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62화 (362/441)

# 362

힐통령 362화

112. 파멸의 기사(1)

근육질의 남성이 횃불이 일렁거리는 복도를 지나 꿉꿉한 냄새가 풍기는 방에 들어섰다.

“젠장, 시설하고는…….”

들어오자마자 불평을 쏟아낸 남자는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이에게 말했다.

“준비는 거의 끝나간다. 사원 주변의 몬스터들을 감옥에 가둬놨어.”

“잘했군.”

“……잘했군?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혹시 날 네 따까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근육남이 으르렁거리자, 책을 읽고 있던 남자는 이를 탁 소리 나게 덮으며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누가 감히 뮬딘 교의 신화 등급 플레이어를 무시하겠나.”

“흥. 항상 말은 번지르르하군. 누군 바빠 죽겠는데 앉아서 책이나 읽고 있으니 한 소리다.”

최근 암흑 지대의 몬스터를 포획하느라 바빴던 골리앗은 신경이 예민한 상태였다.

당연히 방에서 한가롭게 책이나 읽는 스팅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물론 스팅은 그러한 골리앗의 생각을 일찌감치 알아챈 상태였다.

“앉아서 책만 읽었다니, 너무하는군. 나도 나름대로 바빴는데.”

“바빠? 그럼 뭐가 그리 바쁘셨는지 이야기나 들어보지.”

골리앗이 의자 하나를 땡겨 거칠게 앉으며 물었다.

이에 스팅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른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우선 바깥에서 활동하는 마왕 추종자들. 그들을 이용해 소문을 퍼트렸다.”

“소문?”

“그래. 암흑 지대에 메인 퀘스트의 새로운 단서가 있다는 제법 신빙성 높은 소문이지. 이것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각 왕국의 지위가 높은 이들까지 움직였다.”

“……그럼 최근 최상위 랭커와 8대 길드 녀석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

“뭐, 전부 내 덕이라고 말하지는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있겠지.”

“설마 우리가 준비 중인 일에 대한 정보를 모두 뿌린 건 아니겠지?”

골리앗의 물음에 스팅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하지만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 하는 법. 거짓과 진실을 교묘하게 섞어놨으니 그들 입장에선 미끼를 물 수밖에 없었을 거다.”

“약은 녀석. 아무튼 덕분에 마피아 녀석들만 살판났겠군.”

“문제가 되나? 어차피 그들을 포함해 암흑 지대에 몰려든 이들은 모두 제물일 뿐인데.”

“그야 그렇지만…… 네 계획은 정말 가능성이 높은 것 맞나?”

“물론이다. 실제로 아트록 추기경도 이 계획이 마음에 들었기에, 지르칸과 접촉하여 공동 전선을 펼친 것이지.”

“흠…….”

침음을 삼킨 골리앗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슬슬 계획을 시작해도 되는 것 아닌가? 몬스터들도 충분히 포획했으니, 랭커들만 싹 다 죽이면…….”

“미안하지만 아직 몬스터가 부족하다. 저번에 말했던 다크 리자드맨 일족은 어떻게 됐지?”

“놓쳤다. 하지만 마지막에 큰 걸 한 방 먹여줬으니 우두머리는 죽었겠지. 암흑 기사들을 풀었으니 머리를 잃은 녀석들을 포획하는 건 큰 문제가 없을 거야.”

“그건 좋은 소식이군. 그럼 네 말처럼 슬슬 랭커들을 정리하는 게 좋겠는데.”

“미안하지만 그건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

“물론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팅이 입가로 진한 미소를 띠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겠군.”

***

“몬스터들을 포획해간다고?”다크 리자드맨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유하린을 쳐다보던 카이가 블리자드에게 물었다.

“예. 포획된 몬스터들은 암흑 지대 중앙의 사원. 그곳으로 끌려간다고 합니다.”

“뭐, 새삼스럽지도 않네. 또 이상한 실험을 하려는 거겠지. 어둠의 정수를 이용해서.”

그들이 만들어낸 아오사나 할리, 혹은 블리자드 같은 경우를 떠올린 카이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이상합니다. 실험을 하는데 몬스터가 수천 마리나 필요할까요?”

“나야 모르지. 하지만 실험이 아니라면 뮬딘 교가 몬스터를 포획해 갈 이유가 없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블리자드가 불안해하는 모습에 카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녀석 감은 유난히 좋은 편인데. 이렇게까지 불안해하니 나까지 걱정이 되네.’

그가 걱정 어린 표정을 짓자 유하린이 다가오며 물었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이세요. 무슨 일 있나요?”

“아닙니다. 그냥 뮬딘 교가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나 걱정이 되어서요.”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그들이 뭘 꾸미고 있든, 그걸 저지하기 위해 저희가 온 거니까요.”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예쁜 웃음을 피운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카이님도 식사 안 하셨죠? 이건 요즘 최고로 인기 있는 도시락인데 좀 드셔보세요.”

“요즘은 식량이 이렇게 도시락으로도 나옵니까?”

“네. 유통 기한도 제법 길고 맛있어요. 맛도 다양해서 좋구요.”

먹을 것에 대해선 빠삭한 그녀와 함께 자리에 앉은 카이는 도시락을 까먹었다.

“오, 맛있네요.”

“그렇죠?”

뿌듯한 웃음을 흘리던 유하린이 물었다.

“그런데 이제 저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다크 리자드맨들이요?”

“네. 저희가 계속 데리고 다닐 수도 없잖아요.”

“그건…… 그렇죠.”

자신과 유하린은 지금부터 암흑 지대에 위치한 사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당연히 다크 리자드맨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길이었다.

‘보호하면서 움직이기에는 수가 너무 많아.’

게다가 수백 마리가 넘는 이들을 주렁주렁 데리고 다니면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카이가 중얼거리자, 어느새 세 번째 도시락의 포장을 벗기던 유하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근처에 천화 길드가 있던데. 그들에게 한 번 도움을 요청해 보는 건 어떨까요?”

“천화 길드요? 음…….”

확실히 카이와 유하린.

두 사람 모두 천화 길드와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우호에 가까운 수준.

‘하지만 그들도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 중이겠지.’

이렇게 개인적인 일로 폐를 끼치기는 싫었다.

게다가 한 가지 부탁을 하게 되면, 훗날 그들의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한다.

이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인 법이니까.

그런 부담감이 싫었던 카이가 끙끙 앓는 사이.

세 번째 도시락까지 싹싹 긁어서 클리어한 유하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왜 그러세요?”

카이의 질문에 유하린이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며 대꾸했다.

“지역 채널 채팅 알림 진동으로 켜놨거든요. 갑자기 울려서요.”

“아, 전 그거 꺼놨는데.”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소식을 듣자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래요?”

“어…….”

채팅을 읽던 유하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묘한 반응을 쳐다보던 카이는 재차 묻지 않고, 그냥 자신도 채팅창을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급한 외침이었다.

[동쪽 뮬딘 교 암흑 기사단 출현, 지원 바람. 좌표는…….]

[뭐? 뮬딘 교라고?]

[메인 퀘스트 떡밥 찌라시가 한 번 돌기는 했는데…… 그게 진짜였나?]

“……뮬딘 교.”

얌전히 사원에 숨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이 기사단을 이끌고 나왔다?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던 카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채팅을 계속 읽어나갔다.

[가만, 발신인이 워리어스 쪽이네?]

[그러게. 저번에 한 번 도움 받은 적 있는데…….]

[씁. 그런데 이쪽에서 동쪽까지 지원 가려면 시간 좀 걸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지만, 최상위 랭커들끼리는 결국 알음알음 알게 되는 법이다.

결국 그 바닥이 그 바닥인 셈이니까.

특히나 워리어스는 세계 8대 길드 중에서 신사적인 이미지로 인기가 많은 곳.

당연히 위험천만한 암흑 지대에서 워리어스의 도움을 받은 이들은 제법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워리어스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근처에 없다.’

그것은 카이의 눈에 거대한 기회처럼 보였다.

“하린 씨.”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이름을 강하게 불렀다.

“네, 네?”

예상치 못한 박력에 압도된 유하린이 더듬거리며 대꾸했다.

“함께 여기 좀 가시죠.”

“여기라면…… 혹시 동쪽의 워리어스 쪽 말인가요?”

“예. 그들을 도와준 뒤. 상황을 설명하고 사원 공략에 보탬이 되도록 만드는게 나을 것 같아요. 저희가 사원 쪽으로 다가갈수록, 이곳에 숨어 있는 리자드맨들은 안전해질테니까요.”

“리자드맨들을 이곳에 두고 움직여도 괜찮을까요? 안전한 장소까지는 데려다주는 편이…….”

“상황이 바뀌었잖아요. 이 난장판 속에 안전한 장소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러네요.”

뮬딘 교의 군세가 활개를 치고 있고, 몬스터들은 외곽으로 몰린 상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둘을 상대할 유저들까지 우르르 몰려다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비교적 안전한 이곳에 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적어도 움직이다가 플레이어와 마주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블리자드 녀석을 두고가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구요.”

현재 블리자드 녀석은 랭커를 아우르는 실력은 물론, 유저들과 대화까지 할 수 있다.

“여차하면 내 이름 팔아. 건드리면 나를 적으로 돌리게 될 거라고.”

“명심하겠습니다, 마스터.”

블리자드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서둘러야 할 겁니다.”

카이가 동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누구보다 빨리 도착해야 하니까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래야 워리어스가 느낄 고마움이 더욱 커질 테니까.

***

“좌측에서 새로운 암흑 기사들이 나타났습니다.”

“뒤쪽도 막혔습니다! 이 새끼들, 제대로 판을 짠 모양입니다!”

“젠장, 대체 언제부터 설계가 들어간 거야!”

“으음…….”

워리어스의 발칸은 미간을 찌푸리며 침음을 삼켰다.

‘암흑 지대에 다음 메인 퀘스트의 단서가 있다는 정보는 진작 얻었다.’

바로 워리어스 길드 정보부의 견해였다.

발칸은 그 보고를 받는 즉시 길드 내부에서 인재를 뽑아 최정예 부대를 꾸렸다.

암흑 지대 같은 장소에서는 대군을 이끄는 것보다, 소규모 스쿼드가 더 효율적이었으니까.

‘모두 순조로웠다. 대체 언제부터?’

사냥 당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암흑 지대에서의 사냥은 지루할 정도였다.

워리어스의 최정예 부대 앞에서 몬스터들은 맥을 추리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보니, 전후좌우 가득 뮬딘 교의 기사단이 들어선 상태였다.

황급히 정신을 차린 발칸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암흑 기사들의 수는?”

“전 방향 다 합치면 못해도 사백은 넘을 것 같습니다.”

“사백이라…….”

자신이 이끄는 50명의 길드원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격차다.

‘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

길드에서 고르고 고른 최정예들이다.

적어도 암흑 기사들보다는 무조건 강할 것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발칸은 지금이야말로 평소에 뿌려놓은 씨앗이 발화할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워리어스가 암흑 지대에서 목숨을 구해준 유저들만 두 자릿수였으니까.

실제로 지역 채널에선 잡던 사냥감도 내팽개치고 달려간다는 채팅들이 제법 달렸다.

“……지원은 온다.”

스르릉.

발칸이 검을 뽑자, 그의 주변을 보호하고 있던 길드원들이 제각각 무기를 뽑으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러니 그때까지 죽지 말고 싸워라!”

“예!”

“우리가 왜 워리어스인지 보여줍시다!”

“오히려 눈앞에 나타나주니 좋군요. 다 잡으면 메인 퀘스트 단서 하나는 떨어지겠지!”

아군의 사기를 북돋은 발칸은 뒤에 숨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먼저 달려 나가며 암흑 기사 하나의 목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촤아아악!

뿜어져 나오는 피를 뒤집어쓴 발칸은 검을 몰아쳐 암흑 기사를 빠르게 마무리했다.

‘역시. 암흑 기사들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가능해.’

암흑 기사들의 평균 레벨은 400 정도.

고급 장비와 스킬을 두르고 있는 길드원들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만한 수준이었다.

‘가능하다.’

질풍처럼 움직인 발칸의 검은 자비도 모른 채 암흑 기사들을 짚단처럼 베어 넘겼다.

‘가능해.’

그의 생각이 점점 확고해지려던 찰나.

뒷쪽에서 별안간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이건…… 로이스의 목소리?”

부하의 비명에 발칸이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그의 눈이 부릅뜨여졌다.

“이게 무슨…….”

콰과과과과과과!

한 명의 거한이 손을 휘두를 때마다, 길드원들은 속수무책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것만 해도 놀랄 일이었지만, 더 큰 놀라움은 바로 도살자의 정체였다.

“너는…….”

이제는 사라진 타이탄 길드의 마스터, 골리앗.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그가 돌아왔다.

“혈색이 좋은 걸 보니, 그동안 잘 지냈나 보군.”

그것도 예전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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