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384화 (384/441)

# 384

힐통령 384화

117. One Way(3)

집에 돌아와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페가수스의 축복 버프가 걸렸습니다.]

[마계의 대공과 마왕을 죽일 수 없습니다.]

[마계의 대공과 마왕에게 죽지 않습니다.]

‘이런 일 처리 하나는 빠르네.’

마르코, 짐 박사와 헤어진지는 한 시간이 채 안 되었다.

“카이 님, 집에는 잘 들어가셨어요?”

카이보다 먼저 게임에 접속해있던 유하린이 총총 걸음으로 다가와 물었다.

“네. 하린 씨는요?”

“저, 저야 뭐…… 덕분에 잘 들어왔지요.”

밤 늦게 여자 혼자 집에 보내는 건 위험해 보였기에, 카이는 그녀를 집까지 배웅해 줬다.

“오늘 감사했어요. 이것저것…….”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했지요.”

말을 잇던 카이는 어색한 분위기를 파하기 위해 짓궂은 농담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짐 박사랑 얘기할 때, 제 손을 아주 자연스럽게 잡으시던데요?”

“으으…….”

유하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발갛게 물들었다.

“그, 그야…… 소중한 사람이니까…….”

“예? 잘 안 들립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눈을 질끈 감은 유하린은 악마들을 도와주겠다고 후다닥 도망쳐 버렸다.

“흐음.”

자리에 혼자 남게 된 카이는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았다.

“……신출귀몰.”

띠링!

[신출귀몰 스킬은 12일 후에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역시 안 되나.”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카이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당길 때마다 쭉쭉 늘어나던 헬릭의 두 볼이 유난히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

“엣투이!”

킁, 훌쩍.

헬릭이 기침을 하자 칼 라샤가 걱정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 감기라도 걸린 거야?”

“나 신이니라. 감기는 무슨…….”

“그런데 왜 갑자기 기침을 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느니라. 막막 몸이 으실으실 하고, 기분이 좀 불안하니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헬릭이 돌연 불안한 표정으로 라샤의 소매를 흔들었다.

“호, 혹시 카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니겠지?”

“대공도 때려잡고 다니는 사람한테 무슨 일이 어떻게 생기겠어.”

신도가 업적을 세우면 신은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카이가 대공 키네사를 해치우는 순간, 헬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유였다.

“으응, 그건 그렇지만……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느껴진단 말이다.”

훌쩍.

라샤는 휴지를 몇 장 뽑아 콧물을 훌쩍이는 헬릭의 코에 갖다댔다.

“자, 흥해.”

“라샤여. 이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느니라. 나는 아이가 아니니까.”

휴지를 받아든 헬릭은 스스로 코를 풀었다.

그 자랑스러운 모습을 쳐다보던 라샤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폰을 꺼내들었다.

톡, 토도독.

“나 잠시 전화 좀 하고 올게.”

“우웅.”

인간 세상에 유학(?)을 온 덕분에, 헬릭의 폰에 대한 이해도는 더욱 더 높아졌다.

그 뒤로 업그레이드 된 폰은 이제 문자뿐만 아니라 전화까지 가능할 정도.

[여보세요?]

폰 너머에서 고혹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로비? 저 라샤인데요.”

[어머, 우리 귀염둥이 2호가 무슨 일이실까?]

“혹시 지금 바쁘세요?”

[아니, 안 바빠. 바빠도 우리 귀염둥이들 문제라면 미뤄둬야지.]

“그럼 혹시 지금 천상의 정원에 잠깐 방문해 주실 수 있으세요?”

[잠깐만.]

몇 초가 지난 후, 로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왔는데, 왜?]

“혹시 거기 구석에 있는 간식 자루가 네 개 맞나요?”

[응. 네 개인데?]

“그럼 수풀 쪽 덤불에 숨겨놓은 거대 막대사탕도 무사한지 좀 봐주세요.”

[잠깐…… 아, 찾았다. 무사한데?]

“으음. 그런데 왜 저러지.”

라샤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헬릭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오늘따라 헬릭이 조금 불안해 보여서요. 누가 간식이라도 훔쳐가지 않았나 해서.”

[어떤 간 큰 녀석이 태양신의 간식을 훔쳐가겠어. 그나저나 불안이라…….]

로비의 목소리가 살짝 심각해졌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혹시라도 심각해 보인다 싶으면 바로 천계로 넘어와. 그래야 대비를 할 수 있으니까. 누누이 말하지만 중간계는 위험해.]

“네, 꼭 그럴게요.”

[오구오구. 그럼 우리 귀염둥이들 숙제 열심히 하고.]

“……네. 들어가세요.”

로비와의 전화를 끊은 라샤는 몸을 부르르 떠는 헬릭을 걱정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남부 전선?”

카즈라의 면담 요청에 수락하자, 막사로 들어온 그가 대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알다시피 너의 손에 대공이 죽고 난 뒤. 남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렇지.”

수십 개로 쪼개진 세력이 남부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중이었다.

심지어 동부의 악마들도 슬금슬금 내려와 합류한다고 하니, 말 그대로 개판 진행 중.

“이번에 그대가 악마들을 대거 치료해준 덕분에 해방군의 전력이 크게 올랐다.”

“그래서 남부 전선에서 활약을 해보고 싶다?”

카즈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를 할 수 없는 악마들을 제외하더라도, 가용 인력은 3만이 넘는다.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이 정도 규모의 세력이면 남부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

“뭐, 세력의 규모만 따지자면 그렇겠지. 실속이 없어서 문제지만.”

카이의 묵직한 팩트에 카즈라가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맞다. 해방군에는 상급 악마들이 더러 포함되어 있지만, 최상급 악마는 없어.”

“그야 그렇겠지. 최상급의 악마가 해방 운동을 할 이유는 없잖아.”

그들은 마계의 먹이 사슬 피라미드에서 최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들.

당연히 현재의 체제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이들이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상급의 악마들도 굳이 해방 운동을 할 이유는 없지. 어느 영지를 가도 대우받지 않아?”

“……최하급이나 하급, 중급의 악마들에 비하면 확실히 대우를 받는다. 말 그대로 악마다운 삶을 살 수 있지.”

“그런데?”

“그런데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나는 등급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 꼴보기 싫은 것뿐이다.”

카이가 자신을 계속해서 시험하는 듯하자, 카즈라가 불평을 토로했다.

“기분 상했다면 사과할게. 그런데 왜 갑자기 남부 전선에 관심을 가지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넌 안전 주의자야. 리스크가 큰 남부에 눈독을 들일 것 같지는 않았는데.”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위라니?”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간 엘리시온에 머물면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이곳의 대장은 카즈라였다.

삼십 명 남짓 존재하는 상급 악마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그였으니까.

“너에게 상급자가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인데.”

“그야 여태까지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흐음. 남부 전선 이야기를 꺼낸 건 나에게 한 손 거들어달라는 소리 아닌가?”

“……맞다.”

카즈라가 조용히 인정했다.

“그렇다면 내가 엘리시온…… 아니, 해방군의 리더에 대해 알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도움을 받고 싶으면 모든 정보를 오픈해라.

그것이 카이가 내건 조건이었다.

“으음.”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카즈라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다.

‘상급자가 대체 누구길래? 카즈라가 이토록 어려워하는걸 보니, 최상급 악마인 것 같긴 한데.’

이쯤 되니 궁금증이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궁금하다면 나와 함께 그분을 보러가겠나? 그렇지 않아도 그대에게 많은 호기심을 갖고 계신다.”

“잘 됐군. 얼굴 한 번 보지.”

카이는 엘리시온을 돌아다니는 유하린을 불러냈다.

“무슨 일이예요?”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자,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카즈라가 이곳의 리더 아니었나요?”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네요.”

“으음. 조금 당황스럽네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 또한 해방군 리더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저도 갈래요.”

“그렇다는데, 괜찮겠지?”

“뭐. 상관없겠지.”

고개를 끄덕인 카즈라가 동료를 불러냈다.

카이와 유하린을 엘리시온으로 이동시켰던, 공간 이동의 능력을 지닌 악마였다.

“……진심이냐?”

“그분께서 허락을 하신 일이니까 괜찮다.”

“그렇다면 할 말이 없지.”

고개를 끄덕인 악마가 허공에 손톱을 그었다.

쩌저적.

공간이 그대로 찢겨져나가고, 그 너머의 풍경이 보였다.

“……카이 님. 저기 눈 오는데요?”

“저도 보입니다. 마계에 눈이라니…….”

언뜻 매치가 안 되는 그 모습에 두 사람이 주저하자, 카즈라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 너머에서 입을 열었다.

“마계의 서부. 극한지옥이라 불리는 사테라다. 해방군을 만드신 분이 거주하는 곳이지.”

***

“으읏. 추워요.”

유하린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바로 글렌데일에서 카이가 건네주었던 오크 가죽이었다. 이를 알아본 카이가 반색하며 물었다.

“어라? 그거 제가 드렸던 가죽 아니에요? 아직 가지고 계셨네요?”

“아…… 헤헤.”

타인으로부터 아무 이유 없이 받아본 최초의 선물이다.

유하린은 가죽을 어깨 위에 덮은 뒤 이를 꼬옥 붙잡았다.

“네. 이 가죽 따뜻해서 좋아요.”

가죽에 담긴 마음씨 때문인지, 덮고 있으면 항상 심장 부근이 따끈따끈해졌다.

“그래봤자 오크 가죽이라서 방한 능력을 별로일 텐데요. 차라리 이거 빌려드릴게요.”

카이가 인벤토리에서 트리플 헤드 오우거의 가죽을 꺼내들었다.

“이거 기억나세요? 예전에 하린 씨가 저한테 주신 가죽인데.”

“기억나요! 카이 님도 안 버리시고 간직하셨구나…….”

“어떻게 버리겠어요. 이게 어떤 물건인데.”

카이가 유하린의 머리와 어깨에 가죽을 둘러주며 싱긋 웃었다.

이에 유하린은 쑥쓰러운 듯 시선을 내려 눈 덮인 바닥을 쳐다보았다.

‘어떤 물건이냐니…… 카이 님은 그때부터 나를…….’

괜히 그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레어 아이템인데, 버릴 이유가 없잖아요.”

“헤헤, 농담도 참.”

“네? 농담 아닌데…….”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유하린의 눈에는 그저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한 모습으로 보였다.

“도착했다.”

그때 카즈라가 눈앞의 거대한 성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눈보라가 치는 지역에 오롯이 서있는 성채는 푸른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규모가 생각보다 큰데? 최상급 악마라면 다들 이 정도의 성채를 지니고 있는 건가?”

“글쎄.”

미묘한 웃음을 지어보인 카즈라가 성의 대문을 그대로 밀었다.

끼이익. 그들은 열린 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섰다.

“와아, 예뻐요.”

성벽을 지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마을이었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마을처럼 아름다운 모습.

“네, 아름답네요. 크리스마스 시즌에 커플들이 데이트 코스로 돌기에는 딱 좋겠어요.”

카이가 지나가듯 흘린 말에 귀를 쫑긋 세운 유하린은 몰래 달력 앱을 켰다.

[사테라, 크리스마스 날 카이 님과 함께.]

일정을 저장한 유하린이 길거리에 서있는 얼음상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카이 님, 이것 보세요. 이런 얼음상 보신 적 있으세요?”

“아뇨. 저도 처음 봅니다. 진짜 정교하게 잘 만들었는데요?”

일반적인 악마의 형상을 그대로 본뜨고 있는 얼음상에 두 사람이 감탄했다.

“하나만 있는 게 아닌데요? 저기 도로를 따라서 엄청 많아요!”

“만드는데 고생 좀 했겠는데요?”

그들의 반응을 가만히 구경하던 카즈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것들 얼음상 아니다.”

“음? 무슨 뜻이야?”

카이의 물음에 카즈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악마다. 죄를 지어서 얼어붙은 악마지.”

“……저게 다?”

길을 따라 쭈욱 늘어선 얼음상은 못해도 수백 개는 되어 보였다.

얼음상의 행렬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저택의 입구까지 이어져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미리 말해둬야겠군. 그분을 만나면 말을 가려서 해야 된다. 얼음상이 되기 싫다면 말이지.”

“…….”

카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뭔가 이상한데?’

카즈라는 자신이 대공 키네사를 처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자신에게 저 정도 수위의 경고를 한다는 것은 한 가지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설마 이 성채의 주인은……?”

“눈치챈 건가?”

카즈라가 옅은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와 숨길 것도 없겠지. 들어가자.”

그는 당당하게 걸으며 그들을 이끌었다.

“깨우친 대공. 세르핀께서 그대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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