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2
힐통령 352화
108. 무적자 (3)
“하아아.”
카이가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자신이 만든 참상을 보며 옆머리를 긁적였다.
“효과가 좋긴 좋은데…… 너무 과할 정도로 좋네.”
절대 영도는 씨서펜트 할리를 잡고 나온 유니크 등급의 마법 스킬이었다.
당연히 마법 스킬인 만큼 지능 스탯에 영향을 받는 법.
현재 지능 수치가 2,600을 넘어선 카이가 시전한 절대 영도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쿼드라플 캐스팅을 이용, 네 번이나 중첩시킨 결과는 대단했다.
쩌저저적.
도전자의 계단에 있던 52개의 챔피언 동상이 모두 얼어붙었고, 적색여명회 회원 19명도 취하던 포즈 그대로 푸른 얼음상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4중첩 범위, 대체 얼마나 넓은 거야.”
결투장은 사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섬이다.
그 말은 가까운 결투장 성벽이 얼어붙은 건 물론, 파도치는 바닷물마저 꽁꽁 얼어버렸다는 뜻.
게다가 카이를 더 당혹스럽게 만드는 건, 그 범위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띠링!
[‘찰떡쿠키’를 공격하셨습니다. 해당 플레이어가 안전지대에 있습니다. 공격이 무효화됩니다.]
[‘이볼브’를 공격하셨습니다. 해당 플레이어가 안전지대에 있습니다. 공격이 무효화됩니다.]
[‘드록’을 공격하셨습니다. 해당 플레이어가…….]
…….
성벽을 넘어 안쪽에 있던 모든 유저와 NPC들까지 덮쳐 버리는 무시무시한 한파.
자신이 만들어낸 얼음의 세계를 바라보던 카이는 가까이 있는 얼음상을 향해 다가갔다.
‘날 먼저 건드렸으니 마무리는 지어야겠지.’
카이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쩌저적.
얼음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허윽, 허억.”
뒤를 돌아보니 얼음상을 깨고나온 크리스가 자신의 어깨를 붙들며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뭐지? 생각보다 지속 시간이 짧은가?’
하지만 다른 회원들의 얼음상은 여전히 꼼짝도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크리스의 마법 저항력만 유독 높은 모양이네.’
가능한 일이었다.
크리스는 마법사.
그것도 전체 랭킹 2위의 타이틀을 지닌 엄청난 마법사였으니까.
“방금 그 마법은…… 허억, 대체 뭐지……?”
파이어볼을 띄워 몸을 녹이던 크리스가 물었다.
“절대 영도.”
카이는 순순히 대꾸해 주었다.
“……과연.”
카이가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바라보던 크리스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설마 성기사와의 마법전에서 밀리게 될 줄이야.’
하지만 자신도 물러설 수는 없다.
랭킹 2위라는 것도 그랬지만, 세계의 모든 마법사 중 최고라는 자존심이 꿈틀거렸으니까.
게다가 얼음상이 되어버린 동료들을 지킬 사람도 자신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아직 내 실력을 다 꺼내지 않았다.”
크리스가 순식간에 네 개의 마법진을 띄웠다.
그의 주변으로 거친 바람이 몰아치며 로브가 펄럭거렸고, 머리카락이 연신 흩날렸다.
“그럼 꺼내.”
말과 동시에 카이가 크리스에게 달려들었다.
‘광휘의 검.’
성검 프리우스에 내장되어 있는 스킬이 발동되면서, 카이의 검신이 황금빛을 띄기 시작했다.
공격력의 극대화.
크리스는 실력을 다 꺼내 보이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카이도 마찬가지였다.
꽈드득!
달려가던 카이의 발목을 무언가가 강하게 붙들었다.
고개를 내려다보니 굵고 기다란 넝쿨들이 바닥에서 솟아오른 상태였다.
‘넝쿨 속박…… 그렇군. 무영창인가.’
자신이 무슨 스킬을 사용하는지 알려주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카이는 크리스가 무슨 스킬들을 사용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네 개의 마법 중 하나는 넝쿨 속박, 몸놀림이 빨라진 걸로 봐선 바람의 축복도 걸었어. 그리고…….’
서걱!
날아드는 라이트닝 스피어를 그대로 잘라버린 카이는 나머지 한 개의 마법을 탐색했다.
‘……뭐지? 보이지 않아.’
나머지 마법 하나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카이의 검이 크리스를 덮쳤다.
공격은 크리스가 들어 올린 왼쪽 팔목을 내려쳤다.
까가가강!
이어지는 둔탁한 소리.
동시에 카이는 나머지 한 개의 마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소리는…….”
보통 다른 유저의 몸을 검으로 베면 이런 둔탁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경우는 단 하나 뿐.
‘방어 마법이다.’
카이는 크리스가 방어 마법 중 하나인 ‘아머 오브 마나’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시적으로 몸 전체를 마나로 감싸서 물리/마법 방어력을 대폭 상승시키는 마도사 전용 스킬.
하지만 카이의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까가강!
‘아머 오브 마나는…… 지속성 마법이 아닐 텐데?’
그렇다.
아머 오브 마나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몸을 강화할 뿐.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몸을 지켜주지는 않았다.
상식적으로 따지면 이렇게 크리스처럼 영구히 스킬을 사용하지 못해야 한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스킬의 지속 시간 증가…… 재사용 대기 시간 감소. 둘 중 하나겠어.’
혹은 둘 다거나.
화악!
그 때 자리에서 푹 꺼진 크리스의 신형이 10미터 정도 뒤에서 나타났다.
마법사의 유일한 도주기이자 대쉬기인 블링크(Blink)였다.
우우웅.
호흡을 가다듬은 크리스의 주변으로 다시금 세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세 개라고? 네 개가 아니라?’
카이가 눈매를 찌푸렸지만, 크리스는 이미 손을 휘저었다.
콰르릉!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자 카이는 몸을 던져 이를 피해냈다.
훌륭한 낙법을 펼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의 왼손에서 신성 사슬이 튀어나갔다.
촤르륵!
“어딜.”
하지만 손날에 윈드 커터를 둘러 이를 끊어낸 크리스는 그대로 손을 뻗었다.
“슬로우.”
느릿느릿.
카이의 움직임은 마치 생수통을 몸에 달아놓은 것처럼 느려졌다.
그 상태에서 크리스의 주문 폭격이 이어졌다.
“마나 증폭.”
마나를 소비하여 마법 주문의 데미지를 증폭시키고 캐스팅 시간과 쿨타임 시간을 감소시켜주는 유니크 등급의 스킬!
카이가 슬로우에 걸렸을 때 어떻게든 끝장을 보려는 속셈이 엿보였다.
‘햇살의 따스함.’
물론 디버프를 가볍게 해제한 카이의 움직임이 다시금 빨라졌다.
“크윽.”
당연히 크리스의 두 눈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지그재그로 달려오는 카이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콰르릉! 콰르르릉!
크리스의 손에선 돌바닥이 터져나갈 정도로 강력한 번개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허나 그 공격들은 카이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역시. 한 번에 딱 세 개의 주문만이 날아온다.’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쿼드라플 캐스팅 유저가 한 번에 세 개의 주문만 쏘아내는 이유는 하나뿐일 테니까.
‘마법진 하나는 온전히 스킬 하나를 사용하는 데 배정해 놨구나.’
그리고 그 마법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화악!
순식간에 크리스의 코앞까지 당도한 카이의 검은 그의 목젖에 다다랐다.
까드드드득!
“역시.”
크리스의 몸은 여전히 아머 오브 마나가 덮고 있는 상태였다.
카이는 이것으로 확신했다.
“역시 아머 오브 마나를 계속 두르고 있었어. 그 잘난 다중 연산 능력을 이용한 거겠지.”
움찔.
크리스가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스킬 하나를 쉬지도 않고 시전하면서 나머지 세 개의 주문을 캐스팅.
게다가 움직이면서 전투를 하는 괴물이 바로 크리스였다.
“좋은거 하나 배웠어.”
허나 그보다 더한 괴물, 카이는 아예 마무리를 지을 요량으로 검을 들었다,
“파이널 어택!”
신성력을 소비해 공격을 완벽한 방어 무시 데미지로 전환하고, 피해량을 세 배 늘리는 스킬.
그것이 크리스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크윽!”
블링크가 쿨타임인지라 회피할 자신이 없던 크리스는 차선을 선택했다.
“얼음 방벽!”
3중첩의 거대한 얼음 방벽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크리스는 영리하게도 그것을 방어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카이의 발밑에 소환했다.
덕분에 카이의 몸이 위로 솟구치며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렇게 카이의 공격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던 순간.
“석화.”
드드드드득!
3중첩의 얼음 방벽이 순식간에 돌로 변해버렸다.
카이는 가볍게 몸을 회전해 그 벽을 걷어찼다.
“허억!”
크리스는 자신을 덮쳐오는 거대한 돌 벽을 막기 위해 양팔을 들어올렸다.
까드득!
“크아아아악!”
두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터트리기를 잠시.
카이는 돌벽 뒤쪽에서 크리스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그대로 검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서걱!
“……음?”
하지만 검은 크리스의 정수리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대신해서 맞았다.
“저건…….”
갈라진 벽 뒤에서 나온 존재를 확인한 카이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 번 본 적이 있던 얼굴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름아닌 자칼이었다.
조금 전에 카이가 베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칼의 분신.
카이는 날이 잔뜩 서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짓입니까.”
“그게…….”
자칼은 꽁꽁 얼어 붙어있는 여명회원들의 얼음상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원망어린 눈빛으로 크리스를 쳐다봤다.
“대체 누가 이런 미친 짓을 기획한 거냐.”
“……부회장.”
“젠장, 그 머저리가.”
벅벅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긁은 자칼이 카이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모두 다 제 불찰입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카이가 입을 꾹 다물고 두 사람을 쳐다보자, 자칼이 입을 열었다.
“카이님도 결투장에서 베니쉬라는 이름을 쓰셨듯, 제 이름도 사실 자칼이 아닙니다.”
“그럼 뭐죠?”
“제 이름은 고스트. 적색여명회의 회장이자, 이 21명의 머저리들을 이끄는 리더입니다.”
“지금 누가 누구보고 머저리라고…….”
“넌 입 닫고 있어.”
고스트가 크리스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카이는 검 끝으로 크리스와 얼음상들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당신이 그 베일에 쌓여있던 인물, 고스트라는 말입니까?”
그 말에 고스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예. 제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전 이런 의뢰를 받았다는 소식조차 못 받았습니다.”
“그러게 누가 잠수를 타고 수신 거부를 하랬나.”
“내가 당부했을 텐데? 잠수타고 있을 땐 랭커나 세계 길드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그건 부회장한테 따져.”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크리스를 노려보던 고스트가 미안함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기분이 나쁘시겠지만 여기서 그만둬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이 녀석들 죄다 상위 랭커라서 한 번 죽으면 복구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글쎄요. 가만히 있다가 얻어맞은 것 같아서 기분이 영 별로인데.”
“……이번 한 번만 눈을 감아주신다면, 제 편지를 드리겠습니다.”
“이, 이봐!”
크리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이에 고스트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시끄러워. 그럼 여기서 전부 죽을까?”
“죽기는 누가 죽는다고…….”
“내가 안 말리면, 이길 자신은 있고?”
그 질문에 크리스는 우물쭈물거리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 가만히 있어.”
한 마디로 크리스를 잠재운 고스트는 카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명의 편지라…… 확실히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본래 적색여명회는 돈을 받고 갖은 일을 해주는 용병 집단이다.
하지만 용병일을 맡지 않을 때의 회원들은 각자의 정체를 숨긴 채 남들처럼 게임을 즐긴다.
‘그 과정에서 큰 은혜를 입게 되면 여명의 편지를 보낸다고 하지.’
편지를 받게 된 자는 편지의 등급에 따라 무료로 의뢰를 할 수 있다는 소문이었다.
“알고 계시니 설명드리기 편하겠군요. 당연한 말이지만 제가 드리는 편지는 최상위 등급입니다.”
“최상위 등급이면 뭘 할 수 있죠?”
“전부.”
고스트는 언뜻 들으면 광오하다 싶을 정도의 말을 뱉어냈다.
“최상위 등급의 편지를 지닌 분이 의뢰를 하시면, 여명회는 그 즉시 모든 활동을 멈추고 그 의뢰 하나만을 위해 전체가 움직입니다. 어떤 의뢰든 완벽하게 완수해드립니다.”
고스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여명회 전체가 움직이면 이 게임에서 완료 못 할 의뢰는 없다는 압도적인 자신감이었다.
“흠…….”
카이는 광휘를 뿜어내는 자신의 성검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적색여명회는 아직까지도 베일에 쌓여있는 집단이야.’
아마 오늘 그들 전체와 싸운 자신을 제외하면, 그들의 진정한 힘을 아는 자는 드물 것이다.
‘그런 이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솔직히 말해서 크다.’
반면에 자신이 이들과 전투를 속행하면 모두 죽일 자신이 있었지만, 관계가 악화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카이는 더 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이 모르는 조커 카드는 많이 쥐고 있을수록 좋은 법이지.’
카이는 성검을 역소환하며 고스트에게 악수를 청했다.
“제안을 받아드리죠. 오늘 일은 눈감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소 굴욕적인 계약이었지만, 고스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회원들의 레벨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야.’
아무런 접점도 없는 22명이 갑자기 사흘 동안 접속을 하지 않는다?
만약 그 과정에서 카이가 적색여명회를 몰살했다는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회원들의 정체가 전부 까발려질 수 있는 중대한 위기였어.’
가슴을 쓸어내린 고스트는 품에서 편지를 황금색 편지를 꺼내 카이에게 건넸다.
“언제가 되었건 저희를 찾아주십시오. 연락처는 편지에 동봉되어 있습니다. 어떤 의뢰라고 할지라도, 여명회는 그 의뢰를 완수할 것입니다.”
“좋군요.”
편지를 챙긴 카이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유사시에 동원할 수 있는 세계 길드는 둘.’
프레이 길드와 적색여명회를 마음껏 다룰 수 있다.
게다가 라시온 왕국의 귀족인 워리어스와 천화도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
‘괜찮네.’
만족스러운 거래를 끝낸 카이는 얼음상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저건 제가 스킬을 해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저것들은…… 제가 알아서 꺼내겠습니다.”
끝까지 저자세를 취하는 고스트의 배웅을 받은 카이는 그 길로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결투장을 떠났다.
“……후우.”
크리스와 둘만 남은 고스트는 얼음상들을 녹일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