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415화 (415/441)

# 415

힐통령 415화

125. 지피지기(1)

게임에 접속한 카이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정보 길드였다.

“축하드립니다.”

수도의 정보 길드를 이끌고 있는 지부장이 빙그레 웃으며 인사말로 건넨 말이었다.

“무슨 뜻입니까?”

“대륙제일검이라는 역사적인 업적을 달성하신 걸 축하드리는 겁니다.”

과연 정보 길드.

그는 카이가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다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륙제일검이라니, 그건 어디서 나온 정보입니까?”

“물론 저희 정보 길드의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추론한 결과입니다.”

“음. 신빙성은요?”

“99.7%.”

자신감이 넘치는 지부장의 대답에 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금하네요. 제가 새로운 경지에 올라선 뒤, 검술을 펼치는 걸 본 사람은 한 명밖에 없는데…….”

설마 바체가 돈을 위해 목격담을 팔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에 지부장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카이 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잡을 때 가장 유용하게 활용되는 정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음. 목격자?”

지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쉽지만 틀리셨습니다. 범죄 현장을 목격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마저도 보복이 두려워서 입을 다무는 이들이 많고요.”

“음, 그럼 어떤 정보가 유용하게 활용되는 거죠?”

“당연히 현장입니다.”

“아……!”

카이가 탄식을 터뜨렸다.

자신은 무형검을 통해 왕궁의 연무장 담벼락을 두부처럼 잘라내었다.

그 절단면을 보고 바체조차 감탄했을 정도였으니, 정보 길드라면 오죽하겠는가.

“단언하건데, 현존하는 검사 중 대련용 철검으로 그만한 검격을 날릴 수 있는 이는 카이 님뿐일 겁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철검조차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카이는 입을 다물었다.

비수란 철저히 감춰졌을 때 비로소 비수의 역할을 하는 법이었으니까.

“사설이 길었군요. 오늘 무슨 일로 저희 길드를 방문해 주신 겁니까?”

“정보를 사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카이는 이미 정보 길드를 몇 번이고 이용해 본 적이 있었다.

때문에 정보 거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도 익히 알고 있었다.

“입수를 희망하는 정보는 신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멈칫.

계약서를 작성하던 지부장의 손이 멈추었다.

“그건 범위가 너무 넓군요. 정확히 어떤 신에 대한 자료인지 명확히 구분해 주시지 않으시면…….”

“음, 그럼 우선순위로는 뮬딘과 헬릭을.”

“재미있는 조합이군요.”

사각사각, 지부장이 필기를 속행하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고대 설화 자료라도 좋습니다. 신들의 특징에 대한 자료를 모아주십시오. 기왕이면 봉인과 신위(神位)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면 좋겠군요.”

“고대 설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 또한 범위가 매우 넓어집니다만.”

“상관없습니다.”

카이의 대답에 지부장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음, 죄송하지만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면, 한마디로 단가가 세진다는 소리였습니다.”

무려 신에 대한 자료다.

그것도 정확히 무슨 자료라고 단정 지은 것도 아니고, 방대한 자료를 요구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의뢰 비용은 천문학적인 액수까지 올라간다.

“제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나요?”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상관없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예?”

지부장이 놀란 표정으로 계약서를 쳐다봤다.

“어…… 하지만 그걸 전부 의뢰하실 경우, 대금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보던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무려 32,000 골드나 나옵니다.”

한화로 따지면 무려 32억이다.

하나 카이는 그 금액을 듣고도 싱긋 웃었다.

“아, 예상보다는 적게 나오네요.”

쿵.

곧장 인벤토리를 연 카이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골드 주머니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순식간에 묵직한 골드 주머니 네 개가 방바닥에 놓여졌다.

“주머니 하나당 1만 골드, 제일 오른쪽의 가벼운 주머니에는 2천 골드 들어 있습니다.”

“자, 잠시 확인을…….”

지부장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확인했다.

아무리 라시온 왕국의 수도라는 거대한 지점을 운영하는 직급이라지만, 이렇게 거대한 돈을 만지는 건 그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확인…… 끝났습니다.”

“문제가 있나요?”

“아, 아뇨. 문제는 없습니다. 32,000골드…… 의뢰비 지급을 확인했습니다.”

이것이 돈의 무게였다.

멀쩡히 대화를 잘 나누던 사람도 단숨에 긴장하게 만들어버리는 마성의 물건.

‘돈을 다루는 직업의 종사자니까 더욱 그렇겠지.’

그는 자신을 대륙제일검이라 치켜세워줄 때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했다.

따지고 보면 32,000골드보다 대륙제일검이라는 것이 훨씬 더 대단한 부분인데도 말이다.

그야 장사꾼에게 검의 경지가 어떠니, 대륙에서 몇 번째로 강하니 백날 얘기해 봐야 실감이 나질 않는 것이다.

하나 32,000골드를 그 자리에서 당장 지불할 수 있는 사람.

이 단어는 지부장의 태도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이 외에 더 추가할 것이 있으십니까?”

훨씬 더 공손하게, 훨씬 더 조심스럽게.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처럼,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태도는 이미 깨끗이 사라진 상태였다.

“최대한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요.”

“음. 2주 정도로 시간을 맞춰보겠습니다.”

“더 빨리는 안 됩니까?”

“2주라는 시간도 의뢰자가 카이 님이기에 최대한 무리한 겁니다. 대륙의 모든 설화와 신화를 살피고, 그 자료들을 제각각 분류하는 일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의뢰에 투입될 길드원들의 숫자만 수백 명을 가볍게 넘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2주로 알고 있을 테니 그리 울상 짓지 마세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지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아, 맞다. 그리고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됩니까.”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마왕의 뿔에 대한 자료가 있으면 그것도 좀 구해주십시오.”

“마왕의 뿔이라? 알겠습니다. 다른 마족의 뿔에 대한 정보들도 함께 준비할까요?”

“저야 좋죠.”

“대금은 200골드만 받겠습니다.”

곧장 돈을 지불한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 날 지부장은 부하 길드원 수십을 이끌고, 건물 밖까지 카이를 마중 나왔다.

그들은 카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

“어라, 단주님 아니십니까?”

간만에 방문한 태양교 교단을 거닐자, 낯익은 인물이 카이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테페른.”

성혈단원 중 하나인 테페른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앳된 아이였는데, 이제는 제법 청년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본단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뭐 좀 알아볼게 있어서. 성혈단은 요즘 어때?”

“여전히 바쁘죠 뭐. 대체 세상엔 나쁜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겁니까?”

“사람은 어렵고 먼 길보단 쉽고 빠른 지름길을 원하는 법이니까. 양심 챙기면서 착하게 사는 것보다는 양심 없이 제멋대로 사는 게 더 편하긴 하겠지.”

“쩝. 절대 사라지지 않는 존재와 싸우는 기분입니다.”

“아마 성혈단이 평생을 활동해도 나쁜 놈들이 근절되지는 않을 거야.”

“으으, 끔찍합니다.”

몸을 부르르 떤 테페른이 아차하며 카이를 쳐다봤다.

“아참. 요즘 단주님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무슨 소문?”

“단주님의 검술 수준이 하늘에 이르러서, 이제는 수십 킬로미터 밖의 적도 의지만으로 죽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그거 할 줄 알면 교단 따로 세웠지.”

“하하하, 역시 과장된 소문이겠죠?”

“뭐, 시야에만 보인다면 수천 미터 정도는 가능하려나.”

카이의 중얼거림에 테페른이 입을 쩍 벌렸다.

“되, 되는 겁니까.”

“나중에 실험해보면 결과를 말해줄게.”

“꼭 좀 부탁드립니다.”

“오냐. 그리고 뭐 하나만 부탁하자.”

“명령만 내리십시오.”

“태양교 본단에는 태양교가 창설될 때부터의 역사를 기록한 성서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볼 수 있지?”

“그건 아마 교단 도서관에 있을 겁니다. 물론 아무나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단주님이라면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요?”

“어, 그건 걱정 마.”

현재 태양교에서 카이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은 없다.

태양의 사제인 그는 무려 교황보다 한 단계 윗선의 직급이었으니까.

“그럼 수고해라.”

“예, 단주님.”

테페른과 헤어진 카이는 교단의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은 마치 왕궁의 보물창고처럼 보유한 신성력과 직급에 따라 출입 가능한 구역이 나뉘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카이는 그 어떤 제지도 없이 마지막 구역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이거 한 번 읽어보고…… 아, 저것도.”

카이는 도서관을 천천히 거닐면서, 중력장을 이용해 읽을 책들을 뽑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십 권의 책들이 허공을 두둥실 부유하면서 그를 뒤따랐다.

“이 정도면 됐나.”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 자리를 잡은 카이는 잘 보관되어 있던 문헌들을 쌓아놓은 뒤,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사르륵, 사르륵.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도서관에 울려 퍼졌다.

***

“으으음.”

카이는 퀭한 눈빛이 새어 나오는 눈가를 손으로 주물렀다.

교단의 도서관에 처박힌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카이가 알게 된 것이라고는, 시미즈가 차를 굉장히 좋아했다는 것과.

체란티아가 사도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신도들의 평균 근육량이 다른 시대보다 20% 더 많았다는 쓸데없는 정보뿐이었다.

“쯧, 오늘은 뭐라도 좋으니 좀 건졌으면 좋겠는데.”

장시간 독서하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한다.

집중력이 높은 카이라도, 열흘 동안 아무런 소득이 없으니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갔다.

‘오늘부터 읽을 건 이건가.’

어지간한 책들은 어제부로 모두 읽었기 때문에, 카이는 척 보기에도 아주 먼 옛날 만들어진 듯한 파피루스들을 꺼내왔다.

“이런 데에 무슨 정보가 있겠냐만은…….”

어차피 앞으로 나흘 뒤면 정보 길드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최소한 그때까지는 자신도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볼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도 소득이 없다면, 정보 길드 쪽에서 무언가 성과를 내주기를 바랄 수밖에.

“호오?”

돌돌 말려진 파피루스를 펼친 카이가 감탄을 뱉어냈다.

마치 삼베 같은 질감이 느껴지는 파피루스의 보관 상태가 굉장히 좋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어디보자, 다루고 있는 내용은…….”

아무 생각 없이 내용을 읽어나가던 카이가 서둘러 늘어져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세계의 관리자들과 신성력에 대하여>

저자는 알 수 없음.

카이는 세계의 관리자들이라는 단어에서 무언가를 강하게 떠올렸다.

‘……헬릭 님이 그랬었지. 천계의 신들은 주신이 이 세계를 관리하라고 만든 존재라고.’

사실 교단의 도서관에는 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 자체가 몇 개 없었다.

교단의 역사나 사건, 사고. 혹은 교단이 배출한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

카이는 입을 다물고 문장들을 읽어 내렸다.

[이 세상 모든 신성력의 근원지는 세계의 관리자들이다.]

[세계의 관리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세우면, 그 사상은 강력한 무형의 기운인 신성력이 된다.]

[세계의 관리자들이 신도들을 거느리고 싶어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도의 수가 많아질 수록, 세계에는 그들이 추구하는 신념이 더욱 깊이 자리 잡기 때문이다.]

[물론 관리자들이 일방적으로 신도들에게서 이득을 얻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을 하계의 존재들에게 공유하는 것으로, 그들이 자신과 같은 꿈을 꾸게 만든다. 즉, 신도들이 자신의 힘인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의미이다.]

[신성력은 홀로 오롯이 존재하는 숭고한 기운이다. 신성력은 해당 관리자의 신념 그 자체. 어떠한 경우에도 변질되어서는 아니되며…….]

[반대로 말해서 신념이 변질된다는 소리는, 신성…… 성질…….]

“뭐야. 이거 왜 끊어져 있어.”

카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파피루스를 쳐다봤다.

워낙 오래된 기록이라 그런지, 내용 사이사이 문자가 손상된 부분이 존재했다.

하나 무려 열흘 만에 얻게 된 소득이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정보가 아니라, 제법 중요한 정보처럼 보인다.

‘신성력이란 신이 추구하는 신념 그 자체라 이거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카이가 도서관 내부를 서성거렸다.

가슴 한편이 자꾸만 간질거렸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를 듯, 말 듯하며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미치겠네, 진짜.”

카이가 자신의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자신이 앉아있던 장소를 가만히 쳐다보던 카이는 숨을 짧고 굵게 내쉬었다.

“후!”

이어서 자신의 두 뺨을 세게 때린 그는 정신을 차리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분명히 뭔가 있다.’

몇 번이나 그를 위기에서 구해준, 동물 같은 본능이 머릿속을 울렸다.

파피루스에 쓰여 있는 내용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 보라고. 이것은 절대 사소한 정보가 아니라고.

“한 번 해보자.”

카이는 마치 전투에 임하는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파피루스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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