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49화 (349/441)

# 349

힐통령 349화

107. 값진 패배(3)

서걱!

처음 공격을 받았을 때 캐서린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머, 나 방심했나 봐.’

자신이 방심해서 허접한 공격을 맞은 거라고.

베니쉬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그래도 한 대 얻어맞으니까 기분 확 상하네.’

그녀는 모든 신경을 베니쉬의 공격을 피하고, 그의 심장에 단검을 박아넣는 행위에 집중했다.

서걱!

“……?!”

무의미했다.

베니쉬가 휘두른 두 번째 참격이 자신의 왼쪽 팔을 그대로 그어버렸다.

띠링!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왼쪽 팔이 ‘골절’ 상태에 빠졌습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어……?’

이게 대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하얗게 물든 캐서린의 머릿속은 이내 뒤죽박죽 엉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베니쉬의 검은 날카롭게 그녀를 압박했다.

‘피, 피해야…….’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베기.

서걱!

[급소를 공격 받았습니다! 왼쪽 눈이 ‘실명’ 상태에 빠졌습니다.]

피하지 못했다.

‘이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직하게 그어버리는 수평 베기.

서걱!

[목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상태이상 ‘침묵’에 빠졌습니다.]

물론 피하지 못했다.

여명의 검법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정신을 차릴 타이밍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려 한 달이나 굶주린 여명이라는 호랑이가 쉴 새 없이 발톱을 휘둘렀고.

서걱, 서걱!

캐서린이라는 초식 동물은 그 발톱에 전신이 찢어져 나가야 했다.

“…….”

“…….”

입 안에 팝콘을 넣고있던 관중들은 이를 삼키지도 못하고 경기를 바라봤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건 화려하고 반전이 있는, 가슴 한쪽이 뜨거워지는 ‘결투’였다.

‘하지만 이건…….’

‘결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잖아.’

‘무패의 여제를…… 저렇게 아이 다루듯 가지고 논다고?’

‘말도 안 돼.’

팝콘을 씹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정도의 정적이 이어졌다.

그 장소에 있는 소음이라고는 그저 베니쉬가 검을 휘두르고.

서걱!

캐서린이 얻어맞는 소리뿐이었다.

한참이나 캐서린을 몰아붙이던 카이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머리 위로 보이는 생명력은 고작 5%도 안 남은 상태였다.

“…….”

캐서린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몸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이게 뭐야. 몸뚱아리가 정상인 부분이 없네.’

왼쪽 눈 실명, 왼쪽 팔 골절, 오른 다리 부상, 침묵에 기타 등등.

만약 이곳이 현실이었다면 이미 과다출혈과 쇼크사로 사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수도 없고.’

야속한 침묵 상태 때문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

‘이왕 이렇게 된 거…….’

캐서린은 역수로 쥔 단검을 베니쉬 쪽으로 향했다.

‘내가 알아내야지.’

더도 말고 덜도말고 단 한 번.

그 한 번을 위해 캐서린은 승부수를 던졌다.

고오오오오.

그녀의 생명력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5%…… 4%…… 3%…….

순식간에 1.5%까지 빠진 생명력.

이제는 말 그대로 카이의 검이 스치기만 해도 사망, 즉 패배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녀의 단검은 그 여느 때보다도 날카롭고, 강대한 기운을 품기 시작했다.

‘강화 스킬인가, 하지만 맞히지 못한다면 무의미할 텐데…… 무슨 생각이지?’

생명력 92%를 보유한 카이는 그녀의 의도가 궁금했지만, 이에 휘둘리지는 않았다.

절대적 강자인 그의 마음은 겨울날의 얼어붙은 호수처럼 고요했으니까.

돌을 던져도 파문조차 일어나지 않을 절대적 평정심이었다.

‘간다.’

캐서린은 생각과는 반대로 뒤로 다섯 걸음을 물러났다.

경기장에서 떨어지기 직전까지 물러난 그녀가 이내 늘씬한 다리를 앞으로 뻗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보폭을 최대한 크게 가져간 그녀의 몸은 용수철처럼 쭉쭉 늘어나며 카이에게 쇄도했다.

“……정면승부라.”

카이는 그녀의 뜻을 존중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공격해 들어오는 그녀의 용맹함.

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멋있는 여자야.’

때문에 카이는 본인도 최선을 다했다.

그 어떤 방심도 하지 않고, 깔끔하게 그녀를 끝내기 위해서.

그건 캐서린의 입장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이 사각형 전쟁터에서는 때때로 변수라는 것이 튀어나오기 마련이거든.’

쐐애애애애액!

캐서린의 한쪽 시야에는 공간을 찢어발기며 세로로 떨어지는 베니쉬의 검이 보였다.

‘아, 이건 진짜 못 피하겠네.’

애초에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돌진한 것이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노린 것은 거룩한 승리나 눈물겨운 저항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캐서린이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동시에 그녀를 정수리부터 쪼개버릴 기세로 떨어지던 검이, 그녀를 그대로 통과했다.

“……!”

‘팬텀 대쉬.’

직역하면 환영 돌진.

결투장에서는 물론, 이 스킬을 얻고 난 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스킬이었다.

실제로 길드원 중에서도 스킬의 존재를 아는 것은 리로드뿐.

‘하지만 상관없어.’

캐서린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껴왔던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까가가가가강!

단검은 마치 다윗이 휘두른 돌팔매처럼 카이의 이마를 내리찍었다.

그와 동시에.

콰드드득!

카이의 왼손은 캐서린의 목을 부러트릴 듯이 움켜잡았다.

‘끄아앙.’

그 공격으로 캐서린의 생명력은 단번에 이내 0%까지 떨어졌다.

카이는 경기 속행 불가 상태가 된 캐서린의 몸을 천천히 놓았다.

그녀의 몸이 스르륵, 마치 커피 위에 뿌리는 휘핑크림처럼 경기장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순간엔 조금 놀랐어.’

마치 영체화와 비슷한 메커니즘의 스킬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지속 시간이 짧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대쉬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만.

동시에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렸다.

띠링!

[챔피언 캐서린과의 경기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랭크 포인트가 2,742점으로 상승하셨습니다.]

[챔피언이 되셨습니다. 결투장의 모든 시설과 혜택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스페셜 칭호, ‘챔피언’을 획득하셨습니다.]

[여명의 검법이 고급 8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칭호 확인.”

카이는 우선 칭호부터 확인했다.

[챔피언]

등급 : 스페셜

내용 : 결투장의 챔피언이 되는 이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킬 레벨 +1(이 효과는 칭호를 장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기는 순간, 칭호는 자동 소멸됩니다.

“어……?”

평정심을 유지하던 카이가 중고 물품 사기라도 당한 표정을 짓는 순간.

엄청난 메시지들이 그의 눈을 어지럽혔다.

[주문 저항의 피부가 고급 5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햇살의 따스함 스킬이 11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태양의 축복 스킬이 11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태양의 갑옷 스킬이 11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홀리 익스플로젼 스킬이 11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

주르륵.

한 걸음의 고지를 앞두고 절대 오르지 않던 스킬들이 연이어 최대 레벨에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이의 눈은 단 한 문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명의 검법이 고급 9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고급 9레벨……!’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남달랐으니까.

‘마스터까지 고작 한 걸음 남았다.’

미드 온라인에서 스킬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유저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액티브(Active) 스킬과, 사용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효과가 발동되는 패시브(Passive) 스킬.

여기서 조금 더 파고들면, 스킬은 또 두 가지 형태로 나뉘게 된다.

‘마스터 할 수 있는 스킬과 제한 스킬이지.’

예를 들어서 여명의 검법은 앞에 초급, 중급, 고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이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면서 고급 10레벨을 달성해 스킬을 마스터하는 것을 목표로 삼도록 개발된 스킬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스킬을 마스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면에 제한 스킬은 이것보다는 조금 널널하지.’

태양의 축복이나 햇살의 따스함 같은 스킬이 이에 해당한다.

우선 제한 스킬의 공통점은 스킬 앞에 초급이나 중급 등의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대 레벨도 10으로 고정되어 있는 상태.

때문에 반복적으로 사용해서 숙련도만 쌓으면 누구나 맥스 레벨까지 찍을 수 있다.

실제로 랭커 정도만 되어도 레벨을 끝까지 올린 제한 스킬은 못해도 열 개가 넘는다.

‘하지만 10레벨을 뛰어넘어 11레벨이라니…….’

카이도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

미드 온라인에는 스킬의 최대 레벨을 상승시켜 주는 희귀 아이템이 있다고.

‘하지만 같은 효과를 지닌 스페셜 칭호가 있을 줄은 몰랐어.’

기대조차 안했던 칭호에서 대박이 터지자, 카이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시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새, 새로운 챔피언의 탄생입니다! 무려 52개월 동안 챔피언의 자리를 유지하던 캐서린이 왕좌에서 내려옵니다! 그 왕관을 이어받은 것은 놀랍게도 아직까지 닉네임조차 지어지지 않은 슈퍼루키 베니쉬! 그가 해냈습니다! 이전 챔피언인 캐서린의 기록을 꺾고! 최단 기간 챔피언 등극에 성공합니다!”

팡, 파팡!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며 새로운 챔피언의 등극을 축하했다.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짝…… 짝짝짝!

그들은 박수를 치며 새로운 챔피언을 환영했다.

“그런데 이제 슬슬 닉네임 지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챔피언인데 닉네임 없는 찐따는 좀…….”

“닉네임? 그런 걸 고민할 이유가 어디 있나.”

결투장의 평론가로 유명한 유저 하나가 베니쉬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내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랭킹 12위자 챔피언이었던 캐서린을 압살해 버린 그를 수식할 말이 딱히 떨어지지 않는군. 적이 없는 수준이니까…….”

“어? 적이 없다? 그거 괜찮은데? 무적 어때.”

“무적……?”

입에 착 달라붙는 그 단어는 관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오오, 무적의 베니쉬! 겁나 멋져!”

“아니 좀 오글거리는데…… 본인이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그걸 우리가 왜 신경 써? 어차피 부끄러움은 베니쉬의 몫일 텐데.”

“……듣고 보니 그러네?”

“좋소! 무적! 무적으로 합시다!”

지난 한 달 동안 정해지지 않았던 닉네임이 불과 4분 만에 지어졌다.

“아니, 저기요…….”

카이가 떨떠름함을 표했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었다.

“무적의 베니쉬! 드디어 우리 챔피언에게 그럴 듯한 닉네임이 지어졌습니다!”

사회자의 쐐기와 함께 카이는 무적의 베니쉬가 되었다.

“무적이라. 아주 기분 날아가시겠네.”

리로드에게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 캐서린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카이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경기였습니다.”

“아니거든? 내 입장에선 완전 퍼킹 밷 퐈잇이었거든? 아니면 뭐,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런 거야?”

어린 아이처럼 삐친 캐서린은 입술을 툭 내밀며 손을 휙 내밀었다.

“내 단검이나 내놔.”

“단검……? 아아.”

카이는 그제야 자신의 이마에 박혀있는 그녀의 단검을 올려다봤다.

‘마지막 순간에 이걸로 찍혔었지.’

그 때의 그녀는 세계 7대 길드의 마스터답게 용맹했다.

때문에 카이는 이마에 박힌 단검을 뽑으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아까 도발했던 거 죄송합니다. 당신은 분명 세계 7대 마스터에 걸맞는 용맹한…….”

하지만 카이는 예상하지 못했다.

쩌저적.

단검을 뽑는 순간, 내구도가 다한 투구가 반으로 쪼개질 거라는 사실을.

“꺄하하! 내가 마지막에 아무 생각도 없이 그거 찍은 줄 알았…… 흐응……?”

언노운의 투구가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나온 이의 무표정한 얼굴을 쳐다본 순간.

“Um…… 음…… 암 쏘 쒀리.”

캐서린은 식은땀을 흘리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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