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61화 (361/441)

# 361

힐통령 361화

111. 몬스터 헌터 (4)

“카르르르.”

“크르르?”

“캬오오.”

“커어워, 크워어.”

대화(?)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블리자드를 경계하던 녀석들도, 일단 대화가 시작되니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잠시 후, 특급 통역사께선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돌아왔다.

뭔가 좀 뿌듯해 보이는 표정을 보니 대화도 잘 끝난 듯하다.

“마스터, 대화가 끝냈습니다.”

“훌륭해. 쟤네가 뭐래?”

“죽기 싫으면 꺼지랍니다.”

“응?”

카이가 눈을 깜빡였다.

“아니, 대화가 잘 되는 것 같더니 왜……?”

“인간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거대합니다. 마스터의 자비로움과 위대함을 몰라보다니, 같은 리자드맨으로써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니, 그럼 돌아올 때의 그 뿌듯한 표정은 뭐였는데?”

“아, 그건…… 일족의 언어를 오랜만에 써본건데 하나도 안 까먹었길래…….”

블리자드가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에 황당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던 카이는 슬쩍 리자드맨들을 쳐다봤다.

놈들의 살벌한 눈빛을 보니, 안 물러나면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룰 것 같다.

물론 그들 입장도 이해는 되었다.

저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일족의 새끼와 암컷들이었으니까.

‘여기선…… 물러나야겠어.’

블리자드 앞에서 리자드맨 학살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카이가 물러나려는 순간.

“끄륵…… 커르륵…….”

“크아아아!”

배에 구멍이 뚫려있던 리자드맨의 상태가 더욱 위독해졌다.

분위기는 급속하게 차가워졌고, 리자드맨들은 안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블리자드가 그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속삭였다.

“아마 저기 쓰러져있는 녀석이 여기 리자드맨 부족의 우두머리일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리자드맨은 강자를 대우하고, 존경합니다. 당연히 호위가 저렇게 많이 붙어 있는 존재는…….”

“일족의 우두머리이다, 이건가.”

하지만 현재 우두머리의 상태는 매우 나빠 보였다.

슬쩍 확인한 녀석은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때문에 카이는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일단 저 녀석부터 살리고 얘기하자.”

“예? 하지만 다가가는 즉시 공격 받으실 겁니다.”

“그럼 죽게 놔둘까?”

“그건…….”

복잡해 보이는 블리자드의 눈빛을 읽은 카이가 그의 가슴을 툭 쳤다.

“난 네 마스터야. 눈빛만 봐도 생각을 알 수 있지.”

“……매번 짐만 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짐은 무슨. 네가 짐이라면 난 백 개라도 달고 다니겠다. 주렁주렁.”

“마스터…….”

감동을 받은 블리자드가 뜨거운 눈빛을 보내왔다.

더 이상 오를 호감도와 충성도도 없건만, 부담스럽게.

카이는 애써 녀석의 시선을 피하며 앞쪽을 바라보았다.

블리자드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녀석이 없었더라도 우두머리는 치료했을 것이다.

‘그야 헬릭 님이랑 약속한 게 있으니까.’

태양의 사제로 전직할 때, 그녀와 약속했다.

스스로 악인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자 약자들의 기둥이 되겠노라고.

울음을 터트리는 새끼들과 녀석들을 부둥켜안고 안심시키는 암컷들은 그에게 약자로 보였다.

“그러니까, 치료해 줄 거야.”

“……아마 반발이 심할 겁니다. 그러니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이 녀석 봐라. 개구리 됐다고 제 올챙이 시절을 다 까먹었네.”

“예?”

난데없는 질책에 블리자드가 당황했다.

이에 카이가 질문했다.

“네가 일족의 전사이던 시절을 생각해봐. 만약 네가 저들의 입장이라면. 무력으로 억압한다고 눈 내려깔고 길 비켜줄래?”

“…….”

그럴 리가.

블리자드는 리자드맨 전사들 중에서도 자존심 하나는 끝내주는 녀석이었다.

실제로 자신의 발목을 붙잡지 않겠다고 혼자 무사 수행까지 떠난 적이 있을 정도니까.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떠한 혜안이라도……?”

“혹시 북풍과 태양이라는 이야기 알아?”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럼 무슨 이야기인지 잘 생각해봐. 참고로 너는 북풍이 되려고 했고, 나는 지금부터 태양이 될 생각이다.”

카이가 다가가자, 예상대로 리자드맨들이 단숨에 무기를 겨누었다.

블리자드가 다가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온도 차이였다.

‘우두머리의 상태가 안 좋아지니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야.’

두 손을 들어 공격 의사가 없음을 밝혔지만, 소용은 없었다.

“크르르, 가르르르.”

“캬악! 크라아악!”

리자드맨 언어는 쥐뿔도 몰랐지만 저게 욕이라는 건 알겠다.

카이는 그들을 진정시켰다.

“괜찮아. 해치지 않아.”

“크라아아아!”

문답무용. 날카로운 창과 곡도가 카이를 향해 쇄도했다.

“감히 누구에게……!”

“카이 님!”

상황을 지켜보던 블리자드와 유하린이 무기를 빼들고 나서려고 하자.

“움직이지 마세요!”

단호하게 소리친 카이는 앞을 바라보며 천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우우우웅.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면서, 저항할 생각마저 흐트러트리는 태양교의 성스러운 기운.

대지를 진동시킬 정도의 방대한 신성력이 순식간에 형상화되며 카이의 전신을 휘감았다.

“……예뻐.”

황금빛 기운을 휘감은 카이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유하린이 상황도 잊은 채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에는 카이가 천계에서 강림한 성자(聖者)처럼 보였다.

멈칫.

실제로 카이를 향하던 공격들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것은 일종의 본능이었다.

이 사람을 공격하면 안 된다는, 리자드맨들의 DNA에 깊게 각인된 일종의 신호.

카이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길을 비켜주면 너희의 우두머리를 치료해주마.”

카이와 유하린이 리자드맨의 언어를 모르듯, 리자드맨들도 인간의 언어를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카이가 휘감은 성스러운 기운을 눈으로 목격하고, 피부로 느끼는 중이었다.

그들은 카이가 불순한 의도를 지니지 않았음을 은연중에 깨달았다.

“…….”

“…….”

결국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 하던 녀석들은, 이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무기를 내리며 길을 비켜주었다.

개중에는 머리를 깊이 숙이는 녀석들도 종종 보였다.

아마 우두머리의 치료를 부탁한다는 뜻이겠지.

‘그 부탁, 내가 들어주마.’

어떠한 방해도 없이 우두머리에게 다가간 카이는 녀석의 옆에 주저앉았다.

가까이서 본 녀석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장기까지 깨끗하게 쓸려나갔다. 말도 못할 고통이겠어.’

이 상황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은 것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이것이 한 무리를 이끄는 자가 짊어진 책임감인가.’

작게 중얼거린 카이는 왼손을 뻗어 연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녀석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말로 못할 고통에 정신을 잃은 리자드맨의 날카로운 손톱이 손등을 파고들었지만, 카이는 내색조차 않고 오른손을 들어 녀석의 배 위에 올렸다.

“햇살의 따스함.”

화아아아악!

카이의 전신을 휘감고있던 신성력이 환하게 빛나며 주변을 대낮처럼 밝게 물들였다.

동시에 리자드맨 우두머리의 뻥 뚫린 복부가 빠른 속도로 치료되기 시작했다.

장기와 뼈가 재생성되고, 살이 돋아나며 그들 사이로 이어진 혈관에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기적 같은 광경을 목도한 리자드맨 호위들은 샛노란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다행이다.’

몬스터라서 혹시 데미지가 들어가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천운이 뒤따랐다.

카이는 리자드맨이 언데드나 악마 족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휴우.”

대상의 상태가 워낙 심각했기 때문에 상당한 신성력을 밀어넣고 나서야 치료가 끝났다.

그 시간은 대략 5분 정도.

“……크륵.”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사경을 헤매던 리자드맨 우두머리가 정신을 차리곤 천천히 눈을 떴다.

녀석은 본능적으로 배를 더듬거리더니, 자신의 큰 눈을 깜빡였다.

죽음의 고통을 겪으며 기억이 날아갔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인간의 손을 멀뚱멀뚱 쳐다보기까지 했다.

상황을 눈치챈 호위가 재빨리 몸을 숙여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캬륵.”

“크라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우두머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허나 카이는 손가락으로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아직 끝난거 아니니까 얌전히 누워있어. 조금 전까지 죽을 뻔했던 녀석이 어딜.”

햇살의 따스함은 대상의 체력을 모두 채워주고, 디버프를 없애준다.

하지만 정신력과 스테미너까지 멀쩡하게 회복시켜주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정신적인 고통과 바닥난 체력은 여전할 거야.’

물론 이에 대한 대책도 존재한다.

카이는 두 손을 합장하며 입을 열었다.

“치유의 대지.”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엄청난 크기의 신성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캬악?!”

“크르륵!”

리자드맨들이 깜짝 놀랐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체력과 스테미너가 회복되자 빠르게 진정했다.

“후우.”

치유의 대지 시전을 끝낸 카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이렇게까지 넓은 범위를 커버하려면, 정신을 꽤 집중해야 시전할 수 있네.’

수백 마리의 리자드맨을 동시에 치료하려니 아무리 카이라도 무빙 캐스팅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새로운 스킬의 효과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패잔병처럼 볼품없던 리자드맨들이 하나같이 부잣집 도련님, 영애들마냥 쌩쌩해졌으니까.

벌떡!

눈을 빛낸 우두머리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카이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띠링!

[다크 리자드맨 일족의 우두머리가 당신에게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다크 리자드맨 일족은 리자드맨의 원류이며, 그에 걸맞는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한낱 몬스터에 불과하지만, 당신은 그들을 환자로 취급하였습니다.]

[대상을 몬스터로 분류할 지 환자로 분류할지는, 누구도 아닌 당신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다크 리자드맨 일족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당신은 다크 리자드맨 우두머리에게 블리자드와 결투할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블리자드가 승리할 시, 그는 새로운 우두머리가 되어 다크 리자드맨 일족을 이끌 것입니다.]

[선행 스탯이 +15만큼 증가합니다.]

“음?”

카이가 눈을 깜빡였다.

단순히 녀석을 치료해주고, 그들을 이 꼴로 만든 존재에 대한 정보만 얻을 생각이었는데?

‘뭐지. 이거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는데.’

카이가 고개를 돌려 블리자드를 쳐다보았다.

녀석도 옛날 생각이 났는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크르르륵.”

우두머리가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알아들을 턱이 없던 카이는 통역병을 향해 손짓했다.

이에 냅다 달려온 블리자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통역을 시작했다.

“우선 일족을 대표하여 감사를 드린답니다. 자신의 이름이 챠-오르라고 합니다.”

“내 이름은 카이라고 전해줘.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물어보고.”

“예.”

블리자드와 챠-오르가 열심히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났습니다.”

블리자드 녀석은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 카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번에도 죽기 싫으면 꺼지라고 말한 건 아니겠지?”

“아니요. 이번엔 정말 평화로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뭐래?”

“우선 이들을 이렇게 만든 존재는 단 한 명의 인간이라고 합니다.”

“음? 인간이라고?”

카이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그가 파악하기로 챠-오르의 배에 난 상처는 분명 거대한 발톱이 꿰뚫은 흔적이었다.

“예. 그것도 보통 인간이 아니랍니다. 이 지대에 위치한 거대한 사원을 드나드는…… 어둠의 힘을 다루는 인간이라고 합니다.”

“잠깐만. 거대한 사원이라니?”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사원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항상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에 접근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카이가 고개를 돌려 유하린을 쳐다보았다.

카이와 유하린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암흑 지대에 위치한 뮬딘 교의 거점.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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