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414화 (414/441)

# 414

힐통령 414화

124. 마스터(3)

카이는 베오르크 국왕과의 면담을 며칠 뒤로 미루었다.

바체와의 대련 이후 급격히 피곤해지기도 했고, 얻은 것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벌써 난리네.”

미드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미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다.

카이가 여명의 검법을 마스터 랭크까지 올린 순간, 월드 메시지가 출력되었기 때문이다.

[대륙에 최초의 스킬 마스터가 탄생하였습니다.]

[이 거룩한 업적의 달성자는 ‘카이’입니다.]

덩달아 카이는 기대도 안했던 축하 메시지들을 거의 모든 지인에게서 받은 상태였다.

“후우.”

일일이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낸 카이는 눈을 감고, 숨을 한 번 골랐다.

여명의 검법 스킬이 마스터 랭크에 이르면서 얻게 된 스페셜 칭호와, 마스터 전용 스킬.

그 두 가지의 효과에는 걸고 있는 기대가 제법 컸기 때문이다.

‘무형검이라는 스킬도 그렇지만, 스페셜 칭호. 이게 중요해.’

무려 스킬 마스터다.

그것도 ‘최초의’ 스킬 마스터.

이것은 아마 게임의 서비스가 종료되는 날까지, 가장 따내기 어려운 칭호로 기억될 것이다.

꿀꺽.

침을 한 번 삼킨 카이는 떨리는 목소리를 뱉어냈다.

“칭호 도감.”

촤르르륵.

그의 눈앞으로 이미 수십 개의 페이지가 꽂혀져 있는 칭호 도감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카이는 반짝이는 한 장의 페이지를 붙잡더니, 이를 꽉 깨물며 책을 펼쳤다.

[최초의 스킬 마스터]

등급 : 스페셜

내용 : 최초로 스킬을 마스터한 플레이어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킬의 에너지 소모량 15% 감소. 모든 스킬의 위력 15% 증가. 모든 스킬의 숙련도 상승 속도 30% 증가.(이 효과는 칭호를 장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부르르.

카이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그의 전신을 가득 채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참자. 아직 하나 더 남았잖아.’

두 개의 보상 중 이제 겨우 하나를 깠을 뿐이다.

비록 스페셜 칭호는 대박이 터졌지만, 카이는 감정을 추슬렀다.

괜히 호들갑을 떨면 다른 보상을 확인할 때 부정을 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발 한 번만 더…….”

카이는 떨리는 심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스킬 창.”

그의 눈앞에 깔끔하게 정리된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그가 보유한 수십 가지의 스킬들이 한눈에 들어왔고.

가장 상단에는 한 가지 스킬이 NEW 표시와 함께 반짝이고 있었다.

‘비어 있다?’

본래 스킬 아이콘에는 그 스킬의 특징이 대략적으로나마 그려져 있다.

하나 무형검의 스킬 아이콘에는 공백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형검(無形劍), Passive]

등급 : 레전더리

기존의 검술이 지닌 한계에 구애받지 않는, 무척이나 자유로운 검입니다.

무형검으로 상대를 공격할 시 공격력의 300% 피해를 입힙니다.

“이거구나.”

자신이 바체와 대련을 할 때 사용했던 기술이.

카이는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숨을 짧게 들이쉰 카이가 그대로 천장을 향해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아즈아아아아아아아!”

아무리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절로 실룩거리는 입 꼬리가 그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이건 진짜 미쳤는데?’

NPC 중에서는 손꼽히는 강자인 바체가 반응조차 못한 검술이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다.

무형검은 눈에 보이는 공격이 아니니까.

‘무형, 즉 모양이 없어.’

냄새가 없으며, 기척도 없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공격이 날아온다는 것조차 모를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사용하는 거였나?’

카이가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그대로 그었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던 꽃병이 무너져 내렸다.

“완벽해.”

무형검은 상대방의 허를 찌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비수였다.

카이가 입가로 진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그의 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수정구 모양의 폰 너머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여!]

헬릭이다.

“예, 헬릭 님. 무슨 일이세요.”

[깨달음을 얻은 것을 축하해주기 위한 전화이니라.]

“하하, 감사합니다.”

[자신만의 길을 찾았느냐.]

“예, 찾았습니다. 확실하게.”

카이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스스로 정한 길을 의심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결례였으니까.

[그럼 묻겠노라, 나의 네 번째 사도여. 그대가 세운 길의 이름은 무엇이더냐.]

헬릭은 태양의 여신에 걸맞는 신성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자유입니다.”

[자유라…….]

그녀는 자유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곱씹듯 중얼거렸다.

[그대는 심오한 길을 걷는구나.]

“후회는 없습니다.”

[물론 그래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대와 정말 잘 어울리는 길이라고 생각되는구나.]

“……그렇습니까?”

[웅. 그대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느냐?]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라면…….”

석상 뒤에 쪼그려 앉은 채 중년인을 연기하던 울보 꼬마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때의 상황을 그리며 웃음을 터뜨린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 순간을 어떻게 잊습니까.”

[사실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무척이나 당황했자너.]

“어…… 헬릭 님. 때로는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기분을 아는 수가 있습니다.”

[앗, 어떻게 말이더냐?]

어떻게긴, 그때 펑펑 울었으면서.

[정말이지, 그때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느니라. 분명히 내가 석상 근처로 오지 말라고 그랬잖느냐. 그런데 그대는 내 말도 안 듣고 막막 걸어왔느니라.]

“그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카이는 스페셜 칭호에 눈이 멀었던 과거를 반성했다.

[뭐, 용서하겠느니라. 덕분에 우리 두 사람이 만났잖느냐. 아무튼 그렇게 자유롭고 막무가내인 사람은 처음 봐서 오히려 신기하기도 했…… 아앙! 아직 내가 통화하고 있잖느냐아아앙!]

옆에서 자신도 바꿔달라는 라샤의 목소리가 잡음처럼 흘러나왔다.

그러기를 잠시, 라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여보세요? 카이 님이세요? 저 라샤예요.]

“안녕하세요, 라샤 님.”

[헬릭한테 얘기 들었어요. 벽을 깨고 새로운 경지에 오르셨다면서요? 정말 축하드려요!]

“하하, 축하를 참 많이 받는 하루인 것 같습니다.”

[카이 님은 그럴 자격이 있으세요. 그리고 얼핏 들었는데 자유의 길을 걸으신다고……?]

“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뇨아뇨,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다름이 아니고요. 저희 교단이 추구하는 변화도 결국에는 자유와 크게 다름이 없는…….]

[룰 위반이잖느냐!]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아웅다웅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니, 통화가 뚝하고 끊어져 버렸다.

“……뭐야, 대체.”

멀뚱거리며 전화기를 쳐다보던 카이의 귓가로 또 다른 알림이 울렸다.

“음?”

한데 그 알림은 새로운 메시지나 쪽지가 왔다는 알림이 아니었다.

‘잠깐, 이거 오피스텔 인터폰 알림인데?’

고개를 갸웃거린 카이는 접속을 종료하고 캡슐을 빠져나왔다.

‘하린 씨?’

3,000만 화소를 지닌 인터폰 화면으로 유하린의 아리따운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누른 정우가 입을 열었다.

“하린 씨, 여긴 어쩐 일로……?”

[월드 메시지 봤어요. 그냥 메시지만 보내서 축하드리기에는 뭔가 좀 아쉬워서요.]

쑥스러운 표정을 지은 유하린이 들고 있던 에코백을 다소곳하게 들어올렸다.

[직접 만든 요리를 좀 들고 왔는데……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아뇨, 아직입니다만.”

[아, 다행이예요. 음식은 차갑게 식으면 맛이 덜하니까요.]

“우선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네. 천천히 오세요.]

“금방 가요.”

서둘러 가디건을 챙겨 입은 정우는 아래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1층에 도착한 정우가 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자동 유리문이 열렸다.

“어서 들어오세요. 아직 날씨가 쌀쌀한데.”

“그 정도는 아니에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 유하린이 정우의 옆에 나란히 서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그녀의 시선에 부끄러워진 정우가 물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음…… 잠시만요.”

잠시 고민을 하던 유하린은 돌연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토도독.

손가락을 움직여 무언가를 검색한 그녀는, 이내 폰을 다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녀가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김 묻었어요. 잘생김.”

“…….”

저건 100% 방금 검색한 거다.

하나 정우는 굳이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마치 대단한 연애 스킬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뿌듯해하는 유하린이 귀여웠으니까.

“무겁죠? 제가 들게요.”

“아뇨. 저 힘세요.”

“주세요.”

“진짜 힘센데…….”

유하린이 들고 있던 에코백을 대신 들어 올린 정우는 그녀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올라갔다.

“급하게 만든다고 많이는 못 만들었어요.”

에코백에서 도시락통을 꺼내던 유하린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니, 충분히 많은데요?”

유하린이 세팅하는 음식들의 가짓수를 쳐다보던 정우가 입을 쩍 벌렸다.

도시락통에 들어 있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이 그의 식욕을 자극했다.

도시락의 대명사인 김밥과 소시지 볶음은 물론이고 계란말이와 연근 조림, 디저트까지.

게다가 데코레이션도 어찌나 예쁘게 해놨는지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국도 있어요.”

유하린이 보온병 뚜껑을 열심히 돌리며 말했다.

보온병 안에는 뜨겁고도 맑은 계란국이 들어 있었다.

“진수성찬이네요. 그런데 이걸 저희 둘이서 다 먹을 수 있을까요?”

“남으면 내일 또 드셔주세요.”

배시시 웃는 유하린의 의자를 빼준 정우는 그녀와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맛있네요.”

주로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정우에겐, 오랜만에 집밥다운 밥이었다.

***

유하린을 택시까지 태워 돌려보낸 정우는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갔다.

밤이 제법 깊어진 시간이라 차마 목욕탕엔 가질 못하고, 아쉬운 대로 목욕을 즐기는 중이었다.

“흐어어, 좋다.”

그의 입에서 구수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우는 온몸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에 몸을 맡겼다.

하나 편안해진 몸과는 달리 머리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신념은 세웠으니, 이제 성물을 어떻게 만드는지만 배우면 되는 건가.’

이 부분에 관해선 헬릭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패트릭은 사도가 자신의 성물을 갖추게 될 시, 전투력이 또 한 번 껑충 뛴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내일부터는 신들에 대한 정보들을 모아보자.’

물론 자신이 발로 뛰는 것과는 별개로 정보 길드에도 의뢰를 할 생각이었다.

“돈은 얼마나 풀면 되려나.”

사실 정우는 더 이상 돈을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다.

돈이라면 저택에 고이 모셔놓은 4천 억 상당의 골드를 제외하더라도 굉장히 많았으니까.

‘생각해 보니 나도 참 거물이 다 됐네.’

언노운 시절 찍어놓은 동영상은 여전히 높은 유입을 기록했기에 아직까지 수익이 발생했다.

게다가 후원금도 꾸준히 들어왔고, 자신의 영지들에서 거둬들이는 세금까지 있다.

현재 정우는 목욕을 하고 있었지만, 이 순간에도 돈이 벌리고 있다는 소리다.

그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돈은 무려 수십억 단위.

물론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 영지들의 세금이었다.

영지들의 세율을 대폭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유한 영지의 수가 워낙 많다보니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어오는 것이다.

“큭.”

새삼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휴학을 한 뒤, 집에서 백수처럼 지내며 용돈 받아 생활하던 게 엊그제 같이 느껴졌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생활 사이클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먹고, 자고, 게임하는 생활은 같았으니까.

한데 벌어들이는 금액은 수천, 수만 배가 차이 났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돈이야 얼마를 써도 좋아. 뮬딘을 처치할 수 있는 자그마한 실마리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뮬딘과의 전투에선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 한 번의 실수로 인해 헬릭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날카롭게 빛나는 눈을 눈꺼풀로 뒤덮은 정우는 잠깐의 휴식을 최대한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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