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4
힐통령 434화
130. 분리수거(6)
우드득.
아트록의 목이 꺾였다.
카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성검으로 녀석의 허리를 그대로 양단했다.
‘생각보다 쉽네.’
뮬딘 교의 최고 권력자치고는 너무나도 쉬운 상대다.
오히려 잔뜩 긴장했던 맥이 탁하고 풀리는 기분.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바닥에 떨어졌던 아트록의 두개골이 돌연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성격이 급하군.”
끊어진 허리를 잇고, 제 머리를 주워 다시 목 위에 끼워 넣은 아트록이 중얼거렸다.
“……뭐냐?”
“끌끌. 리치의 몸을 너무 우습게 본 것 아닌가?”
“뼈다귀 주제에 자존심은.”
“나는 이걸 자신감이라고 부르지.”
순식간에 피해를 복구한 아트록이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얼핏 보기에는 스켈레톤과 별반 차이도 없는 모습이었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뼈의 모양이 다르네.’
딱 봐도 고레벨 몬스터라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뼈가 굉장히 화려했다.
“허리와 목을 끊었는데도 멀쩡하다라…… 아예 잘글잘근 가루로 만들어야 하나?”
“끌끌끌, 직접 실험해보지 그러나.”
능글맞은 웃음을 흘린 아트록이 하늘 위를 쳐다보았다.
“먹구름 위에 숨어 있었던 건가…….”
“너를 관찰하기엔 그곳이 안성맞춤인 것 같아서.”
“정말 궁금하군. 그 대폭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지?”
“내가 더 궁금한데. 어떻게 고작 그 정도 폭발로 날 죽일 생각을 품었지?”
카이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아트록을 도발했다.
물론 허세였다.
실제로 카이는 그 대폭발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한 번 죽었으니까.
“흐으음…….”
허나 그것을 알 리 없는 아트록의 목소리는 잠잠해졌다.
“모험가라는 건 나의 예상보다도 훨씬 대단한 존재인 것 같군.”
“뭘 새삼스럽게. 그나저나 뮬딘 녀석도 참 감이 좋아.”
그를 기다렸건만, 최후의 순간에 무언가 안 좋은 낌새를 느끼고 도망가 버렸다.
“오만하구나. 뮬딘 님께서 직접 행차하신다면 너 따위는 언제든지…….”
“그러니까 제발 행차 좀 해달라고. 나 따위는 언제든지 이길 수 있으니까. 쫄보가 따로 없어.”
“…….”
본인을 비난할 때는 웃으며 넘기던 녀석이, 뮬딘을 거론하자 말투에 웃음기가 싹 빠졌다.
“그분의 행동은 네놈 따위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 그 분이 생각이 있어서…….”
“그래, 어찌됐든 좋아.”
스르릉.
카이의 성검은 어두운 초원에 위치한 유일한 빛이었다.
“서론이 길었다. 시작하자.”
“네 놈은 한 번 당하고도, 여전히 오만하구나.”
아트록이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땅이 터지며 어둠의 신성력이 솟구쳐 올랐다.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다는 것을.”
촤르르륵.
아트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이의 소매에서 수십 다발의 신성 사슬이 튀어나왔다.
“흐읍!”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난 카이는 곧장 신성 사슬을 휘둘렀다.
콰드드드득!
신성 사슬에 두드려 맞은 땅이 뒤집어졌고, 그 위에 서있던 아트록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은 여태까지 아트록을 총 두 번 만났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간접적인 만남이었을 뿐.
직접적으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에 놓치면 또 얼마나 찾아야 다닐지 몰라.’
그러니 한 번 만났을 때, 반드시 끝을 본다.
이를 악문 카이가 땅에 착지하는 순간, 아트록이 손을 뻗었다.
“어둠의 세례!”
솨아아악!
땅에서 어둠의 촉수들이 솟아오르며 카이를 향해 쇄도했다.
“절대 영도.”
카이의 손끝이 땅을 가볍게 터치했다.
쩌저적!
그 가벼운 손짓 하나가 수십 개의 촉수와 아트록의 발을 꽁꽁 묶어버렸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카이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그는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절대 영도.”
뚝!
순간이지만 쏴아아아! 귀를 어지럽히던 빗소리가 멈췄다.
그리 길지는 않은 2초가량.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아트록의 입에서 침음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으음!”
얼어버린 빗방울은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탄환이 되었다.
마치 유사 블리자드(Blizzard).
심지어 카이의 중력장을 통해 목표 설정까지 완벽하게 끝난 대단위 공격이었다.
“뼈 좀 시릴 거다.”
카이의 경고와 함께 타다다닥!
얼음의 탄환들이 아트록의 전신을 두드렸다.
아트록이 황급히 어둠의 방패를 생성해보았지만, 생성되는 족족 얼음의 탄환이 이를 찢어발겼다.
“크윽!”
그는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발이 꽁꽁 얼어버린 상태였기에.
딱, 딱딱!
리치도 추위를 느끼는지, 그의 턱뼈가 불규칙하게 부딪쳤다.
‘지금이다.’
카이의 등 뒤에서 네 개의 창이 생성되었다.
생성과 동시에 쏜살 같이 날아간 창들은 각각 아트록의 팔다리를 박살냈다.
“마치 고장난 장난감 같구나.”
바닥에 널브러진 뼈들을 바라보던 카이가 중얼거렸다.
“크, 크큭…….”
허나 아트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대의 시야에는 코앞의 나무만이 보이는 모양이구나.”
“뭐?”
드드득.
아트록의 뼈들이 땅을 구르며 그에게 되돌아갔다.
순식간에 모습을 복원한 아트록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고로 숲을 볼 줄 아는 자가 승부에서 이기는 법.”
“……모르겠고, 생명력이 끈질기다는 것 정도는 알겠네.”
“너는 날 죽일 수 없다.”
아트록이 어깨뼈를 들썩거리며 웃었다.
“나의 영혼함을 부수지 않는 이상, 나의 생명력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영혼함.”
카이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영혼함에 대해서는 타르달이 경고를 해준 적이 있다.
‘암흑 지대의 사원, 그곳에 영혼함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곳에 숨겨져 있던 것은 아트록의 영혼함이 아니었다.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던 것은 마계로 통하는 지옥문이었으니까.
“지금의 나는 영혼을 빼놓은 상태. 아까 나를 두고 장난감이라고 했나? 괜찮은 비유로다.”
“하지만 너의 정신은 지금 이곳에 있는 거잖아?”
카이의 질문에 아트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는 언제나 나로써 존재한다.”
“그럼 됐어.”
카이가 상관없다는 듯 시크하게 말했다.
“영혼함이고 뭐고 필요 없어.”
그의 서늘한 눈동자가 아트록의 비어 있는 눈두덩을 직시했다.
“네 입에서 영혼함의 위치와 함께, 죽여달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어줄 테니까.”
“큭,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서걱!
카이의 성검이 아트록의 몸을 베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서걱, 서걱, 서걱!
무려 검술의 마스터가 작정하고 휘두른 검이다.
순식간에 수백 조각이 나버린 아트록은 투둑! 비에 젖은 초원 위로 떨어졌다.
스스슥.
“……소용이 없다고 했을 텐데.”
순식간에 모습을 복원한 아트록이 귀찮다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카이는 이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헬 파이어.”
화르르륵!
아트록의 뼈를 태워서 잿가루로 만들고.
“신벌!”
아예 신성력의 힘으로 그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기도 했다.
허나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그는 결국 자신의 몸을 복원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해서 아트록을 죽이고, 또 죽였다.
녀석을 70번째 죽이자,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놈이 황급히 손을 들며 말했다.
“자, 잠깐.”
카이는 놈의 말을 무시했다.
“푸른 역병.”
검은색에 가깝던 회색의 뼈가 푸른색으로 변질되더니, 이내 부식되며 녹아내렸다.
다시 한 번 복원에 성공한 아트록의 목소리는 더욱 조급해져 있었다.
“잠깐만 멈춰보아라!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중력장.”
꾸드드드득!
마치 폐차장의 압축기가 자동차를 찌그러트리듯.
수백 배의 중력이 아트록의 몸을 먼지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80번 째, 90번 째.
지켜보는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무자비한 손속을 펼치던 카이가 잠시 무기를 거두었다.
“허, 허억.”
겨우 몸을 복원해 낸 아트록이 지친 숨을 뱉어냈다.
이를 지켜보던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차이가 있다.’
녀석의 몸이 복원되는 속도가 다르다.
점점 느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인은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차이였다.
기껏해야 영 점 몇 초 정도의 간극.
허나 카이가 체감하는 시간은 이미 일반인과는 범주 자체가 달랐다.
‘처음에는 복원하던 속도가 1초.’
허나 지금은 정확히 4.82초가 걸린다.
“영혼함의 위치는?”
“자, 잠깐…….”
퍼어어엉!
태양광자포가 초원을 휩쓸었다.
먼지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아트록은 정확히 5.16초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100번 채우고 시작할까?”
100번이라는 숫자가 튀어나오자 아트록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한 번 떠봤던 것뿐인데, 그의 손가락 끝은 가늘게 떨리는 중이었다.
‘100번, 그게 한계인가 보네.’
이것이 게임인 이상, 영혼함이 그에게 무한한 생명을 가져다주진 않을 것이다.
당연히 제약이 있을 터.
카이는 그 제약을 ‘부활 횟수’라고 단정 지었다.
‘사실 100번이나 살아나는 시점에서 이미 이 보스는…… 젠장, 이 콘텐츠 짠 개발자 누구야?’
물론 정상적인 루트는 녀석의 영혼함을 먼저 파괴한 뒤.
공략대를 꾸려 아트록을 한 번 죽이고 끝내는 것이겠지.
하지만 카이는 아트록의 영혼함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죽이는 거지.”
영혼함에 저장된 녀석의 영혼이 바닥날 때까지.
부르르.
카이의 말도 안 되는 무식한 전법에 아트록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어딜 가.”
가벼운 목소리 한 번에 중력장이 몰아쳐 아트록의 몸을 포박했다.
뮬딘 교의 최고 권력자이자, 지난 수백 년간 교단을 이끌어온 뮬딘 교의 영웅.
그 또한 목숨에 집착이 강한 생명 중 하나였다.
‘하긴, 애초에 목숨에 대한 집착이 강했으니 리치가 되었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살고 싶었을 테니까.
“미안하지만, 난 널 살려둘 생각이 없어.”
적을 죽일 수 있을 때 죽인다.
그것은 이유를 물어볼 것도 없이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까드득!
카이가 협상의 기미조차 내비추지 않자, 아트록이 이를 갈았다.
“너 따위에게…… 모험가 따위에게 죽기 위해서 수백 년을 숨 죽여 온 것이 아니다!”
아트록의 손아귀에서 어둠의 힘이 뭉치더니 검의 모양을 취했다.
“검이라…… 과연.”
카이는 타르달의 말을 떠올렸다.
-아트록. 그는 뮬딘이 인간계를 정복하고자 낳은 존재로 묘사되어 있네. 그는 무예와 신성 마법에 정통했으며, 흑마법사의 영역에도 손을 뻗어 수많은 괴물들을 만들어냈다고 알려져 있지.
검과 마법, 신성은 물론 흑마법에까지 능통한 세기의 천재.
하지만 카이는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네가 검술에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면.”
진작 꺼냈어야 맞다.
90번이나 죽어나가는 동안 힘을 숨긴다?
어느 바보가 그리 하겠는가.
하지만 아트록은 지난 90번의 죽음 동안, 오직 ‘뮬딘 교의 신성력’만을 사용해왔다.
“한 때는 잘 나가는 천재였겠지.”
시대가 떠받들어주는 위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숨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해 리치가 되어버린 노괴물이지.”
시간의 흐름은 아주 많은 것을 바꾼다.
“긴 말 안 할게, 와.”
카이의 명령에 발끈한 아트록이 바닥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그의 자세, 검이 향하는 각도, 마력을 검에 담아내는 기술까지.
모든 것이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쩌어어엉!
카이의 성검은 아트록의 검을 가볍게 막아냈다.
마치 어른이 아이의 공격을 막아낸 것처럼 손쉽게 보일 정도였다.
“뭣…….”
아트록이 벅찬 호흡을 뱉어냈다.
마치 태산에 가로막힌 듯한 기분이다.
먼 과거, 리치가 되기 전 패트릭과 대결했을 때도 이 정도의 격차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모험가 녀석이…… 패트릭을 우습게 볼 정도로 강하다는 건가?’
아니,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패트릭은 검 한 자루로 천계까지 위명을 떨친 인물.
같은 검술의 마스터라고 하지만, 검술만 놓고 본다면 그와 카이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했다.
“그런데 어째서…….”
“당연한 걸 묻고 있냐.”
카이의 무감정한 시선이 아트록의 전신을 가볍게 훑었다.
그의 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근육’ 하나 없이 앙상한 리치의 뼈뿐이었다.
“검술의 기초적인 바탕은 다름아닌 체력과 힘.”
인간의 몸을 포기하고, 뼈다귀가 된 이상 검술을 사용하는 것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넌 여전히 과거에 갇혀있구나.”
자신이 패트릭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그 시대에.
뮬딘 교의 성세가 하늘을 찌르고, 대륙을 덮던 그 찬란한 시절에.
“과거를 살아가는 자는, 현재를 살아가는 자를 이길 수 없어.”
서걱!
카이의 성검은 아트록의 검을 가볍게 양당하고, 그의 뼈를 박살 내버렸다.
“이제 아홉 번 남았다.”
나지막한 경고가 초원 위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