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2
힐통령 372화
114. 광산(3)
“헐, 삼십 년 동안 일하셨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허허. 노예 생활 오래한 게 뭐 자랑이라고…….”
이라는 그 나이 때 아이가 으레 그렇듯, 궁금한 것이 참 많은 소녀였다.
덱스는 자신과 그녀가 만난 것이 일종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삼십 년이나 근무한 자신밖에 없을 테니까.
“아아, 그럼 할아버지도 아프시기 전까지는 광산의 에이스셨구나.”
“에이스까지는 아니었지만…… 손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수확량이 제법이었지.”
덱스가 오랜 시간 곡괭이를 쥐어온 탓에, 덜덜 떨리는 손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도움을 받은 녀석들도 제법 많았단다.”
“……그러면 뭐해요. 보상 한 마디에 싹 돌변하던데.”
“껄껄. 원래 그게 맞는 거지. 우린 악마니까.”
덱스는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손녀처럼 살갑게 구는 이라가 싫지 않았다.
아니, 죽기 전에 그녀와 만났다는 사실에 순수히 감사했다.
‘나 같은 악마가 또 있다니, 신기하군.’
홀로 태어나 고독하게 죽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악마답지 않게 너무 정이 많다는 점.
그것이 바로 덱스가 이 사회에서 도태된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수십 년 동안 노예처럼 부려지는 거겠지.’
악마들에게 불량품이라는 낙인이 찍힌 덱스였지만, 후회는 없었다.
어차피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달라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도 후회하지 않으세요?”
“음?”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읽은 듯한 질문이었다.
“후회라니?”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만약 할아버지가 강한 악마가 되었다면, 이렇게 아플 이유도 없고,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었잖아요.”
“하하…….”
물론 그런 생각을 안 해봤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론은 늘 한결같았다.
“나는 자신이 없단다.”
“무슨 자신요?”
“난 동료의 심장을 뜯어먹을 정도로 잔혹하지도 못하고, 마신의 축복을 타고나서 재능이 넘치지도 않는단다. 그런 내가 어떻게 강해지겠니.”
마계에서 악마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마정석을 섭취하는 것이다.
그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보유한 마기의 상승을 꾀할 수 있었다.
물론 보유한 마기가 많다는 것이 절대적인 강함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두 번째 방법은 바로 다른 악마를 무릎 꿇리고, 그들의 심장을 먹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마정석보다 섭취할 수 있는 마기의 기운이 훨씬 더 정순했다.
더군다나 다른 악마가 심장을 순순히 내줄 리 없기에, 반드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이 잔혹한 과정을 수십 년 동안 거친 이들은 누구나 알아주는 대악마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은 바로 타고나는 것이었다.
마신의 축복을 받은 악마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꾸준히 강해진다.
그들은 특유의 호흡법을 통해 대기에 떠돌아다니는 마기를 체내에 축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숨만 쉬어도 강해지는 존재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현재는 네 명의 대공과 앙골모아 마왕만이 이러한 재능을 타고났다고 한다.
덱스처럼 최하급 판정을 받은 악마에겐 하나 같이 불가능한 일들뿐이었다.
“흐음. 후회는 없으시다는 말이군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사라지는 게 욕심이더구나.”
“……그건 정말 이상하네요.”
혼자 중얼거리던 이라는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런데 아까 관리자가 그랬잖아요. 이번 달 수확량이 높은 상위 세 명에게 마정석을 주겠다고.”
“그러셨지.”
“정말로 줄까요?”
“주겠지.”
덱스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사실 여기 7광산에서 근무하는 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어떤 점에서요?”
“내가 알기로는 이 광산의 크기부터가 마계를 통틀어 70위 안에는 든다고 알고 있다.”
“와. 정말인가요?”
“그래. 때문에 다른 곳보다 수확량도 좋은 편이고 대우도 괜찮은 편이지.”
“하루에 네 시간도 채 못 주무신다면서요.”
“이라야. 바닥 밑에는 지하가 있는 법이다.”
쓴웃음을 지은 덱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잠깐 근무했던 제23 광산은 더욱 끔찍했다. 잠은 두 시간도 채 자질 못했고, 지반도 약해서 갱도가 무너지기 일쑤였지. 그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어.”
“…….”
“너의 눈엔 한심하게 보이겠구나…… 미안하단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라가 냉큼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잖아요. 정작 나쁜 건 대악마들이지. 안 그래요?”
“그, 그런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니면 안 된다.”
덱스가 쩔쩔매며 잔소리를 하자, 이라가 싱긋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 광산에는 모범 광부 제도라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뭔가요?”
“아, 그거…….”
덱스의 얼굴 한편에 짧은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이 광산에서 수십 년을 일하면서, 마음 한구석으로 늘 바라왔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광산의 사정이 좋다는 건 그 제도 때문이기도 하지, 감독관들의 평가 아래 근면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수확량도 좋은 광부를 반년에 한 명씩 뽑아 풀어주는 제도란다.”
“풀어준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하는 일만 광부지. 우린 여기서 쓰레기이자 노예로 불린다. 그 밑바닥 신분에서 벗어나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그것이 바로 모범 광부 제도다.”
“정말로 모범 광부가 되면 광산 일에서 해방되나요? 그걸 보셨어요?”
“물론이지.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하라고 소정의 식량이나 옷 등을 나눠주기도 하더군. 이곳에서 근무하는 모든 광부들의 꿈이지만…… 반 년에 한 명. 일 년을 꽉 채워도 고작 두 명밖에 가질 수 없는 기회지.”
덱스 또한 모범 광부를 노리고 미친 듯이 마정석을 캐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광부의 수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기에, 경쟁률은 거의 1/4000에 해당했었다.
“나는 이미 물 건너갔지만, 이라 너는 모범 광부를 노리고 열심히 해보거라.”
“……네, 그럴게요.”
고개를 끄덕인 이라는 남들 몰래 자신의 수확량 중 일부를 덱스에게 몰래 건넸다.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 하지만 염치없이 매일 이렇게 받아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구나.”
덱스가 복잡한 눈빛으로 이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최근들어 그의 목숨을 연장시켜 주는 것은 이라 한 사람이라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웬만한 성인 남성 세 명 몫을 거뜬히 해냈다.
딱히 손이 빠른 것도 아닌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대충 곡괭이를 휘두르는 장소에선 마정석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에요. 오히려 해주시는 말씀들이 다 도움이 되는 말들뿐이라 제가 더 고맙지요.”
악마답지 않은 그녀의 고운 말에 덱스는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울렸다.
‘이런 녀석에게 힘이 주어진다면…… 마계도 조금 더 살기 좋아질 텐데.’
이루어질 리 없는 바람을 가볍게 삼킨 덱스에게, 이라가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아참, 그리고 근처에 해방군이 돌아다닌다는 소식도 들리던데. 사실일까요?”
“헉.”
해방군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덱스가 서둘러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린 그는 듣는 이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다시는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지 말거라.”
“왜요?”
“감독관…… 아니, 다른 광부들의 귀에라도 들어가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단다.”
그 말에 이라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감독관은 몰라도…… 광부들은 해방군을 좋아하지 않나요?”
“글쎄. 싫어한다 좋아한다를 굳이 나누라고 하면 후자겠지만…… 그들은 우리들에게 있어 뜬구름 같은 존재지.”
덱스가 쥐고 있던 곡괭이를 내려보았다.
“이라야. 악마들은 말이다. 특히나 나약한 악마들은…… 헛된 희망보다는 가까이 있는 주먹과 폭력을 더욱 두려워하는 법이다.”
“헛된 희망인가요…….”
“물론 간간이 소식은 들리더구나. 해방군이 광산 몇 개를 해방시켰네, 그곳의 광부들은 전부 자유로운 몸이 되어 해방군이 꾸리는 마을로 숨어들었네…… 하지만 과연 그런 행운이 우리에게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니?”
“뭐, 올 수도 있지 않겠어요? 어쩌면 이미 광산에 와있을 수도 있잖아요.”
덱스는 이라의 긍정적인 생각에 일부러 반박하지 않았다.
꽃다운 나이의 소녀가 품은 환상을 꺾기는 싫었으니까.
“아참, 그런데 저번 달의 광석 수확량이 9광산과 비슷하다고 하던데, 왜 그런 걸까요?”
“글쎄, 관리자나 감독관이 다른 주머니라도 찼겠지.”
덱스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이라의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바빴다.
***
까앙, 까앙!
산을 타고 이동하던 카이와 유하린의 눈빛이 돌변했다.
메마른 정적만이 울려 퍼지던 마계에서, 처음으로 인위적인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쳐다본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척을 죽였다.
커다란 바위 뒤에 숨어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본 유하린이 조용히 물었다.
“저기가 악마들의 마을일까요?”
“음.”
장소를 탐색하는 카이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무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악마들, 산 내부로 연결된 여러 개의 입구와 레일. 그 위로 오가는 수레들이라면…….’
떠오르는 장소는 하나뿐.
“아뇨, 마을보다는 광산일 것 같습니다.”
“광산이요? 아!”
유하린이 눈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보니 맞는 것 같아요. 그럼 저 수레들에 들어 있는 돌들을 캐내는 게 목적이겠네요.”
레일 위의 수레에는 보라색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다양한 크기의 광석이 들어 있었다.
“……마기가 담겨 있는 광석이네요.”
“마기요?”
“네.”
카이가 단언했다.
이미 스팅을 비롯해 그가 부리던 언데드들도 상대해본 경험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음.”
잠시 고민을 하던 카이가 입을 열었다.
“광산에서 광석을 캐면, 반드시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장소가 있을 겁니다.”
“그곳이 마을이겠네요.”
“그렇겠죠. 그럼 이제 마을의 위치를 알아내야 하는데…… 저 악마들이 대화가 통하는 존재들일지는 모르겠군요.”
“생긴 건 사람처럼 보여요.”
“……흠, 그럼 제가 한 번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카이의 돌발 선언에 유하린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직접 가시게요?”
“예.”
“아, 안 돼요.”
유하린이 잔뜩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말렸다.
“하린 씨…….”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빤히 알고 있던 카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차해서 일이 수틀리더라도, 하린 씨 몫은 남겨놓겠습니다.”
“……정말요?”
“네.”
“그 약속 꼭 지켜주셔야 해요. 저도 크리스 씨와 격차 좀 벌려놓고 싶단 말이에요.”
“아이고, 알겠습니다. 꼭 남겨드릴게요.”
만약 악마들이 들었다면 몸서리를 쳤을 거래를 마친 카이는 광산의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저…… 혹시.”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하품을 쩍쩍 뱉어내던 감독관들이 깜짝 놀라 그를 경계했다.
“뭐, 뭐야. 침입…… 자인가?”
“행색을 봐. 그냥 떠돌이 악마 같은데?”
감독관 하나가 다가와 카이가 머리 위에 쓰고 있던 악마 가죽을 벗겨냈다.
“역시. 뿔도 없는 하급 악마다.”
“하, 괜히 놀랬군. 그럼 그냥 광부로 투입시켜 버리자고.”
“…….”
감독관들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멀뚱거리는 카이에게 소쿠리 하나와 곡괭이 하나를 던져주며 등을 떠밀었다.
“어이, 오늘부터 넌 저 갱도로 들어가서 마정석을 캐면 된다.”
“제가요?”
“어. 왜, 싫으냐?”
두 감독관이 사나운 표정을 짓자, 마기가 카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
이를 가만히 견뎌내던 카이는 묵묵히 그들이 가리킨 갱도로 들어갔다.
그 고분고분한 모습에 감독관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큭, 압박 좀 했더니 금세 겁먹고 얌전해지는군.”
“하급 악마가 다 그렇지 뭐. 그나저나 재수도 지지리 없는 녀석이군. 하필이면 떠돌다가 방문한 곳이 광산이라니.”
“뭐, 이 지역엔 마계풀도 안 자라니까, 식량이라도 구걸해 볼 요량이었겠지.”
감독관은 카이의 등장을 금새 잊어버렸다.
“헉, 큰일 났다.”
다만 바위 뒤에서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유하린이 발을 동동 굴렀다.
“악마들이 위험해……!”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의 경험치(?)들을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