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426화 (426/441)

# 426

힐통령 426화

128. 룰 브레이커(3)

“흠. 그럼 어쩐다?”

눈앞에 띄워놓은 스탯창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카이가 중얼거렸다.

자신이 메인 에피소드를 또 파괴했다는 사실?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게임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게임 좀 하다보면 퀘스트도 없애고 그러는 거지.’

카이에게 있어서 이러한 상황은 이미 일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에피소드 파괴를 처음 겪어보는 초짜가 아니라, 닳고 닳은 베테랑이라는 뜻이었다.

‘솔직히 예상 못했던 일이지만 덕분에 선행 스탯 150개가 올라서 힘도 4천을 넘겼어.’

그래서인지 온몸에서 힘이 넘쳐흐른다.

“역시…….”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던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스탯의 앞자리 수가 바뀔 때마다 상승 폭이 더 커지는 기분이야.’

100이던 힘 스탯이 200이 될 때는 그리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허나 1,000이던 스탯이 2,000을 넘겼을 때.

그리고 3,000이던 스탯이 4,000을 넘겼을 때.

카이는 항상 적응을 위한 수련이 필요함을 느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증가한 힘 스탯에 적응하려면 당분간은 또 수련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 같다.

‘힘을 굳이 더 올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럼 남은 스탯으로 다시 체력이나 올릴까?’

카이의 시선이 자신의 체력창으로 향했다.

이제는 38만이 훌쩍 넘어버린 체력.

웬만한 레이드 보스 몬스터의 HP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게다가 자신의 마법 저항력은 유례없이 높은 상태였고, 물리 방어력도 결코 낮지 않은 수준.

고민 끝에 카이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이 정도면 절대 원킬은 나지 않을 거야. 아무리 뮬딘이 최상위 등급의 신이라고 해도 말이지.’

그렇다면 역시 방어보다는 공격에 무게를 두는 것이 맞다.

“공격이라.”

카이가 깊은 상념에 잠겼다.

지금 힘 스탯을 더 찍는다고 전력이 크게 높아질까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성장을 일궈내려면 스탯을 올리는 게 아니라…… 성물을 얻거나 격을 높여야 할 텐데 말이지.’

미간을 좁힌 카이는 눈을 감고 이오스와의 대화를 복기했다.

‘그는 분명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했어.’

격을 올리는 방법.

그것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꾸했다.

자신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고.

남은 것은 답안지에 답을 쓰기만 하면 될 뿐이라고.

그 수수께끼 같은 선문답은 카이의 가슴 위에 묵직한 돌덩이를 하나 올려두었다.

‘내가 답을 알고 있다라…… 모르겠는데?’

격을 올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진작 올렸을 것이다.

왜 그렇지 않았겠는가, 누구보다 헬릭을 보호하고 싶고 뮬딘을 처치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자신인데.

“으음…….”

카이는 조바심을 내려놓은 뒤, 자신이 모은 정보들을 하나씩 천천히 되돌아보았다.

‘우선 성물은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 부분에 관해선 사도회의 때 선대 사도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나의 신념이 확고해질 때 생긴다고 했지.’

단기간에 얻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격은 어떨까?

‘이오스는 내가 지닌 힘이 인간을 초월했다고 했지.’

그는 자신이 격만 갖춘다면 뮬딘과 자웅을 겨룰 만한 수준이라 판단했다.

“격이라…… 격, 격…….”

사실 따지고 보면 성물을 얻는 것이나, 격을 올리는 것이나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천계의 신들도 그래. 모두 본인만의 신념에 확신을 가져야 하지.’

하지만 자신은 신념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저 검에 자유를 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을 뿐이다.

자유를 인생의 신념이라 소개하기에는 스스로도 고개가 머뭇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내 신념을 단단히 굳히는 것이 힘들다는 뜻인데…….’

이오스는 어째서 자신이 답을 알고 있다는 뜻으로 말을 했을까?

카이는 갤러리 창을 열어, 자신이 스크린샷으로 찍어놓은 정보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이 세상 모든 신성력의 근원은 세계의 관리자…… 즉 신들.”

“신들의 신념이 확고해지면 신성력이 생성된다.”

“그들이 신도를 많이 거느리고 싶어 하는 이유도 이와 상관이 있어.”

“자신이 세상에 남긴 발자국. 즉, 신념을 따라오는 신도들이 많을수록, 신격도 강해지니까.”

“한 마디로 신념은 신성력 그 자체…….”

말을 잇던 카이의 입이 돌연 다물어졌다.

“잠깐만?”

어지러운 정보들이 가득 떠다니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신념이 신성력 그 자체라고?’

이 간단한 걸 왜 모르고 있었을까.

무언가를 깨달은 카이의 시선이 곧장 스탯창으로 향했다.

‘힘 스탯이나 체력 스탯은 앞자리의 숫자가 바뀔 때 확실히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졌어.’

당연하다.

사람인 이상 자신의 신체 부위가 변화하는 건 즉각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신체 부위가 아닌 부분은? 그래, 예를 들어 지능이나 위엄은?’

카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스탯들은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도 무언가 성장했다는 것이 체감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능이 높아지자 마법을 사용할 때 좀 더 부드럽고 유기적인 스킬 연결이 가능해졌으니까.

심지어 쿼드라 캐스팅을 이루는 속도마저 빨라졌다.

위엄도 마찬가지.

요즘은 몬스터들과 마주쳐도, 자신에게 먼저 선공을 가하는 간 큰 녀석은 없었다.

‘그렇다면…… 신성은?’

카이의 눈이 차분해졌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머릿속에 전구를 집어넣고, 불을 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랬구나.”

신성 스탯이 오를 때마다 자신의 ‘격’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그것은 힘 스탯이나 체력 스탯, 지능 스탯처럼 가시적인 효과만이 없었을 뿐.

‘그래서 내가 눈치채지 못한 거였어. 그런 부분은 유저가 알 수 있을 리 없지.’

아무리 현실 같아도 이곳은 게임이다.

시스템이 공지를 해주지 않는 이상, 그런 부분까지 유저가 느낄 수는 없는 법.

‘이 게임의 설정상 신성력은 신념과 직결되는 스탯이야.’

카이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지금 자신이 어떤 스탯을 올려야 할지에 대한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신성에 모든 스탯 포인트 분배.”

[스탯 포인트 275개를 신성에 투자하시겠습니까?]

“어.”

[신성이 1,100 상승했습니다.]

이번에도 톡톡히 제 값을 하는 목격자 칭호.

덕분에 카이의 신성 스탯은 기존 4,720에서 5,820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은은한 불빛을 비춰주던 횃불이 돌연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현재 카이가 위치한 곳은 태양교 본단에 마련된 개인 연공실.

바람이 불 리 없는 밀폐된 공간이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그의 사고를 잠식하기도 전에.

카이의 몸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화아악-!

제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광채를 보던 카이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편안해.’

마치 피곤한 하루를 끝낸 뒤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누운 것 같은 편안함, 아늑함.

한 줌의 걱정도 느껴지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기운이다.

연공실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던 빛은 본래 있던 자리인 카이의 몸 속으로 갈무리되었다.

찰나의 꿈을 꾼 것 같은 몽롱한 의식도 잠시.

카이의 눈앞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신성 스탯이 5,000을 돌파하였습니다.]

[그로인해 당신의 신념이 강화됩니다.]

[인간이라는 종(種)의 그릇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신성력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지만, 초월자의 격을 갖추기에는 한 걸음이 모자란 상태입니다.]

[격의 상승으로 신체의 밸런스가 완벽에 가까워졌습니다.]

[본인보다 격이 낮은 상대와 전투 시, 받는 피해가 감소합니다.]

“흐음.”

뭐랄까, 크게 달라진 기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신에는 활력이 가득했고, 몸은 가벼웠다.

‘오히려…… 품고 있던 강대한 기운들이 사라져 버린 기분이야.’

물론 기분뿐이다.

바다를 가르고 산을 허물 정도로 강대하던 기운은 여전히 카이의 몸 속에 깃들어 있다.

다만, 자취를 감췄을 뿐이다.

진정한 지배자는 아무때나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니까.

“게다가…….”

파앙, 팡! 팡!

빠르게 자세를 갖춘 카이가 허공에 스트레이트를 몇 번이나 꽂아넣었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가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신체의 밸런스가 완벽에 가까워졌다는 게 이 뜻이었나?’

적응이 필요할 것 같았던 힘 스탯.

그 부분에 대한 삐걱거림이 완벽하게 해소되었다.

여전히 강대한 힘을 품고 있지만, 현실의 몸을 움직이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한 걸음이 모자라다?”

메시지는 자신이 초월자의 격을 갖추기에는 한 걸음이 모자라다고 말하고 있다.

‘한 걸음이라는건 역시 신성 스탯이겠지.’

현재 자신의 신성 스탯은 5,820.

‘초월자의 격은 6천부터 부여되는 건가?’

카이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것을 통해 확신하게 된 사실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 애초에 유저들을 노리고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스탯 6천.

기연을 무슨 패스트푸드처럼 심심할 때마다 접한 자신조차 닿지 못한 경지다.

당연히 일반적인 유저가 닿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서 말했듯이, 자신은 기연을 밥 먹듯이 먹어온 이레귤러였으니까.

카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블레스.”

찬란한 신성력이 그의 몸을 한 차례 휘감았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 시간 동안 모든 스탯이 55만큼 상승합니다.]

사제의 축복.

즉 블레스 스킬의 상한선은 10레벨, 모든 스탯은 50만큼 올려준다.

‘하지만 나의 블레스 레벨은 11레벨.’

결투장에서 얻은 희대의 사기급 스페셜 칭호, ‘챔피언’이 있기 때문이다.

그 칭호에는 모든 스킬의 레벨을 강제적으로 한 단계 높여주는 효과가 붙어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신성 폭주.”

신성 폭발의 강화 버전.

사용과 동시에 엄청난 신성력을 하마처럼 먹어대는 스킬이다.

허나 녀석이 먹어치울 신성력은 많다.

몇 시간을 먹고, 또 먹어도 먹어치울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니 뱉어내라.’

그에 걸맞는 가치를.

이에 시스템은 응답했다.

[모든 스탯이 160만큼 증가합니다.]

[신성력이 부족할 시, 스킬이 자동적으로 취소됩니다.]

블레스와 신성 폭주.

버프 스킬로 모든 스탯을 215나 상승시킬 수 있는 사제는 전세계에서 카이가 유일하다.

카이의 시선이 자신의 스탯창으로 향했다.

[신성 : 6,035]

신성 6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레벨업을 할 때마다 모든 스탯을 신성에 투자해도.

무려 1200레벨 정도가 되어서야 달성 가능한 수치.

카이는 그 절대적인 벽을 고작 레벨 685에 올라섰다.

띠링!

동시에 카이가 기다리던 메시지가 천천히 눈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품은 신성력은 천계의 신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수많은 신들이 당신의 신성력에 경외와 찬사를 보냅니다.]

[일부 하위 악신들이 당신에게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일시적으로 종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페셜 칭호, ‘초월자’를 획득했습니다.]

[일시적으로 신체의 모든 밸런스가 완벽해집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감각이 초월자의 반열에 들어서게 됩니다.]

“초월자라.”

카이가 낮게 읊조리며 눈을 감았다.

조용한 연공실의 먼지 가라앉는 소리조차 그의 청각을 피하진 못했다.

비록 블레스와 신성 폭주, 두 가지 버프가 있을 때만 발휘할 수 있는 힘이라 할지라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카이의 입가로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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