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74화 (374/441)

# 374

힐통령 374화

115. 가장 악마다운 악마(1)

“이봐!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젠장, 설명할 시간 없다. 모든 감독관들한테 호출 떨어졌으니까 일단 따라와!”

“해방군이다!”

몇몇 감독관들이 갱도를 뛰어다니며 여전히 광부들을 감시하는 동료들에게 손짓했다.

“……당췌 무슨 일인지. 어이! 꼼짝하지 말고 얌전히 마정석이나 캐고 있어라!”

“다녀와서 수확량을 꼼꼼하게 확인할 테니까!”

경고를 남긴 감독관들이 제 동료들을 따라갔고, 남겨진 광부들이 슬며시 허리를 폈다.

“내 귀가 잘못된게 아니라면…… 방금 감독관들이 그들을 언급한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들었다.”

“그렇다는건 정말로 그들이 왔다고? 이곳 7광산에?”

광부들이 눈을 반짝이며 서로를 쳐다봤다.

해방군.

드넓은 마계에서 벌써 수십 년 동안 활동 중인 레지스탕스 단체였다.

그들의 추구하는 것은 우습게도 자유였다.

강자존을 인정하되, 약자를 무조건 죽이지 않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해방군의 존재 의의이자, 그들이 마계의 수많은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이유였다.

“그들이 정말 7광산에 왔다면……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함이겠지.”

“그렇다면…… 우리도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건가?”

“엘리시온.”

광부들이 벅찬 표정으로 그 단어를 뱉어냈다.

해방군의 최정예가 수호하는 마계의 이상향이자, 약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쉼터.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힘없는 모든 악마들의 꿈이었지만, 당연히 요원한 일이었다.

“갈 수 있다. 갈 수 있어!”

“오오오!”

해방군과 엘리시온.

고작 두 개의 단어가 광부들을 흥분 상태로 만들었다.

한 광부가 곡괭이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이러고 있을게 아니지. 우리도 어서 나가자고!”

“그, 그건 좀…… 우리가 간다고 과연 도움이 될까?”

“게다가 아직 해방군의 승리가 확정된 것도 아니고…… 감독관들도 여기 있으라고 했는데.”

자유를 갈망하나 그것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지불하는 것은 꺼려한다.

그것은 노예 근성이 뼛속까지 파고든 대부분의 광부들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동료들의 겁쟁이 같은 모습에 광부가 제 가슴을 두드렸다.

“이 미련한 악마들아. 해방군이 이기더라도 이곳은 7광산. 규모가 매우 큰 곳이란 말일세. 과연 그들이 모든 광부들을 엘리시온에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같나?”

“……잠깐. 그 말은?”

“먼저 가서 그들을 따라다녀야 엘리시온에 갈 확률이 조금이라도 늘어나지 않겠나!”

그 외침에 악마들은 잠시동안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의 말이 타당한 설득력을 지녔음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 맞는 말이야.”

“해방군이 왔어도 몇 명이나 왔겠어. 1,000명이 넘는 광부들을 모두 데리고 도망칠 수는 없겠지.”

“이것도 경쟁이다.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해!”

그것을 깨닫는 순간, 악마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갱도를 달려나갔다.

갱도의 입구를 지나 복도로 나서자, 비슷한 생각을 한 악마들만 이미 수백이었다.

“달려!”

“입구, 감독관들은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도 그쪽으로 간다!”

질서라고는 눈에 불을 켜도 찾아볼 수 없는 어지러운 행렬들.

그런 악마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덱스가 침을 꿀꺽 삼키며 이라를 쳐다보았다.

“네 말이 맞았다. 정말로 그들이 광산에 들어와 있었어!”

“그러게요. 운이 좋았네요.”

싱긋 웃어보인 이라가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저희도 가요.”

***

카이는 본인을 카즈라라고 소개한 악마의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를 따르는 무수한 행렬에 속해 있는 상태였다.

‘카즈라. 상급 악마면 전부 저 정도 수준인가.’

확실히 강하다.

굳이 자신이 아는 유저들과 비교하자면…… 그래, 크리스보다도 강한 수준이다.

봉인을 해제했던 골리앗보다는 약한 수준이고.

‘그런데 저게 겨우 상급 악마란 말이지. 저런 녀석이 마계에 몇이나 더 있는 걸까.’

헬릭이 왜 자신에게 그토록 경고했는지.

악마족의 강력함에 대해 누누히 주의를 줬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확실히 예전의 나였다면 조금 위험했겠어.’

물론 지금은 크게 고민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 정도 수준은 되었다고 자부하는 중이었으니까.

알량한 자만심이나 허세가 아닌, 객관적인 평가였다.

‘마계의 악마들은 크게 다섯 단계로 구분된다고 들었어.’

지난 며칠 동안 광부 생활을 하며 주변의 악마들에게 요령껏 정보를 긁어모은 카이였다.

‘최하급, 하급, 중급, 상급…… 그리고 최상급.’

이것이 마계의 악마들을 구분짓는 등급들.

그 등급을 가리는 기준은 간단했다.

‘힘이지.’

개인의 강력함만이 더 높은 등급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최상급 위로는 다섯 명의 규격 외 악마들이 있다.’

바로 네 명의 마계 대공과, 앙골모아라고 불리는 마왕이다.

‘그 녀석들의 전력은 뭐…… 굳이 내가 파악할 필요는 없겠지.’

굳이 그들과 충돌할 필요까지는 없다.

자신과 유하린은 이득만 챙기고 마계를 떠날 생각이었으니까.

“흐음.”

콧김을 강하게 뿜어낸 카즈라가 우뚝,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그 뒤를 따르던 행렬이 함께 멈추는건 당연한 이야기.

카이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 광부들과는 달리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결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위치는 제법 앞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오, 이 녀석 제법 깡이 좋은걸.”

“하지만 그쪽에게는 조금 벅찰 거다. 물러서 있어.”

뒤에서 나온 악마들이 카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걸어나갔다.

그 수가 무려 다섯.

하나같이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 이들이었다.

‘잠깐, 설마 저들이 모두 상급의 악마인가?’

그건 잠깐이지만 카이조차 놀라게 만들 정도의 전력이었다.

카즈라를 필두로 위치한 여섯 악마의 뒷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든든해보였다.

‘그런데 아까 카즈라가 자신을 포함해 일곱 명의 동료가 왔다고 했는데?’

이곳에 있는 것은 여섯뿐.

그렇다면 나머지 한 명은 전투원보다는, 탈출을 도와주는 백업맨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광산은 감독관들이 마중까지 나와주나.”

광산의 입구를 빠져나온 카즈라가 공터에 모여있는 감독관들을 스윽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감독관들은 모두 중급의 악마로, 그 수만 80명을 넘긴다.

하지만 지금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오히려 감독관들이었다.

“미친…… 영혼 탈곡기 카즈라다.”

“그 옆에는 소리꾼 바리악 같은데?”

“저, 전부 상급의 악마들…….”

미드 온라인의 인간들은 신분에 따라 계급을 매긴다.

쥐뿔만한 능력도 없는 귀족이라도, 평민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

아무리 아니꼬와도, 속에서 천불이 들끓어도 참고 인내해야만 한다.

하지만 마계는 다르다.

힘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되는 이 야만적인 세계에서는, 불만이 생기면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다.

물론 그 책임 또한 본인이 져야하지만, 과정만 놓고 본다면 마계의 시스템이 훨씬 깨끗하다.

그 때문일까.

‘저것들을 어떻게 이기라고…….’

‘상급 악마만 여섯이라고? 둘이나 셋이어도 이길까 말까 한 싸움인데…….’

감독관들을 싸움을 벌이기도 전에 잔뜩 주눅이 들었다.

싸우려는 의지 자체를 상실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해방군 소속의 악마들은 그러한 심리를 잘 꿰뚫고 있었다.

“상대가 안 된다는 건 본인들이 더 잘 알겠지.”

“…….”

감독관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했다.

“싸울 생각이 없다면 길을 비켜라.”

카즈라가 으르렁거리며 걸음을 내딛자, 감독관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길을 터주었다.

‘다행이군.’

카즈라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이에 안심했다.

상급 악마 중에서도 급이 있는 법이다.

제 7광산의 관리자인 드라켄은 그보다 살짝 윗선의 강자.

물론 자신을 포함한 일곱 명의 동료들이 동시에 달려들면 확실히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못해도 20분은 소요될 것이다.

‘시간을 끌면 불리해지는 건 우리다. 적들의 지원이 오기 전에 빠르기 치고 빠져야 해.’

그것은 규모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해방군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20분이면 키네사 대공이 보낸 수십의 상급 악마들이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다들 속도를 높인다. 잘 따라와라.”

감독관들을 병풍으로 만든 카즈라는 자신들의 뒤를 따르는 광부들을 빠르게 인솔했다.

자리에 함께 있는 동료들과 떨어진 동료는 이동 계열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악마의 도움을 받는다면 1,000명이 넘는 이 광부들을 모두 데려갈 수 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허공에서 엄청난 하울링이 터져나왔다.

크-라아아악!

동시에 네 개의 두꺼운 다리를 지닌 거대한 마수가 광산에 내려앉았다.

붉은색 갈기를 지닌, 얼핏 보면 드래곤처럼 보이기도 하는 도마뱀 형태의 마수였다.

“젠장.”

그를 확인한 카즈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내가 관리하는 곳에서 해방 운동이라…… 내가 그리도 만만히 보였던가.]

샛노란 눈을 번쩍인 마수, 드라켄이 분노를 토해냈다.

“젠장, 멤논, 오르단! 광부들 인솔해서 먼저 빠져나가라!”

“너는 어쩔 셈이지?”

“나머지 녀석들과 드라켄을 상대하겠다.”

“그건 너무 위험하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텐데…….”

“우리의 목표는 그의 살해가 아니다. 광부들을 안전하게 해방시키는 거지.”

[재미있는 계획이군.]

그 말을 듣고 있던 드라켄이 코웃음을 쳤다.

[하나 나는 너희를 보내주겠다고 허락한 적이 없다만?]

“무시하고 어서 데리고 가!”

카즈라의 고함에 그의 동료 두 명이 광부들을 이끌었다.

“이쪽으로!”

“어서, 서둘러라!”

[지금부터!]

콰드드득.

드라켄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어찌나 거대했는지, 광산의 일부가 무너져 내릴 정도였다.

[한 발자국이라도 걸음을 떼는 노예 새끼가 있다면…… 약속하지. 그 놈부터 죽여주마.]

살기가 번들거리는 거대한 파충류의 눈.

그 눈을 마주본 광부들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자리에 무너졌다.

개중에는 정신이 나갔는지 게거품을 무는 이들조차 있었다.

‘……망했군.’

카즈라는 본능적으로 작전이 실패했음을 직감했다.

과연 드라켄은 노련했다.

만난 지 몇 분 안 된 해방군이라는 존재보다, 오랜 시간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한 자신의 영향력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모든 광부들의 발이 묶여버렸다.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도저히 도망을 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카즈라. 상황이…….”

“알고 있다.”

카즈라의 손톱이 길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빠르게 놈을 죽이고 해방을 계속한다.”

“난 처음부터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고!”

[애송이들이!]

카즈라와 그의 다섯 동료들이 빛살처럼 튀어나가며 드라켄의 거구와 뒤섞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싸우는 악마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별세계의 전투였다.

물론, 광부들의 눈에서나 그러했다.

그 자리에서 상급 악마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카이뿐이었으니까.

‘빨라. 그리고 기술들이 하나같이 잔혹하고 파괴력이 짙다.’

그들의 움직임을 모두 쳐다보는 카이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만약 내가 드라켄과 일대일로 싸운다면?’

결과는 바로 도출되었다.

‘12초 정도 걸리겠어.’

물론 강림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1초면 충분하겠지만 현재는 불가능한 일.

[카아아아악!]

17분에 걸친 싸움 끝에 드라켄의 거구가 추락했다.

떨어지면서 인간형으로 뒤바뀐 그의 몸은 정확히 카이의 앞에 떨어졌다.

쿠우우웅!

“커억! 크흐억…….”

옆구리가 박살나고, 갈비뼈가 폐를 찔러서인지 연신 피를 토해내는 끔찍한 몰골이었다.

“허억, 허억.”

그를 상대한 해방군의 상급 악마들 역시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그를 죽이기 위해 한계 이상의 힘을 끌어냈기 때문이었다.

“됐다. 마무리하고 어서 떠…….”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히 입을 열었던 카즈라가 돌연 말을 흐렸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의 상태가 잘 이해되질 않았다.

마치 무언가 거대한 무언가가 그의 목을 뒤에서부터 서서히 조르는 듯 했다.

‘상급 악마들이 곧 도착할 거라는 압박감 때문인가?’

하지만 이상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태는 자신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끄윽……?”

“……큭!”

그의 다섯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눈동자의 혈관에 힘이 빡 들어간 그들은, 몸이 움직이지 않는지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이 상황이 이해되질 않은 카즈라가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이 고요해졌다.

그때, 광부들 무리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하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소녀였다.

모두가 멈춘 그 공간에서 그녀만이 여유롭게 걸음을 옮겨 카즈라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마치 흑백의 세상에서 혼자만이 색을 지닌 것처럼 돋보였다.

“쯧쯔쯔.”

가볍게 혀를 찬 그녀는 죽은 개구리처럼 부들거리는 드라켄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드라켄의 동공은 죽음을 눈앞에 둔 악마답지 않게 요동쳤다.

“서, 설마……?”

“내가 항상 입버릇처럼 담던 말, 기억하느냐.”

누가봐도 이상한 광경이었다.

일개 광부인, 그것도 나약한 소녀가 드라켄에게 하대를 하는 광경이었으니까.

허나 드라켄은 자신의 내장이 삐져나오는 와중에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대답했다.

“악마로 태어난 이상…… 악마답게 살아라……?”

“마냥 병신인 줄 알았더니, 그런 건 또 잘 기억하는구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이라가 싱긋 웃었다.

“여, 역시…….”

그 대답이 쐐기가 되었다.

드라켄은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리더니 쿵! 소리가 나게 무릎을 꿇었다.

“제 몰골이 이러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리는 점…… 깊은 사죄를…….”

“되었다. 그런 부분에서 또 악마미가 넘치는 것 아니겠나.”

이라의 조그맣던 몸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키는 2미터까지 자라났고, 여리고 부드러웠던 몸은 단단한 근육질이 되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백발, 그리고 핏빛처럼 짙은 홍안의 눈동자.

그 영광스러운 자태에 드라켄은 제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대공님을 뵙습니다.”

마계 남부의 지배자, 대공 키네사.

마계 역사상 가장 악마다운 악마라고 불릴 정도로 교활한 자로.

그의 이명은.

“제법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렇지 않았나 덱스?”

기만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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