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42화 (342/441)

# 342

힐통령 342화

105. 사천왕(2)

현재 결투장에는 랭크 포인트가 2,000점 대인 선수가 딱 네 명 있었다.

각자 수십만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이들로, 별명 또한 독특했다.

광란의 네스트.

정숙의 세이리.

정령술사 케인.

무색(無色)의 자칼.

사람들은 이들을 합쳐 결투장의 사천왕이라 불렀다.

그만큼 개개인이 대단한 업적이나 경기를 보여준 이들이었으니까.

때문에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아니, 그 대단한 사천왕들은 왜 캐서린한테 도전하지 않는거야?”

“그러게. 사천왕들 경기하는 거 보면 진짜 강한데…….”

“쫄아서 그런거 아니야? 자칼 빼고는 전부 캐서린한테 깨졌잖아.”

왜 사천왕들이 그녀에게 도전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이러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결투장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리스크가 너무 커서 그래.”

흠 잡을 데 없는 정답이었다.

사실 결투장 역사상 2,000점을 찍어본 선수들은 꽤 많았다.

모두 합치면 수백 명은 가뿐히 넘어갈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2,000점의 세계는 대진운이 좋다는 이유만으로는 도달할 수도 없는 곳이다.

한마디로 그 수백 명의 선수들 모두 실력만큼은 확실했다는 소리.

헌데 그렇게 한가락 하는 선수들조차 점수를 유지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곳이 마의 2,000점 구간이다.

그 이유는 허무할 만큼 단순했다.

“너, 왜 2,000점 선수의 경기 일정이 잡힐 때마다 난리가 나는지 알아?”

“음. 그야 걔네들 경기가 재미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그 녀석들은 치루는 경기 하나하나가 전부 데스매치라는 점이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2,000점이든, 2,499점이든. 걔네는 한 번 지면 랭크 포인트가 1,000점 후반까지 쭉 떨어져. 경기 하나하나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롭다고.”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해선 안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2,000이라는 점수를 짊어진 선수들의 숙명이었다.

“그게 최근 몇 달 동안 캐서린이 경기를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지금 캐서린이 3,000 포인트잖아. 그녀에게 도전하거나, 지명을 받기 위해선 최소 2,500 포인트를 모아야돼.”

“그런데 한 번만 져도 1,000점 후반 대까지 떨어지는 절망적인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2,500을 찍냐고. 그게 문제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무패행진. 그게 유일한 답이지.”

무패의 여제, 그녀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방법뿐이다.

물론 말이 쉽다. 아니, 말로 해도 어려울 정도다.

어떤 종목이라고 해도,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계속 승리한다는건 힘들다.

하물며 찰나의 판단이나 실수 하나로 승패가 갈리는 결투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빛날 수 밖에 없었다.

“간만에 제대로 된 물건이 들어왔어.”

“이 녀석이라면 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결투장 측에서도 제대로 밀어주던데? 걔네가 여태 봐온 선수가 몇 십만 명인데, 싹이 보이니까 저렇게 미친 듯이 홍보하는 거 아니겠어?”

베니쉬, 여태까지 무패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찬란한 존재가 말이다.

“벌써 몇 연승이더라?”

“15연승.”

“크흐, 500점으로 데뷔하던 뉴비 시절부터 지켜봤는데 언제 2,000점을 코앞에 두고 있다냐. 진짜 자랑스럽네.”

“누가 들으면 네가 몇 년 동안 키운 줄 알겠다? 걔 데뷔한지 고작 보름 됐거든?”

“크흠. 아무튼 어제 경기로 1,993점이 되었으니까…… 아니 잠깐만.”

베니쉬의 점수를 확인한 몇몇 유저들은 불안함을 느꼈다.

“이제 사천왕 중 한 명한테 지명받을 정도로 포인트가 높아졌는데?”

“에이…… 그래도 사천왕이라는 자존심이 있지. 설마 까마득한 후배를 지명하겠어?”

“광란의 네스트. 그놈한테 자존심이란게 있을 것 같아? 걘 재미있는 상대랑 싸울 수만 있으면 체면이나 자존심 같은 건 신경도 안 쓸걸.”

“……듣고보니 그러네. 그 녀석이라면 진짜 가능할지도.”

관중들은 두려움에 떨며 아침마다 발표되는 지명 소식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떠, 떴다! 진짜야! 진짜 베니쉬 지명 있다고!”

“뭐!? 진짜?!”

“내 이럴 줄 알았다! 네스트 그 놈이지? 싸움에 미친놈!”

흥분과 안타까움을 토해낸 관중들은 소식을 물고 온 사내를 쳐다봤다.

“어…… 어…… 상대가 네스트는 맞는데…… 그런데 그게…….”

“뭔데 그래? 왜 그렇게 뜸을 들여?”

“답답해 미치겠네. 빨리 말 안 해?”

이어지는 재촉에, 사내는 자신이 알고 있던 소식을 널리 알렸다.

“이 경기…… 베니쉬가 먼저 지명한 거야.”

베니쉬,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 이상의 또라이라는 사실을.

***

“뭐?”

근육질의 거한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지명입니다.”

이에 거한은 굵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나 말인가? 나 네스트인데? 광란의 네스트.”

질문에 답한 건 그를 전속으로 관리하는 결투장 관리인이었다.

“예. 베니쉬 님께서 네스트 님을 지명하셨습니다. 현재 베니쉬 님의 랭크 포인트는 1,993점. 네스트 님은 2,484점이므로 지명 범위에 포함되십니다.”

“……흐.”

네스트가 활짝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재미있네. 너무 신선해서 순간 당황했어.”

광란의 네스트.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지명해본 적은 숱하게 많았지만, 누군가에게 지명을 당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야 선수들이 그를 기피하고 두려워했으니까.

그의 난폭하고 잔인한 손속은 확실히 관람할 때는 재미있다.

하지만 그의 상대가 되어 앞에 서라고 하면, 모두가 안색이 하얗게 질려 기권을 하기 일쑤였다.

“재미있네. 그 녀석이 요즘 슈퍼 루키라고 불린다는 녀석이지?”

“예.”

“하. 안 그래도 2,000점까지 올라오면 한 번 상대해 볼까 생각하긴 했는데…… 기특하게도 먼저 싸움을 걸어주네.”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 네스트는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싸우고 싶었다.

그는 천상 싸움꾼으로, 결투장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하고 항상 생각해 왔었다.

실제로 결투장이 없었다면, 그는 흉악한 PK범이 되어 도망자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 재미있겠어. 그 녀석을 이기면 내 포인트가 몇이 되지?”

“2,533점이 되십니다.”

“잘됐군. 하룻강아지를 꺾고, 여제와 11번째 데이트를 하러 가야겠어.”

이미 캐서린에게 10번이나 패배했던 네스트가 목을 돌렸다.

“경기는 언제지?”

“내일 정오입니다.”

“하루라…… 몸 풀기엔 딱이군. 그만 가봐.”

손을 휘저어 관리인을 쫓아낸 네스트는 창밖을 바라봤다.

“베니쉬라. 생각보다 훨씬 남자다운 놈이었군. 내일 재미있겠어.”

네스트는 그가 조금 마음에 들었다.

***

“팝콘 팔아요!”

“치킨 팝니다!”

“저는 팝콘 치킨 팝니다!”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경기장의 좌석 곳곳을 돌아다니며 호객 행위를 했다.

실시간으로 거래되는 맛있는 간식들.

“이거 맛있네.”

“핫 뜨거, 흐어, 흐으어어어. 입천장 데이겠다.”

“여기 맥주도 한 캔…… 아니, 두 캔 주세요!”

만석을 채운 것도 모자라 입석까지 꽉 들어찬 관중석은 시장 바닥처럼 시끄러웠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선 대화가 나오게 마련.

관중석 곳곳에선 수많은 대화가 나왔지만, 주제는 대부분 같았다.

“오늘 대체 누가 이길까?”

“음…… 와, 솔직히 모르겠다. 이건 피타고라스가 와도 답이 없다고 할 걸.”

“뭘 그렇게 고민해? 배당률만 봐도 답 나오잖아? 베니쉬가 1.5배, 네스트는 1.2배야. 더 많은 사람들이 네스트가 이길 거라는 데 걸었다고.”

“하, 그럼 역배를 노리고 베니쉬한테 걸어볼까?”

“난 베니쉬한테 걸었어. 원래 결투장에선 이 기세라는 게 중요하거든. 지금 베니쉬는 15연승이라는 기세를 탔어. 이건 아무리 사천왕이라도 못 막아. 지금 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하다가는 양동이 채 손이 타버릴걸?”

“와우, 당신의 풍부한 상상력에 박수를! 생각해 봐. 1,000점 대에서 아무리 날고 기던 애들도 한 달을 채 못 버티는 게 2,000점들의 무대야. 사천왕은 그런 살벌한 곳에서 게임 시간으로 몇 년 동안 죽치고 있는 고인물이라고.”

“그래서 네스트 승률이 100%냐? 그건 아니잖아.”

“아니, 여기서 승률이 왜 나와?”

“베니쉬는 여태까지 승률이 100%였으니까.”

“그거야 사천왕 같은 진짜 고수들을 만나기 전의 이야기고…….”

당연히 쉽게 결론 날 리 없는 주제였다.

부먹, 찍먹에 대한 토론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처럼.

관중들의 최대 관심사는 당연히 누가 이기느냐였다.

물론 최근 들어 베니쉬의 이름값이 빵 떴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스트의 손을 들어줬다.

비록 캐서린의 그늘에 가려졌다고는 하지만, 그도 엄청난 괴물이었으니까.

여기에는 남을 모방하는 베니쉬의 경기는 물론 재미있긴 하지만, 네스트의 잔혹한 손속이나 시원한 손맛처럼 강렬한 임팩트를 심어주기에는 부족했다는 점도 크게 기인했다.

“선수, 입장!”

하늘 위로 태양이 높게 뜬 정오의 시각.

사면이 바다로 둘러진 해상 결투장의 무대 위로 선수가 걸어 나왔다.

“광란의 네스트! 랭크 포인트는 2,484점! 사천왕이라 불리는 선수 중 한 명으로, 도합 60개월 이상 2,000점을 유지한 괴물 중의 괴물! 특기는 주먹으로 상대를 터트려 버리기~!”

“와아아아아아!”

“가라, 네스트!”

“네가 이런 빅 매치를 뛰는 걸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따라쟁이 녀석 따윈 짓밟아버려! 결국 강력한 힘만이 제일이다!”

당연히 오래 활동한 만큼, 팬층 또한 두꺼웠다.

오만한 표정을 지은 네스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이에 화답했다.

“이에 맞서는 선수는 베니쉬! 랭크 포인트 1,993점! 아, 그런데 이 선수는 아직까지도 닉네임이 없어요! 이제 2천 점이 코앞인데 말이에요! 특이사항은 무려 15연승, 무패행진! 게다가 광란의 네스트를 상대로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지명을 하는 패기까지이! 아, 재밌어요. 오늘 이 경기 분명히 재미있습니다. 모든 관중들은 시선과 채널 고정!”

멘트를 마친 사회자가 카메라 방향을 가리키며 한쪽 눈을 찡그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청자들에게 날린 윙크였다.

결투장에서 치러지는 네임드 선수들의 경기는 안방의 브라운관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서도 시청이 가능했으니까.

사회자가 경기장을 내려가고, 두 사람 앞에 홀로그램 숫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10……9……8…….

숫자를 가만히 쳐다보던 네스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반갑다.”

“그쪽도.”

“혹시 마지막으로 남기거나, 묻고 싶은 말은 없나? 경기가 시작되면 들어줄 틈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명백한 도발이었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흔드는 것 또한 실력이다.

하지만 카이는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

이를 가만히 쳐다보던 네스트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뭐하는 거지?”

“응? 아아, 신경 쓸 거 없어. 내려간 스탯에 적응하는 중이니까.”

“뭐?”

네스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레벨은 324였다.

게다가 레벨이 오를 때마다 주어지는 다섯 개의 스탯 포인트 중 네 개를 힘에다가 투자해 왔다.

장비와 스페셜 칭호에 달린 힘까지 합친 힘 스탯은 무려 1,400가량!

“너,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 음?!”

자신의 상태창을 띄운 네스트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결투장에는 스탯 보정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고레벨 유저의 스탯을 내려서 저레벨 유저의 수준에 맞춰주는 것이다.

저레벨 스탯의 유저를 높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상승시켜 줘봤자 제대로 활용을 못 할 테니까.

한 마디로 결투장은 고레벨 유저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다.

“…….”

네스트의 부릅뜬 두 눈은 힘 스탯을 향해 있었다.

힘 : 1,389

그의 힘 스탯은 내려가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저 녀석의 힘 스탯이…… 나보다 높다고?’

고개를 들어 베니쉬를 바라보는 네스트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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