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의 아들도 안색이 확 밝아졌다.

“아……! 그러면 저희는 북부만 궤멸시키면 되는거군요! 뒤는 알데바란 왕국 쪽에서 알아서 해줄테니까요.”

“뭐,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 뮬딘 교는 대륙의 공적이고, 우리는 그들의 스파이 노릇을 하던 자들이었으니 알데바란 쪽에서도 우리를 반기지는 않겠지.”

“그, 그럼 어떡하죠?”

“훗. 바로 이런 때를 대비하여 타국의 귀족, 왕족들과 그렇게 꾸준히 교류를 하며 친분을 다진 것이다. 명심해라. 평소에 베푼 금화 하나의 무게만큼 네가 흘릴 피의 양은 줄어든다.”

“오, 오오…… 굉장한 명언이십니다.”

메디프 백작의 말에 아들이 감탄했다.

“자고로 순수 혈통의 귀족이라면 이 정도 인맥은 항시 지니고 있어야 하는 법이지.”

흡족한 표정으로 마차에 달린 창문을 내린 메디프 백작이 앞쪽을 쳐다봤다.

“시리스 협곡에 들어섰구나.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이지. 우리는 저곳을 점령을 한 뒤 휴식을 취하라는 명령이다. 아마 본대가 국경선을 정리하고 돌아오면, 저곳을 중심으로 라시온과 한 판 붙어보겠다는 계획이겠지.”

시리스 협곡은 50미터 정도의 폭을 지닌 거대한 협곡 지대였는데, 양쪽으로는 가파른 절벽이 30미터가 넘게 솟아올라 있었다.

수성 측이 작정하고 방어에 전념하면 열 배가 넘는 군사를 상대로도 버틸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메디프 백작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암흑 기사와 마법사들이 보여준 전투력은 말 그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까.

성 하나를 점령하는데 15분이 채 안 걸리는 것을 보았을 때는, 온몸에 전율마저 일어났다.

“들어가서 푹 쉬면 되겠군.”

창문을 닫은 메디프 백작은 푹신한 좌석에 몸을 묻고는 눈을 감았다.

최고급 마차에 타고 있다지만, 장시간 동안 군대와 함께 이동을 하니 심신이 지쳤기 때문이다.

‘평소 때였다면 지금쯤 영지에서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하고 있을 시간이거늘.’

메디프 백작이 성채를 빠르게 점령하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바깥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감지되었다.

이어서 누군가가 마차의 창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냐.”

“백작님! 함정입니다.”

“……뭐?”

난데없이 함정이라니?

“협곡의 위쪽에…… 커억!”

푹!

말을 하던 기사는 자신의 목에 박힌 화살을 더듬더니 픽하고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당황한 메디프 백작이 창문을 통해 바깥을 쳐다봤다.

협곡의 위쪽에는 상당수의 병력이 매복해있는 상태였다.

‘어디서 저런 병력이?’

척 보기에도 5천이 넘어가는 인원은 하급 병졸들이 아니었다.

모두 마법사와 궁수로 이루어진 제대로 된 고급 병사들이다.

“젠장…… 모두 후퇴해라!”

메디프 백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군. 협곡의 폭이 넓어서.’

사실 시리스 협곡은 매복을 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협곡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굉장히 넓어서, 5만 명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뮬딘 교도 혹시 모를 매복까지 계산해서 딱 5만의 군대를 메디프에게 맡겨놓았다.

‘놈들이 위에서 무슨 마법을 준비해놨던, 무사히 도망은 칠 수 있다.’

성채를 점령하지 못한 것에 짜증이 솟구쳤지만, 군대를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들이 모두 죽는다면 나도 뮬딘 교의 손에 죽겠지.’

그들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메디프 백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은 굉음이 터지자 병사들이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뭐, 뭐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아, 아버지…… 밖에 무슨 일이 생겼나봅니다!

메디프 백작은 발만 동동 구르는 멍청한 아들을 내버려둔 채, 창문으로 손을 뻗어 기사의 멱살을 쥐었다.

“무슨 일이냐니까!”

“이, 입구에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너무 거대합니다! 퇴로가 막혀 후퇴할 수 없습니다!”

“뭐?”

마차 내부에서는 뒤쪽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기에, 메디프 백작은 서둘러 마차의 문을 열었다.

내리는 것과 동시에 협곡의 입구를 꽉 채우고 있는 거대한 괴물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저, 저게 대체 뭐란 말이냐.”

순백의 비늘을 달고 있는 거대한 존재는 뱀과 비슷한 형체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뱀이라고 지칭하기에는, 뿜어내고 있는 기운이 너무나 강대했다.

“으음……!”

메디프 백작은 순간 고민했다.

‘방법은 두 가지, 성채를 뚫거나, 몬스터를 죽이거나.’

결론을 빨리 나왔다.

언덕 위에 매복한 적들을 무시하고 성문을 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몬스터 하나를 쓰러트리는건 상대적으로 쉬워보였다.

“암흑 마법사들은 방어막을 펼쳐 협곡 위에서 쏘아지는 공격들을 막아내라! 암흑 기사들은 저 몬스터를 공격해서 길을 뚫어!”

썩어도 준치라고, 고등 교육을 받은 메디프 백작은 적절한 명령을 내리며 군대를 지휘했다.

[크라아아아악!]

“됐어, 통한다! 놈을 빨리 죽여!”

괴물은 공격을 받자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보고 힘을 낸 뮬딘 교의 군대가 분전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공격하면 쓰러트릴 수 있다.’

메디프 백작은 언덕 위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이 치욕은 본대와 합류해서 하인드 백작 쪽을 마무리한 뒤, 돌아와서 갚아주마.’

그러던 차에, 메디프 백작의 눈이 누군가와 딱 마주쳤다.

“아니…… 저, 저 놈이 어떻게 여기에……?”

그것은 불과 하루 전, 자신에게 일생일대의 모욕을 안겨준 모험가였다.

“카이이이이이이!!”

메디프 백작의 고함을 무시한 카이는 입구를 막고 있는 할리를 쳐다보았다.

‘햇살의 따스함으로 계속 치료를 하고 있지만, 치료량이 누적되는 데미지를 못 따라가.’

그도 그럴 것이, 수만 명의 적들이 할리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카이는 할리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녀석의 생명력이 딱 10%가 되는 순간.

손가락을 튕겼다.

“스킬, 석화 발동.”

띠링!

[지정된 대상을 1분 동안 석화 상태로 만듭니다.]

[대상으로 ‘해룡 할리’가 지목되었습니다.]

[할리가 1분 동안 석화 상태가 되며, 모든 종류의 공격에 면역이 됩니다.]

쩌저저적!

할리의 거대한 신체가 빠르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을 미친 듯이 공격하던 암흑 기사들이 당황에 빠졌다.

카앙! 까앙!

“공격이 안 통한다……?”

“검이 부러질 정도의 방어력이라니!”

“마법사, 마법사!”

“마, 마법도 안 통합니다! 완전 면역 상태입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메디프 백작님! 퇴로가 완전 차단되었습니다!”

돌이 된 할리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단단하고, 거대한 방벽이 되었다.

“앵글 좋고.”

카이는 양손의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카메라 모양을 만들며, 5만 대군을 그 안에 담았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우왕좌왕하던 뮬딘 군이 엄청난 열기를 느끼며 고개를 든 것도 그때였다.

“헬 빠이야.”

화르르륵.

카이의 머리 위로 네 개의 지옥 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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