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6
힐통령 376화
115. 가장 악마다운 악마(3)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을 일삼는 미친 종족, 악마족.
그들이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는 이유는 그것이 본인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일차원적인 존재가 바로 악마.
그리고 그들이 지닌 욕망 중에는 ‘성욕’이라는 것 또한 존재했다.
때문에 악마족의 남성과 여성은 하루가 머다 하고 번식 행위를 이어나간다.
물론 인간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악마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강렬한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서로의 합의 하에 성욕을 해소하는 것 뿐.
당연히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악마들은 거추장스러운 짐이기에 곧바로 버려진다.
대공 키네사의 경우에도 그랬다.
그가 생에 ‘첫 기억’으로 지니고 있는 것은, 아무렇게나 자라난 마계풀을 뜯어먹던 것이었다.
살기 위해 먹었다.
풀이든 돌이든 흙이든, 살기 위해 손에 집히는 모든 것을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배가 아파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고, 하루 종일 속을 게워낸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키네사를 강하게 만들었다.
‘난 강해졌다.’
최하급의 쓰레기에 불과하던 그는 교활해질 수밖에 없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유독 강했던 그는 다행히도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악마들에게 살갑게 접근해 그들의 마음을 샀고, 최후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먹어치웠다.
그 과정에서 그의 힘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런 수라 길을 걸어서 도달한 곳이 바로 대공이라는 영광의 자리.
“……모욕적이구나.”
한참을 고민하던 키네사가 짧은 감상을 늘어놓았다.
“아주…… 아주 모욕적이야.”
가정교육? 부모?
받아본 적도, 가져본 적도 없다.
‘사랑을 하는 악마라니, 웃기지도 않는군.’
키네사는 40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가며 수많은 악마들을 보아왔다.
그중에는 인간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악마들 또한 분명 존재했다.
‘아주 편리한 녀석들이지.’
사랑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약점이 있다는 뜻이다.
그 부분을 쥐고 흔들면 손쉽게 그들의 심장을 먹어치울 수 있었다.
“애초에 난 그런 하등한 존재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하거늘, 정말 불쾌하구나.”
키네사가 마기를 끌어올렸다.
주변의 모든 이들을 울부짖게 만드는 폭력적인 보랏빛 마기가 대기를 물들였다.
하나 황금빛 물결이 이를 부드럽게 밀어냈다.
마치 악마들을 보호하는 방어막처럼.
그 모습에 키네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덱스를 향하던 마기를 완벽하게 차단시킨, 그 기운이었다.
“또 다시 이 힘…….”
분명히 마기는 아니다.
물론 마기도 온갖 종류로 나뉘지만, 기본적으로 그 본질은 같다.
베이스에 깔린 것은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기운.
하지만 저 악마 놈이 내뿜는 것은 조금 달랐다.
“나약한 감정이 느껴지는 기운이구나.”
누군가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악마의 입장에선 조금 당황스러운 기운이다.
평생을 살면서 저 기운 속에 담겨진, ‘호의’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
“……정말 불쾌한 기운이다. 당장 치워라.”
“그렇겐 못 하지.”
카이가 대기를 진동시키는 마기를 향해 턱을 까딱였다.
너부터 먼저 기운을 거두라는 의미다.
“건방진…… 지금 감히 대공인 나에게 먼저 손을 거두라는 소리인가?”
“건방은 무슨, 대체 내가 누구인지 알고.”
“…….”
그 말에 키네사가 몸을 멈칫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대체 뭐지?’
내뿜고 있는 기운은 절대 마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운의 힘이 무시할 만큼 조약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긴장이 될 정도.
“너…… 악마는 맞는 건가.”
“아니.”카이는 드디어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는 것처럼,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분명히 며칠 전에 보고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광산 안에서도 덱스에게서 그 소문을 들었다.
‘분명히 강하다고…… 당연히 헛소문인 줄 알았더니.’
인간이 강할 리 없다.
그것은 키네사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힌 고정관념이었다.
때문에 눈앞의 상대가 인간이라는 것을 쉬이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뭐, 오히려 잘됐군.”
키네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만한 힘을 지닌 인간을 처음 봐서 당황한 것뿐이다.
“마계의 대공을 우롱한 죗값이 얼마인지 확실히 알려주지.”
키네사가 이전보다 거대한 마기를 서서히 끌어올렸다.
광산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카이는 뒤쪽의 악마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애들 상대로 힘자랑은 그만하고, 자리부터 옮기지.”
대공을 상대로 싸우면 카이조차 여유를 장담할 수 없다.
주변 이들도 신경 쓰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에, 그는 장소를 바꾸고 싶었다.
하나 그것은 그의 바람일 뿐.
“이렇게 좋은 환경을 포기할 리가.”
키네사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에는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인간이 악마들을 보호하려는 것이.
‘그렇다면 오히려 이용할 뿐.’
키네사는 끌어올린 마기를 광범위하게 전개했다.
눈앞의 인간 하나만을 압박하는 것이 아닌, 광산의 모든 악마들을 괴롭히기 위함이었다.
“크윽…….”
“우웁!”
반응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고통스러워하는 악마들을 쳐다보던 카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계 대공이라길래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했더니, 하는 짓은 비열하기 짝이 없네.”
“악마에게는 최고의 칭찬이로군.”
키네사가 오히려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쩔 수 없나.’
말로 해서 될 상대는 아니다.
카이는 고개를 돌려 카즈라를 쳐다봤다.
“저 녀석과 함께 자리를 비울 테니, 그 안에 광부들 데리고 도망치세요.”
키네사의 마기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카즈라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 담긴 것은 의문.
대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는 의문이었다.
그것은 키네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와 함께 자리를 비운다? 미안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추호도…….”
“걱정 마. 난 있으니까.”
카이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강력한 중력장이 발생하며 키네사의 몸을 저 하늘로 날려 버렸다.
“허억, 허억!”
“쿨럭!”
숨을 몰아쉬는 악마들을 쳐다보며, 카이가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우선 자리를 피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카즈라가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카이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
“크읏?!”
미중유의 힘에 떠밀려 허공에 떠오른 키네사는 순간이지만 당황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이상한 힘.
하지만 그는 대공답게, 순식간에 자세를 잡고 속도를 감속시켰다.
“후우, 별 시답잖은 짓을…….”
열이 받은 그가 다시 광산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반짝.
아래쪽에서 황금색 빛이 반짝였다.
‘황금색?’
마계에서는 금이 희귀하다.
특히 저렇게 멀리 떨어졌는데도 황금색으로 빛나는 물체는 없다.
‘인간 녀석이다!’
결론을 내린 키네사가 아래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의 흘러넘치는 마기들은 수백 개의 뾰족한 창이 되어 아래로 떨어졌다.
“아이템 스위칭, 어릿광대의 신발.”
날아드는 창이 카이를 꿰뚫기 직전.
순식간에 장비를 변환시킨 카이의 신형이 공간을 뛰어넘었다.
콰득!
“―!!!”
카이의 신형이 다시 나타난 것은 키네사의 코앞.
그의 넓직한 손아귀는 대공의 얼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 어찌 이런 움직임이!’
키네사가 이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카이는 중력의 방향을 역전시켜 넓은 대지로 향했다.
콰득! 우르릉!
모처럼 손에 넣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릴 카이가 아니었다.
땅에 떨어지기 직전, 마계의 척박한 대지 곳곳 세워져있는 바위탑을 터뜨리며 내려갔다.
물론 그것을 강타한 것은 단연 키네사의 뒤통수였다.
“크아아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키네사가 모욕감에 몸서리를 치며 발악했다.
카이조차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한 기세였기에, 결국 그는 키네사를 놓아줬다.
물론, 곱게 놓아주는 일은 없었다.
“태양광자포!”
키네사는 자신의 코앞에서 회전하는 네 개의 신성마법진을 목격하고는, 본능적으로 마기를 몸에 둘렀다.
콰르르르르릉!
천둥 소리를 내며 뻗어나간 네 줄기의 태양빛이 키네사를 황무지에 그대로 꽂아버렸다.
‘이걸 버텨?’
하지만 피해량은 생각보다 미비했다.
태양광자포는 뮬딘 교의 사원 바닥을 몇 개 층이나 부셔버릴 정도로 강력한 스킬.
그런 걸 코앞에서 네 대나 정타로 얻어맞았는데 고작 7% 생명력만이 날아갔다.
“크아아아악!”
물론 본인은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괴로운 모양이었다.
“감히, 감히 인간 따위가……!”
바닥에 처박힌 키네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탐스러운 백발의 머리카락은 진흙과 먼지에 덮여 더러워보였고, 입고 있던 기품 있는 예복 또한 여기저기 실밥이 터진 상태였다.
“한낱 버러지 따위가 남쪽의 왕에게!”
그의 붉은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리며 더욱 붉어졌다.
몰아치는 마기와 살기를 정면에서 마주한 카이는 숨이 턱하니 막혔다.
하나 그것도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카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 세긴 세구나. 내가 여태껏 만나본 녀석들 중 제일 강해.”
굳이 비교 대상을 찾자면, 한때 충격을 선사했던 아트록 정도일까.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아트록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북부 탈환전에서 그와 조우한 이후로 시간이 제법 흘렀고, 자신은 엄청난 성장을 했으니까.
‘특히 마계를 최초로 발견한 자 칭호 덕분에 이곳에서는 유독 더 강해.’
그런 자신의 공격을 연달아 얻어맞고도 생명력이 90% 이상 남아 있다.
그것이 키네사가 강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심지어 녀석이 뿜어내는 마기는 닿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따끔거릴 지경이다.
우우웅.
카이의 몸에서 휘황찬란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미안하지만 그 알량한 힘으로는 날 막을 수 없다. 난 지금 굉장히 화가 난 상태거든.”
광산에서는 마기를 여유롭게 밀어내던 신성력이, 어디에 걸린 것처럼 턱하니 막혔다.
잠시 그것을 쳐다보던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이건 안 통하네.”
“무슨 수를 쓰던 마찬가지일 것이다.”
“글쎄……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광부들을 따스하게 감싸던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태양교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황금빛 신성력의 형태가 조금씩 변해갔다.
비눗방울처럼 둥글던 모습이 뾰족하고, 날카롭게.
누군가를 수호하기보다는, 금방이라도 적들을 찔러죽일 것 같은 살벌한 창처럼.
“사실 나도 좀 쎄거든.”
후끈.
마계 대부분의 지역은 덥다.
때문에 키네사는 자신이 흥분해서 주변이 살짝 더워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열기의 근원지는 카이였다.
신성 폭주.
그의 몸 안에 내제되어 있던 신성력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의 신성 폭발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신성 폭발은 사용할 때마다 사우나에 들어간 기분을 느꼈었다면.
띠링!
[신성 폭주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모든 스탯이 10% 증가합니다.]
[힘 506, 체력 391, 지능 467, 민첩 275, 신성 634만큼 상승합니다.]
[초당 3,000의 신성력을 소모합니다.]
지금은 스스로가 인간 화력 발전소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 뜨거운 공기는 순식간에 키네사의 몸까지 뒤덮었다.
“으음.”
카이는 살짝 당황하는 키네사를 진정시켰다.
“아직 놀랄 타이밍 아니니까, 기다려.”
그의 등 뒤로 떠오른 네 개의 마법진은 시시각각 강대한 힘을 부여했다.
띠링!
[태양의 축복이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종류의 공격력이 20% 증가합니다.]
[태양의 갑옷이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종류의 방어력이 20% 증가합니다.]
[헤이스트가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속도가 30% 상승합니다.]
[블레스가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스탯이 100만큼 상승합니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상대와의 전투입니다.]
[스페셜 칭호, ‘용맹한 전사’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모든 스탯이 10만큼 상승합니다.]
[성물들의 효과에 의해 악마족에게 입히는 피해량이 100% 증가합니다.]
카이가 모든 준비를 끝냈을 때, 키네사의 마기는 더이상 그를 압박하지 못했다.
우우웅!
두 사람이 서있는 공간을 지배한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교의 기운, 신성력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