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8
힐통령 358화
111. 몬스터 헌터(1)
길을 걷던 유하린은 슬쩍 카이를 곁눈질 했다.
그는 암흑 지대 조사 퀘스트를 받은 이후, 부쩍 말수가 줄어든 상태였다.
‘분위기가 무거워.’
물론 암흑 지대라는 위험천만한 곳을 가는데 가벼운 마음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나 착 가라앉은 카이의 모습은 그녀로서는 처음 보게 되는 모습이었다.
‘조사단원들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끼시는건가.’
왜냐하면 그들이 암흑 지대를 조사한 이유는 카이가 물고 온 정보 때문이었으니까.
추기경 아트록.
그의 이름을 곱씹는 유하린의 미간이 점점 더 좁아졌다.
‘만악의 근원…….’
그 순간, 카이가 입을 열었다.
“다 왔네요.”
신출귀몰은 한 번 가본 장소만 방문할 수 있기에, 두 사람은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한 뒤 꼬박 이틀을 걸어서야 암흑 지대까지 올 수 있었다.
후우우웅.
두 사람이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대단했다.
황토색의 거친 황야와 그 뒤로 보이는 넓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수해(樹海).
숲의 바다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 싶은 그 장소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암흑 지대가 어둡다는 말은 빈말이 아닌 것 같군요.”
“맞아요. 암흑 지대가 여태 미지의 땅인 이유죠. 숲에서는 횃불을 들고다닐 수도 없으니까.”
울창하고 두꺼운 나뭇잎은 햇빛을 차단하는 강력한 보호막이 되었다.
그 아래에서는 지금도 길을 잃고 돌아다니는 모험가만 수백 명이 넘을 터.
게다가 함부로 불을 밝힐 수도 없었다.
암흑 지대의 몬스터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불과 냄새, 소리 모든 것에 민감한 포식자니까.
“가시죠.”
잠시 숲을 내려다보던 카이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
마피아 길드는 세계 8대 길드 중 한 곳이다.
구성원은 이탈리아, 러시아, 미국, 그리스 등 다인종이 섞여 있었지만, 마스터인 래너드는 러시아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제일 강하니까.
게다가 게임의 흐름을 읽는 눈 또한 다른 유저들보다 훨씬 더 좋았다.
때문에 그는 한창 영지전이 발발했을 때, 남들과는 전혀 다른 한 수를 선보였다.
바로 과감하게 영지를 포기한 것이다.
세계 8대 길드 중에서 현재 영지에 별 미련을 갖지 않는 곳은 프레이 길드와 마피아 길드.
그 두 군데밖에 없었다.
심지어 프레이 길드조차 영지 몇 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마피아 길드의 선택은 세계인을 놀라게 할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물론 그가 큰맘 먹고 영지를 포기한 이유는 있었다.
“마스터, 오늘의 출입자 명단입니다.”
“그래? 줘봐라.”
마피아 길드의 마스터인 레너드의 손에 서류 몇 장이 쥐어졌다.
그 종이 더미에는 오늘 하루 암흑 지대를 들어가고, 나온 출입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그것이 영지를 포기하고 그가 손에 넣은 권력이었다.
‘어차피 영지는 돈을 벌고, 권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돌려 말해서 다른 사업을 통해 돈과 권력을 쥘 수 있다면, 영지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
레너드가 영지의 대체 수단으로 택한 것은 바로 암흑 지대였다.
세계적인 기구, 어둠 추적자와의 관계에 모든 것을 올인한 그는 암흑 지대의 탐사권을 길드 차원에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단순히 다른 유저들처럼 그냥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암흑 지대를 탐사하는 정식 조사단의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훗날 태풍의 핵이 될 암흑 지대를 일찍부터 사업 수단으로 본 레너드의 혜안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독점, 독점하는구나라고 요즘들어 실감하게 됩니다.”
“당연하지.”
암흑 지대의 베이스 캠프에는 오직 마피아 길드의 시설들만이 들어서있다.
상점, 식당, 대장간, 심지어 지친 캐릭터의 육신을 쉬게 해줄 여관까지.
모두 마피아 길드의 소유다.
가격 또한 암흑 지대의 왕인 레너드의 마음따라 그날 그날 바뀌었다.
당연히 다른 이들은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없었다.
마피아 길드의 총 전력 80%가 머물고 있는 캠프에서 장사할 정도로 간 큰 사람은 없었으니까.
말만 베이스 캠프지, 그곳은 이미 하나의 훌륭한 요새였다.
“흠. 이제 슬슬 8대 길드 녀석들도 기어들어오는군.”
“예. 요즘들어 많이 들어오더군요. 다른 길드의 경우에는 이제 영지도 짱짱하니까, 내실을 키우는 한 편 길드의 최상위 유저들은 사냥을 보내는 모양입니다.”
“밑에 애들한테 전해. 8대 길드 애들은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다들 어둠 추적자에 영향력이 한가닥씩 있는 놈들이니까 잘못하면 귀찮아진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여관비 올린다. 일반실 1박에 3골드 20실버로.”
“기존에 선금을 지불하고 장기로 투숙하는 녀석들은 어쩔까요?”
“받아내야지. 추가로 돈 안 내는 놈은 거스름돈 쥐어주고 쫓아내라.”
“알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암흑 지대의 위치가 큰 몫을 했다.
‘주변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연결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사린 성에서 여기까지 아무리 빠르게 이동해도 최소 사흘 정도는 걸리지.’
레너드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세운 성은 시간이 지날 수록 견고해질 것이다.
***
“와……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요.”
암흑 지대의 베이스 캠프에 들어선 유하린이 처음 뱉어낸 감상이었다.
그것은 동시에 같은 광경을 보고 있던 카이가 느낀 감상이기도 했다.
“서쪽 지대에서 붉은 우로브가 나왔다고? 레벨은?”
“440. 그쪽 애들은 제법 골치아픈 모양이야.”
“우로브가 상대하기는 까다로우니까. 하지만 그만큼 부산물의 값어치가 크니 감안해야지.”
“오늘 동쪽으로 간 파티는 어디였지?”
“스타링 파티.”
“채널 보니까 그쪽은 자이언트 비 나온다고 하던데, 결국 서쪽이나 동쪽이나 도긴개긴이군.”
“뭐, 중앙 쪽으로 진입하지만 않으면 어딜가나 비슷한거 아니겠어.”
베이스 캠프에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여타 도시에서 볼 법한 시끌벅적함은 없었다.
앉아서 장사를 하는 상인도 없었고, 파티를 구하는 이들 또한 없었다.
그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암흑 지대까지 진출한 이들은 최소 준랭커. 장사를 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처음 만난 플레이어에게 등을 맡기기에는, 그들은 잃을 것이 너무 많은 이들이었다.
당연히 파티로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고정 파티들.
그나마 베이스 캠프에서는 서로 교류가 있던 파티들끼리 모여서 암흑 지대의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덕분에 캠프는 대체적으로 토론회장 같은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타르달님이 이쪽으로 가라고 하셔서 오긴 했는데…… 사실 저희는 굳이 이곳으로 올 필요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여관에 체크 포인트를 만들어두는게 편할 겁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죽게 되면 그쪽으로 이동하기도 하니까.”
“여, 여관?”
“네. 여관.”
카이가 고개를 돌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가시죠.”
“여, 여관…….”
중얼거리는 유하린을 이끈 카이는 캠프의 유일한 여관으로 향했다.
그들이 활짝 열려있는 문지방을 넘어서자, 1층 주점에 모여 있던 이들의 시선이 쏘아졌다.
준랭커들은 카이를 보고도 다른 유저들처럼 소리를 지른다거나, 야단법석을 떨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빛을 반짝이며 그를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언노운이군.”
“요즘 활동이 뜸하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암흑 지대에 진출하는 건가.”
“소식 못 들었나? 얼마 전에 결투장에서 리미트리스 개박살낸 거.”
“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내가 이래서 사냥 말고 다른 콘텐츠에도 관심 좀 쏟으라고 한 건데.”
그 때 유저 하나가 중얼거렸다.
“옆에는 일행인가?”
“그럴 리가. 타이밍 좋게 같이 들어온 사람이겠지. 왜냐하면 언노운은 철저하게 솔로 플레이만…….”
중얼거리던 유저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바뀌었다.
장비를 성기사 전용 아이템들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현재 유하린의 투구는 머리와 눈 부위만을 가리는 형태의 장비였다.
한 마디로 코와 입을 비롯한 얼굴의 하관이 적나라하게 보인다는 뜻이었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예쁘다…….”
“미친놈. 지금 그게 중요한거야? 너 저 얼굴 어디서 본 적 없냐?”
“코랑 입 밖에 안 보이는데 보긴 뭘 봐.”
“그리고 얘가 저런 이쁜 유저를 어디서 봤겠…… 음? 잠깐만.”
유저들이 아니지? 하는 시선으로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하나 그럴 수록 의심은 확신으로 점차 변해갔다.
“설마, 설마 싶지만…… 유하린 아닐까?”
“유…… 하린…….”
유하린.
비록 지금은 크리스에게 밀려 랭킹 3위로 떨어졌다지만, 미드 온라인을 하는 사람치고는 모르는 이들이 없는 최강의 플레이어다.
게다가 얼마 전에 방영된 ‘절대자의 던전’에서는, 달빛 아래에서 투구를 벗는 씬 하나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저 둘이 지금…….”
“파티를 맺었다고?”
언노운과 유하린은 하나만 어슬렁거려도 파란을 일으키는 괴물들.
그런 괴물과 괴물이 만나 손을 잡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주점의 유저들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혹시 모르니까 쟤네가 어느 방향으로 조사 나가는지 알아놔.’
‘그쪽 방향으로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어.’
‘괜히 재수 없게 몬스터 하나 사이에 두고 만나면, 우리만 죽어나간다.’
뚜벅뚜벅.
유저들의 시선을 오롯이 받아낸 카이는 걸음을 옮겨 데스크로 향했다.
“무,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마피아 길드 소속의 말단 유저가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방.”
카이가 말을 덧붙였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시오.”
“바, 방. 알겠습니다. 대실이십니까, 숙박이십니까?”
모든 유저들이 귀를 쫑긋 기울였다.
카이와 유하린이 방을 구한다!
과연 대실일까, 숙박일까.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카이를 향한 부러움과 질시의 눈빛이 주점을 꽉 채웠다.
등에 따가운 시선들이 화살처럼 박힌 카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대실입니다. 아, 그리고 방은 두 개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카이를 향하던 따가운 시선들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
“음. 솔직히 침대가 좀 별로였어요. 도시 여관의 일반실보다 살짝 나은 느낌이네요.”
“그러게요. 이런 방이 최고급이라니…… 심지어 대실인데 7골드나 나왔습니다.”
고작 8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여관 방 두 개에 70만 원이 나갔다.
물론 카이는 돈이 굉장히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돈이 나가는 것은 싫어했다.
꼼꼼한 사업가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여기 제 몫이요.”
유하린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린 3골드 50실버를 건네자, 카이는 그 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꼬옥.
그녀의 손을 쥐어 주먹을 만들어준 카이가 싱긋 웃었다.
“이 돈으로 저 밥이나 사주세요. 배고픕니다.”
“바, 밥…… 그럼 바로 식당으로가요. 여관 들어오기전에 보니까 다양한 식당들이 있던데요.”
“굳이 그렇게까지? 그냥 이 밑에 주점에서 간단하게 때우고 출발하죠.”
아랫층으로 내려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테이블 하나를 차지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건넸다.
“하린 씨는 뭐 좋아합니까?”
“저는 다 잘 먹어요.”
‘그러고 보니…….’
그녀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오크 토벌을 마친 뒤, 아르센 남작의 저택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그녀와 처음 만났다.
‘그때도 식성 하나는 끝내줬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카이가 메뉴 하나를 추천했다.
“그러고 보니 스테이크 좋아하시지 않으세요? 여기 스테이크 세트도 파네요. 치킨, 연어, 소고기 스테이크가 조금씩 들어 있는.”
“머, 먹을래요! 카이 님은 뭐 드실거예요?”
“전 양송이 스프랑 치킨 샌드위치 먹겠습니다.”
유하린이 손을 들어 음식을 주문했고, 두 사람은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제가 조금 알아봤는데, 출입증부터 발급받아야 된대요.”
“저희는 타르달 님의 부탁으로 왔는데도요?”
“네. 운영은 마피아 길드가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곳은 어둠 추적자의 전략 캠프니까요.”
“그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는 겁니까?”
“탐험할 방향은 고를 수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중앙이 목표니까…… 북쪽으로 가야 해요.”
“북쪽이라…….”
카이는 포크와 숟가락 등을 세팅하며 중얼거렸다.
“재미있겠네요.”
정말 오랜만에 하는 파티 사냥이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