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38화 (338/441)

# 338

힐통령 338화

104. 슈퍼 루키(1)

카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후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후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우 씨, 깜짝이야. 너 진짜 강해졌구나?”

그는 소름이 돋는지, 자신의 팔뚝을 연신 쓸어내리더니 뒤로 물러섰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카이가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제 움직임을 따라잡으신 겁니까? 제 능력치는…….”

“무슨 소리냐. 따라잡은 게 아니다.”

후이 관장이 카이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커험, 오랜만에 사범다운 표정을 지은 그가 입을 열었다.

“모든 생물은 말이다. 크든 작든 저들만의 습관, 혹은 버릇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이게 없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지.”

“……경청하겠습니다.”

“나는 네가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했다. 그저 들리는 소문들을 듣고 적당히 강해졌겠거니 생각할 뿐이었지.”

“…….”

그런데 어떻게 그런 움직임을?

카이의 눈빛을 받은 후이 관장은 자신의 검지로 톡톡, 눈가를 두드렸다.

“눈빛. 나는 너의 현재 실력은 모르지만, 너의 눈빛은 안다. 지난 날 내가 널 가르쳤을 때의 눈빛. 네가 나와 대련하며 보여줬던 눈빛. 네 몸과 마음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작은 습관은 그대로 있더군.”

“제 눈빛이요?”

“그래. 넌 상대방에게 달려들기 전에 빠르게 상대의 전신을 한 번 훑는다. 그리고 0.4초 후에 몸을 움직이지. 게다가 너의 항상 변주를 넣지 않은 클래식한 음악처럼 정직하게 움직인다. 아마 속도에 자신이 있다면 상대의 배후를 점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내 예상이 맞았지. 참고로 난 네가 움직이는 모습을 눈으로 쫓는 것조차 무리였다.”

“와…….”

카이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스탯이나 레벨은 자신보다 낮지만, 후이 관장은 평생 동안 검을 쥐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통찰력은 감히 카이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저 너의 습관과 생각을 읽었고, 네가 움직이기 전에 검을 휘두른 것뿐이다. 따지고 보면 내 검이 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지.”

“가르쳐주십시오.”

카이는 무릎을 꿇으며 청했다.

하나 후이 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가르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혹시 일정한 경지에 이른 무예가들이 그 벽을 깨기 위해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지워내는 것이다.”

후이 관장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평생을 살면서 저도 모르게 몸에 익은 습관, 버릇, 혹은 반복된 패턴들. 그것들을 돌아보며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친 위인들은 대부분 검술에 ‘형’이 없으며 단점 또한 없다. 아, 물론 아무 생각 없이 휘두른다고 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듣던 카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아. 나는 달려들기 전에 상대방을 파악했었어. 상대의 약점을 찾기 위함이었지. 게다가 될 수 있으면 내 엄청난 속도로 상대방을 찍어누르는 것도 사실이야. 배후를 점할 수만 있으면 싸움은 훨씬 쉬워지니까.’

누군가 말해주기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자신의 ‘패턴’들이었다.

하지만 이쯤에서 의문이 발생했다.

“그런데 관장님, 처음 보는 상대도 제 버릇이나 습관을 읽어낼 수 있습니까?”

“흠.”

후이 관장이 턱을 어루만졌다.

“글쎄. 나야 너를 가까이서 제법 봐왔으니 생각을 읽어낸 것이지만. 보통 처음 봐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보통’의 범주를 넘어선 괴물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한다.”

“……그렇군요.”

보통의 범주를 넘어선 괴물.

바로 아트록 같은 녀석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게다가 그는 아트록 본인이 맞다는 전제하에 무려 수백 년 동안 살아온 존재.

‘나와는 경험적인 측면에서 실력이 하늘과 땅 차이일 거야.’

그는 자신의 눈빛만 보고 품고 있는 생각을 읽어버릴 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실제로 지난 번 전투에서 그는 자신을 완벽하게 가지고 놀았으니까.

아마 크롬의 몸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패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추천해주실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저 자신을 어떻게 지워야 할 지 말입니다.”

“흠. 자신을 지워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밀폐된 곳에서 수련과 명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놈은 그런 것에 별로 자신 없지?”

“네. 그런 게 강제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대안이 있기는 하다.”

“그게 뭡니까?”

의욕이 활활 타오르는 카이를 쳐다보던 후이 관장은 입 꼬리를 말아올렸다.

“뭐긴, 미친개들이 즐비한 전장에서 구르고 또 구르는 법 밖에 없지. 너 자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말이다.”

사람들이 속된 말로 부르기를 미친개들의 전장.

그곳의 정식 명칭은 다름아닌 결투장이었다.

***

온라인 게임이라는 정원에는 다양한 향기를 뿌려대는 꽃이 핀다.

사냥, 육성, 레이드, 생산이나 수집 콘텐츠 등등.

하지만 게임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PVP 콘텐츠다.

미드 온라인도 마찬가지였다.

결투장.

그것이 바로 미드 온라인에 화사하게 피어난 PVP 콘텐츠의 이름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결투장은 굉장한 인기를 구사하고 있었다.

무고한 유저들을 일방적으로 기습하는 PK범이 아닌 이상, 합법적으로 유저와 실력을 가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가 바로 결투장이었으니까.

덕분에 결투장의 챔피언들은 이름을 날리며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이를 꼽으라면 사람들은 주저 없이 한 사람을 꼽았다.

세계 8대 길드에 속해 있는 리미트리스 길드의 주인이자 결투장의 챔피언 랭킹 1위인 캐서린이었다.

지극히 서구적인 몸매와 얼굴,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금발의 웨이브 머리.

심지어 결투장의 수많은 랭커들을 가볍게 요리하는 단도술까지.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몽땅 뭉쳐놓은 것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과거 복면 랭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을 해서, ‘냐옹냐옹 캣우먼’이라는 이름으로 10주 동안 절대자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며 명예 은퇴까지 했던 화려한 경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결투장 여신이라고까지 불리는 그녀는 최근 큰 고민을 하나 안고 있었다.

“흐으음…….”

툭, 툭.

캐서린은 자신의 앞으로 도착한 검은색 편지 한 장을 툭툭 치며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렸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야, 어떻게 생각하냐?”

“……뭐가요?”

그녀의 부하이자 리미트리스 길드의 부마스터인 리로드가 뻘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는 캐서린이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두려웠다.

세간에서의 평가가 어떻든, 길드 내에서 캐서린은 이 구역 미친년이라고까지 불리는 인물이었으니까.

“궁금하지 않아? 나한테 편지 보낸 이 새끼는 대체 대가리에 무슨 똥을 넣고 다니는 걸까?”

“잘 모르겠습니다.”

“너 좀 쓸모없네. 알아보라는 건 좀 알아봤어?”

“예.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쯧. 내가 동네북이야 뭐야. 왜 엄한데서 뺨 맞고 나한테 와서 지랄인데. 짜증나.”

부우욱!

짜증이 솟구친 그녀는 툭툭 치던 편지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리벤지 길드의 마크가 찍혀 있는 그 편지의 발신자는 골리앗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편지의 내용은 결투 신청이었다.

“물론 내가 결투장 챔피언이고, 겁나 예쁘고, 고혹적이고, 섹시한 매력이 넘치는건 알겠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아?”

“……그러네요. 진짜 좀 아니다.”

“그치? 솔직히 카이한테 줘터져 놓고 나한테 이거 보낸 의도야 뻔하잖아. 이 새끼 이거 그냥 화풀이 하고 싶다는 거지?”

“그야 그렇죠.”

“이딴 편지를 받은 내가 화가 나겠어, 안 나겠어?”

“음…….”

리로드가 아주 잠깐 고민했다.

그것이 캐서린의 예민한 신경을 건드렸다.

그녀는 리로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물었다.

“야. 너 지금 장난해? 내가 카이보다 약해?”

“예에? 아, 아니 저 입도 벙긋 안 했는데…….”

“그래도 생각은 했잖아. 그러니까 음…… 이라고 한 거잖아. 그치? 맞네 이 배신자 새끼.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버려.”

“아, 진짜. 아니라니까요?!”

리로드는 자신의 결백을 10분 동안 주장하고 나서야 그녀의 히스테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수락하실 겁니까? 골리앗의 결투 신청.”

“내가 미쳤어? 그 새끼랑 나랑 급이 같아? 엿이나 처먹으라 그래.”

“……그럼 다행이고요.”

“오, 쟤 좀 쓸 만하네. 마크해놔.”

결투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VVIP석.

캐서린은 오직 챔피언에게만 허락된 그 방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마크 완료. 그러고 보니 최근 랭크 매치의 수준이 올라간 것 같더군요.”

“어머, 희소식이네.”

미드 온라인의 결투장은 몇 가지 모드로 나뉘어져 있다.

점수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즐기는 노말 매치.

이기면 점수를 획득하고, 지면 점수가 떨어지는 랭크 매치.

이외에도 이벤트 매치나 듀오, 트리오 매치 등등 다양한 모드가 있지만, 일반 유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매치는 단연 개인전, 즉 랭크 매치였다.

“어이씨, 근데 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제발 아무나 좋으니까 도전자 좀 나왔으면 좋겠다.”

푸념을 내뱉는 캐서린은 랭크 매치의 챔피언이자, 결투장 포인트를 무려 3,000점이나 보유한 유일한 유저였다.

‘생각해보면 우리 미친년…… 아니, 마스터가 괴물은 맞지.’

그녀가 결투장에 처음 입문한지 게임 시간으로 52개월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캐서린은 단 한 번도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기지 않았다.

무패의 여제 캐서린.

그녀가 수많은 팬들을 보유한 가장 큰 이유였다.

“심심하시면 노말 매치라도 하시던가요.”

“거긴 트롤 아니면 허접들만 있잖아. 재미어어어어없어.”

“조금만 참을성 있게 기다려보세요. 혹시 알아요? 이번엔 도전자가 나오게 될지.”

“……나한테 도전하려면 결투장 포인트 2,800이 넘어야 되는데. 그런 녀석이 진짜 나오기는 할까?”

사실 이전에 2,800을 넘긴 유저들이 몇 명 있긴 했다.

물론 그들은 캐서린의 격렬한 환영 인사(라 쓰고, 박살이라 읽는다)와 함께 결투장 포인트가 크게 하락.

이슬처럼 사라졌다.

“흐응. 다음번에 도전자 나오면 그냥 한 번 져줄까? 지금 지면 포인트가 몇 백 점 정도는 떨어질 텐데.”

“농담이시죠? 절대 안 됩니다.”

항상 고분고분하던 리로드가 정색을 했다.

그야 당연했다.

길드 마스터가 결투장 챔피언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홍보 효과가 있었으니까.

‘마스터는 절대로 지면 안 돼. 필드에서라면 몰라도, 결투장 위에서는 절대 안 된다.’

말이 부마스터지, 사실 리로드는 그녀가 패배하지 않도록 서포트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실제로 그는 길드 내에서 퀸메이커라고 불린다.

랭크 매치를 돌아다니며 인물들의 신상 파악은 물론이고, 착용 중인 장비의 효과나 스킬들까지 알아내서 그녀의 승리 확률을 높여줬으니까.

“그럼 아쉽지만 어쩔 수 없고. 내가 눈여겨 볼만한 루키는 있어?”

“음, 잠시만요.”

리로드는 백과사전 정도 두께의 책을 들었다.

그곳에는 여태까지 수집한, 랭크 매치 참가자들에 대한 모든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긴장하셔야겠는데요. 챔피언 출신 유저들이 대거 복귀했어요. 랭크 매치에서 양학하고 다니네요.”

“흥. 그래봤자 내가 데뷔하기 전에 챔피언 행세하던 퇴물들. 전부 나한테 한 번씩 줘터진 애들뿐이잖아.”

“그야 그렇지만…… 알고계시죠? 결투장에서는 어느 정도 스탯 ‘보정’이 들어간다는 걸.”

“야, 내가 결투장 여신인데 그걸 모르겠냐? 너 오늘 좀 짜증나.”

“죄송합니다. 아무튼 필드에서 싸우면 마스터가 다 이길 수 있겠지만, 결투장에서는 아무리 이겼던 상대라고 해도 방심해선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흐흐. 나 방심 안 해. 제일 무서워하는 게 그 녀석이거든.”

“……역시 마스터이십니다.”

리로드는 다른 건 몰라도 결투에 대한 캐서린의 자세만큼은 존경했다.

그녀는 토끼를 사냥할 때조차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것이 상대방을 향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참된 무인이었다.

“익명 참가자들 파악은 어때?”

“아시다시피 익명 참가자들은 신상 파악이 어려워서요…… 그래도 이번엔 3명 정도밖에 없네요. 신경 쓰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생각보다 적네. 꼭 뭣도 안 달린 애들이 얼굴 가리고 이름 숨기더라고.”

“사실 그런 경향이 있긴 하죠. 특히 언노운 가면이나 따라 쓰는 애들은 전부 허접 아닙니까.”

“아, 그거 완전 동의! 꺄하하하학!”

두 사람이 하하호호 웃고 떠들던 시각.

칠흑의 놀 투구를 뒤집어쓴 인영 하나가 결투장 입구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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