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
힐통령 343화
105. 사천왕(3)
네스트는 베니쉬의 몸을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어설프다. 확실해. 녀석의 자세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물론 아주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힘 스탯이 높다면, 레벨 또한 높다는 소리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장비 수준은 형편없는 상태였으니까.
‘정리하자면 자세가 아주 엉망인 것은 아니지만, 나보다 레벨이 높은 녀석의 자세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피식, 잠시 고민을 하던 네스트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하긴.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걸 고민했다고. 직접 겪어보면 알게 되겠지.”
스탯 창에 오류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실력을 숨기고 있는지.
“관중들도 기다리는 것 같은데, 슬슬 시작하지.”
네스트는 말과 함께 머리 위에 투구를 덮었다.
철그럭!
투구를 끝으로 그의 전신은 암적색으로 반짝이는 방어구가 철통같이 보호했다.
신장만 192㎝의 거구인지라, 사람이 아닌 거대 로봇처럼 보일 정도.
‘방어력이 높아 보여.’
자신의 조약한 방어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단단해 보인다.
카이의 눈으로 봤을 때는 최소 유니크 등급의 세트로 추정되었다.
“안 오겠다면 먼저 가지.”
말을 마친 네스트는 두 주먹을 말아쥔 채, 턱 밑까지 끌어올렸다.
그 상태에서 상체가 눕힌 8자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자세를 단숨에 알아챈 카이는 질문했다.
“복싱인가?”
“맞다. 하지만 네가 알던 복싱과는 조금 다를 거다.”
텅텅!
네스트가 자신의 가슴 방어구를 두드렸다.
“미드 온라인은 이게 참 좋거든. 아무리 무거운 장비를 착용하고 있어도 힘 스탯만 충분히 찍어준다면…….”
파앗!
네스트의 거구는 순식간에 카이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그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있는 카이를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할 빠르기와 파괴력을 보일 수 있으니까.”
다음 순간 카이의 시야로 솥뚜껑만 한 주먹이 보였다.
네스트의 두 주먹에 장비된 상어 머리 모형의 건틀렛은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며 쇄도했다.
콰아아아아앙!
‘……빠르다.’
덩치는 산만한데, 그의 말처럼 힘 스탯이 높은 탓인지 그 속도는 매우 재빨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찌르르.
소드 패링을 이용해 공격을 완벽히 방어했음에도 불구하고 팔 전체가 저려왔다.
‘복싱이라. 확실히 미드 온라인에선 처음 겪어보는 형태의 기술이다.’
복싱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발전해 온 인기 격투기 중 하나다.
특히 주먹을 사용하는 격투기에 한해선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다.
현실에서 격투기를 수련하는 자들 중에는, 게임에서 자신의 무술로 몬스터를 때려잡고 싶어하는 이들 또한 많다.
그런 자들을 위한 직업으로 ‘무도가’라는 클래스가 있다.
‘액티브 스킬이 부족한 대신, 패시브 스킬을 통한 공격력과 속도, 체력 상승이 발군인 직업이지.’
실제로 타이탄 길드의 골리앗도 무도가 클래스였다.
그는 현실에서 종합 격투기를 배웠던 선수 출신이기도 했고.
“크흐흐, 괜찮을까? 그렇게 정신을 다른 데 팔고 있어도!”
네스트의 주먹이 다시 한 번 날아들었다.
이번엔 오른쪽 사각에서 휘둘러진 날카로운 훅(Hook)이었다.
콰아아앙!
“음.”
소드 패링을 이용해 충격을 최대한 분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카이의 몸은 뒤로 쭉 밀려났다.
그러자 네스트는 카이가 밀려난 거리만큼 따라붙으며 다음 주먹을 내질렀다.
‘막았는데도 이 정도 데미지라면…… 패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그러한 판단을 내린 순간, 카이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도망만 다닐 셈인가? 슈퍼 루키치고는 실망스럽구나!”
네스트의 난폭한 주먹이 다시 한 번 카이의 머리를 향했다.
물론 이번에도 카이는 여유롭게 검을 휘둘러 이를 쳐냈다.
콰아아아앙!
우뚝. 동시에 몸을 멈춘 네스트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매를 좁히며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봤다.
‘뭐지? 손끝에 걸리는 느낌이 다르다.’
자신은 분명 아까와 똑같은 공격을 했는데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다.
그 말은, 상대방이 뭔가 다른 행동을 취했다는 소리였다.
콰아앙! 콰앙!
곧바로 두 번 더 공격을 쏟아낸 네스트는 베니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공격을 흘려서 충격을 분산시키는군. 하로로라는 녀석과의 경기에서 배운 기술인가?”
“정확해.”
상대의 특징과 상황에 따른 전투법 변경.
이것이 카이가 결투장에서 수련을 하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주시해야 할 건…… 녀석의 발인가.’
카이는 눈앞에서 움직이는 현란한 주먹에 시선을 뺏기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하며 녀석의 하체를 주시했다.
주먹이 닿지 않을 거리조차 닿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복싱 선수의 풋워크였으니까.
휙, 휙!
좌우.
네스트는 잔상까지 남기며 재빠르게 카이에게 접근했다.
‘왼쪽 잽.’
쾅!
‘이번에는 왼쪽 어퍼.’
콰아앙!
‘오른쪽 스트레이트다!’
콰아아아아앙!
네스트의 주먹이 카이의 검을 두드릴 때마다 폭탄 터지는 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카이의 신형은 연신 뒤로 물러났지만, 그의 표정은 점점 더 밝아졌다.
마치 이 순간이 즐거워 죽겠다는 것처럼.
“이 새끼가 웃어? 너 왜 웃냐.”
“재밌으니까.”
재미인가…….
카이의 대답을 들은 네스트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 주먹을 이렇게나 잘 막아내는 녀석이 얼마만인지.’
자신의 공격을 이렇게까지 버틴 녀석은 캐서린과 사천왕을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재미라. 하지만 나로선 일방적으로 패는 싸움이 별 재미가 없는데?”
“그럼 기다려. 곧 재미있게 만들어 줄 테니까.”
“큭! 허세하고는.”
하지만 카이의 그 말은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슬슬 알 것 같아.’
현재 카이가 네스트에게서 파악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풋워크였고, 나머지 하나는 함부로 궤적을 예측하기 힘든 재빠른 공격들이었다.
‘일단 누적된 피해는 없고.’
관중들의 눈에는 카이가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카이의 흘리기 기술은 네스트의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중이었으니까.
덕분에 현재까지 이렇다 할 정도의 피해는 입지 않은 상태.
‘무도가 클래스. 골리앗도 상대해본 적이 있지만 장단점이 참 뚜렷한 직업이지.’
현실에서 연마하던 격투기를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큰 메리트다.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검이나 활을 드는 것보단 익숙할 테니까.
당연히 숙련도를 올리는 것 또한 쉽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그대로 단점이 된다.
‘너무 익숙해.’
복싱, 종합 격투기, 무에타이 등등.
사람들이 직접 배운 적은 없을지 몰라도, 각종 영화나 대중 매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게다가 한계 또한 뚜렷하다.
‘무도가의 컨셉 자체가 극한의 수련을 요구하는 클래스.’
다른 직업들처럼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액티브 스킬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결투가 길어지면서 상대가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게 되는 순간.
그래, 예를 들면 바로 지금 같은 순간.
‘싸움의 흐름이 바뀌게 되지.’
샤아악!
카이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네스트의 날카로운 주먹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음?!”
이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네스트였다.
베니쉬가 소드 패링으로 공격을 흘릴 것을 예상하고, 후속타까지 준비해 둔 상황이었으니까.
카이는 귓볼을 스쳐지나가는 주먹을 무시한 채, 그대로 네스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허를 찔린 네스트가 황급히 백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벌렸지만.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는 법. 넌 너무 많이 보여줬어.”
네스트의 풋워크가 카이의 다리를 통해 재현되었다.
복싱의 풋워크는 단련된 몸과 어느 정도의 머리만 있으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그게 이유였다.
“크으윽!”
네스트가 카이를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카이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이유.
‘파고들었다.’
카이는 자신이 네스트의 품속으로 충분히 파고들었다고 판단한 순간, 검을 들어 올렸다.
말 그대로 정말 들어올렸다.
터엉!
네스트의 가드를 여유롭게 돌파한 검 손잡이가 그의 턱을 정확히 올려친 것이다.
어퍼컷.
네스트가 정확히 26번이나 사용했던 기술이 검을 통해 펼쳐진 것이었다.
“으음……!”
어지러움에 몸이 흐트러진 네스트였지만 과연 사천왕.
그는 그 와중에도 두 주먹을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휘둘렀다.
물론, 닿을 리 없었다.
‘맨 정신으로 휘두를 때도 맞지 않았던 공격이니까.’
카이는 천천히 걸어가며 네스트의 공격을 때로는 흘리고, 때로는 피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크아아악!”
경기장의 구석, 코너까지 몰린 네스트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무언가를 각오한 듯 네스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자세를 낮추더니 카이의 허리를 두 팔로 꽉 조였다.
이를 본 관중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태, 태클!?”
“깔끔하다!”
“네스트가 복싱 말고 다른 격투기 기술까지 사용한다고?”
그는 여태까지 모든 경기를 복싱 기술만 사용해서 치러왔다.
심지어 캐서린에게 10번이나 패배하는 동안에도.
“이번에 너에게 이기면 무패의 여제에게 사용하려고 배워둔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지.”
까드드드득!
네스트의 두 팔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카이의 몸을 조르기 시작했다.
카이는 마치 아나콘다에게 칭칭 감긴 사냥감마냥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관중들이 탄식을 뱉어냈다.
“네스트의 거력에 한 번 잡히면 빠져나갈 수 없다고.”
“젠장, 베니쉬 녀석 잘 가다가 한 번에 훅 가는군.”
“사천왕은 역시 사천왕인가…….”
“…….”
그 순간에도 카이는 자신의 허리를 조르는 네스트를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
힘, 지능, 민첩, 체력, 신성.
미드 온라인에 존재하는 다섯 개의 주 스탯은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저들은 범용성이 가장 높은 스탯으로 힘을 꼽는다.
힘 스탯은 신체의 모든 기술을 전반적으로 상승시켜주기 때문이다.
물리 공격력, 속도, 인벤토리 소지 무게 상승까지.
비단 근접 클래스에게만 필요한 스탯은 확실히 아니다.
때문에 유저들은 항상 궁금해했다.
‘힘 스탯만 비약적으로 높인다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네스트 또한 그것이 궁금했고, 그는 증명을 위해 힘 스탯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그 때부터 네스트는 공공연하게 이런 말을 떠들고 다녔다.
‘나와 정면 승부를 하면 그 누구도 뼈를 추릴 수 없다. 설령 무패의 여제라 해도 말이지!’
그가 가장 자신 있는 것.
바로 정면에서 이루어지는 힘 겨루기였다.
그 어떤 기술이 개입할 여지도 없이, 힘 스탯으로 찍어누르면 되었으니까.
상대가 누가 되었든 간에 3초 안에 그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오 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
“…….”
베니쉬와 네스트의 경기를 보던 관중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소란스러웠던 만석의 관중석이 마치 도서관처럼 조용해졌다.
우드드득.
오직 힘으로만 이루어진 원초적인 폭력에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크으윽…….”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들이 진짜 입을 다문 이유는, 눈앞의 광경을 두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였으니까.
“경기 시작 전에 스스로 그러지 않았나?”
우드득.
“네가 힘 스탯을 충분히 찍었기 때문에.”
우드드득!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졌다고. 안 그래?”
“커어억! 커억!”
카이는 자신의 허리를 조이고 있던 네스트의 목을 그대로 붙잡더니, 천천히 들어올렸다.
자신보다 몸집이 족히 세 배는 큰 상대를 들어 올린 카이의 목소리는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평온했다.
“크르륵…….”
카이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네스트를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좋은 경기였다.”
툭.
동시에 네스트의 신형이 경기장 밖으로 떨어졌다.
경기가 끝났지만 관중석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