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
힐통령 345화
106. 무색의 자칼(1)
경기장의 분위기는 사뭇 무거웠다.
그 위에 서있는 두 명의 남자 때문이었다.
“대체 이유가 뭐지?”
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더군. 관리인들에게 딱히 제안을 받은 것 같지도 않던데.”
“맞아. 널 지명한건 내 독단이었어.”
“내가 그리 만만해 보였나?”
케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를 마주한 자칼은 자신의 머리를 한 번 가볍게 쓸어넘겼다.
“글쎄. 난 단지 확인하고 싶은게 있었을 뿐이야.”
“확인하고 싶은 것? 그게 무슨 뜻이지?”
“아마 며칠 안 되서 알게 될 거야.”
회색 가면 때문에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케인은 자칼이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날 지명한 것만큼은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그래주면 고맙고.”
정령술사라…… 재미있으려나. 자칼이 낮게 중얼거리며 검을 뽑았다.
동시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령술사 케인은 두 가지 정령과 계약을 했다.
바로 불꽃과 대지의 정령이었다.
“오오오!”
“저것이 정령술!”
“이야, 저 기술들이 전부 쿨타임이 없다고? 위력은 웬만한 마법사 주문보다 좋아 보이는데? 나도 정령사나 할까?”
“아서라, 아서. 정령술사는 돈 먹는 하마야. 정령을 부를 수 있는 정령석 하나에 수십 골드씩 한다고. 심지어 정령과 계약을 100% 계약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키우려면 좋은 정령이 나올 때까지 정령석을 계속 질러야돼.”
“미친,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직업이었나?”
“어. 그리고 계약을 하고 나서도 정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 즉시 계약 파기.”
“끄응, 히스테릭한 상사가 옆자리로 배정되는 기분이겠군.”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말이 있다.
경기를 지켜보는 마법사들의 심정이 그러했다.
그만큼 정령술사의 마법은 강력하고, 화려했으며, 쿨타임이 없다는 장점이 돋보였으니까.
우르르르릉! 화르륵!
케인의 옆에 딱 붙어있는 정령들은 경기장 바닥을 뒤틀고, 불기둥을 세웠다.
하나같이 위협적인 공격들.
이는 사천왕전을 지켜보는 사람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사천왕이라고 불리는 거구나.’
케인의 경기는 모두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줄 정도로 강렬했고, 화려했다.
다만 그를 상대하는 자칼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스르릉, 서걱!
그는 다가오는 불기둥을 절단했고, 대지가 뒤틀려도 몸의 균형을 잃지 않았다.
그야말로 놀라운 운동 신경.
자칼 또한 사천왕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잘 싸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임팩트만 놓고보면 확실히 케인에 비해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어…… 뭔가 자칼은 여유롭게 공격을 다 파훼하고 있긴 한데, 보는 맛은 없네.”
“그가 색이 없다고 불리는 이유지. 정석 of 정석.”
“내가 자칼 경기는 계속 챙겨봤는데, 확실히 큰 거 한 방이 터지질 않아. 기본기는 진짜 탄탄한 선수라서 마음만 먹으면 터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항상 뭔가 터트리기 전에 경기가 끝나더라고.”
“뭐야, 그럼 자칼이 본 실력을 드러낸 적 없다고?”
“그럴 리가. 프로필 보니 12패라고 쓰여 있는데, 이때는 전력을 다했겠지.”
그 질문에 프로 관중러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 자칼의 패배는 모두 기권패야. 경기에 나오질 않았거든. 자칼은 경기 일정이 잡혀도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잠깐만. 그럼 경기에 올라갔을 때의 전적은…….”
“진 적 없지. 기권패를 12번이나 해서 무패라는 닉네임을 받지는 못했지만.”
관중들이 놀라움에 빠지는 순간, 자칼이 바닥에서 튀어나온 돌기둥 하나를 밟고 점프했다.
이어서 그의 신형은 케인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으음……!”
정령술사나 마법사나 플레이 스타일 자체는 매한가지다.
원거리 딜러의 특성상 몸이 약하기 때문에 접근전은 최대한 피해야한다.
때문에 케인은 두 정령을 향해 다급히 명령했다.
“못 오게 막아!”
대지와 불꽃.
두 정령이 그의 명령에 답했다.
바닥에서 뾰족한 돌창이 튀어나와 날아갔고, 허공에서도 거대한 화염의 창이 쏘아졌다.
‘이걸로 잠깐의 시간은 벌었…….’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케인이 몸을 굳혔다.
자칼이 끼고있는 회색의 가면.
그 틈새로 보이는 눈동자는 유례 없이 반짝이는 중이었으니까.
“흐읍!”
화르르륵!
자칼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화염의 창 한 자루가 덧없이 흩어졌다.
날아드는 주문을 검으로 쳐내는 것은 확실히 놀랍지만,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하지만 자칼이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돌창들을 징검다리처럼 밟으며 빠르게 다가오는 순간, 케인은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돼!”
이에 관중들도 동의했다.
“미친……!”
“저게 말이 돼?”
“이런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언노운의 영상 중 하나인 ‘달빛과 함께 춤을’. 거기 나오는 한 장면이 생각나는데?”
달빛과 함께 춤을.
과거 아오사 레이드 영상을 업로드할 때 붙였던 타이틀이었다.
‘확실히 거기에 저런 장면이 나오긴 하지.’
경기를 지켜보던 카이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상태였다.
자칼의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보고 저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것이었다.
‘저게…… 사람이 선보일 수 있는 움직임이라고?’
사람들은 언노운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말도 안 되는 기술들을 선보이며 불가능해보이는 레이드를 성공시켜왔으니까.
하지만 카이는 스스로의 재능이 평범한 수준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내 영상들은 대부분 눈속임이나 다름없어.’
오크 토벌전 때는 높은 마법 저항력과 페르메의 독이 없었다면 그런 영상이 나오지 못했다.
그것은 유저들이 가장 좋아하는 ‘달빛과 함께 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야나의 특제 물약.’
초 집중력 향상 포션, 하이어 웨이.
짧은 시간 동안 집중력을 대폭 끌어올려주는 물약으로, 카이는 이것을 복용하고 나서야 아오사를 잡을 수 있었다.
‘그 때 물약의 부작용으로 며칠 동안 모든 스탯이 바닥까지 떨어졌었지.’
만약 누군가 다시 한 번 그때의 기술을 보여달라고 요청해도 다시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운과 실력, 그리고 타이밍.
모든 것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에 나올 수 있었던 플레이였으니까.
스스로도 그런 순간은 일생에 한 번뿐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것과 비슷한 움직임을 저렇게 쉽게 해낸다고? 혹시 도핑…….’
의심을 하던 카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결투장에선 도핑이 불가능하다.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걸려있는 모든 버프 상태는 해제되니까.
‘그렇다면 답은 두 가지.’
자칼이 장비한 아이템 중에 집중력을 끌어올려주는 효과가 있던가.
“……아니면 진짜 재능충이던가.”
꽉 쥐어져 있던 주먹을 풀자 그곳은 땀으로 축축해진 상태였다.
“내가 말했잖아.”
옆에있던 세이리가 입을 열었다.
“자칼이 이긴다고.”
***
승리는 모두의 예상대로 자칼에게 돌아갔다.
자칼이 말도 안 되는 신위를 보이며 케인에게 접근한 순간, 승패는 결정된 것이었으니까.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사천왕! 무색의 자칼! 그는 왜 자신이 사천왕인지! 자신이 치룬 경기의 승률이 왜 100%인지! 이렇게 다시 한 번 증명해냅니다! 무섭도록 강력합니다! 누가 자칼을 막을 수 있겠어요!”
“자칼! 자칼!”
“자칼! 자칼!”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을 쳐다보던 자칼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관중석의 위쪽.
2,000점대 선수들만이 입장할 수 있는 최상급 관중석이었다.
“……저 녀석. 지금 우릴 쳐다보는건가?”
네스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 순간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카이였다.
‘잠깐이지만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는데.’
그러나 이내 고개가 저어졌다.
최상급 관중석은 안쪽에서만 밖을 쳐다볼 수 있는 반사 유리다.
밖에서는 아무리 쳐다봐도 거울처럼 보일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놀라운 녀석이군. 약골인줄 알았는데.”
네스트가 목을 돌리며 전의를 드러냈다.
“언젠가 녀석하고도 한 번 붙어야겠어. 크흐흐.”
그런 네스트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세이리.
“……그럼 나는 이만.”
생각이 많아진 카이는 먼저 관중석을 떠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앞에는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칼이 왜 여기에?’
심지어 경기가 끝난 건 몇 분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니?
카이가 문 쪽으로 다가가자, 문에 등을 기대고 있던 그가 자세를 바로하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인사하는 건 처음이네요. 자칼이라고 합니다.”
그가 내민 악수를 빤히 쳐다보던 카이는 결국 그 손을 마주잡으며 물었다.
“베니쉬입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숙소로 돌아가다가 지쳐서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제 방문에 기대서요?”
“아, 여기가 베니쉬 님의 방이었군요?”
자칼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살짝 찜찜한 기분을 느낀 카이가 오늘의 경기를 칭찬했다.
“경기 잘 봤습니다. 대단하시던데요.”
“진심으로요?”
잠시 멈칫한 카이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진심입니다만.”
“아, 그렇군요. 그럼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자칼의 목소리는 정말 기뻐보였다.
“그럼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씻으러 가봐야겠군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이 녀석 대체 왜 온 거야?’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그를 스쳐 지나가던 자칼이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아, 그러고 보니 투구가 굉장히 멋있으십니다. 입구에서 파는 언노운의 투구죠?”
“네.”
“멋있어보여서 저도 하나 사고 싶은데, 혹시 얼마에 사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바가지를 뒤집어쓰면 안 되니까요. 하하.”
“…….”
카이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 투구를 결투장 입구에서 산 것이 아니었으니까.
잠시 그를 쳐다보던 카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생각보다 저렴했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그렇습니까?”
“예. 그럼 저도 이만 쉬어야겠습니다.”
카이는 카드 키로 자신의 숙소 문을 열고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띠리리.
문이 닫히는 것을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던 자칼이 재미있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입구의 투구와 마스크는 모두 무료 대여인데…… 역시 재미있네.”
잠시 후,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
카이는 개인 숙소에 붙어있는 호화스러운 목욕탕에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있자 스트레스가 풀리며 온몸이 노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의 편안함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숙제 끝나셨나 보다.”
하루 한 번.
저녁 시간마다 헬릭과 칼 라샤는 폰으로 숙제를 다 했다는 보고를 보내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꾸준히 보내오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두 분 다 배움에 참 열정적이라니까.”
아니나다를까, 폰을 꺼내자 그녀들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헬릭 : 숙제 끝났느니라. 사탕 먹어두대?]
[카이 : 참 잘하셨어요. 드셔도 돼요.]
[헬릭 : 두 개?]
[카이 : 노노, 하나.]
[헬릭 : (。•́︿•̀。)]
[라샤 :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하나만 먹는지 잘 감시할게요.]
[카이 :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라샤 님도 다 끝내셨어요?]
[라샤 : 제가 10분 더 빨리 끝냈어요.]
[카이 : 라샤 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매 저녁마다 이어졌다.
촤아아악.
물 속에 머리를 담근 카이는 자칼의 경기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왠지 조만간 붙게 될 것 같단 말이야.’
카이는 그때까지만 알지 못했다.
다음 날 배틀 뉴스 1면에 자신이 대문짝만 하게 실리게 될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