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
힐통령 404화
121. 일당백만(6)
리저렉션(Resurrection).
사제들이 초보자 티를 벗어날 때 배우는 스킬로, 유저들 사이에선 기적이라고 불린다.
죽은 아군을 부활시키는 행위.
유저들에게 이것만큼 커다란 기적은 없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리저렉션이 만능 스킬인 것은 아니다.
유저가 죽으면 받게 되는 페널티는 총 세 개.
3일간의 접속 페널티, 경험치 하락, 일정 확률로 아이템 드랍이다.
여기서 리저렉션을 사용하게 되면 3일 간의 접속 페널티가 사라지고 곧장 접속할 수 있다.
물론 경험치 하락과 아이템 드랍만큼은 막을 수 없지만, 아이템이야 살아나면 도로 주울 수 있다.
요컨데 리저렉션 스킬은 세 가지 페널티 중에 사실상 두 개를 없애주는 기적.
하나 비교적 낮은 레벨에서 배우는 이 스킬을 물 쓰듯 쓰는 사람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역시 신성력 소모가 상당해.’
신성 스탯만 4,500가량인 카이의 신성력은 매우 높다.
게다가 여러가지 칭호와 성물 세트 효과로, 신성력을 소모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가 두 배 가량 상승한다.
여기에 더해 모든 스킬의 신성력 소모량도 큰 폭으로 줄어든다.
그런 카이임에도 불구하고, 23마리의 듀라한을 살리자 전체 신성력의 1/4가량이 날아갔다.
아마 일반적인 450레벨의 사제라면, 한 번에 살릴 수 있는 아군은 기껏해야 서너 명.
고작 그것만으로도 신성력이 고갈되어 다른 행동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후우…….”
하얀 입김을 뿜어내던 카이는 자신의 소환수, 듀라한들을 살려냈다.
카이의 입장에서는 든든하기 그지 없지만 상대하는 입장에선 그게 아니다.
“이, 이 끈질긴 놈들…….”
“다시 살아났다고? 그것도 스무 마리가 넘게?”
“카이 저 녀석……!”
큰 충격에 빠진 흑룡 길드원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우선 쟈오 린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상대할 방법이 없는 듀라한.
스무 마리가 넘게 죽었던 듀라한들이 멀쩡하게 살아나서 움직이니, 심리적인 압박감이 상당했다.
마치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신을 상대하는 기분.
그리고 그러한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했다.
‘카이 녀석…… 성기사가 아니었다!’
‘리저렉션 스킬은 오직 사제만 쓸 수 있어. 아무리 히든 클래스라고 해도 기존의 클래스 체계 자체를 엎을 순 없다.’
카이가 사실은 성기사가 아닌 사제였다는 것.
그리고 300만 흑룡 대군이 고작 사제 하나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는 것.
쉽게 믿기지 않는 ‘현실’들은 흑룡 군의 전의를 착실하게 깎아나갔다.
“……놀랍군.”
되살아난 듀라한들을 보던 쟈오 린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로 진한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 아쉽구나.’
언노운이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만약 그 때 억만금을 불러서라도 그를 데리고 왔다면?
그를 손에 넣는 길드는 지금쯤 명실상부한 월드 1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 게임을 마음가는대로 주무르고 있었을 터.
‘적으로 만난 것이 안타까운 상대는 처음이구나.’
쟈오 린은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검을 휘둘렀다.
까아앙!
“……?!”
그리고, 되살아난 듀라한이 그 일격을 막아냈다.
“이게 무슨……?”
충격을 받은 쟈오 린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이 녀석은 분명 자신의 검을 받지 못하고 양단되었던 녀석이다.
그런데 고작 부활한 것만으로 강해졌다니?
끼리릭.
입이 없는 듀라한은 말을 할 수 없다.
하나 자신의 투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으로.
들고 있는 검과 전신에 두른 투기로 말을 할 뿐이다.
듀라한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학습한다.
나의 죽음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러니 덤벼라.
‘고작해야 몬스터 따위가……!’
알 수 없는 기분이 휩싸인 쟈오 린이 분노했다.
“건방지구나!”
휘익!
쟈오 린의 검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떨어졌다.
군주 클래스의 효과로 상승한 모든 스탯은 3,000.
게다가 그가 레벨을 460까지 올리면서 얻은 스탯들은 모두 합쳐 2,500 수준이었다.
그는 레벨이 오를 때마다 스탯을 체력과 힘, 민첩에만 올인했다.
즉, 현재 그의 힘 스탯은 3,700 수준.
서걱!
듀라한의 팔이 잘려나갔다.
동시에 쟈오 린이 이를 악물었다.
‘감히……!’
그는 목을 베어내려고 했다.
하나 듀라한이 찰나의 순간 몸을 비틀어 자신의 팔을 내준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창격!
까드드드득!
듀라한의 공격이 처음으로 쟈오 린의 방어구를 강타했다.
큰 데미지가 들어왔지만, 쟈오 린의 체력은 이미 유저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상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쟈오 린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까아아아앙!
“한낱 깡통 따위가!”
듀라한을 그대로 터트려 버린 쟈오 린이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먹잇감에 불과했던 듀라한들.
전장에 흩어진 49마리의 듀라한들이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실수했군.’
고작 듀라한을 상대하는데 호흡을 잃다니.
자신은 이 전쟁을 통해 절대적 강자이자 덤빌 마음조차 품지 못할 아이콘이 되어야 했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결국 듀라한. 빠르게 마무리 짓고 체력이 떨어진 카이를…….’
쟈오 린이 슬쩍 고개를 돌려 카이의 위치를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자신의 군대가 그를 둘러싸고 정신없이 몰아붙이고 있을 터.
하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
카이의 위치를 확인한 순간, 쟈오 린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자신의 군대는 모두 얼음상이 되어있는 상태였고, 카이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어디…… 어디에?’
쟈오 린이 황급히 길드 채팅을 동원했다.
[카이의 위치를 찾아라! 놈은 어디있지?]
부하들의 메시지가 속속들이 도착했다.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파악 중입니다.]
“…….”
쟈오 린은 등골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등을 돌렸다.
그것은 그가 평소에 추구하던 이성이 아닌, 본능이 가르킨 행동이었다.
까아아아앙!
“호오, 생각보다 반응이 좋네.”
결정적인 순간, 이성보다는 본능이 그의 목숨을 살렸다.
쟈오 린은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당도한 카이를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네놈…….”
“그동안 답답했겠어.”
카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나 강한데, 실력 숨기고 있었으니 오죽 답답했을까.”
“순간의 명예보다는 실리를 택한 것뿐이다.”
“누가 뭐래? 그래서 더 안타까운 거지.”
스르릉.
카이가 성검을 휘두르자 검날이 공기를 날카롭게 베어내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답답한거 참아가면서 오늘 하루만 보고 달려왔는데…… 나한테 다 무너지게 생겼잖아.”
“신은 너에게 능력을 준 대신, 겸손을 앗아갔구나.”
“아닌데, 오히려 내가 드린 게 더 많은데?”
한 달 과자 값만 얼만데.
카이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쟈오 린에게 말했다.
“그럼 시작할까?”
“……조금 이르다고 생각하는데. 보는 눈들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시청자들 입장에서 두 사람의 빅 매치는 아껴두고 먹어야 할 메인 디쉬나 다름없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서 살아? 피곤하게.”
“널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다.”
쟈오 린의 이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는 자신의 뛰어남을 믿는 만큼, 카이의 우수함 또한 인정했다.
그렇기에 그를 동정했다.
“하늘 위에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를 수는 없는 법. 오늘 하나를 땅 밑으로 가라앉는다.”
“설마 그게 나라는 건가?”
“물론이다. 이해가 빨라서 좋군.”
자신이 무조건 이길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신화를 이룩해낸 사내를 밟아야 한다는 안타까움…… 희열.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쟈오 린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네 놈이 그렇게 원한다면 상대해주지.”
“마왕도 이렇게까지 오만하지는 않았는데…….”
조용히 중얼거린 카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상대를 부탁할까.”
“오거라.”
쟈오 린이 격식 있는 자세를 취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턱을 치켜든 채, 왼손은 뒷짐을 진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오른손에 검을 쥐고 그 검만을 제 가슴 앞에 비스듬하게 세워놓았다.
‘끝까지 멋있는 척은 혼자 다 하네.’
피식 웃은 카이가 입을 열었다.
“간다.”
하나 그 단어가 허공에 흩어지기도 전에, 그의 신형은 쟈오 린의 등 뒤로 돌아가 있었다.
“뻔하군.”
쟈오 린이 귀신같이 몸을 돌리며 카이의 속도에 반응했다.
NPC가 아닌 유저가 자신의 움직임에 이렇게까지 반응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때문에 카이는 살짝 놀랐다.
많이는 아니고, 아주 살짝.
‘그래서 뭐 어쩌라고.’
카이의 성검이 쟈오 린의 패왕검을 짓눌렀다.
까드드드득!
놀랍게도 두 사람의 힘 스탯은 동일한 수준.
누구하나 물러서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쟈오 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 이 무슨…… 내 힘을 버틴단 말이냐?”
“그게 무슨…… 버티면 안 되나?”
“당연히 안 되고 말고!”
자신의 힘 스탯은 3,700이다.
당연히 그 어떤 유저보다도 높아야 하고, 절대적이어야 한다.
헌데 자신의 일격을 버티다니?
아니, 버티는 것 이상으로…….
까드드드득!
균형이 딱 맞아떨어지던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너…… 몸의 밸런스가 엉망이네.”
조용히 중얼거린 카이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푹 꺼졌다.
쟈오 린이 몸을 돌리며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까아아앙!
두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일어났다.
하나 잠깐의 격돌을 뒤로하고 다시 한 번 카이의 신형이 사라졌다.
나타난 장소는 다시 뒤.
“이런 잔기술 따위, 통하지 않는다!”
쟈오 린이 다시 한 번 등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카이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나, 충격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쟈오 린의 발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익……!”
카이가 매서운 바람처럼 쟈오 린을 몰아쳤다.
뒤에서, 좌에서, 우에서, 때로는 위쪽에서.
쟈오 린의 무게 밸런스가 엉망이라는 것을 파악한 즉시 흔들기에 들어간 것이다.
카이는 정확하게 정답을 짚었다.
시간이 갈수록 쟈오 린의 자세가 무너진 것이다.
그에게선 처음의 고고하고 꼿꼿한 자세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에 흩날린 머리카락은 잔뜩 산발이 된 상태였고, 카이가 검을 번개처럼 내려칠 때마다 허우적거리며 겨우 이를 막아내는 것이 다였다.
까아앙!
“크윽!”
심지어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명치라도 맞은 것처럼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왜? 왜? 대체 왜?’
자신의 스탯이 카이보다 현저히 높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동급은 될 것이다.
그건 처음에 힘 대결을 할 때 확신했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밀리는 거지?’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가드가 뚫렸다.
푸욱!
성검에 그대로 가슴이 뚫린 쟈오 린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크으윽……!”
사악!
카이는 금새 검을 뽑고 뒤로 물러났다.
상대방의 체력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기에, 반격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크으으…….”
주변을 가득 메운 흑룡 군의 사제들이 쟈오 린의 체력을 회복시켰다.
카이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손을 휘저었다.
“저 놈들부터 죽여버려.”
텅! 텅! 텅!
충실한 그의 기사들이 투구를 휘두르며 전장의 사제들에게 달려들었다.
“어…… 어어어!”
“사, 살려줘!”
“탱커진들 뭐해!”
몸이 약한 사제들이 순식간에 맞아죽었고, 카이는 쟈오 린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냐, 그 눈빛은.”
무언가 기분 나쁜 카이의 눈빛에 쟈오 린이 으르렁거렸다.
하나, 카이는 더 이상 그의 오만한 발언에 일일이 신경쓰지 않았다.
그를 자신의 적수로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안타까웠다.
동시에 화가 나기까지 했다.
“너…… 스탯이 높지? 어쩌면 나보다도 더.”
“물론 높을 것이다.”
쟈오 린은 그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럴수록 카이의 눈빛은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그렇구나…… 그런데, 그럼 대체 여태까지 뭘 한 거냐?”
“……뭐?”
카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쟈오 린이 되물었다.
“너, 그 스탯들을 가지고 전력으로 싸워본 적은 있어?”
“군자는 경거망동하지 않는 법이다.”
“아, 없구나.”
이해를 마친 카이가 중얼거렸다.
그것이 쟈오 린과 자신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경험.’
자신의 높은 스탯에 만족하고, 어떤 적이든 찍어누를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
그것이 쟈오 린의 발목을 단단하게 묶은 족쇄가 되어버렸다.
반면에 카이는 그와 달랐다.
‘끝없이 싸워왔지.’
그것도 약한 상대들을 상대로 화풀이만 하는게 아니라, 강한 상대들만 찾아다니며 그들과 싸웠다.
그 과정이 지금의 카이를 만들었다.
전투 시에 자신의 능력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유저.
그게 카이였다.
‘반면에 쟈오 린은…….’
높게 쳐줘봐야 40~50% 정도?
물론 스탯이 워낙 높다보니 웬만한 랭커들은 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 되지. 그래선 안 돼.’
그런 얄팍한 깊이와 수준으로 자신에게 덤빌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뚫고, 마왕까지 무릎 꿇린 자신은 이미 전투의 베테랑이었다.
미드 온라인에서 가장 잘 싸운다고 스스로 자부심이 생겼을 정도다.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야.”
카이의 눈동자가 싸늘해졌다.
강자를 마주했을 때의 떨림은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이런 녀석을 상대로 길게 끌 필요는 없겠지.’
잔뜩 기대했는데, 마치 사기를 당한 것처럼 허무하기까지 하다.
살짝 짜증이 난 카이의 등 뒤로 네 개의 신성 마법진이 떠올랐다.
주변의 열기가 높아지고, 카이의 몸은 바람처럼 가벼워졌다.
“간다.”
이전과는 말투의 온도도, 말에 담긴 무게도 남다른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