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419화 (419/441)

# 419

힐통령 419화

126. 드래곤 레어(2)

베오르크가 건네준 지도에는 무려 세 개의 드래곤 레어가 표시되어 있었다.

“세 개라……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요?”

“많은 거다. 드래곤의 개체 수가 대체 몇이라고 생각하나.”

카이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베오르크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올렸다.

“왕국에서 파악하기로는 현재까지 존속이 확인된 드래곤의 개체 수는 최소 스물.”

“그중에 세 마리의 레어가 라시온 왕국에…….”

그리 생각하니 제법 많은 숫자다.

“아마 제국 쪽에선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 허나 그대라면 드래곤을 통해 로드의 장소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예. 아마 가능할 겁니다.”

매에는 장사 없는 법이거든.

“카이 대공, 내 부탁 하나 하지.”

베오르크의 말에 카이가 그를 쳐다봤다.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영 불안해서 말이야.”

“어떤 부분이 말씀이십니까?”

“드래곤 말일세. 가능하면…… 아니, 될 수 있으면 그들을 죽이지 않아줬으면 좋겠군.”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

베오르크가 본인 입으로 말했었다.

드래곤은 재해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이라고.

그렇다면 하나라도 개체 수를 줄여놓는 게 왕국을, 나아가 대륙을 위한 일이 아닐까?

이러한 카이의 질문에 베오르크는 단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들의 몬스터 장악력 때문이다.”

“몬스터 장악력이요?”

“그래. 그들의 레어가 존재하는 곳 주변에는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존재하지. 그것도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말이야.”

“잠시…….”

다시 한 번 지도를 확인한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어가 위치한 세 장소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꿀 사냥터라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크게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니까.’

그만큼 서식하는 몬스터들의 종류 수가 많고, 레벨도 다양하다는 뜻이었다.

“드래곤들은 대부분 고독을 즐기는 존재들이다. 때문에 자신의 레어를 형성하는 순간부터 주변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참지 못하지.”

“아…… 그러면 이 몬스터들이 레어를 지키는 일종의 사병이군요?”

“정확하다. 일반적인 몬스터는 드래곤의 피어에 거스르지 못하지.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레어 주변에 엄청난 수의 몬스터를 모아놓고 있는 것이다.”

“그럼 만약 드래곤이 죽는다면…….”

“몬스터들의 발목에 감겨있던 족쇄가 풀려나는 것이지.”

그건 확실히 큰일이다.

침공 이벤트 때도 느낀 거지만, 웬만한 대도시도 몬스터들의 웨이브가 밀려들면 재빠른 대처를 하지 못한다.

‘확실히 사상자가 나오겠어. 그것도 제법 많이.’

드래곤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알게 된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그럼…… 설산 부근도?’

자신이 죽인 시네라스가 떠오른 카이가 기겁을 하며 질문했다.

이에 베오르크가 차분히 설명했다.

“설산 지역의 몬스터들이 산을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없군. 혹시 어린 드래곤이었나?”

“아, 맞습니다. 해츨링이었어요.”

“그렇다면 장악력이 한창 부족하겠어. 운이 좋았군.”

“휴, 다행이네요…….”

이래서 무지(無知)가 위험한 것이다.

아무렇게나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는 것처럼.

“걱정은 하지 마세요. 드래곤들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카이의 확신어린 말투에 베오르크가 낮게 웃었다.

“이상하군. 사람을 드래곤의 레어로 보내는 일인데, 어찌 드래곤들이 더 걱정되는지…….”

“하하하.”

그의 농담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카이는 알현실을 나와 복도를 거닐었다.

‘우선 가장 먼저 확인해 봐야 할 것.’

당연히 새롭게 얻은 스페셜 칭호였다.

“칭호 확인.”

[공왕(公王)]

등급 : 스페셜

내용 : 최초로 대공국을 통치하는 유저에게 주는 칭호.

효과 : 위엄 스탯 +300 증가, 모든 공격력 10% 증가.(이 효과는 칭호를 장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호오.”

다른 스탯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위엄 스탯도 높으면 높을수록 나쁠 것이 없는 스탯이다.

위엄이 높으면 상대하는 모든 몬스터들의 기본 능력치가 낮아지게 되니까.

사실상 드래곤 피어의 하위 호환 스탯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나는 드래곤 피어도 쓸 수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쓸모없는 스탯인 셈.

하지만 다른 하나가 생각보다 훨씬 대박이다.

‘모든 공격력 10% 증가라…….’

여기서 지칭하는 모든 공격력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마법 공격력, 신성 공격력, 물리 공격력, 독 공격력.

모든 공격의 데미지가 10% 상승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이쯤되니 계산하기도 어려워지네.’

플레이어의 수준을 수치화 하는 것.

그게 바로 스탯의 존재 의미이다.

허나 카이의 경우에는 스탯부터가 너무 높고, 그마저도 부가 효과로 주구장창 올라가니 계산하기가 쉽지 않았다.

‘뭐,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하면 되겠지.’

레벨 2,000 정도라고 생각하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카이는 곧장 텔레포트 게이트로 향했다.

유저들에게 사랑받는 사냥터, ‘나비 밸리’에 가기 위해서였다.

***

나비 벨리(Navy Valley).

한국인들이 부르기를 통칭 나비협곡, 혹은 나비계곡.

레벨 310의 유저들부터 레벨 400까지.

다양한 수준의 유저들이 활동하는 사냥터로, 라시온 왕국에서는 크게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였다.

물론 이 사냥터가 이토록 인기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몬스터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레벨 330짜리 협곡 늑대 파티 모집합니다!”

“인스턴스 던전, 두꺼비의 호수 공략하실 분!”

“사제 구합니다, 사제 구해요! 아니 미친, 왜 레벨이 올라갈수록 사제가 안 보이는데!”

계곡의 입구 부근에 마련된 베이스캠프에서는 유저들이 저마다 사냥 준비에 한창이었다.

‘뭐, 튀어서 좋을 건 없지.’

평소에 입던 사제복이 아닌, 회색의 밋밋한 로브를 걸친 카이는 곧장 베이스캠프를 지나쳐 협곡으로 들어섰다.

“대충 위치가…….”

협곡의 깊은 곳.

심지어 위치를 보니 협곡 어딘가에 동굴이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시네라스의 레어도 결국엔 동굴이었지.’

그 점을 염두에 둔 카이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미믹을 소환했다.

“뀨뉴웅~”

“그래, 나도 반가워.”

손가락으로 녀석과 잠시 놀아준 카이는 와이번으로 변한 미믹을 타고 협곡 안쪽으로 날아갔다.

중간중간 하피 무리가 그를 발견하곤 쫓아왔지만, 눈을 부릅뜨자 알아서 날갯짓을 멈췄다.

‘드래곤 피어나 위엄 스탯이 있으면 이런 부분에선 편하단 말이지.’

쓸데없는 전투를 피할 수 있으니까.

“지도를 보면 이 즈음인데?”

지도에 표시된 장소에 도착한 카이가 미믹을 역소환했다.

협곡이라고 해도 심층부의 높이는 웬만한 산보다는 훨씬 높았다.

“여기서 드래곤의 레어를 찾는다라…….”

두 발로 뛰면 몇 날 며칠을 고생해야 할 지 모른다.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 아니, 그 반대구나.”

약속이 안 된 상태에서 집 주인을 나오게 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드래곤들은 대부분 고독을 즐기는 존재들이다. 때문에 자신의 레어를 형성하는 순간부터 주변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참지 못하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면 되는 법이니까.

베오르크가 했던 말을 떠올린 카이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태양광자포.”

이어서 네 개의 신성 마법진에서 쏘아진 빛의 광선들이 협곡의 지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콰릉!

시끄러운 굉은은 당연히 동반되었다.

아니, 오히려 협곡이었기 때문에 소리는 더욱 크게 울렸다.

“이번에는 신벌도 사용해 볼까?”

우르르릉!

협곡의 심층부를 제 집 안방 마냥 휘젓고 다니기를 잠시.

주변의 공기가 바르르 떨릴 만한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빨리도 나오네.’

진한 미소를 지은 카이는 뒷짐을 진 채 드래곤을 기다렸다.

-고오오오오!

대기를 울리는 광포한 울음 소리가 들렸고.

쿠우우웅!

수십 미터의 크기를 자랑하는 붉은색 거체가 카이의 눈앞에 떨어졌다.

‘확실히 드래곤들의 모습은 할리랑은 다르다니까.’

동양의 용을 모티브로 한 할리와는 다르게, 드래곤은 유럽 쪽이 모티브다.

네 개의 다리, 거대한 신체, 등에 달린 한 쌍의 날개까지.

지구에서 최강의 생물이라 불리는 존재는 다름아닌 코끼리다.

체급 차이를 무시할 수 있는 동물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헌데 드래곤의 체급은 그 코끼리를 가뿐히 상회한다.

막말로 다리 하나를 들어서 코끼리를 밟아버릴 수 있을 정도.

단순히 신체적 조건만으로도 최강의 생물을 자처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허나 그들의 ‘진짜’ 힘은…….

[감히, 벌레 같은 인간 따위가……!]

허공에 20개가 넘는 마법진이 동시에 생성되었다.

마법의 조종(祖宗)이라 불리는 드래곤의 마법.

그들이 최강의 생물이라 불리는 이유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종류랑 속성 한 번 다양하네.’

태연한 표정으로 마법을 바라보던 카이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잠깐 멈추지. 싸울 생각은 없어.”

[멈추기는? 먼지처럼 사라져라, 버러지 같은 존재여!]

레드 드래곤이 쩌렁쩌렁한 고함을 쏘아냈다.

그와 함께 마법진에서 수십 개의 마법이 카이를 노리고 쏟아졌다.

“후우.”

가벼운 한숨을 내쉰 카이가 들어올린 손을 가볍게 횡으로 그었다.

그와 동시에 그를 향해 날아오던 마법들이 허공에서 불발되었다.

펑! 퍼펑!

얼음의 창, 화염의 구, 뇌전.

그 어떤 속성, 형태의 마법도 무형검을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무슨…… 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지 못한 레드 드래곤이 파충류 같은 눈을 부릅 떴다.

“잠깐 멈추라고 했잖아. 내 말을 들어보라고.”

[닥쳐라. 동족의 피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여. 이곳에 온 목적 또한 뻔하겠지.]

드래곤들이란 어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것일까.

결국 카이는 손가락을 튕겨 할리를 소환했다.

[무슨 일인가.]

“저 녀석 좀 휘감아봐.”

[……그대는 내가 무슨 뱀인 줄 아나?]

“지렁이가 아닌 게 어디야. 됐으니까 빨리.”

카이의 명령에 할리는 투덜대면서도 레드 드래곤에게 달려들었다.

[이건 또 무슨……!]

동족의 냄새가 나지만 생긴 모습은 판이하다.

할리의 존재에 진한 이질감을 느낀 레드 드래곤이 파이어 브레스를 뿜어냈다.

이를 수압포로 가볍게 제압한 할리는 자신의 길다란 몸으로 레드 드래곤의 거체를 휘감았다.

[크으윽!]

결국 몸의 자유를 박탈당한 레드 드래곤의 거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쿠웅!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지만, 카이의 옷깃에는 티끌 하나 묻지 않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카이가 레드 드래곤의 눈앞으로 다가갔다.

“우선 오해부터 풀자.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건 널 사냥하기 위함이 아니다.”

[개소리! 너에게선 동족의 피 냄새가 진하게 난다.]

“사룡 시네라스. 라시온 왕국에 거주하는 너라면 알 텐데?”

[…….]

레드 드래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시네라스가 반쯤 미쳐 있었다는 것과, 한 때 인간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다는 사실은 인간의 역사서에조차 기록되어 있다.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드래곤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죽일 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건 불가항력이었어.”

[……어쨌든 죽인 건 죽인 거지. 일단 이것부터 풀어라.]

레드 드래곤이 으르렁거리자 카이는 할리에게 눈짓했다.

“풀어줘.”

[……풀어주면 또 다른 마음을 먹을 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먹으라 그래. 대신, 그 때는 이렇게 신사적으로 대하지 않겠지.”

그것은 일종의 협박이었다.

날뛰어도 좋다. 허나, 그 때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똑똑한 드래곤이 그 말의 의미를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흠.]

할리가 천천히 레드 드래곤을 옥죄고 있던 자신의 몸을 풀어내자, 레드 드래곤이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협박이 제법 잘 먹힌 것인지, 할리와 카이를 노려만 보던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체 뭐냐. 대관절 인간이 왜 나를 찾아왔단 말이냐.]

“이제야 대화할 마음이 들었나 보네.”

카이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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