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79화 (379/441)

# 379

힐통령 379화

116. 마계 화타(1)

조금 전까지 천여 명이 넘는 광부들이 활동하던 제7 광산은 고요했다.

현재 그곳을 돌아다니는 악마는 고작 세 명.

광산을 가볍게 훑어본 카즈라가 입을 열었다.

“광부들은?”

“모두 엘리시온에, 인간이 도와줘서 잘 도착했다.”

“……그래, 인간이 우릴 도와줬지.”

카즈라의 시선이 광산의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운 건 본인을 ‘인간’이라고 칭했던 남자였다.

‘확실히 최근 그런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긴 하다.’

악마들을 이기는 인간.

이건 최근 마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소문이었다.

물론 카즈라는 이를 헛소문으로 치부했다.

그의 머리로는 인간이 마계에서 멀쩡히 활보하는 것부터가 이해되질 않았으니까.

“카즈라, 이제 어쩔거지?”

“우리만 넘어가면 된다. 마정석도 최대한 챙겼어.”

“아, 물론 솔직한 마음으로는 조금 더 가져가고 싶긴 한데…… 곧 키네사가 돌아올거다.”

“…….”

카즈라도 그 사실을 알고있었다.

인간이 소문만큼의 강자라고 해도, 마계의 대공 중 하나인 키네사와 맞붙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 너의 희생은 잊지 않겠다.’

잠시 침묵을 고수하던 카즈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게이트 연다.”

이동 계열 능력을 지닌 상급 악마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허공을 찢었다.

그 순간.

“음?”

“……!!”

세 악마의 고개가 사전에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위로 돌아갔다.

무언가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젠장, 벌써 지원 병력이 온 건가!”

“카즈라, 꾸물댈 시간 없다. 어서 게이트 안으로!”

게이트를 열었던 악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잠깐.”

동료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카즈라는 상공을 쳐다봤다.

잿빛의 하늘, 시커먼 구름을 뚫고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그는 광산 쪽으로 접근하는 무언가를 보며 중얼거렸다.

“……키네사가 아니야. 악마도 아니다.”

“뭐?”

동료들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는 순간.

펄-럭!

마계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생물이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에 내려왔다.

“인간!”

카즈라가 반가움과 놀라움이 한데섞인 목소리를 뱉어냈다.

그의 동료들도 크게 놀란 표정으로 연신 주변을 살폈다.

“저 녀석이 어떻게 여기에?”

“키네사가 순순히 보내줬을 리가 없는데…….”

카이는 와이번 미믹의 등 위에서 내리더니, 정중히 유하린을 에스코트했다.

“수고했어, 미믹.”

“크루륭!”

미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역소환을 시킨 카이가 고개를 돌려 악마들을 쳐다봤다.

“해방군 소속의 악마들, 맞지?”

“그렇다.”

악마들을 대표해 한 걸음 앞으로 나온 카즈라가 이에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난 인간이다, 여기 내 동료도 인간이고. 그런데…….”

카이가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있던 광부들은 모두 어디갔지?”

“그들은 이미 엘리시온으로…….”

“이봐.”

악마 하나가 중대한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려고 하자, 그 동료가 이를 말렸다.

카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거 좀 서운하네. 불과 몇십 분 전에 내가 목숨을 살려준 것 같은데.”

“그것에는 감사한다.”

카즈라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지만 저 녀석이 말하려던 엘리시온은 우리 해방군의 유일한 쉼터. 아무에게나 쉽게 공개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게다가…….”

이 인간은 키네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한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

“자꾸 의심을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저 여자는 분명 아까만 해도 없던 이. 기만의 키네사가 모습을 바꾼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들은 같은 수법에 한 번 당해봤기에 경계심이 유독 남달랐다.

“으음. 합리적인 의심이야.”

유하린을 쳐다보던 카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키네사가 변신했던 이라라는 소녀도 귀엽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유하린은 그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게다가 머리색도 은발로, 키네사의 백발과 은근 비슷하기까지 하다.

“나도 무턱대고 날 믿으라고 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카이가 주섬주섬 인벤토리를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쉴 새 없이 펄떡이는 거친 심장이었다.

“이 정도면 증명이 될 것 같은데?”

“그건……?”

“잠깐.”

악마들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들은 저 심장이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

카이가 말을 해주지 않았기에.

하지만 심장이 두근거릴 때마다 주변의 마기가 요동친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담겨있는 순도 높은 강렬한 마기의 정체가 익숙하다는 것.

그 두 가지 이유로 그들은 그 심장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유추했다.

“말도 안 돼!”

악마 하나가 비명을 터트렸다.

“저게 키네사의 심장이라고?”

“빙고.”

카이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인정하자, 악마들은 더욱 패닉에 빠졌다.

“인간이 키네사를…… 대공을 죽였다고?”

“안 될 거 있나? 다 같은 생물이야. 찌르면 피나고, 베면 잘려나가는 생물.”

심장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자 악마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키네사는 이미 죽었지만, 그의 심장이 뛰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위축시켰으니까.

“카즈라.”

“이건…… 이제 어떻게 하지?”

동료들의 물음에 잠시 고민을 하던 카즈라가 입을 열었다.

“인간.”

“왜?”

“인간의 예는 모른다. 그러니 악마답게 인사하겠다.”

꾸벅! 카즈라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카이와 유하린의 시선에선 머리에 나있는 그의 뿔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키네사는 여지까지 나의 동료들, 그리고 죄없는 악마들은 셀 수도 없이 학살한 악마다. 가장 악마다운 악마…… 그것이 그를 수식하는 단어였지.”

“나도 감사를 표한다.”

“나 역시.”

그의 동료들도 허리를 바짝 숙였다.

잠시 후 카즈라가 허리를 폈을 때, 그의 눈은 이전보다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대공을 멸한 인간이여. 그대의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는가.”

“카이다.”

“카이, 카이라…….”

카즈라와 그 동료들이 알듯말듯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웃지?”

이유가 궁금해진 카이가 묻자, 카즈라가 입을 열었다.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다. 다만, 이름이 너무나도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게 무슨?”

“악마족의 언어로 카이는, 빛을 두른 자라는 뜻이다.”

빛을 두른 자.

그 낯간지러운 설명에 카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카즈라가 걸음을 옮겨 길을 터주었다.

“혹시 바쁘지 않다면 그대들을 초대하고 싶다.”

열린 길의 끝에는 하나의 게이트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해방된 자들의 마을, 엘리시온에.”

***

“B2구역에 응급 환자 발생!”

“젠장, 마정석 조금 더 떼달라고!”

“나도 주고 싶은데, 예산이 안 된다니까!”

게이트를 넘어서자 조용하던 마계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우와…….”

그 번잡함에 유하린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려 감탄했다.

여기를 봐도 악마, 저기를 봐도 악마.

어디를 보아도 악마들이 득실거렸다.

“이곳이 엘리시온이다.”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카즈라가 중얼거렸다.

엘리시온이라는 마을의 크기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글렌데일의 절반 정도인가?’

하지만 규모와는 상관 없이, 마계에서 방문하는 첫 번째 마을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아쉽게도 스페셜 칭호는 없고.’

카이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크네.”

“4만 명의 악마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렇게 큰 건 아니지.”

“4만 씩이나…….”

“따라와라.”

카즈라를 따라 언덕을 내려가자, 마을을 뛰어놀던 꼬마 악마들이 소리쳤다.

“카즈라다!”

“와아!”

순식간에 달려와 카즈라의 다리와 팔, 허리를 하나씩 붙잡은 아이들이 볼을 부벼댔다.

카이와 유하린이 보육원을 떠올리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때, 아이들이 입을 열었다.

“오늘도 나쁜 놈들 많이 죽였어?”

“심장은 많이 먹구 왔어?”

“남겨둔 심장 조각 같은 건 없는고야?”

“…….”

누가 악마 새끼들 아니랄까봐, 귀여운 얼굴을 하고 살벌한 말들을 뱉어낸다.

“이 놈들!”

꼬장꼬장하게 생긴 노인 악마 하나가 다가와 아이들을 훈계했다.

“작전을 끝내고 돌아온 녀석을 괴롭히면 안 된다고 했잖으냐!”

“흥! 카즈라는 강해서 하나도 안 힘들어하는걸!”

“베에에!”

말은 그렇게 해도 혼나기는 싫었는지, 아이들은 다시 와아- 소리를 지르며 또 어디론가 뛰어갔다.

“미안하다. 정신이 없을 거다.”

카즈라의 사과에 두 사람이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오히려 보기 좋던데.”

“아이들이 밝게 자라는 것 같아 다행이예요.”

“으응?”

노인 악마가 쓰고있던, 금이 간 안경을 들어올렸다.

“카즈라, 이 녀석들은 뭐냐?”

“손님들. 귀빈이니 실수하지 말고 모셔라.”

“흐응, 뭐 알겠다. 다른 놈들한테도 당부해 두지.”

“마을 상황은 어떻지?”

“……좋지 않아.”

후우,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 대다수가 마기 결핍증을 앓고 있는 것은 물론, 면역력이 떨어져서 마계 특유의 거친 공기에 중독 증세를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제법 큰 광산을 털었는데…….”

“한참 부족하다. 카즈라, 4만 명이다. 무려 4만 명. 광산 하나를 털어서 모두의 마기를 회복시키는건 불가능해.”

“하다못해 중독 증세라도 호전시키는건?”

“무리다. 환자들의 면역력이라도 높아지면 어떻게든 수가 보일 것 같은데…….”

그들이 나름 심도있는 고민을 늘어놓자, 이를 듣고있던 카이가 손을 들었다.

“환자라면 제가 좀 봐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노인 악마가 반색했다.

“오오? 카즈라! 귀빈이라더니, 이 녀석 의원이었나!”

“……그럴 리 없을 텐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 카즈라가 조그맣게 중얼거렸지만, 노인 악마는 이미 카이의 손을 잡았다.

“의원이라면 제발 부탁하네. 사실 나도 살아온 세월이 세월인지라, 수박 겉핥기로 이것저것 알고있다 뿐. 전문적인 지식은 턱없이 부족하네. 제발 환자들을 한 번씩만 살펴봐 주게.”

“가시죠.”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끄으으…….”

“우웨에엑!”

“아파…… 아파아…….”

환자들이 모여있다는 곳의 환경은 열악했다.

대충 땅 위에 얇은 천을 깔고, 그곳에 환자들을 뉘인 뒤 조약한 막사를 쳐놨을 뿐이었다.

“으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카이는 환자들을 훑었다.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환자들의 수가 못해도 1만은 넘을 것 같은데요?”

“오늘 아침에 확인했을 때는 정확히 2만 2천 385명이었네.”

“…….”

마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환자다.

생각보다 엘리시온의 상태는 심각했다.

뒤에있던 카즈라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마계의 악마들은 엘리시온이 유일한 낙원인 줄 알지만…… 현실은 이렇다. 우리도 마음 같아서는 모든 악마들을 해방시키고 싶지만, 그렇게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우선 환자들부터.”

카이는 가까이 있는 악마 하나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우우우웅!

그의 몸에서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자 주변 환자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햇살의 따스함.”

헌데 손끝에서 흘러나간 신성력이 악마의 몸을 파고드는 순간.

“끄으으으으!”

악마가 돌연 비명을 터트리며 발작했다.

“뭐, 뭐야! 의원이라더니 이런 돌팔이가 다 있나!”

노인 악마가 방방 뛰면서 성을 내자 카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신성력으로 악마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건 가능해도 직접 투여해서 치료할 수는 없다는 건가.’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것이 당연하다.

신성력은 악마와 언데드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기운.

그것을 뿜어내서 그들을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카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쓰읍.”

머리를 벅벅 긁은 카이가 노인 악마를 쳐다봤다.

“평소에 약 같은 건 먹입니까?”

“……약은 없고, 마계에서 자라나는 풀과 식물들을 배합해서 만든 독을 쓴다.”

“독을 쓴다고요?”

“자네 정말 의원 맞나? 이독제독(以毒制毒). 독을 독으로 잡는 방법이지. 물론 내 지식이 알량해서 효과는 별로 없는 것 같다만…….”

동시에 카이의 눈이 빛났다.

“혹시 그 독 저도 좀 볼 수 있습니까? 아니, 독을 만드는 재료들까지 싹 다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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