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411화 (411/441)

# 411

힐통령 411화

123. 사도회의(3)

우드득.

카이가 쥐고 있던 의자의 팔걸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후우우…….”

잠시 호흡을 고르며 분노를 진정시킨 카이가 입을 뗐다.

“그럼 설마 헬릭 님이 가끔씩 드러내시는 불안 증세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그녀는 태양신, 지고의 존재다.

때문에 카이는 그녀가 때때로 보이는 의존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상급 품격의 신을 그토록 두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로비가 그랬었지.’

헬릭을 울리지 말라고.

상처가 많은 여린 아이라고.

“……헬릭 님께서는 또 다시 가까운 존재에게 버림받으실까 봐, 배신을 당하실까 봐 겁이 나시는 거예요.”

“뮬딘은 자신의 여동생이 더 위대한 존재가 되었고, 더 많은 인간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에 질투를 했네. 결국 그는 하나 뿐인 여동생을 죽이려고 했지.”

“……하, 하하.”

카이가 입에서 실없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런 이유였던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신도들이 자신을 버릴까 봐 악착같이 중년인의 모습을 연기하는 이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도, 사달라고 조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자제를 하며 생떼를 부리지 않는 이유.

“헬릭 님이 이런저런 눈치를 보고 다니시는 게, 전부 뮬딘 그 자식 때문이었습니까.”

생면부지의 타인이 아닌, 가족에게 배신을 당했던 사람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언제 버릴지, 배신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다시 한 번 세상에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고독감.

그것들이야말로 헬릭의 마음을 좀먹어오던 기생충 같은 트라우마의 정체였다.

“…….”

“…….”

신전이 조용해졌다.

카이가 분노하자,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살기가 주변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형제여, 살기가 너무 짙네.”

체란티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타박했지만 카이는 진정하지 않았다.

아니, 진정할 수 없었다.

“……헬릭 님은 말입니다. 요즘 곧잘 웃으십니다.”

카이가 책을 읽듯, 천천히 단어들을 뱉어냈다.

“예전보다 이런저런 부탁도 더 많이 하시고, 투정도 잘 부려주십니다.”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 헬릭 님이 어젯밤에 절 걱정해 주시더군요. 뮬딘에게 덤비지 말라고. 제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까.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가족을 죽이겠다는 사람을 말리는 그녀의 심정이.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지 카이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패트릭 님, 패트릭 님은 뮬딘이 헬릭 님의 가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상처 입혔습니다. 맞습니까?”

“맞다.”

“왜 그러셨습니까. 뮬딘이 죽으면 헬릭 님이 슬퍼하실 것이 뻔한데.”

카이의 질문에 패트릭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대꾸했다.

“그가 사라짐으로써 헬릭 님이 얻게 될 슬픔보다, 그가 앞으로 헬릭 님에게 줄 고통이 더 커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그의 생각은 카이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헬릭 님이 마음 편히 웃기 위해선 뮬딘이 사라져야 한다.

그가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자신이 헬릭에게 미움을 받게 되더라도.

반드시 그를 소멸시켜야 한다.

“인간이 격을 뛰어넘는 방법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십니까.”

카이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건 우리로써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다만…… 천계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하면서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은 들어요.”

시미즈가 조용히 손을 들며 말문을 열었다.

“천계에 거주하는 신들은 말이에요. 아무리 하급 신이라 해도 저마다의 신념이 있어요.”

“신념…….”

“저희에게도 신념은 있었어요. 저는 아군을 수호하겠다는 신념이 있었고, 체란티아는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주겠다는 신념이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패트릭의 경우에도, 적들을 남김없이 죽여 후환을 만들지 않겠다는 다소 폭력적인 신념이 있었지요.”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신이 되지 못한 겁니까?”

“그건 저희도 모르죠. 하지만 신념이 없는 신은 없다. 이것만큼은 확실해요.”

즉, 신념을 갖는 것은 격을 높이는 데 필요한 최소 조건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카이 님은 태양교의 4대 째 사도. 이제 슬슬 본인만의 신념을 갖출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만의…… 신념입니까?”

“네, 지금의 카이님을 만든 신념, 앞으로의 카이님이 고수할 신념. 그 두 가지를 생각해보세요.”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시미즈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체란티아가 말을 거들었다.

“태양의 사제는 신념이 갖춰지는 순간, 자신만의 성물을 소유할 수 있다.”

“성물이라면, 설마 여러분들의 것과 같은?”

카이의 물음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물이란 사도의 신념이 강하게 녹아 있는 상징과도 같은 무구.”

“신념이 녹아 있는 무구는 파트너나 다름없어요.”

“사도는 성물을 소유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전투력이 천차만별이지.”

“성물이라…….”

여지껏 스스로의 성물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은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의 신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 적 조차 없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죠? 성물이란 건.”

“물론. 애초에 신념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자신의 신념에 확고한 믿음이 생겼을 때. 평생 그 길을 나아가겠다는 결심이 설 때.”

“그 순간, 이 세상에 또 하나의 성물이 탄생할 걸세.”

선배 사도들의 진심어린 충고는 확실히 카이에게 도움이 되었다.

“좋은 말씀들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이는 진심을 담아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사도들은 저마다 따스한 눈길로 쳐다봤다.

“아,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의문인데요.”

“부담 없이 얘기해 보게. 우리 사이에 뭐 어떤가.”

체란티아가 근육이 꽉 들어찬 팔을 들어 올리며 친근하게(?) 웃었다.

“예. 만약 뮬딘이 사라지게 된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뮬딘은 어둠의 신이다.

그는 어둠과 밤, 달과 폭력을 관장하는 최상급 품격의 신.

그런 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건 카이의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만약 뮬딘이 사라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패트릭은 가정법을 이용해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신이란 현상과 개념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다.”

“……예?”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패트릭은 이해를 돕기 쉽게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바다의 신 아쿠아 님을 예를 들어보지. 만약 천계에서 아쿠아 님이 사라진다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바다가 일시에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아!?”

“신이란 세계의 개념과 현상을 대표하는 존재일 뿐. 그 자체는 아니다.”

“그렇군요. 그럼 뮬딘이 죽어도 이 세계에 아무런 영향은 없겠군요.”

“흐흣.”

시미즈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뜬금없는 웃음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가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웃어서 죄송해요.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요.”

“옛날 생각이라고 하시면……?”

“아주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이 땅에 나라라는 개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일이예요.”

“그건 대체 몇백 년 전의 일입니까.”

“천 년에 가까운 과거이지요. 인간들이 모여 무리를 지었고, 그 무리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라라는 형태가 되었어요. 종교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된 시기이기도 하지요.”

“아, 그렇다면 설마?”

“예. 제가 헬릭 님의 목소리를 듣고 태양교를 창설했던 시기예요.”

아련한 눈빛을 띄고 있던 시미즈가 천천히 눈꺼풀을 내렸다.

그녀의 입가로는 마치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달콤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그 당시의 헬릭 님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성숙하셨어요. 같은 여자가 봐도 멋있으셨지요. 물론 체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잠시만요. 지금 헬릭 님 이야기하시는 거 맞죠?”

“그럼요. 지금이야 아이처럼 보이시지만, 그 당시의 헬릭 님은 아버지인 주신께 직접 인간들의 관리를 부탁받으셨던 터라 책임감이 유독 강하셨어요. 스스로를 매일매일 빠듯한 스케줄에 몰아넣으셨었지요.”

그러니까 누군데, 그 사람은.

이 이야기를 듣는 건 체란티아와 패트릭도 처음인듯, 얼굴 위로 미처 숨기지 못한 당황이 드러났다.

“그 때까지만 해도 뮬딘과 헬릭 님의 사이는 크게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야 뮬딘이 헬릭 님을 시기하기 시작한 때는…… 태양교가 융성해지고, 뮬딘 교의 세력은 상대적으로 나약했을 때부터니까요.”

“그렇군요. 그런데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왜냐하면 뮬딘과 헬릭 님. 두 사람도 방금 전과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했거든요.”

“동일한 주제라면…… 신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입니까?”

“네. 약간은 다르지만, 크게 다르진 않아요. 그나저나 자꾸 말 끊으실 거예요?”

시미즈가 카이를 살짝 흘겨봤다.

“죄송합니다. 계속 말씀해주세요.”

“엣흠. 그럼 계속할게요. 당시에 뮬딘과 헬릭 님은 한 가지 내기를 했어요. 아마 기억에 따르면 뮬딘이 먼저 제안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어떤 내기였죠?”

“두 사람 중 이 세상에 더 필요한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보자는 내기였어요. 생각해 보니 이 때부터 뮬딘은 헬릭 님을 경계하고 있었나 보네요.”

“하지만 빛과 어둠, 낮과 밤은 모두 이 세상에 필요한 것 아닙니까. 누가 더 필요한 존재인지 대체 어떻게 알죠?”

“실험은 간단했어요.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 하나를 대상으로, 한 번은 주변을 빛으로 가득 채워보고, 또 한 번은 어둠으로 가득 채워보는 것이었죠.”

시미즈가 빙그레 웃으며 카이를 쳐다봤다.

“결과가 어땠을 것 같나요?”

“음……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아무래도 무승부 아니었겠습니까?”

“어머,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사람은 주변이 너무 밝으면 눈을 뜨지 못하고, 반대로 주변이 너무 어두우면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카이의 대답에 시미즈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통찰력이 대단하시네요. 설마 이 이야기의 요지를 한 눈에 꿰뚫어보실 줄이야…… 맞아요. 헬릭 님이 힘을 내뿜자 나그네는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반대로 뮬딘이 힘을 내뿜었을 때는 눈은 뜰 수 있었지만 한치 앞도 보이지가 않았지요.”

“그럼 결국 무승부였군요.”

요컨데, 강렬한 빛과 강렬한 어둠.

한 가지 힘이 지나치게 강한 것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아니요. 하지만 내기의 승자는 뮬딘이었어요.”

“음?”

“어째서입니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체란티아와 패트릭이 시미즈에게 따졌다.

“간단해요. 가볍게 한 번 실험을 해볼까요?”

시미즈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 공간에 빛이 가득 차올랐다.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세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무언가를 발견한 카이가 탄식을 뱉어냈다.

“아……!”

“뭔가 발견한 건가?”

체란티아와 패트릭이 고개를 돌리더니, 카이의 시선을 좇았다.

이윽고 무언가를 발견한 그들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로군.”

“맞아요. 승패를 가른 것은 그림자였어요.”

빛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림자이다.

심지어 빛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림자의 음영 또한 짙어진다.

“아마 그 내기를 통해 뮬딘은 확신했을 거예요.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깨달았거든요. 온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일 수는 있어도, 빛으로 물들일 수는 없다는 것을.”

“……설마 그게 헬릭 님을 죽이려는 이유는 아니겠죠?”

“저야 모르지만, 관계가 없지는 않을 거예요. 실제로 뮬딘이 행동을 개시한건 그 내기 이후였으니까.”

“…….”

카이는 말을 아꼈다.

시미즈의 설명을 통해 그도 나름대로 느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빛이 아무리 강하다한들 물체의 뒤로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반면 어둠이 세상을 가득 채우면, 빛이 들어설 틈은 사라진다.

“고작 내기일 뿐이지만, 제법 심오하군.”

체란티아의 중얼거림에 패트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락하기는 쉬우나 천선(遷善)하기는 어려운 법. 인간이란 존재를 여실히 보여주는군요.”

“……균형인가.”

카이가 중얼거렸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도, 치우쳐지지도 않은 공정한 상태.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사도들과의 회의는 카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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