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402화 (402/441)

# 402

힐통령 402화

121. 일당백만(4)

레벨 1의 초보자조차 생명력 100을 지닌 채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데미지가 1이라는 건, 레벨 1의 초보자조차 100번을 맞아야 죽게 된다는 뜻.

“마, 말도 안 돼.”

“데미지가 1밖에 안 들어간다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상대는 넋을 놓았다.

무기를 집은 손이 선뜻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우드드득!

그 사이 카이는 손을 뻗어 적군 하나의 목을 비틀었다.

“멍청한 놈들! 뭐하고 있냐! 공격해!”

단주들의 명령에 흑룡 길드원들이 마지못해 공격을 퍼부었다.

푸욱, 서걱!

카이의 몸을 수십 개의 무기가 강타하고, 수백 개의 스킬들이 폭격했다.

‘좀 지켜볼까.’

카이는 움직임을 멈춘 채 적들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오롯이 몸으로 견뎌냈다.

그렇게 30초쯤 흘렀을까?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확인했다.

299,645/300,200

“축하해. 총 825번 공격해서 555의 피해를 입혔네.”

“미, 미친…….”

“데미지가 진짜 안 들어가!”

“아니, 다른 것보다 이 새끼 마법 저항력은 대체 얼마인 거야…….”

현재 카이의 마법 저항력은 101.5%.

한 마디로 마법으로 그를 죽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당황하지 마라!”

흑룡 길드 제2단.

흑투단의 단주인 왕류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마법사 계열 유저들은 공격 스킬 대신 지원, 속박형 스킬을 써라! 나머지는 모두 무기를 쑤셔박아! 죽더라도 좋다! 데미지를 1이라도 넣어! 아군의 숫자만 수백만이다. 죽기 전에 한 대씩만 때려도 무려 수백만 데미지! 놈은 절대로 살아나갈 수 없다!”

“과, 과연……!”

“그래, 죽더라도 딱 한 대만…….”

희망에 찬 흑룡 길드원들이 다시 득달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공략법이라도 알아낸 유저들이라도 된 것처럼.

‘부나방 같네.’

허나 그들을 바라보는 카이의 입가에는 비틀린 미소가 맺혔다.

“희망이란 현재 없는 것을 기대고 바라는 것을 의미하지.”

철학자 니체는 주장했다.

희망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에 가장 질이 나쁜 악이라고.

지금 이 순간, 카이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니까 고통을 덜어줄게.’

따악!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는 순간.

카이의 전신을 은은항 황금빛 신성력이 뒤덮었다.

‘에너지 실드.’

마계에서 대공 키네사를 처치한 뒤 얻게 된 레전더리 등급의 스킬.

그 효과는 카이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하다.

‘이건 앙골모아의 전력조차 다섯 번은 막아낸다.’

물론 에너지 실드는 신성력을 소비한다.

초마다 엄청난 신성력이 실드를 유지하는데에만 들어가고, 피해를 입을 때마다 또 신성력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 정도야 뭐.’

자신의 신성력은 마르지 않는 바다처럼 방대하다.

카이는 피식 웃으며 성검을 좌에서 우로 크게 베었다.

서거어어어억!

마치 잔디밭 위에서 제초기를 돌린 것처럼, 적들의 수급이 허공을 수놓았다.

동시에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띠링!

[전장의 사신 효과가 발동합니다.]

[스테미너가 소량 회복되었습니다.]

[적을 처치하여 신성력이 소량 회복되었습니다.]

‘좋네.’

스스로가 지치지 않고 달려나가는 열차가 된 듯한 기분이다.

그 어떠한 적도 자신을 멈출 수 없었으며, 자신의 일검을 받아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카이가 왼발을 축으로 몸을 핑그르르 돌렸다.

날아든 수십 개의 무기는 그가 남긴 잔상만을 찔렀다.

“어어…….”

“비, 비켜! 뒤로 물러나게!”

“야이 씨, 누가 발 밟았어!”

지나치게 많은 머릿수가 오히려 그들에게 독이 되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카이와는 달리, 그들은 서로의 몸에 치여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독 안에 든 쥐.’

카이는 눈앞에 있는 흑룡 길드원의 무릎을 밟고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어어!”

“위다! 놈이 멈춰 있을 때 공격해!”

피잉! 쇄애애액!

순간적이지만 평야에 그늘이 드리워질 정도로 많은 화살이 하늘을 가렸다.

“화살이라, 후회할 텐데.”

“어……?”

“화살의 궤적이 왜, 왜?”

포물선을 그리며 카이에게 날아가던 수만 개의 화살들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카이의 신형 또한 빠른 속도로 비상하더니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다, 단주님. 어떡하죠?”

공격해야 할 대상을 잃어버린 흑룡 길드원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로만 쳐다보았다.

그때, 카이와 함께 구름을 뚫고 사라진 화살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와 함께, 밀집된 공간으로 떨어졌다.

쉬이이이익!

“방패 들어어어어!”

왕류인의 외침에 반응한 유저들이 방패를 들었다.

파바박! 파바바박!

방패 위로 엄청난 양의 화살이 빼곡히 박혔다.

‘무, 무슨 데미지가…….’

‘한 번에 날아온 화살이 420개라고?’

‘꿀꺽, 방패가 없었다면 끝장났겠군.’

겨우 목숨을 건진 유저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처 방패를 준비하지 못한 유저나, 애초에 방패가 없던 클래스의 유저들의 경우에는 끔찍했다.

애초에 수만 개의 화살을 좁은 지역에 밀집해서 떨어트린 카이였다.

방패가 없는 이들은 적게는 수십 개부터, 많게는 수백, 수천 개의 화살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파스스슥!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죽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수천 명의 유저가 폴리곤이 되어 사라졌다.

“으드드득.”

그 모습에 왕류인이 이를 갈았다.

검 손잡이를 쥔 손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꽈악 들어갔다.

하지만 화살 공격을 중지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가 많은 흑룡 군이 한 명의 대상을 동시에 타격하려면, 원거리 공격이 필수.

심지어 상대는 마법 공격에 전혀 데미지를 받지 않았다.

‘궁수들마저 배제해버리면 원거리에서 피해를 줄 방법이 없다.’

결국 왕류인은 기존의 방법을 고수했다.

“계속해서 쏘고, 견제해라!”

하지만 그것도 견제할 대상이 있을 때의 이야기.

‘그러고보니……?’

왕류인이 아차한 표정을 지었다.

구름 위로 사라진 화살들은 돌아왔지만, 카이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잠깐, 설마?”

카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절대자의 던전에서 이미 공개된 바 있다.

‘헬 파이어……!’

캐스팅 시간이 긴 스킬이다.

아무리 카이라지만, 수백 만 명을 상대하면서 그 긴 캐스팅을 유지할 정도의 집중력은 없다.

“산개! 산개해라! 곧 마법이 떨어질 거다!”

왕류인이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흑룡 군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야 한두 명도 아니고, 그 자리에 모인 곳만 수십만 명이었니까.

화르르륵!

그 순간, 구름이 일제히 터져나가며 네 개의 거대한 불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먼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 위쪽이 화끈거렸다.

“요격해애애애애!”

왕류인의 명령에 흑룡의 병사들이 헬 파이어를 향해 자신의 원거리 스킬을 모조리 퍼부었다.

수십만 개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으며 헬 파이어를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구름의 뒷편에 숨어있던 카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먼 거리에 있었지만, 왕류인의 눈에는 그의 눈과 입에 걸린 함박웃음이 똑똑히 보였다.

‘웃어……? 잠깐, 설마!?’

왕류인의 관자놀이로 굵은 땀 방울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헬 파이어가……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카이는 헬 파이어를 이용해 공격할 의사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가 노리는 것은 단 하나.

“원거리…… 스킬……!”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카이는 수십 만 개의 원거리 스킬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며, 천천히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세상이 멈췄다.

무서운 소리를 내며 날아오던 화살도, 이글거리는 화염과 차가운 얼음의 창도.

모두 허공에 멈춘 채 카이의 명령을 기다렸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삼국지에 이런 일화가 있더라고.”

제갈공명, 조조 군을 속여 하룻밤 사이에 10만 발의 화살을 모아오다.

“배웠으면 써먹어야지.”

새애애애애액!

멈춰있던 수십만 개의 스킬들이 방향을 선회에 제 주인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허공에 못 박힌 것처럼 서있던 카이는 팔짱을 끼고 흑룡 군을 내려다보았다.

다소 오만한 눈빛을 드러낸 그의 앞으로.

헬 파이어를 비롯한 수십만 개의 스킬들이 운석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아앙! 퍼엉!

마치 폭격이 떨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대지가 진동했다.

“……장관이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이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땅에 옮겨 붙은 네 개의 지옥불은 진화될 줄 모르고 흑룡 군을 불살라 버렸다.

수십만 개의 스킬들은, 불이 붙은 흑룡 군들의 막타를 치는 데 사용되었다.

“경험치도 은근 잘 오르잖아?”

적들의 레벨이 200 이상이나 낮다지만 무려 수만 명을 학살한 참이다.

경험치가 아무리 짜다고 해도 카이의 경험치는 순식간에 30%나 상승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가보자고.”

카이는 폭격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왕류인의 앞으로 이동했다.

스윽, 쭉 뻗어나간 성검의 검극이 그를 지목했다.

“뭐, 뭐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왕류인이 말했다.

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처음과 같은 자신감이 사라진 상태였다.

“길로틴, 지금부터 너에게 사용할 스킬인데 무슨 뜻인지 알아?”

“갑자기 무슨 시답잖은 소리를…….”

왕류인이 으르렁거렸다.

그는 길로틴이 단두대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다음 질문, 네가 흑룡 군에서 제일 강한 유저인가?”

“……그렇다.”

물론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져있다.

사실은 쟈오 린이 그보다는 훨씬 강하지만, 그는 일부러 말을 아꼈다.

‘이 녀석이 방심을 해준다면, 용주께서 승리하실 확률이 올라갈 테니까.’

때문에 그는 어깨와 가슴을 쫙 피면서 검을 뽑았다.

마치 자신이 흑룡 군에서 가장 강한 유저라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이.

그는 들고있던 방패를 뒤로 던졌다.

길다란 대검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잡고, 전의를 불태웠다.

“긴말 할 필요 없겠지. 와라.”

제법 멋있는 말이었다.

주변에 있던 흑룡 길드원들도 조금씩 거리를 벌리며 두 사람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놀고 있네.’

하지만 카이는 처음부터 왕류인 따위와 시시한 일기토를 벌일 생각이 없었다.

파앗!

잔상을 뿌리며 달려나간 카이의 검이 왕류인의 가슴을 길게 베고 지나갔다.

‘터, 터무니없는 빠르기……!’

쟈오 린을 상대해봤던 왕류인의 머리로 경종이 울렸다.

‘이 정도 속도라면…… 용주께서도……!’

그의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확산되듯 퍼져나갔다.

맑은 물 위에 색소를 한 방울 떨어트린 것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아까 물어봤던 질문에 대한 답은, 단두대야.”

카이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짜증이 난 왕류인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지만, 목소리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서걱!

이미 카이의 두 번째 검격이 그의 목을 완전하게 베어낸 후였으니까.

“단 두 대.”

고작 두 번의 공격으로, 흑룡 군의 2인자를 처치한 카이는 자신의 개그에 만족하며 낮게 웃었다.

***

쟈오 린은 부하들이 준비해 준 높은 옥좌에 앉아 전장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우드드득!

돌연 옥좌의 팔 걸이가 바스라졌다.

‘왕류인이…… 당했다고?’

중요한 건 그가 당했다는 것이 아니다.

고작, 두 번의 공격으로 당했다는 것이 포인트였다.

‘나조차 그런 일을 하려면…….’

쟈오 린의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어쩌면 카이가 자신의 생각보다 강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잘게 떨리는 그의 눈동자가 메시지 창을 향해 돌아갔다.

[길드원, 왕류인 님이 사망하셨습니다.]

[길드원, 웨이랑 님이 사망하셨습니다.]

[길드원, 씽치우 님이 사망하셨습니다.]

[길드원, 레이 님이 사망하셨습니다.]

…….

[길드원의 수가 100명 줄어들었습니다.]

[모든 스탯이 0.1만큼 줄어듭니다.]

“허, 허억…….”

사람은 지닌 것이 많을 때는 사소한 것을 보지 못한다.

쟈오 린의 경우가 딱 그러했다.

카이를 주시하느라, 좌측과 우측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등한시한 대가였다.

“…….”

이미 듀라한 군단이 날뛰는 곳에는 불사의 군단이 강림했다.

듀라한들이 수천 마리의 스켈레톤들을 이끌며 아군을 학살하는 중이었다.

휙! 고개를 돌리자 반대편의 전황이 눈에 들어왔다.

해룡이 수압포를 발사할 때마다 아군이 수십 명씩 가볍게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흡혈귀나 리자드맨의 경우에도 착실히 한두 명씩 처치해 나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저건…….”

타이밍 좋게 미믹의 모습이 변했다.

그것은 과거, 세계 10대 길드의 구성원 중 하나였던 니혼이치조차 멸망시킨 보스 몬스터.

자탄의 모습을 고스란히 잇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불안해진 쟈오 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주변에 있는 모든 길드원들에게 명령했다.

“전진 전군! 카이의 발목을 붙잡아라. 그동안 나는…….”

그의 시선이 우측으로 향했다.

언데드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듀라한 군단을 정리하겠다.”

쟈오 린이 스스로의 실력을 만천하에 드러낼 생각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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