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
힐통령 247화
107. 값진 패배(1)
자칼은 두 자루의 도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유저였다.
하지만 그가 두 번째 도를 뽑은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태까지 그가 상대했던 적들은 한 자루의 도조차 감당해 내지 못했으니까.
‘근데 왜 나만 특별 취급이야.’
때문에 카이는 정면에서 날아드는 두 자루의 도를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하압!”
자칼은 지금 최선을 다해 자신을 죽일 생각이라는 것을.
당연히 이를 지켜보던 관중들도 크게 놀랐다.
“오오오!”
“자칼이 두 번째 도를 시작부터 뽑았다!
“정령술사 케인을 상대할 때도 뽑지 않았는데…… 어째서?”
“설마 베니쉬를 케인보다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건가?”
“아니, 물론 베니쉬의 승률이 좋긴 하지만, 케인처럼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준 적은 없었…….”
“어?”
“어……? 어어!”
그들이 놀란 포인트는 크게 둘.
하나는 자칼이 두 자루의 도를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진심인 상대를 눈앞에 두고 빼는 건, 역시 예의가 아니겠죠.”
베니쉬의 몸에서 여태 본 적 없던 압도적인 기세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파악!
다음 순간, 베니쉬는 네스트에게 훔친 풋워크로 날아오는 도 한 자루를 가볍게 피하고, 하로로의 흘리기로 두 번째 도도 흘려냈다.
두 동작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계한 카이의 두 눈에 공간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는 자칼의 텅 빈 상체였다.
카이는 주저없이 자신의 어깨를 그곳에 박아넣었다.
“이런, 안 되지요.”
허나 자칼의 신형은 마치 유령처럼 잔상을 남기며 뒤로 스르르 물러나며 이를 피했다.
도저히 인간의 움직임이라고는 볼 수 없는 그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레어…… 아니, 유니크인가요?”
“하하, 역시 눈썰미가 대단하시군요. 맞습니다. 유령의 발걸음이라는 스킬이지요. 구하는데 애를 좀 먹었습니다.”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건 몰랐네요.”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요.”
대답과 동시에 자칼이 두 자루 도를 원형으로 천천히 돌렸다.
빙글빙글.
그는 도를 돌리면서 천천히 카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짐승이 사냥감을 덮치기 전 대상을 탐색하는 것처럼.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 3차 직업까지 마쳤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강하다고해도, 여태까지 만나보았던 적들과는 크게 다를 겁니다.”
“그렇습니까.”
1차 전직은 레벨 10.
2차 전직은 레벨 200.
3차 전직 퀘스트를 받는 레벨은 400이다.
‘하지만 퀘스트의 난이도가 높은 탓에 3차 전직을 완료하면 보통 410레벨 정도가 되지.’
랭킹 표를 참고하면 현재까지 레벨 400이상을 찍은 유저는 고작 91명.
그 중에서 절반 이상이 전직 퀘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자칼은 91명 중 하나. 저 가면 밑에는 내가 아는 얼굴이 들어 있을 수도 있겠어.’
생각과 동시에 카이의 몸이 순식간에 회전했다.
휘리릭!
충분한 회전력을 머금은 그의 검이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자칼의 관자놀이로 향했다.
자칼은 빠르게 도를 들어 이를 막아냈다.
카앙!
공격이 막힌 카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한 번 회전했다. 마치 바람처럼 빠르게.
이번에는 세 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의 검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같은 코스를 파고들었다.
자칼은 도 한 자루로 그 궤적을 철통 같이 수비했다.
동시에 비어 있는 오른손의 도를 이용해서 반격을 꾀했다.
카아아아앙!
“……?!”
안일한 생각이었다.
한 자루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던 공격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으니까.
후웅.
자칼의 몸이 덤프트럭에 치인 인형처럼 훨훨 날아갔다.
부드러운 낙법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왼쪽 팔에서 느껴지는 저릿저릿함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과연. 힘으로 네스트를 찍어누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깜빡했군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자칼이 발로 쿵! 바닥을 한 번 내려찍었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서 자칼이 한 명 나오더니, 한 명의 자칼이 또 튀어나왔다.
총 세 명의 자칼이 경기장에 위치했다.
이를 바라보는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분신인가?’
자신의 태양 분신과 비슷한 메커니즘일 터.
‘하지만…….’
이 분신들은 달걀귀신이 아니라 얼굴까지 완벽하게 자칼이었다.
‘오히려 잘됐네.’
카이는 당황하기보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미드 온라인은 언뜻 보기엔 불공평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선’이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일례로 태양의 분신은 분신 하나를 소환하는데 선행 스탯을 5개나 소모한다.
‘헌데 상대방은 외모까지 완벽하게 카피하는데 분신이 두 개나 준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스킬을 말이 되게 만드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저 녀석들, 공격력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굉장히 낮을 거야.’
가설을 입증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카이의 주변을 빙빙 돌던 세 명의 자칼이 일제히 달려든 것이다.
‘분신 류의 최대 장점은 상대방을 혼란시킨다는 점이지.’
자신이 쓰고 있기 때문에 가장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당했을 때 기분이 더러운 법 또한 알고 있다.
쇄애애액!
카이는 날아드는 공격을 딱 반만 쳐냈다.
날아드는 여섯 개의 도중에서 각각 하나씩을 쳐낸 것이다.
푹푹푹!
총 세 개의 도가 카이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카이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생명력을 주시하고 있었다.
“……너랑 너는 아니네.”
스피드도, 궤적도 모두 자칼의 그것과 똑같았지만 앞선 두 녀석에게서 들어온 데미지는 고작 1이었다.
카이는 무심한 눈빛으로 세 번째 자칼을 쳐다보았다.
“이런……!”
위험을 감지한 자칼이 뒤로 몸을 날리며 스킬을 시전했다.
동시에 바닥에서 검은색 손들이 튀어나와 카이의 다리를 붙들었다.
어둠의 손길, 도적 클래스의 속박 스킬이었다.
“쉽게 끊을 수는 없을 겁니다.”
카이의 움직임을 봉쇄한 자칼은 곧장 캐스팅 시간이 긴 스킬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햇살의 따스함.”
허나 그 어떤 디버프 스킬도 카이를 방해할 수는 없는 법.
순식간에 속박을 해재한 카이가 가속했다.
“무슨…… 속박을 이렇게 빨리 풀어내다니?”
마음 편히 스킬을 시전하던 자칼이 깜짝 놀라며 도를 휘둘렀다.
까앙, 까앙!
허나 카이는 그 공격들을 정면에서 받아치면서 거리를 좁혔다.
물론 자칼의 저항은 거셌다.
두 자루 도에 맺힌 검은색 기운은 연신 카이의 목덜미와 심장을 노렸다.
파바바바박!
자칼의 두 자루 도가 신들린 것처럼 휘둘러졌다.
덕분에 카이의 두 눈동자도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왼쪽 관자놀이, 오른쪽 어깨, 왼쪽 다리 대퇴부.’
공격의 궤적을 모조리 읽고, 흘리거나 쳐낸다.
카이의 선택지에는 뒤로 물러서서 피한다는 것이 없었다.
그것이 이유였다.
“크윽……!”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는 결정적인 이유.
덕분에 자칼은 시간이 갈수록 조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카이의 스탯은 나보다 높으니……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압도적으로 불리해진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자칼은 예상보다 일찍 승부수를 걸었다.
“흐읍!”
그는 왼쪽의 도를 휘둘렀다.
어둠의 기운이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도신에 적중당하면 카이라고 해도 별수 없을 것이다.
챙! 하지만 카이는 이것을 아주 여유롭게 막아냈다.
그 결과는 카이는 물론이고 자칼도 예상하고 있었다,
‘예상대로군요. 하지만…… 진짜는 이쪽!’
카이가 막아낸 자칼의 도가 하얀색 빛을 뿜어냈다.
“음?”
카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순간, 자칼의 도가 수천 조각으로 갈라지며 거대한 구를 만들었다.
‘크윽, 설마 무기까지 망설임 없이 버릴 줄이야.’
구 안에 갇힌 카이는 회전하는 무기 조각들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결투장에서 수많은 스킬들을 배우고, 경험을 쌓았지.’
그렇게 모이고 모인 경험들은 또 새로운 교훈을 낳았다.
‘승부는 종이 한 장 차이,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순간의 용기.’
카이는 본능적으로 지금이 승부수를 던질 때라는 것을 느꼈다.
때문에 어깨를 꼿꼿히 세우고 오히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피잇, 핏!
수천 개의 무기 조각들은 마치 면도칼처럼 카이의 피부와 장비를 베고 지나갔다.
당연히 생명력은 쭉쭉 떨어졌다.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자칼은 밖에서 카이가 빠져나오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뒤쪽으로 빠져나오겠지. 나오는 순간 실명을 먹이고 그때부터 말려 죽인다.’
그 순간, 칼날의 구 사이에서 팔 하나가 튀어나와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콰드드득!
“잡았다…….”
“저, 정면이라고?!”
자칼이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블레이드 스페어의 정면은 다른 방향들보다 훨씬 두껍다. 저걸 모두 맞으면서 정면을 뚫으려면 생명력이 절반 정도는 날아갈 텐데?’
아쉽게도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틈은 없었다.
자칼의 가면을 붙잡은 카이는 그의 뒤통수를 바닥에 쳐박아 버렸으니까.
쿠웅! 쿠드드드득!
“크윽!”
자칼은 당황하지 않고 탄력을 이용해 튀어 오르며 남아 있는 한 자루의 도를 휘둘렀다.
허나 카이는 이를 아주 가볍게 막아냈다.
까앙!
카이는 무방비가 된 자칼의 복부에 그대로 다리를 꽂아 넣으며 그를 놔줬다.
“커…… 억!”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린 자칼은 바닥을 물수제비처럼 튕겨나갔다.
한참이나 튕겨나간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크윽, 시야가 어지럽다…… 혼란 상태인가? 어서 회복을 해야…….’
자칼이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순간.
콰드드득!
그의 가면으로 카이의 무릎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
이번엔 비명조차 나오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사실 이 공격을 허용한 순간, 경기는 끝났어야 맞다.
‘하지만…… 이대로는…… 끝낼 수 없다……!’
자칼은 끊어지려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으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데들리…… 샤프!”
그의 마나가 대폭 줄어들며 도에 엄청난 힘이 깃들었다.
자칼은 어지러운 눈을 아예 감아버리고는, 자신의 정면을 향해 그것을 휘둘렀다.
샤아아아악!
세상을 반으로 쪼갤 것 같은 강력한 공격이었다.
카이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중력장.”
동시에 자칼의 팔이 뒤틀렸고, 도의 궤적 또한 바뀌었다.
원래 목표하던 곳은 자신의 목이었겠지만, 막대한 중력으로 인해 자칼의 팔이 밑으로 뚝 떨어진 것이다.
카드드드드드득! 쿠우우웅!
자칼의 도는 카이의 발치, 그러니까 경기장 바닥을 호선으로 날카롭게 도려냈다.
일개 공격이 결투장의 경기장을 두동강내버린 초유의 사태.
그 엄청난 공격을 코앞에 두었던 카이는 차분한 표정을 지은 채,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
“…….”
자칼이 마지막으로 뿜어낸 어마어마한 공격력과 집념에 관중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카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공격. 사실 그건 없었어야 했어.’
웬만한 유저였다면 자신의 무릎이 면상에 박히는 순간 끝났을 것이다.
카이는 부들부들. 온몸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자칼에게 진심을 담은 말을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
아직 시야가 회복되지 않은 자칼은 두 눈을 억지로 뜨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후드드득.
그의 회색 가면이 부셔졌고, 날렵한 턱선을 지닌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수……고…… 하셨…… 값진…… 패…….”
쿵. 자칼은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정신적 데미지에 의해 기기가 그를 강제로 로그아웃시킨 것이었다.
“……값진 패배라.”
자칼이 미처 잇지 못한 말을 중얼거린 카이는 경기장 바닥을 쳐다보더니, 사회자에게 물었다.
“제 승점, 몇입니까.”
“예, 예?”
“제 승점 몇이냐구요.”
“아…… 아! 그러니까…….”
사회자가 서둘러 카이의 점수를 확인했다.
“2,578점! 베니쉬 선수의 랭크 포인트는 2,578점입니다!”
“혹시 누군가를 지명할 때, 꼭 일주일 전에 선고해야 합니까?”
“예?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럼 됐습니다.”
후우. 카이는 짧은 호흡을 내쉬었다.
자칼과의 경기를 통해 이미 결투장에서 얻을 것은 모두 얻은 상태였다.
스스로를 향한 증명 또한 되었다.
결투장에서의 배움은 값졌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으니까.
스르릉.
카이는 검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저 높은 곳, 오직 결투장의 챔피언에게만 허락되는 관람석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