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9
힐통령 359화
111. 몬스터 헌터(2)
“뭐?”
깜짝 놀란 레너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 정도로 격정적인 반응은 매일 보고를 올리는 부하조차 처음 볼 정도였다.
“그 새끼들이 여긴 왜 왔지?”
여기서 그 새끼들이라 함은 카이와 유하린을 뜻했다.
그 당연한 질문에 부하는 고개를 모로 저었다.
“저도 그것까지는 잘…… 최근 랭커들이 자주 방문하니, 마찬가지 이유 아니겠습니까.”
“으윽. 갑자기 가슴이 좀 먹먹하고…… 소화도 잘 안 되는 느낌이 드는군.”
레너드가 통증을 호소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다.
때문에 세계 8대 길드의 마스터들은 본능적으로 한 가지 진리를 학습했다.
‘카이, 그 새끼는 그냥 다이너마이트다. 건드리면 아주 그냥 훅 가는 거야.’
특히 잔머리가 빠른 레너드는 더더욱 두 사람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괜히 나대다가 매 맞을 필요는 없지…….”
“예?”
“카이 녀석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좋을 게 없다는 뜻이었…… 아니, 잠깐만.”
무언가를 떠올린 레너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녀석, 천화 길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나?”
“뭐…… 같이 손잡고 검은 벌 몰락시킨 거 보면 제법 친하겠죠? 설은영도 절대자의 던전에 같이 출연했고.”
“게다가 워리어스랑도 제법 친분이 있지?”
“그것도 뭐…… 자탄 레이드하는거 도와준걸 보면 나쁜 사이는 아니겠죠?”
“혹시 이 새끼, 천화랑 워리어스가 나 짜증난다고 뭐라고 해서 역갑질하러 온 거 아니냐?”
“설마 그렇겠어요.”
“그렇지? 내 기우겠지?”
“음.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책임지기는 싫으니까.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던 레너드는 파이프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천화랑 워리어스 애들 위치는?”
“천화가 서쪽, 워리어스가 동쪽 탐험 중입니다.”
“……혹시 모르니 오늘부터 걔네들한테도 좀 잘해줘. 괜히 시비 걸지 말고. 식당에서 음식 주문하면 양도 5% 정도 더 얹어줘.”
“알겠습니다. 다른 길드들은 어떻게 할까요?”
“또 어디 있더라…… 아, 그래. 블랙마켓이랑 흑룡.”
잠시 고민하던 레너드가 피식 웃었다.
“블랙마켓은…… 내 생각엔 건드려도 괜찮을 것 같아. 그리고 흑룡은 대놓고 시비 걸어도 돼.”
“괘, 괜찮을까요?”
“걱정 마라. 어차피 카이 녀석은 흑룡 녀석들이랑 사이가 안 좋을걸.”
레너드의 생각은 정답에 가까웠다.
카이는 아직까지 흑룡과 리벤지 길드가 연관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 중인 상태였으니까.
“흠. 차라리 흑룡 녀석들이 난동 좀 피워줬으면 좋겠군. 그 녀석 앞에서.”
“그렇게만 된다면 저희야 좋죠. 꿩 먹고 알 먹을 수 있으니.”
“뭐, 꿩이랑 알을 먹을 순 없겠지만 팝콘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실실거리며 웃던 레너드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밑에 애들한테 싹다 공지 돌려. 카이와 유하린. 두 사람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확실하게 교육시켜. 사소한 시비조차 걸면 안 된다.”
“물론이죠.”
“진짜 눈곱만큼도 그들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알았다고요.”
부하가 뚱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머쓱해진 레너드가 크흠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그래서 두 사람 지금 뭐하고 있냐.”
“밥 먹고 있는데요.”
“아하, 식당에서?”
“아뇨 주점에서요.”
“뭐!?”
레너드가 다시 한 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입을 열었다.
“설마 레토르트 음식 내놨냐?”
“물론이죠. 저희 항상 그거 쓰잖아요. 마스터께서 원가 절감해야 한다고 맨날 그래서…….”
“잠깐만. 진짜 3분 레토르트 나갔다고? 카이랑 유하린한테?”
“그거 말고 나갈게 어딨어요. 주점에는 요리사 배치도 안 해놨잖아요. 식당에나 있지.”
“야, 이 새끼야! 그래도 상대를 봐가면서 음식 내보내야 할 거 아니야!”
빠악! 레너드의 손바닥이 부하의 뒤통수를 갈겼다.
***
카이와 유하린은 표정이 살짝 굳은 상태였다.
주문한 음식에서 특유의 익숙하고 저렴한 맛이 느껴진 탓이었다.
“죄송해요. 가격에 비해 퀄리티가 좀 많이 떨어지네요.”
“아뇨. 하린 씨가 뭘 잘못했다고…… 게다가 전 괜찮은데요?”
카이는 스푼으로 양송이 스프를 휘휘 젓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맛있다는 표정을 과장스럽게 지으며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그녀가 무안하지 않게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이거 맛이 집에 있는 3분 요리랑 똑같은 것 같아요.”
“설마요. 아무리 그래도 마피아 길드가 운영하는 주점인데 그런 양아치 짓을 하겠습니까?”
“흐음. 제 혀가 대장금 수준인데, 이건 맛이 딱 레토르트 식품인데…….”
고개를 갸웃거린 유하린은 투덜거리면서도 그릇을 싹싹 비워나갔다.
이어서 냉수로 입가심까지 마친 그녀는 카이의 그릇을 빤히 응시했다.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챈 카이는 치킨 샌드위치 한 조각을 슬며시 내밀었다.
“혹시 배고프시면 이것 좀 드실래요?”
유하린이 펄쩍 뛰며 양손을 휘저었다.
“아, 아니에요. 물론 더 먹을 수는 있지만 배가 고픈 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그러지 말고 드셔주세요. 어차피 제 배가 작아서 혼자 다 못 먹거든요.”
“으, 으음.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네요. 정말 어쩔 수 없어요…….”
유하린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가, 표정 관리를 하는 듯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집어든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는 열심히 오물거렸다.
냠냠.
분명 똑같은 치킨 샌드위치를 먹는데, 그녀의 것이 훨씬 더 맛있어 보인다.
‘먹방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심리 때문에 먹는 건가.’
군침이 돈 카이는 자신의 샌드위치를 금세 해치웠다.
확실히 아까보다 훨씬 더 맛있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주점을 나섰다.
“아까 암흑 지대에서 활동하려면 출입증부터 발급받아야 된다고 하셨죠?”
“아, 맞아요. 제가 위치도 다 알아놨으니 저만 따라오세요.”
배가 부른 유하린은 낭낭한 발걸음으로 선두를 자처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암흑 지대의 코앞에 세워진 ‘관리사무소’였다.
“어서 오세요.”
“출입증 발급 받으려고요.”
“네. 그럼 여기 서류에 이름하고 레벨, 직업이랑 소속 길…… 드?!”
말을 이으려던 마피아 길드원은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 아뇨. 제가 착각했네요. 서류는 작성 안 하셔도 돼요.”
땅땅.
순식간에 출입증 두 장을 건넨 길드원은 기본적인 규칙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우선 암흑 지대 안쪽에서는 무분별한 PK가 금지되어 있어요. 적발되면 저희 길드와 근처 유저들이 힘을 합쳐서 범인을 죽일 겁니다.”
“그건 좋네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희 지역 채널에 가입을 하셔야 해요. 만약 PK범이 나타났거나, 보스 몬스터가 출현했거나. 혹은 고의적 스틸범이 활동하면 채널을 통해 소식을 받으실 수 있어요.”
“지역 채널이라…….”
말 그대로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일종의 채팅 방이었다.
“꼭 대화할 필요는 없죠?”
“네네. 그냥 들어와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시면 바로바로 말씀해 주세요. 저희 마피아 길드에서 성심성의껏 케어하겠습니다.”
“예.”
적당히 채널에 가입한 두 사람은 출입증을 챙겼다.
“아, 그리고 되도록 북쪽으로는 안 가시는 게…… 좋은데 두 분이라면 괜찮을 것 같네요.”
“북쪽은 왜요?”
“암흑 지대의 안쪽으로 갈수록 더 어둡고, 강한 몬스터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보통 캠프를 기준으로 서쪽이나 동쪽으로 탐험을 하는 편이지요.”
“그렇군요.”
“아, 마지막으로 지도 공유 받으세요.”
“지도 공유라니…… 그것도 서비스입니까?”
“어유, 두 분이서 암흑 지대를 탐험해 주시면 저희가 뭔들 못 해드리겠습니까.”
카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서비스가 좋네요.”
“저도 놀랐어요. 왜 이런 곳이 커뮤니티에서 욕을 먹고 있을까요?”
“하, 하하……. 커뮤니티야 없던 말도 지어내는 곳이잖습니까. 그 뭐냐…… 익명성! 익명성 뒤에 숨어서요.”
길드원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주변에서 이를 구경 중이던 유저들이 코웃음을 쳤다.
“흥. 역시 최상위 랭커 정도는 되어야 저 정도 대우를 받는군.”
“그러게. 우린 저거 다 돈 주고 샀는데. 솔로 플레이어는 지도 판매도 거의 강제되고 있고.”
“쯧, 서러워서 살겠나. 사냥이나 가자고. 레벨 높아야 대우 받는 세상이니.”
주변 유저들의 투덜거림을 듣던 두 사람은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하지만 딱히 돌려줄 반응은 없었다.
두 사람도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무수한 노력을 기울였으니까.
“그럼 가죠.”
카이는 유하린과 함께 암흑 지대로 들어섰다.
지도에 표시된 방향은 N, 북쪽이었다.
***
“예상대로 어둡네요.”
“앗, 왼쪽에 계셨구나.”
암흑 지대는 말 그대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장소였다.
마치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찾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띠링!
[해당 지역에 햇빛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양의 신체 효과가 사라집니다.]
태양이 떠있을 때 모든 능력을 20%나 상승시켜 주는 패시브 스킬.
태양의 신체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밖은 분명히 낮일 텐데…….’
카이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머리 위의 나뭇잎들이 햇빛을 가렸기에 스킬의 발동 조건이 취소된 것 같았다.
“흠. 하린 님.”
“네?”
“잠시 눈 좀 감아주시겠어요?”
“눈이요?”
어차피 보이는 것도 없는데 눈은 갑자기 왜?
유하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얌전히 눈을 감았다.
“감았어요.”
“네, 그럼…….”
따악! 카이가 가볍게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동시에 신성한 빛이 그의 주변으로 떠올랐다.
길이 보이지 않아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사무소의 마피아 길드원 말이 맞네요. 외곽 쪽보다 북쪽 길이 더 어두운 것 같습니다.”
“어? 혹시 불 키셨어요?”
슬며시 눈을 뜬 유하린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으음. 암흑 지대의 몬스터 중에는 시각이 매우 발달한 몬스터도 있다던데요? 아마 멀리서도 이 빛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녀의 걱정에 카이는 짧게 대꾸했다.
“오면 다 잡으면 되잖아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랭킹 1위와 랭킹 3위의 파티다.
심지어 두 사람 모두 신화 등급의 클래스였다.
‘이 기회에 하린 씨의 실력도 한 번 보자고.’
카이는 예전에 타락의 성지에서 그녀와 함께 손발을 맞춰본 경험이 있었다.
하나 그때는 초보자였고, 지금은 변화의 기사다.
그녀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자신이 다 기대될 정도였다.
“가볼까요?”
“그래요.”
유하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카이의 옆에 나란히 섰다.
“카- 아아아아아악!”
“끄워어-어억!”
그녀의 경고처럼, 신성한 빛을 발견한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법 몰려오는군요.”
전방에 두 마리, 그리고 나무 위를 타고 다니는 몬스터가 한 마리.
총 세 마리의 몬스터, 아니 부나방을 쳐다보던 카이가 중얼거렸다.
“제가 먼저 몸 좀 풀까요?”
“아니요.”
우드득, 우득.
유하린은 유연한 몸을 이리저리 돌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더니, 무기를 꺼내지 않은 채 주먹을 풀었다.
“마지막에 치킨 샌드위치까지 먹어서 그런지 몸이 좀 무거워요. 그러니 저부터 할게요.”
“알겠습니다. 레이디 퍼스트.”
카이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길을 비켜섰다.
동시에 유하린은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킬 사용,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