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60화 (360/441)

# 360

힐통령 360

111. 몬스터 헌터(3)

‘변화? 저게 직업 고유 스킬인가 보네.’

카이는 팔짱을 낀 느긋한 자세로 상황을 쳐다보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불상사가 발생하면 곧장 튀어나갈 생각이었다.

“후우.”

유하린은 천천히 걸어 나가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카이의 신성한 빛이 미처 비춰주지 못한 어둠을 꿰뚫었다.

‘스톤 드레이크, 포이즌 스네이크. 그리고…….’

나뭇잎이 거칠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더해서 나뭇가지가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까지.

나무 위에서 언제고 끼어들 틈만 노리는 와일드 몽키가 만들어낸 소리였다.

“크워어어어어!”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벌써 몇 끼째 식사를 못해 잔뜩 흉폭해진 스톤 드레이크였다.

눈을 제외한 모든 신체가 돌로 이루어져 있기에 근접 클래스의 천적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하나 유하린은 스톤 드레이크를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카오오!”

스스로를 포식자라 생각하는 자신이 무시당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맛있는 인간이 무방비했기 때문일까.

스톤 드레이크는 주저 없이 유하린에게 달려들었다.

“엇…….”

이에 당황한 카이가 튀어나가려 하자, 유하린이 왼손을 뒤로 뻗어 카이를 말렸다.

쩌억-!

동시에 스톤 드레이크가 입을 크게 벌렸다.

유하린의 상체 정도는 한 입에 씹어먹을 정도로 거대한 입이었다.

스톤 드레이크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유하린의 몸에 박히려는 찰나.

콰드드드득!

바닥에서 돌연 기둥이 솟구치며 스톤 드레이크의 턱을 그대로 올려쳤다.

“캬아아아악!”

턱은 모든 생물이 지닌 치명적인 급소 중 하나다.

아무리 물리 방어력이 뛰어난 스톤 드레이크라고 해도, 불시에 이루어진.

그것도 엄청난 크기의 기둥이 턱을 후려치는데 충격이 없을 수는 없었다.

녀석은 머리를 붕붕 휘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설마 변화 스킬의 효과는 지형을 바꾸는 건가?’

카이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유하린의 몸에서 붉은색 아우라가 피어올랐다.

스르릉!

드디어 검을 잡은 유하린의 기도는 평소와는 달리 거칠고, 난폭했다.

그러한 특성은 그녀의 검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서걱! 콰드득!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스톤 드레이크의 몸이 부서져 나갔다.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세련되고 날렵한 검술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검술.

그뿐만이 아니다.

“……화속성.”

마법사들이 파티 사냥에서 가장 각광받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원거리에서 안정적으로 데미지를 넣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속성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 속성만 잘 맞춰도, 몇 배나 되는 데미지를 손쉽게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마검사나 희귀 아이템을 가지지 않은 이상 검으로 속성 공격을 하는 건 무리지.’

때문에 유하린의 화속성 공격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다.

“스킬 사용, 변화.”

그녀가 한 번 더 스킬을 사용했다.

이유는 뒤이어 도착한 포이즌 스네이크가, 독연을 내뿜었기 때문이다.

띠링!

[포이즌 마스터 스킬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독에 저항합니다.]

[중독 당하지 않았습니다.]

[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흠.”

카이는 살짝 걱정되는 눈빛으로 그녀를 슬쩍 쳐다보았다.

분석 결과 독의 위험도는 별 다섯 개.

자신은 몰라도 유하린이라면 중독될 시 제법 위험한 독이었다.

허나 그것은 기우였다.

그녀가 쉴 새 없이 뿜어내던 짙은 붉은색 아우라가 갑자기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하앗!”

검술의 스타일도 그에 맞춰 변화했다.

이번엔 바람의 부드러움과 시원함이 느껴지는 검술이었다.

동시에 검을 휘두를 때마다 강력한 검풍이 발생하며 독연을 그대로 흩어버렸다.

‘저게 변화 스킬?’

사용할 때마다 지닌 바 검술의 특성이 변하는 것 같다.

‘확실히 강력한 스킬이네. 특히 게임 센스가 뛰어난 하린 씨에게 어울리는 직업이야.’

저런 식으로 검술을 변화무쌍하게 바꿔버리면,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해질 수 밖에 없다.

‘패턴을 파악 못하는 건 물론이고, 카운터 치기도 힘드니까.’

게다가 그녀가 몇 번이나 변화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변화의 기사는 상성 자체가 없는, 완벽한 무상성의 직업일지도.’

감탄하는 사이에도 유하린의 검술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색이 다양하다. 물론 능력도.’

노란색, 하얀색, 푸른색, 심지어 검은색까지 있었다.

매번 검술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속성 공격까지 가능했다.

“끼이이…… 우끼!”

스톤 드레이크와 포이즌 드레이크가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리자, 와일드 몽키는 나무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그대로 도망치려고 했다.

“안 보내.”

유하린의 날카로운 눈빛이 녀석의 등에 박혔다.

“형상 변환.”

우드드득!

녀석이 매일 같이 타고다니던 나무가 꽈배기처럼 뒤틀리며 녀석을 땅에 처박았다.

“끼이! 우끼이!”

발버둥을 치는 녀석의 심장으로 유하린의 검이 꽂혔다.

‘형상 변환. 이게 처음에 보여줬던 지형을 움직이는 스킬인가?’

변화의 기사, 생각보다 까다롭다.

다양한 검술을 상대해야하는 것은 물론, 주변에 대한 영향력까지 행사할 수 있으니까.

“이제 좀 배가 꺼지는 기분이에요.”

순식간에 상급 몬스터 세 마리를 처치한 유하린이 배를 통통 두드리면서 돌아왔다.

“……농담이시죠? 저희 밥 먹은 지 30분도 안 지났는데요?”

“다, 당연히 농담이죠.”

농담 아닌 것 같은데.

피식 웃음을 터트린 카이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변화의 기사는 이름 그대로 변화무쌍하네요. 상대하는 입장에선 까다롭겠어요.”

“제 생각에도 그래요. 하지만 이 직업의 사기성이 드러나는 부분은…….”

유하린은 말끝을 흐리며 카이를 빤히 쳐다봤다.

“뭐, 나중에 차차 알게 되실 거예요.”

“잠깐만요. 설마 조금 전에 보여준 게 다가 아닙니까?”

그 질문에 유하린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을 안 해줬다.

“말씀드렸잖아요. 차차 알게 되실 거라고.”

대화를 일단락한 유하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대해보니 몬스터들 수준은 별로 안 높은 것 같아요. 그냥 쭉쭉 진행하면 되겠어요.”

“쭉쭉 진행이라…… 그렇죠.”

카이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앞쪽.

그러니까 어둠에 잠겨 있는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변수만 없다면 가능하겠네요.”

***

사냥은 순조로웠다.

어떻게 된 게 초보자 시절 사냥을 하던 것보다 500레벨 넘어서 사냥하는 게 더 편하다.

‘물론 선행 스탯과 목격자 칭호 덕분이겠지.’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카이님은 대단하세요.”

짝짝짝.

카이의 사냥을 지켜보던 유하린이 뒤쪽에서 조용한 박수를 쳤다.

“뭐가요?”

“검술 말이에요. 사실 제 검술 스킬 레벨이 고급 8레벨이거든요. 그런데 검을 다루시는걸 보면 저보다도 더 자연스러워 보이세요.”

“그거야 뭐…… 검술 스킬이 고급 9레벨이니까요.”

“역시 대단하세요.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상황 판단력과 시기적절하게 스킬을 사용하는 방법. 게다가 좋은 눈에 반사신경까지…… 그야말로 기사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셨어요.”

“…….”

그러고 보니 자신의 직업이 사제라는 걸 적어도 그녀에게는 말해야한다.

자신은 그녀의 직업명이나 스킬들의 효과까지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저렇게 말하니까 말을 못 꺼내겠네.’

본인이 사제보다 검술 레벨이 낮다는 걸 알게 되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그에 대한 의문을 뒤로 미룬 카이가 앞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암흑 지대의 중앙 쪽으로 갈수록 몬스터가 강해진다고 했는데, 오히려 별로 없죠?”

“그러게요. 솔직히 이렇게 대화 나눌 시간도 없이 계속 전투가 이어질 거라 생각했거든요.”

카이의 생각도 그녀와 다를 바 없었다.

만약 북쪽 지역이 평소에도 이렇게 널널했다면, 다른 길드들이 진작에 탐사를 하고 남았을 테니까.

“……아무래도 강력한 개체가 있는 것 같아요.”

“강력한 개체요?”

카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네. 야생에서도 강력한 호랑이가 거주하는 지역에는 다른 맹수들이 돌아다니지 못하거든요.”

“음…… 생각해보니 오히려 입구 쪽에 몬스터가 몰려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등 떠밀려 나온 것처럼.”

“제 말이 그거…… 쉿!”

유하린이 말을 하다말고 길다란 검지를 뻗어 제 입술을 가렸다.

카이는 입을 꾹 다물며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끄으르…… 르르.]

그것은 짐승의 구슬픈 울음 소리였다.

마치 동물 병원에 실려간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리기도 했다.

“들으셨어요?”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들었습니다, 어느 방향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리던데요.”

“저쪽 방향이었어요.”

그녀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가봐요. 어쩌면 저희가 얘기하던 포식자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번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선두를 자처한 카이는 조용히 걸음을 내딛으며 그녀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그곳에는 제 가슴 높이까지는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카이는 유하린과 눈빛을 한 번 교환한 뒤, 수풀을 가볍게 걷어냈다.

“흐읍!”

유하린이 숨을 삼켰다.

수풀의 뒤쪽으로 백 마리가 넘어가는 몬스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하세요.’

당황한 유하린을 진정시킨 카이는 몬스터들을 살폈다.

‘저 녀석들, 리자드맨이잖아.’

그것도 마치 블리자드 녀석처럼 비늘이 새카맣다.

‘블리자드 녀석이랑 같은 종족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블리자드는 원래 일반적인 리자드맨 전사였다.

그러다가 뮬딘 교가 주입한 어둠의 정수 때문에 비늘이 검은색으로 바뀐 케이스였다.

‘그럼 저 녀석들은 뭐지……?’

카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녀석들을 살펴봤다.

공교롭게도 녀석들은 모두 상처투성이었다.

“크르으…… 크르…… 크흐륵…….”

개중에서 가장 상태가 심각한 녀석은 간신히 숨만 붙은 채 입에서 피를 토하는 중이었다.

아까 들렸던 울음소리도 녀석의 것인 것 같았다.

심지어 지위가 높은 녀석인지, 녀석의 주변을 다른 리자드맨들이 철통같이 호위하고 있었다.

‘길고 두꺼우면서도 날카로운…… 마치 발톱 같은 것에 꿰뚫린 상처다.’

포식자.

거기까지 생각이미친 카이는 수풀을 그대로 젖히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크, 크르르!”

“캬오오!”

침입자를 발견한 리자드맨들이 무기를 집어 들고 전투적인 자세를 취했다.

허나 카이는 그들의 경계심을 가볍게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강화 소환, 블리자드.”

순식간에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는 블리자드가 눈앞에 소환되었다.

해룡 세트를 입고 있는 녀석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마스터, 이 녀석들은 다 뭡니까.”

“나도 몰라. 지금부터 그걸 알아보려고.”

“그 말씀은……?”

블리자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가서 좀 물어봐. 니들 뭐냐고.”

“알겠습니다.”

말 잘 듣는 블리자드는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끼우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자신을 경계하는 리자드맨들을 보며 당당하게 소리쳤다.

“카르르르!”

2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특급 통역병의 위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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