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37화 (337/441)

# 337

힐통령 337화

103. 조금만 쉬자(3)

일반 유저들의 입장에서서 볼 때, 이번 라시온 왕국의 내전은 제법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자신들이 활동하던 영지들 중 태반이 뮬딘 교와 결탁을 한 상태였고, 무려 반란까지 일으킨 상황이었으니까.

그들은 이 사건을 해결한 것이 카이 백작이라는 것을 빠르게 알아냈고, 새로운 장작이 추가된 커뮤니티 창은 활활 타올랐다.

-카이 진짜 뭐하는 놈이냐? 자고 일어나서 게임 접속하니 전쟁 영웅이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시리스 성채에서 5천으로 5만을 이겼대.

└시리스 성채는 지리적인 유리함 덕분에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음.

└또또 허언 나온다. 또.

-시리스 성채전도 대단하지만, 진짜 이해 안 가는 건 국경선 지대에서의 싸움 아닐까? 5만으로 10만을 상대하면서 대승을 거뒀는데.

└기껏해야 2배 차이니까 쉬운 거 아니야?

└어휴, 전알못이 또;; 야 생각해봐라. 만약 5명이서 10명을 상대하는 거라면 네 말대로 쉬울지 몰라. 하지만 500명이서 천 명, 5천 명이서 만 명을 상대하는 것도 쉬울까? 똑같은 2배라고 해도, 인원이 늘어날수록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게 마련이야. 하물며 무려 5만 명 차이다. 이걸 뒤집은 건 진짜 대단한 거라고.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을까? 뭐 포위 섬멸진이라도 썼나?

-일단 침공 이벤트랑 타락의 성지 때 보여줬던 언데드 군단은 썼을 것 같고.

-쿼드라플 캐스팅도 썼겠지. 말하고 보니 자괴감 드네. 이게 게임이냐?

반응은 뜨거웠다.

물론 카이의 업적을 칭송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그를 까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도 존재했다.

길을 걸어갈 때마다 NPC의 입에서 카이의 이름이 흘러나왔으니 짜증이 날 만도 했다.

“진짜 웃긴 건 흑룡 이 녀석들이네. 하여튼 잔머리 하나는…….”

가장 먼저 라시온 왕국에 집중된 유저들의 시선은, 때마침 국경선을 압박하던 흑룡 길드에게 돌아갔다.

혹시 뮬딘 교와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가 아닐까하는, 당연한 의심이었다.

하나 흑룡 길드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지어 기자들도 잔뜩 매수해서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다.

[흑룡 길드, 뮬딘 교와 결탁한 사실 없어. 우연의 일치일 뿐.]

[때마침 국경선 부근에서 길드 사냥을 하던 흑룡 길드, 증거 사진 첨부.]

[쟈오 린 입장 표명. 뮬딘 교는 유저들이 최종적으로 타파해야 할 악의 집단. 흑룡 길드는 메인 에피소드 진행에 누구보다 앞장 선 길드, 억울함 호소.]

유저들도 바보는 아니다.

그들이 짜고 친다는 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증거였다.

흔히 말하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긴, 쟈오 린이 뒷덜미를 쉽게 잡힐 멍청이는 아니지.”

배 안에 능구렁이를 수백 마리 정도 품고 있는 녀석이라면 모를까.

카이는 커뮤니티 창을 끄며 고개를 돌렸다.

“끄으응…… 라샤여, 생각해 봤는데 살아가면서 덧셈과 뺄셈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으니라.”

“아니야. 덧셈은 필요해. 그런데 뺄셈은 굳이 필요 없는데.”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며 공부 중인 두 소녀는 자기 합리화를 하는 중이었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린 카이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상태창.”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524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222,700

신성력 : 395,000

능력치

힘 : 3,102 체력 : 2,227

지능 : 2,719 민첩 : 1,557

신성 : 3,950 위엄 : 1,569

선행 : 699

남은 스탯 : 250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101.5%

자연 친화력 +200

카이의 상태창은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힌 이유를 쉽게 설명해주었다.

‘레벨 524라…… 많이 올랐네.’

이번 전쟁에서만 레벨을 무려 50개나 올렸다.

시리스 협곡에서는 카이가 모든 경험치를 거의 독차지했고, 대평원에서도 듀라한들의 활약이 지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카이가 직접 잡은, 뮬딘 교와 내통을 했던 귀족만 모두 15명이었다.

하지만 권선징악 효과는 딱 1번, 메디프 백작을 잡았을 때만 적용되었다.

‘동시에 여러 명의 귀족을 잡을 때는 가장 높은 1명만 적용한다, 이건가.’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었지만, 사실 애초부터 큰 기대를 품지는 않았었다.

그들 모두에게서 권선징악 효과가 발동한다면, 선행 스탯이 수백 포인트나 상승했을 테니까.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그건 밸런스 붕괴나 다름없지.’

그래서 카이가 권선징악을 통해 쌓은 선행 스탯은 딱 메디프 백작 1명 분.

45포인트였다.

‘로드 오브 이스트 칭호로 모든 스탯이 50만큼 상승하기도 했고…… 남은 스탯도 충분해.’

솔직히 이쯤 되니, 스탯을 어디에 투자하던 손해가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스탯 포인트가 절실했던 초보 시절에야 하나 하나 손익을 따져가며 투자를 했지만, 지금은 어느 스탯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으니까.

“흐음. 게다가 스탯 포인트를 직접 사용해서 능력치를 올리면 목격자들 칭호로 인해 스탯 뻥튀기도 가능하니까…….”

요컨데, 스탯들을 골고루 찍어도 손해날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카이는 힘, 체력, 민첩, 지능, 신성에 각각 50포인트씩 스탯을 투자했다.

생명력 : 242,700

신성력 : 415,000

능력치

힘 : 3,302 체력 : 2,427

지능 : 2,919 민첩 : 1,757

신성 : 4,150 위엄 : 1,569

스탯을 분배하고 난 뒤의 능력치었다.

다른 유저들의 스탯보다 뒤에 0하나가 더 붙어있는 수준의 스탯들.

아마 커뮤니티에 올려도 관종이 합성 사진을 올렸다고 무시할 것이 분명했다.

“좋아. 신성력은 4천 돌파다.”

뿌듯한 표정으로 상태창을 끈 카이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고민했다.

‘아트록…… 다른 녀석은 몰라도, 그 녀석을 상대하려면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무리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스탯이 밀린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와 힘겨루기를 했을 때 우위를 점했던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건 스탯이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문제라는 건데…….’

카이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민했다.

자신의 스탯은 높다.

그냥 높은게 아니라, 미드 온라인의 고위 NPC들과 비교해도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높다.

이건 굉장한 이점이었다.

대부분의 랭커들이 부족한 스탯을 기술적인 부분, 즉 실력으로 커버 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이점이다.

‘하지만 누가 이 스탯들을 온전히 활용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 부분에 있어선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당장 힘 스탯만 봐도 그렇다.

카이의 힘은 이미 3천이 넘었지만, 그가 싸우는 방식은 바체와 대련을 했을 때 이후로 제자리걸음이었다.

가장 자주 다루는 무기가 검이고, 관련 스탯인 힘이 그 정도였으니 다른 스탯들의 활용도는 어떤 수준이겠는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담금질을 해야 될 순간이 왔구나.’

카이는 여태까지 게임을 하면서 벽에 막힐 때면 후이 관장이나 아쿠에리아의 흰 수염 사범 같은 교관들. 혹은 지르칸이나 바체 같은 강자들에게서 그 해답을 찾아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경우가 조금 달랐다.

‘나보다 스탯을 높은 사람을 찾는 건 솔직히 힘들 거야.’

그렇다면 결국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다.

‘나 스스로 해답을…….’

잠시 고민을 하던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웅? 어디 가느냐?”

“길잡이를 만나러 갑니다.”

“길잡이?”

“네. 정답을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 추천해줄 수 있는 사람. 지금 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죠.”

“으으응. 그럼 천천히, 아주아주 천천히 다녀 오거라.”

“그럴게요. 대신 다녀오면 바로 시험 칩니다.”

“흐으앙!”

헬릭이 다 녹은 찐빵처럼 주르륵 허물어졌다.

***

여전히 낡은 간판, 청소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담벼락.

카이는 굉장히 오랜만에 방문한 장소를 그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끼이이익!

“응?”

아침마다 검술관 앞을 청소하는 습관은 여전한 듯 했다.

빗자루를 들고 현관을 나선 후이 관장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백작님이.”

쓰윽, 쓰윽.

카이를 슬쩍 한 번 쳐다본 후이는 빗자루질을 시작하며 물었다.

“걸어가던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도움을 요청하려 왔습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이제 네 놈이 나보다 훨씬 강할 텐데. 그걸 나한테 묻는다고 답이 나오나. 좀 비켜봐!”

말투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꾼 후이는 빗자루로 카이의 다리를 툭툭 쳤다.

이에 카이는 옆으로 물러서며 말했다.

“공부 잘한다고 모두 좋은 선생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검술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

“저 좀 도와주세요.”

카이의 거듭된 부탁에 몸을 멈춘 후이 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 맨 손으로 왔냐?”

“설마요.”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시중에서도 구하기 힘든 최고급 와인 한 병을 꺼냈다.

한 병에 1,200만 원이나 하는 와인으로, 애주가인 후이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할 것이다.

“흐, 흐읍!”

아니나 다를까, 술병에 붙어있는 라벨을 확인한 후이 관장은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그거 설마…….”

“예, 30년 산 운디네의 물방울이에요.”

“컴 백 스윗홈, 나의 제자여.”

양팔을 벌리며 카이를 환영한 후이는 빗자루를 놓더니, 와인 병을 들고 검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카이가 뒤따라 들어가려고 하자, 현관이 닫히며 안쪽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빗자루질은 마무리하고 와라!”

“…….”

슥슥, 카이는 간만에 옛 기억을 되살리며 빗자루질을 했다.

***

“흐음. 그러니까 지닌바 능력은 확실히 강해졌는데, 그 힘을 주체할 수가 없다는 소리냐?”

“네. 제 힘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 힘을 제가 완벽히 통제해야 될 것 같은데……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카이를, 후이는 이상한 환자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살짝 거리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말이다. 왼쪽 팔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거나, 검은 용이 날뛸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그런 증상은 없느냐?”

“없는데요.”

“끄응, 말년에 골치 아프게 하는군.”

한숨을 푸욱 내쉰 후이는 목검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럼 주체할 수 없다는 그 대단한 힘부터 보여봐라.”

까딱까딱.

목검 끝을 흔들며 도발하는 후이는 무방비해보였다.

‘당장 눈에 보이는 약점만 14개…….’

그를 유심히 살피던 카이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관장님이 기억하는 나의 마지막 모습은 한참 전. 레벨이 50 정도였던 시절이지?’

이렇게 무시를 할 만도 하다.

아무리 명성이 높아지고 백작의 자리에 올랐어도, 그는 자신의 최근 실력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좋아. 그렇다면…… 이왕 보여드릴 거 확실하게.’

눈을 반짝인 카이는 가볍게 바닥을 박찼다.

순식간에 후이의 배후로 이동한 카이는 들고 있던 목검을 내밀어 후이의 목젖에…….

스윽.

“……!”

갖다 대기 직전.

후이가 들고 있던 목검이 먼저 카이의 목젖을 지그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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