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33화 (333/441)

# 333

힐통령 333화

102. 북부탈환전(5)

카이의 주변으로 흑색 안개가 드리워졌다.

그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 나이트 오브 나이트메어의 효과였다.

물론 그 안개가 어떤 존재들을 소환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딱딱딱!

턱뼈와 각종 관절을 삐걱거리며 소환된 50마리의 스켈레톤.

카이의 반지 하나가 더 빛나며 서임 스킬이 사용되었다.

그의 전매특허 중 하나인, 나.오.나 -서임 콤보가 완성된 것이다.

순식간에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듀라한들에게는 카이가 직접 무기를 하사했다.

마치 휘하의 귀족들에게 영토를 하사하는 왕처럼.

척, 척.

그렇게 50개의 레어, 유니크 무기의 분배가 끝나는 순간.

카이는 한 존재를 더 불러냈다.

“빛의 전사 소환. 데스몬드.”

핏빛 회오리가 몰아치더니, 안색이 창백한 미남 하나가 평원에 발을 내디뎠다.

[흐으음. 전장인가.]

할리는 혹시 몰라 시리스 성채에 두고 왔기에 데스몬드만을 소환했다.

“어, 보다시피.”

특유의 오만한 눈빛으로 전장을 둘러본 데스몬드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포위진이로군. 하나…… 포위진의 기본 전제를 모두 무시하고 무리해서 짜놓은 모양새다. 지휘관의 역량 부족이군.]

그러고는 한심한 눈빛으로 카이를 쳐다본다.

[네놈의 작품인가?]

카이는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어, 보다시피?”

[소수로 다수를 포위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지. 각개격파라도 당할 셈인가?]

“지금부터 그 부분을 해결하려고.”

[1분 1초가 중요한 전장에서는 치명적인 실수를 돌이킬 수 없는 방법이 없…….]

“있어.”

데스몬드의 잔소리를 끊은 카이의 반지 하나가 또 빛났다.

“천사들의 찬가.”

반지가 미처 억누르지 못한 신성력이 폭발하듯 몰아치며 평원을 물들였다.

[에이, 진짜! 이런 건 미리 말이라도 좀 해라!]

신성력을 질색하는 데스몬드는 어느새 저만치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이의 귓가로는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나니노~

니~나니노~

천사들의 찬가를 사용하면 소환되는 천사들의 감미로운 노랫소리였다.

머리 위를 떠다니는 천사들은 문자 그대로 시선 강탈.

적아 구분 없이 모두가 멍하니 천사들을 바라보던 그때, 기다리던 알림이 떠올랐다.

띠링!

[천사들이 낭송하는 찬가를 들었습니다.]

[받는 물리 피해가 30% 감소합니다.]

[받는 마법 피해가 30% 감소합니다.]

[모든 상태 이상 저항력이 40% 증가합니다.]

이터널 레전더리 등급의 아이템, 페트라가 지닌 스킬의 효과는 제대로 미쳤다.

그냥 미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미쳤다고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음? 이 기분은…….”

“무언가 성스러운 힘이 나를 보호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오오오, 태양신께서 우리를 보살피신다!”

이 스킬은 찬가를 들은 모든 아군에게 효과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건 아군 NPC까지 포함한다는 뜻이었다.

이미 비르 평야전 때 경험한 바 있었기에, 카이는 이 부분에선 크게 감동을 받지 않았다.

[크, 크흠. 이 정도라면…… 그럭저럭 균형은 맞춰진 꼴이로군.]

신성력을 끔찍이 싫어하는 데스몬드조차 이 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카이는 피식 웃으며 그를 놀렸다.

“왜 이래? 아직 안 끝났는데?”

[……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이걸 모르면 안 되지.”

카이는 멍청하게 눈만 깜빡거리는 데스몬드를 보며 또박또박하게 단어 하나를 뱉어냈다.

“군단의 심장.”

띠링!

[군단의 심장이 사용되었습니다.]

[소환수의 공격력이 30% 증가합니다.]

[소환수의 방어력이 30% 증가합니다.]

[소환수의 생명력이 30% 증가합니다.]

[소환수의 모든 스탯이 15% 증가합니다.]

[……뭐냐. 이 사기적인 힘은.]

데스몬드는 전신에서 끓어넘치는 힘을 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에이, 알면서.”

카이의 능청스러운 대꾸에 데스몬드는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렇군. 나의 왕국을 멸망시켰던 그 힘인가.]

“야, 멸망 안 시켰거든? 브룩하임 엄청 멀쩡하고, 지금 유저들한테 인기 엄청 많아.”

데스몬드의 말을 정정한 카이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곳은 정확히 뮬딘 군의 본대가 위치한 방향이었다.

‘아군의 인원이 부족한 것을 알고도 무리해서 이 작전을 짠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자신의 사기적인 버프 능력과 군단을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버프도 버프지만, 카이는 듀라한 군단을 맹신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 녀석들을 이길 수 있는 군대? 글쎄. 제국의 기사단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칠흑의 해역에서 할리와 전투를 끝냈을 때, 카이의 레벨은 474였다.

그동안 긴 휴식기를 가지며 영지 관리에 집중하던 그는 불과 몇 시간 전.

5만 명이나 되는 뮬딘 군을 처치하며 간만에 레벨을 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지금의 듀라한.

[듀라한 LV.506.]

무려 레벨만 500이 넘어가는, 하나하나가? 네임드 보스에 걸맞은 최강의 군대였다.

듀라한들은 소환자의 레벨에 영향을 받는다.

즉, 현재 카이의 레벨도 500을 돌파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믿고 있던 두 번째.’

카이가 뻗었던 손에서 반지 하나에서 물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진형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자신이 있으니까.’

마치 덜 잠근 수도꼭지처럼 물방울을 떨어뜨리던 반지는 푸른 빛을 뿜어냈다.

“수압포.”

동시에 도합 15만 대군이 위치한 대평원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강력한 물줄기가 발사되었다.

“크아아악!”

“무, 물 따위가 어떻게?”

“멍청이들! 압축된 물이다! 막을 생각하지말고 무조건 피해! 흩어져!”

수압포는 방패로 막거나 마법으로 맞받아치는 행위는 통하지 않았다.

‘이래 봬도 씨서펜트의 최강 공격 기술이라고.’

그 절대적인 믿음처럼, 수압포는 뮬딘 군의 진형을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카이는 적들의 진형이 무너진 것을 확인하는 순간 소리쳤다.

“지금이다! 쓸어버려!”

듀라한들이 무기를 꺼내들며 전장의 사신들처럼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즈음, 수압포는 힘을 잃고 곧 끊어질 기미를 보였다.

‘그래선 안 되지.’

적들의 진형은 지금 이대로 붕괴되어 있는 것이 아군에게 당연히 유리했다.

‘처음이라서 잘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카이는 왼손을 수압포를 향해 뻗었다.

“절대영도.”

쩌저저저적!

스킬을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수압포가 얼어붙으며 날카로운 얼음 가시를 뿜어냈다.

적들의 진형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선이 완성된 순간이기도 했다.

고작 1초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카이는 절대영도의 엄청난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험한 스킬이네.’

만약 절대영도의 힘을 왼손에 집중시키지 않았다면, 아군까지 피해를 입었을 지도 모른다.

카이는 이 스킬을 조금 더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전장을 주시했다.

천사들의 찬가로 방어력이 몰라볼 정도로 증가한 하인드 백작의 군대는 뮬딘 군을 상대로 잘 싸워주는 중이었다.

하나 그들은 이 전장의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콰드드득!

콰아앙!

전장은 듀라한들의 독무대였으니까.

두려울 것이 없는 그들은 전진만을 거듭하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쓸어버렸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메뚜기 떼가 지나간 것처럼, 한 명의 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흠, 듀라한들이 없는 쪽은 확실히 조금 불리하네.’

카이는 듀라한들에게 적들의 왼쪽 진형을 깨끗히 정리하라고 명령한 뒤, 데스몬드를 이끌고 오른쪽 진형으로 향했다.

“뮬딘 교를 믿지 않는 이단들! 죽어라!”

“너나 죽어.”

카이는 하인드 백작군을 괴롭히는 적들 한 가운데로 난입했다.

‘성검 소환.’

우우웅!

자신의 신성력에 반응하는 성검을 쥔 순간, 카이의 검을 막을 적수는 없었다.

“뮬딘이 이름으로!”

“어, 그럼 난 헬릭의 이름으로.”

카이는 가볍게 턱을 치켜 들며 날아드는 검을 피하고,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서걱!

암흑 기사 하나의 팔이 날아갔다.

‘왼쪽.’

슬쩍 고개를 돌리자 날아드는 거대한 어둠의 불이 보였다.

‘저게 뮬딘 교의 신성 마법인가?’

교단의 신성 마법사.

그들을 상대하는건 처음이었지만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검은 벌 녀석들을 한 번 상대하고 나니까, 확실히 원거리 주문 쓰는 애들은 상대하기 쉽네.’

처음부터 끝판왕을 깬 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카이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무차별 폭격을 여유롭게 피해가며 그들에게 접근했다.

“이, 이이…… 괴물 같은! 다크 익스플로……!”

푸욱!

카이는 주문이 완성되기 전에 적의 목에 검을 박아넣었다.

끄르르륵.

거품 푸는 소리와 함께 캐스팅은 취소되었다.

“칼날 쇄도.”

믹서기처럼 돌아가는 성검을 거칠게 빼어낸 카이는 다수의 기운을 느끼고는 몸을 돌렸다.

“허.”

무려 셋이나 되는 암흑 기사들이 목숨을 던질 각오로 카이에게 달려드는 중이었다.

“오.”

카이가 작게나마 감탄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 녀석들, 네임드인데?’

각각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암흑 기사들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다른 기사들보다 레벨도 높은 걸 보니, 뮬딘 교 본단에서 파견된 모양.

‘재미있네.’

카이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검 손잡이를 꾹 잡은 채 이를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화아아아아아악!

여명의 검법이 경지에 이르고 난 뒤 터득한 검풍.

치명적인 대미지를 줄 수는 없었지만, 지금처럼 적들을 밀어내거나 움직임을 흐트러뜨릴 때는 최고의 기술이었다.

“어엇!”

“크윽!”

뒤로 날아가며 바닥을 구른 암흑 기사 중 하나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시야는 뾰족한 검극이 가득 채운 상태였다.

푸욱!

“끄아아아아아악!”

카이는 공격에 성공했다고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실제로 동료가 당하든 말든, 남은 두 명의 네임드 기사들은 카이에게 달려드는 중이었으니까.

후욱!

몸을 뒤로 돌린 카이가 왼손을 앞으로 뻗으며 소리쳤다.

“푸른 역병!”

“뭣?”

“우웁!”

두 기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호흡을 멈췄다.

하나 이미 늦었다.

‘한 호흡. 딱 호흡 하나의 차이야.’

뮬딘 교가 만들어낸 푸른 역병은 지능 스탯에 비례해 추가 대미지가 붙는 스킬이다.

현재 카이의 지능 스탯은 2,600이 넘는 상태.

그 어떤 독 스킬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푸른 역병 앞에서는 명함을 내밀 수 없을 것이다.

“크윽…….”

“우웁.”

얼굴이 검게 물들어가는 두 명의 네임드 암흑 기사.

카이는 그들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서걱!

마치 양 떼에 난입한 호랑이,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

뮬딘 교의 암흑 기사들은 두려움을 모른다고 정평이 난 지독한 종자들이다.

하지만 전투 시작 30분이 지났을 때.

카이의 주변으로 접근하려는 적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끝났네.’

땅으로 떨어진 적들의 사기가 눈에도 훤히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기충천 상태인 하인드 백작군은 고함을 지르며 그들을 몰아붙였다.

“그나저나 블리자드 이 녀석, 엑스트라 하나 정리하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빠르게 정리하고 합류할 줄 알았던 녀석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음?”

블리자드가 있는 장소로 이동한 카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블리자드가 밀리고 있어?’

결투는 30분이 넘도록 승부가 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중간에 블리자드에게 어마어마한 버프가 걸렸다는걸 감안하면, 상대방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뜻이다.

“크으윽!”

날카로운 낫의 날에 어깻죽지를 길게 베인 블리자드가 뒤로 물러났다.

할리의 비늘로 이루어진 갑옷까지 베어버린 크롬은 입가에 묻은 피를 혀로 핥으며 말했다.

“그 잘난 기술을 한 번 더 써보지 그러냐.”

카운터.

블리자드가 지닌 최고이 기술이자, 강자마저 이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스킬이다.

하지만 그 스킬의 존재를 알게 된 적에게는 효과가 급감하는 단점이 있었다.

왜나하면 카운터 스킬을 발동할 때는 고유의 자세를 취해야 하니까.

“블리자드.”

카이의 부름에 블리자드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지독한 패배감과, 허무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마스터 곁에 서고자 그토록 노력했지만…… 전 이런 잡졸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어.”

카이가 블리자드를 토닥이며 위로를 해주자, 이를 지켜보던 크롬이 버럭 화를 냈다.

“대체 아까부터 누구더러 잡졸이니, 엑스트라니 개소리를 해대는 것이냐!”

쿵, 쿵!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힘차게 내리친 크롬이 당당하게 선언했다.

“내 이름은 크롬! 뮬딘 교의 이단심판관이며, 이번 전쟁의 총 사령관을 맡은 존재다!”

“응? 네가?”

“알았다면 직접 덤벼라. 카이, 너의 목은 내가 직접…….”

“뭐야, 그럼 너 잡으면 이 전쟁도 끝나는 거네.”

오싹.

크롬은 등줄기로 스며드는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시야에서 카이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목소리가 자신의 귓가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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