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77화 (377/441)

# 377

힐통령 377화

115. 가장 악마다운 악마(4)

“…….”

키네사가 조용해졌다.

분노에 먹혀 당장이라도 날뛸 것 같던 그가 버프를 두른 카이를 보고는 정신을 차린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 표정과, 차분해진 눈빛이 그 증거였다.

그의 입술은 일대를 가득 메운 신성력을 천천히 돌아보고 나서야 열렸다.

“인간들은 이 힘을 뭐라고 부르지?”

“신성력.”

“신성…… 신과 관련된 힘인가?”

카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의문이 풀렸는지, 키네사가 말을 이었다.

“놀랍군. 모든 인간들이 너처럼 강한 것은 아닐 테고…… 네놈이 특별한 거겠지.”

말을 마친 키네사는 입고 있던 예복 코트를 벗어 던지더니, 셔츠도 찢어버렸다.

그러자 잘 관리한 남자 모델의 몸처럼 미끄러운 몸이 드러났다.

“가볍게 보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언과 동시에 폭사된 마기는 키네사의 전신을 뒤덮었다.

“갑옷인가?”

무형의 기운을 압축시켜 방어구라는 실체를 만들다니.

키네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것을 실전압축마기라고 부른다.”

마기로 이루어진 방어구는 기사들의 방어구와는 형태가 조금 많이 달랐다.

마치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방어구라기보다는 몸에 착 달라붙는 슈트에 가까운 형태였다.

준비를 끝낸 키네사는 마지막으로 길다란 마기의 창을 만들어 꼬나쥐었다.

황무지에 잠시 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불어오는 바람은 마기와 신성력에 휩쓸려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부서져 나갔다.

두 사람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기운을 통해 기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이건 결투가 아니야.’

목숨을 건 사투다.

때문에 결투장에서처럼 룰도 없고, 싸우기 전에 카운트다운을 해주는 사람도 없다.

싸움을 시작하겠다는 말을 꺼내는 사람도 없었다.

왜냐하면 싸움은 이미 시작된 상태였으니까.

파드득!

바람에 의해 굴러오던 자그마한 돌멩이가 마기와 신성력에 의해 먼지가 되는 순간.

‘온다.’

키네사가 대공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움직였다.

까가강!

찰나의 순간에 열여섯 번의 창격이 쏟아졌고, 카이는 그것을 모두 쳐냈다.

‘역시 대공은 대공이라는 건가.’

그저 제 잘난 맛에 사는 줄 알았던 키네사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의 눈은 슈트에 가려져있었지만, 움직일 때마다 붉게 빛나는 귀화가 잔상처럼 흩날렸다.

‘창의 사정거리가 너무 길어. 거리부터 좁혀야 된다.’

카이가 왼손을 가볍게 털었다.

“신성 사슬.”

짜르르륵!

세 줄기의 신성 사슬이 왼손 소매에서 빠져나왔다.

카이는 주저없이 그것들을 전방으로 뿌렸다.

까드드드득!

신성 사슬은 키네사가 들고 있던 창을 휘감았다.

카이는 그대로 왼손을 뒤로 당겼다.

“……잔꾀를.”

피식 웃은 키네사가 창대를 잡고 있는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드르륵.

“……!!”

하나 그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손쉽게 끌려갔다.

애초에 스탯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안 그래도 높은 힘 스탯인데, 마계에서는 유독 높지.’

꽈드득, 꽈득.

카이는 사슬들을 왼팔에 감으며 점점 키네사를 끌어왔다.

“마, 말도 안 되는!”

결국 힘의 차이를 실감한 키네사는 창대를 놓고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카이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됐다.’

무기를 잃은 상대의 가슴이 열렸다.

카이는 그대로 신성 사슬을 역소환한 뒤, 바닥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순식간에 키네사와의 거리를 좁힌 카이가 검을 내리그었다.

“흐읍!”

까드드득!

키네사는 그 검을 맨손으로 잡았다.

신성력이 닿을 때마다 마기로 이루어진 슈트가 벗겨졌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마기들이 몰려들며 다시금 슈트를 재구성했다.

‘피해가 없다고?’

키네사의 생명력을 힐끗거리던 카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공격을 막았다고 해도, 어느정도 피해는 들어가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재 키네사는 그 어떤 피해도 입지 않고 있는 상태.

‘설마 저 마기 슈트는 모든 공격을 차단하는 용도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상상 이상으로 귀찮아질 수밖에 없다.

‘아직 강림 스킬을 사용하지 못해서 시미즈를 불러낼 수도 없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어구의 효과가 너무 사기적이라는 것이었다.

‘미드 온라인의 밸런스는 유독 이런 부분에서는 공정해.’

저만한 능력의 방어구라면, 지속 시간은 생각보다 짧을 것이다.

‘방어구가 해제될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카이는 오른손으로는 계속해서 검을 내리면서, 스텝을 밟아 거리를 더 좁혔다.

그리고 비어있는 왼손을 한 번 접으며 빠르게 쏘아냈다.

콰드드득!

카이의 팔꿈치가 키네사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팔꿈치를 다시 피면서 키네사의 뒷통수를 그대로 끌어당겼다.

동시에 차올리는 무릎!

빠각! 니킥이 키네사의 안면을 파고들었다.

그 충격에 키네사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그래도 피해는 없으시다?’

공격을 받는 와중에도 키네사는 마기를 운용했다.

주변을 떠돌아다니던 마기들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카이가 있던 장소를 찔렀다.

‘도약.’

다시 한 번 어릿광대의 신발에 내포된 스킬을 사용한 카이는 키네사의 윗쪽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뒤로 젖혀진 키네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대로 검을 뻗었다.

“파이널 어택!”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하고 공격력을 세 배 높이는 기술!

카이의 성검이 키네사의 눈을 그대로 관통했다.

“억……?!”

방어구에 의해 항상 보호받아오던 키네사였지만, 이번에는 무사하지 못했다.

엄청난 고통에 신경이 마비된 듯 몸을 꿈틀거리던 그는, 지상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카이는 그 상태에서 곧바로 검을 회전시켰다.

“칼날 쇄도!”

키네사의 입에서 차마 남자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하이톤이 튀어나왔다.

“아파! 아파! 아프단 말이다아아악!”

그의 불안한 정서를 대변이라도 하듯, 주변의 마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질서하게 요동치던 마기들은 그대로 카이는 덮쳐왔다.

“쯧.”

결국 뒤로 물러난 카이는 다가오는 마기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아- 아아!”

자리에 주저앉은 키네사는 자신의 욱신거리는 눈을 손바닥으로 꾸욱 막았다.

꿀렁꿀렁, 눈가에서는 연신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뜨겁다.’

뜨거웠다.

그 어떤 고온에서도 버틸 수 있는 대공의 몸이었지만, 지금 손바닥을 적신 이 액체는 뜨거웠다.

‘뜨거워.’

그의 심장과 머리도 뜨거웠다.

지금 당장 저 인간을 찢어죽이지 않으면 미쳐 버리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죽여버리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키네사가 마기를 베어내는 카이를 향해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음?”

이전보다 배는 빨라진 그 속도에 카이가 황급히 몸을 돌려 반응했다.

하나, 키네사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카이의 멱살을 잡아챈 그는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들이박았다.

빠각!

“크윽!”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각과 동시에, 누군가가 머릿채를 붙잡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휙 돌아가는 시야.

‘이건 넘어갔다.’

그 생각과 함께 등과 목 부위에서 시큰한 통증이 느껴졌다.

키네사가 자신을 바닥에 메다꽂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꽈드드드득!

바닥에 솟아오른 마기가 카이의 사지를 구속했다.

이건 대놓고 자신을 여기서 끝내겠다는 소리.

‘왼쪽? 오른쪽?’

카이는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곧 날아올 추가타를 대비해야만 했다.

“고결한 방패!”

우우우웅!

시전과 함께 일대의 카이의 몸을 돔 형태로 감싸는 방어막이 생성되었다.

얼마전에 새롭게 배운 스킬로, 본래라면 광범위한 영역을 방어하는 스킬이다.

까앙! 까앙!

“이런 젠장!”

키네사는 손톱과 주먹으로 고결한 방패를 미친 듯이 내려쳤다.

조금 전까지 보여줬던 기품 있는 대공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크윽, 햇살의 따스함.”

카이는 30%나 증발한 생명력을 곧바로 채우면서, 몸을 구속한 마기들을 떼어냈다.

쿵! 쿵! 쿵!

고결한 방패의 내구도는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하지만 무려 대공의 공격이다.

카이는 고결한 방패가 깨지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태양광자포!”

콰르르르릉!

네 개의 신성 마법진이 쏘아낸 빛의 광선이 키네사를 저 멀리 튕겨냈다.

“후우.”

언뜻 보이는 키네사의 생명력은 이제 65% 정도.

‘파이널 어택의 효과가 크긴 했어.’

저 방어구만 사라진다면 단숨에 끝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방어구는 신성력에 피해를 입을 때 잠시나마 흩어졌었다.

‘성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그렇다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아직 많았다.

하나씩 시험을 해볼 수밖에.

“크아아아아악!”

쾅쾅!

저 멀리 나가떨어진 키네사가 울분을 토해내며 애꿎은 땅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쩍쩍 갈라졌다.

“스킬, 네 개의 창.”

카이의 등 뒤로 네 개의 창이 떠올랐다.

추적하는 빛의 화살 스킬을 각성시킨 것으로, 이미 뮬딘 교를 상대할 때 효과를 시험해 본 적이 있었다.

카이가 손을 뻗어 키네사를 가리켰다.

“태양광자포!”

콰릉! 콰르릉!

네 개의 신성마법진이 주기적으로 빛의 광선을 뿜어냈다.

달려오던 키네사는 거기에 얻어맞을 때마다 뒤로 조금씩 밀려나갔다.

‘보인다.’

동시에 카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키네사가 태양광자포에 얻어맞을 때마다, 방어구 한쪽이 훤히 열리게 된다.

‘방어구가 열리는 순간, 그때 네 개의 창을 거기에 쑤셔넣고, 그다음에는…….’

계획을 세운 카이는 그때부터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하지만 키네사도 바보는 아니었다.

카이의 등 뒤에 떠있는 네 개의 창이 움직이지도 않자, 이를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뭔가를 꾸미고 있군.’

게다가 태양광자포에 맞을 때마다 훤히 열리는 방어구도 의식되었다.

‘방어구가 개폐되는 순간을 노리는 건가? 그렇다면…….’

그 때부터 키네사는 날아드는 태양광자포를 팔로 쳐내거나, 아니면 피해내기 시작했다.

절대 카이의 공격이 자신을 직격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쯧.’

이쯤되니 골치가 아파진 것은 카이였다.

결국 파이널 어택의 쿨타임이 돌기 전까지는 계속 도망만 쳐야 할 신세에 놓였으니까.

‘중력장은…… 확실히 안 먹힐 테고.’

이미 사용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처음이라서 당황해서 먹혔을 뿐, 키네사는 금새 정신을 차리고 중력장을 흩어버렸다.

‘아주 잠깐만 멈추게 하면 되는데…….’

신성 사슬에 한 번 당해본 녀석이 이를 다시 맞아줄 리도 없었다.

결국 빠르게 돌아가던 카이의 머리가 떠올린 것은 석화였다.

‘석화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마계의 대공은 레이드 보스 몬스터로 취급된다.

보스를 상대로 석화 스킬이 통할지 안 통할지는 미지수.

하지만 단 1초라도 괜찮다.

‘아니, 딱 1초만 묶어줘라.’

카이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키네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석화!”

“……?!”

달려오던 키네사의 두 다리가 땅에 박힌 채 그대로 돌이 되었다.

당황한 그는 재빨리 마기를 일으켜 다리가 돌이 되는 것을 억제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초.

과연 대공다운 반응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충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아무 의미없이 소모해 버리는 1초.

그 1초는 지금의 카이에게 있어선 1시간보다 소중했다.

“태양광자포!”

네 개의 포구가 키네사의 가슴을 향해 포탄을 뱉어냈다.

콰르르릉! 광선이 내포한 엄청난 신성력에 키네사를 뒤덮고 있던 방어구가 처음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하나 그것은 찰나의 순간뿐.

다시금 주변의 마기가 몰려들며 그의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네 개의 창이 제비처럼 날아간 것도 그때였다.

푹, 푹!

마기가 키네사의 몸을 완전히 뒤덮기 전, 네 개의 창이 먼저 그의 몸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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