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69화 (369/441)

# 369

힐통령 369화

113. 신세계(4)

흑룡, 소속 길드원만 2,200만 명을 거느린 초거대 길드.

명실상부 미드 온라인 최대 규모인 흑룡의 길드 하우스는 ‘하우스’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로 거대했다.

왜냐하면 쟈오 린은 기존의 길드 하우스를 허물고, 2천 평의 토지를 구입해 중국식 궁을 새로 세웠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흑룡이 자랑하는 용궁(龍宮).

방송에도 몇 번이나 소개된 적이 있는 흑룡 길드의 하우스였다.

“다 모였나 보군.”

평소에는 시끌벅적한 용궁은 침묵에 젖어있었고, 회의실에는 수백의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쟈오 린이 간부들을 모두 소환해 회의를 연 것이다.

붉은 융단이 깔려있는 대전, 황금색 용이 각인된 옥좌 위에 앉아 있던 쟈오 린이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지.”

그 명령과 함께 고개를 조아린 간부들이 하나둘 물어온 정보들을 풀기 시작했다.

“카이의 실종은 그 어떤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는 것이 현재 정론입니다.”

“정보 길드에 수천 골드씩 뿌려 몇 번이나 검증을 한 사실이니 확실합니다.”

“페가수스 사에 문의해본 결과, 유저가 의도적으로 랭킹표에서 이름을 숨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흐음.”

자신이 원하는 답들만 연이어 들려오자 쟈오 린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간부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라시온 침공에 대한 그대들의 생각은 어떻지?”

용주의 질문에 간부들이 저마다 대답을 쏟아냈다.

“모든 신호가 청색을 가리키고 있습니다만…… 시기가 너무나 공교롭습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라시온 북부 섬멸전을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미끼다?”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하지만 카이와 유하린의 이름이 랭킹에서 사라진 것은 분명한 사실. 조금 더 기다리셨다가 그들이 사라진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움직이셔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리벤지 길드에서도 무언가를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일이 끝나면 연락을 준다고 하였으니, 그들을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또 기다림인가…… 그대들은 항상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 같군.”

톡톡.

손가락으로 옥좌의 팔걸이를 규칙적으로 두드리던 쟈오 린이 한쪽 팔로 제 턱을 짚었다.

그가 한참이나 생각을 이어가자, 간부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흠, 정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쟈오 린이 말문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기다림이란 예로부터 승자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었다. 하나 나는 기다림이 과해져 아군이 겁쟁이 무리가 되는 것이 두렵구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대흑룡의 둥지는 겁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저흰 언제라도 무기를 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간부들의 반박에 쟈오 린이 입 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그렇다면 문제없겠군. 길드원들의 레벨링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돈을 풀어 장비와 군량을 모아라. 앞으로 한 달간 상황을 지켜본 뒤, 그 때까지 이변이 없다면 진격하겠다.”

그 갑작스러운 선언에 간부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내색하는 이는 없었다.

“충!”

그저 고개를 조아릴 뿐.

***

“오늘 배울 내용은 어찌하여 태양교가 대륙의 제일교가 되었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와…….”

돋보기안경을 쓴 알버트가 강단에 서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는 수백의 학생들은 그의 말을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헬릭과 라샤라고 다르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으라는 카이의 말을 잘 듣는 두 소녀는 매 수업에 집중했고, 덕분에 성적도 최상위권이었다.

특히 신학에 대해선 헬릭과 라샤의 방대한 지식을 따라잡을 이가 없었다.

“앗.”

“어머.”

어느 때와 같이 수업을 잘 듣고 있던 헬릭과 라샤가 동시에 짧은 탄식을 터트렸다.

그러자 학생들의 시선이 그녀들에게 향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니?”

알버트의 물음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인자하게 웃은 알버트는 그녀들이 수업을 방해한 것을 너그러이 봐주었다.

“집중하려무나.”

짤막한 말과 함께 다시 강연에 들어간 알버트의 등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봤다.

‘라샤, 방금 그건…….’

‘너도 느꼈어?’

각각 카이, 유하린과 연결되어 있던 희미한 선이 끊어졌다.

그것은 신과 대리자 사이에 존재하는 어떠한 유대이자, 신성력으로 이어진 끈이었다.

동시에 두 사람의 낯빛이 딱딱해졌다.

언제 어디서도 느낄 수 있는 대리자의 기운이 사라졌다는 것은 단 한 가지를 의미했다.

천계, 인간계와는 채널 자체가 다른 곳, 바로 마계에 입성했을 경우이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 어떡하지? 하린 님은 아직 마계에서 활동하기에는 너무 연약한데…….’

라샤가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자, 헬릭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안심하거라, 카이는 고작 마계에서 죽을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라.’

물론 그것도 조우하는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헬릭은 굳이 뒷말을 내뱉지 않았다.

‘……무사히 돌아오거라.’

떨고 있는 라샤 앞에선 차마 보일 수 없는 속마음이었으니까.

***

“으음.”

카이는 척박한 땅을 둘러보며 침음을 삼켰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적색의 땅과 잿빛 하늘뿐이었다.

“마계라니…… 스팅은 무슨 악마라도 소환하려고 했던 걸까요?”

“아마도요. 다만 저희 때문에 뭔가 일이 틀어진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무려 마계로 끌려왔다.

‘좋지 않은데.’

헬릭에게 마계의 위험성에 대해 몇 번이나 들었던 카이가 다시 한 번 미간을 찌푸렸다.

“그, 혹시 신출귀몰은 사용하실 수 없나요?”

유하린이 슬쩍 던진 질문에 카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게…….”

띠링!

[신출귀몰 스킬을 사용하려면 30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강림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신벌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카이가 지닌 몇 가지 스킬에 제약이 걸렸다.

신출귀몰 스킬을 통해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30일의 사용 제한이 걸렸고.

가장 중요한 강림 스킬은 아예 사용 불가능 판정을 받았다.

‘음. 체란티아와 시미즈, 패트릭의 영혼이 마계에 오지 못해서인가.’

이래저래 골치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후우, 짧은 한숨을 내쉰 카이는 우선해야 할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나갔다.

‘칭호 확인.’

[마계를 발견한 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마계를 최초로 발견한 자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마계에서의 모든 능력이 +50%(이 효과는 칭호를 장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흠. 이건 제법…….”

운이 좋다.

척박한 땅에 떨어져 강림 스킬도 사용하지 못하는 카이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칭호였다.

“와아.”

옆에서 유하린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카이 님, 스페셜 칭호 효과 보셨어요? 마계에서 모든 능력치가 15%나 증가해요!”

“……축하드립니다.”

딱히 해줄 말이 없던 카이는 어색한 미소를 띠며 축하를 건넸다.

“그것보다 먼저, 우선 30일 동안은 마계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으니 연락을 좀 돌려놓겠습니다.”

“연락이요? 누구에게요?”

유하린의 질문에 카이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 제 영지를 지켜줄 이들에게요.”

인간계와의 메시지창은 먹통인 상태였기에, 카이는 인터넷 창을 열어 미네르바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것으로 당분간 안심이겠지.’

성혈단과 프레이 길드, 그리고 적색여명회가 철벽처럼 지키는 자신의 영지는 안전할 것이다.

물론 그 안전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자.’

계획을 세운 카이는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535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243,700

신성력 : 416,000

힘 : 3,312 체력 : 2,437

지능 : 2,929 민첩 : 1,767

신성 : 4,160 위엄 : 1,579

남은 스탯 : 55

선행 : 709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101.5%

자연친화력 +200

암흑 지대에서 골리앗을 잡아 2레벨이 올랐고, 뮬딘 교 군대를 상대하며 또 2레벨이 올랐다.

게다가 마계에 입장하며 상승한 7레벨까지.

535레벨을 기록한 카이는 남은 스탯을 어디에 배분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우선 더 이상 신성력을 올리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현재 자신의 스탯 중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했고, 지금만 해도 충분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최근 중력장의 쓰임새가 쏠쏠하니 지능에 조금 더 투자를 해야겠다.’

카이는 지능에 30스탯을, 체력에 25스탯을 투자했다.

지능 : 3,049 체력 : 2,537

목격자 칭호로 또 뻥튀기가 된 스탯들을 바라보던 카이가 그제야 유하린을 쳐다봤다.

“……하린 씨? 지금 뭐하세요?”

그녀는 큰 눈을 예쁘게 깜빡거리며 허공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카이 님. 혹시 랭킹표 보셨어요?”

“랭킹표요? 갑자기 왜요?”

“일단 한 번 보세요.”

카이는 그녀의 요청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랭킹표를 열었다.

[마계 랭킹]

1. 유하린 (0)

1. 카이 (0)

“어? 랭킹이 왜…….”

“아무래도 마계에서는 랭킹이 따로 잡히는 것 같아요. 저희 지금 공동 1위예요.”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름 옆 괄호 안의 숫자는 아무래도…….”

“이곳에서 잡은 악마와 관련이 있는 숫자 아닐까요?”

“역시 그렇겠죠?”

그녀와 생각이 일치했다.

“신출귀몰의 사용이 풀릴 때까지 앞으로 30일. 그동안 싸움을 계속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더 두근거리지 않으세요?”

“뭐가 말입니까?”

카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갑자기 두근거림이라니?

“저희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십억이 넘는 유저 중에서 저희 두 사람만이 탐험할 수 있는 지역이잖아요. 마계.”

“……생각해 보니 그건 그러네요.”

카이는 그녀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감탄했다.

“그리고 이미 구현된 지역이니 NPC나 퀘스트도 있지 않겠어요?”

“퀘스트라…….”

사고방식을 아주 조금 비틀었을 뿐인데, 카이는 유하린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린 씨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조금 두근거리긴 해.’

결국 두 사람은 게이머.

남들이 가지 않은 지도에 발자국을 남기고, 퀘스트를 깨며, 새로운 몬스터를 잡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마계라는 새로운 지역이 어떤 매력을 품고 있을 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 상에서 오직 그녀와 자신뿐이다.

“게다가 집 주인들은 저희를 편하게 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요?”

유하린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인간계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의 몬스터들로, 하나같이 강력해 보였다.

카이 또한 그들을 눈에 담으며 몸을 풀었다.

“예전에 헬릭 님에게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마족과 비교한다면 제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고.”

“뭐라고 하시던가요?”

“제 수준으로는 죽기 딱 좋으니 마계 쪽으로는 관심도 갖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헉. 그럼 어떻게 해요.”

설마 마계의 존재들이 그토록 강한 줄은 몰랐던 유하린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이에 카이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우우웅.

카이는 제 앞에 소환된 성스러운 검을 꽈악 쥐며 말을 끝맺었다.

“그게 벌써 석 달 전의 이야기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