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6
힐통령 436화
131. End Game (1)
듀라한들과 카이의 협공에 어둠의 군단은 쉽게 격퇴되었다.
어차피 흑룡의 길드원이나 어둠의 군단이나, 카이 입장에서는 똑같은 약자들.
그들은 뮬딘이 사라지자 다시 치료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카이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후우우…….”
뜻밖에 레벨을 몇 개나 올린 카이에게 누군가가 도도도 뛰어왔다.
“그대여! 괜찮으냐?”
얼굴 한가득 걱정된다는 표정을 띄워놓은 헬릭이었다.
그녀는 손을 막 이리저리 돌리며 말을 쏟아냈다.
“그대의 팔이랑 다리가 막막 이렇게 휙휙 돌아갔는데!”
“이제 괜찮아요. 봐요, 멀쩡하죠?”
“후으…….”
카이가 멋들어진 스트레칭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헬릭의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을 하려는 찰나.
전투의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어둠의 군단을 궤멸시켰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악명이 자자한 죽음의 상징을 완벽하게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스탯 포인트를 40개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이 2,260,800 상승합니다.]
[선행 스탯이 50만큼 상승합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선행 스탯이 25만큼 추가적으로 상승합니다.]
우선 어둠의 군단 궤멸에 대한 보상.
카이 정도 수준이니 몇 시간 싸워서 모두 처치가 가능한 거였지, 보통은 세계 10대 길드 2~3개가 손을 잡아야만 상대할 만한 적들이었다.
‘이건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가 주목하는 진정한 보상은 다른 것이었다.
‘아트록. 그리고…… 뮬딘.’
사실 뮬딘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것은 어느 정도 욕심이었다.
그의 본체를 해치운 것이 아니라, 아트록의 빙의한 정신체를 타격한 것뿐이었으니까.
카이는 초조한 표정으로 보상 창을 기다렸다.
띠링!
[뮬딘 교의 추기경, ‘아트록’을 처치하셨습니다.]
[뮬딘 교는 전형적인 상명하복 체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최고 권력자인 아트록 추기경이 사망한 지금, 뮬딘 교가 큰 혼란에 빠집니다.]
[추기경의 죽음으로 뮬딘 교의 교도들이 패닉에 빠집니다.]
[뮬딘 교의 사기가 30일간 50% 하락합니다.]
[스페셜 칭호, ‘빛의 사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스탯 포인트를 70개 획득했습니다.]
[헬릭이 수여할 선행 스탯을 계산 중입니다.]
“음?”
메시지를 읽던 카이가 눈을 깜빡였다.
다 좋은데, 선행 포인트가 여태 지급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헬릭 님?”
“잠깐…… 잠깐만!”
헬릭이 손가락을 열심히 접었다 피며 초집중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백 오십 개? 아으으!”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카이가 물었다.
“지금 뭐 하세요?”
“뭐 하기는. 그대에게 선행 점수를 얼마나 줄 수 있는지 계산 중이지 않느냐.”
“어…… 그걸 직접 계산하시는 거였어요?”
살짝 충격을 받은 카이가 묻자, 헬릭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럼 태양교의 교도에게 상을 내리는데, 태양신인 나 말고 누가 이 일을 한단 말이냐?”
그건 맞는 말이다.
“아, 물론 말씀이 맞는데…… 전 여태까지 주신 쪽에서 직접 주는 건 줄 알았거든요.”
주신의 다른 이름은 곧 시스템이니까.
잠시 고민하던 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 틀린 말은 아니구나. 결국 선행 점수를 얼마나 줄지는 주신 님과 나의 협상으로 이루어지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협상이요?”
“웅. 그대가 이 세계에 미친 영향. 얼마나 이로운 일을 하였는가, 그로 인해 앞으로 파생될 선의 의지는 어느 정도인가…… 주신이 이 세계에 남겨놓은 율법 아래에서 나는 선행 점수를 측정할 수 있다.”
놀라운 말을 들은 카이가 은근한 목소리로 그녀를 꼬셨다.
“그럼 아예 500개 정도 주시는 건……?”
헬릭이 바로 역정을 냈다.
“그대여! 내 말을 하나도 안 들은 거야! 내가 줄 수 있는 점수에도 상한선이라는 것이 있단 말이다. 만약 연속해서 몇 번이나 욕심을 부리게 되면, 점수를 주는 것이 아예 취소될 수도 있어.”
“어…….”
카이의 두 눈동자가 바르르 떨렸다.
‘그럼 여태까지 선행 스탯이 꼬박꼬박 잘 들어왔다는 뜻은…….’
헬릭이 그만큼 교섭을 잘했다는 뜻?
깜짝 놀란 카이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마치 바보인 줄 알았던 딸이 받아쓰기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맞아온 것 같은 충격!
“대, 대단하시군요.”
“웅, 나 신이야~”
가벼운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헬릭은 잠시 기다려 보라고 한 뒤, 손가락을 또 접었다 폈다.
“우음. 아트록은 아주아주 나쁜 놈이었으니 100개…… 앗, 근데 아주아주 오래된 나쁜 놈이었으니 120개…… 아 참, 그리고 나중에 그대를 때린 녀석은 뮬딘이지?”
“네. 아트록의 몸을 빌려 중간계에 현현한 뮬딘이었습니다.”
“조아써. 오히려 잘 되었구나. 이건 아마 150개…… 아니, 170개까지 가능할지도…….”
혼자서 뭐라 뭐라 중얼거리던 헬릭은 잠시 후 손뼉을 짝 쳤다.
“앗, 통과되었다!”
“오오, 몇 개입니까?”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헬릭이 아니라, 시스템 메시지였다.
띠링!
[아트록의 완전한 처치와 더불어, 그의 몸을 빌려 나타난 뮬딘의 정신체까지 처치하셨습니다.]
[태양신의 강력한 주장 덕에 보상이 강화됩니다. 선행 스탯이 200개 상승합니다.]
[태양 목격자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선행 스탯이 100만큼 추가적으로 상승합니다.]
“오오오……!!”
소름이 끼친 카이가 황급히 팔에 난 닭살들을 쓸어내렸다.
‘가만있어 봐, 그럼 이번 전투에서 얻은 것이…….’
22개의 레벨, 110개의 스탯 포인트, 마지막으로 375개의 선행 스탯이다.
‘그야말로 대박!’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그 고생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호쾌한 보상이었다.
‘이래서 분리수거는 깔끔하게 해야 돼.’
아트록이라는 쓰레기를 아주 깨끗하게 치워 버렸다.
시스템 메시지에서도 알 수 있듯, 뮬딘 교의 지휘 체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물론.
‘앞으로 30일 동안 뮬딘 교의 사기는 바닥을 기게 된다.’
전쟁이란 오묘하다.
평소에 100%의 실력을 내는 실력자마저도, 실전에 돌입하면 평소의 6~70%밖에 내지 못한다.
만약 노련한 실력자가 사기까지 충천한 상태라면 실력의 8~90%까지는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수백 년 동안 제대로 활약다운 활약도 하지 못하고 힘만 키워본 방구석 전사들이.
사기까지 바닥을 기는 상태라면?
‘평소 실력의 30~40%나 내면 다행이야.’
카이는 눈을 반짝였다.
역시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
모든 상황이 그에게 청신호, 즉 그린라이트를 보내고 있었다.
‘첫 트라이에 무조건 뮬딘 잡는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
‘게다가 헬릭 님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이번 기회를 살려야 한다.
“헬릭 님, 정말 감사합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카이가 헬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흐, 흐으응. 그대가 좋아하니 그것으로 되었느니라.”
만약 헬릭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지금쯤 좌우로 맹렬하게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기 강아지처럼 귀엽게 웃어 보인 헬릭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이 비는 하늘의 눈물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늘은 이런 녀석들을 위해서도 울어주는 겁니까?”
“……모르지. 뮬딘이라면 조금은 슬퍼할지도.”
“글쎄요.”
그 녀석이 아트록을 대하던 성격상, 어둠의 군단이고 나발이고 죽었다고 슬퍼할 것 같지는 않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카이의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아.”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천천히 갈라졌다.
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것은 밝게 빛나는 태양이었다.
“비가 그쳤네요.”
“으응. 폭우인 줄 알았더니, 거센 소나기일 뿐이었구나.”
입가에 미소를 띤 헬릭이 중얼거렸다.
“다행이구나.”
* * *
한국에 도착한 짐 박사는 호텔에 짐을 풀기도 전에, 어딘가로 향했다.
“그래? 알겠다.”
부하의 전화를 통해 보고를 들은 짐 박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하곤 전화를 끊었다.
‘아트록이 죽었다라…….’
예상했던 바다.
카이가 반드시 승리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렇게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것이겠지.
운전기사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짐 박사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잘 포장된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청담동에 들어섰다.
“이곳이…… 미스터 한이 사는 집인가.”
깔끔한 고급 오피스텔 앞에 도착한 짐 박사가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주변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그를 보며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그…… 맞지?”
“누구?”
“페가수스 사의 짐 루이스 박사. 그 왜 있잖아, 미드 온라인 개발한 사람.”
“아, 진짜? 진짜야?”
사람들이 하나둘 스마트폰을 꺼내며 그를 몰래 찍기 시작했다.
이런 귀찮은 일이 싫어 세상에 잘 나오지 않았던 짐 박사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오피스텔 입구로 향했다.
“저…… 무슨 일이십니까?”
오피스텔의 젊은 경비원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를 막아서며 물었다.
“이 집의 주인이 미스터 한…… 그러니까 한정우 아니오?”
짐 박사가 말을 하자, 그의 목에 걸려 있던 스피커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라무스 A.I가 이식된 실시간 통역기.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판매 자체를 하지 않기에 구할 수 없는 초희귀 제품이었다.
“어…… 예. 4층에 살긴 하는데 이 건물의 주인은 아니고요. 아니,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경비원의 말에 짐 박사가 깜짝 놀랐다.
“What…… 고작 이 건물의 4층만이 그의 집이란 말이요?”
“아뇨. 4층도 전체를 쓰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 한 채만…….”
“…….”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던 짐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곳은 온전히 게임만을 하기 위한 작업실이겠어.”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보유한 현금만 수천억이 가뿐하게 넘는 거부가, 이런 좁디좁은 건물의 방 한 칸만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혹시 가벼운 전언을 좀 전해줄 수 있겠소?”
“아…… 인터폰 말씀이시죠?”
“음. 뭐든 좋네.”
“잠시만요.”
경비원이 허리에 차고 있던 전화기를 꺼내 앱을 실행시켰다.
“아아, 수고 많으십니다. 여기 경비실인데요. 예예, 아뇨. 택배는 아니고, 그…… 손님이 찾아오셔서요. 예, 예. 바꿔드릴게요, 잠시만요.”
전화기를 바꿔주자 짐 박사가 가벼운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Hello, Mr. Han. It's Dr. Jim.”
* * *
“여긴 어쩐 일로…….”
아침으로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다가 급하게 문을 연 정우가 짐 박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 일단 안쪽으로 들어오시죠.”
“음. 갑작스러운 방문을 허락해 줘서 고맙네.”
현관에 지팡이를 잘 세워둔 짐 박사는 정우의 안내에 따라 소파에 자리했다.
“마침 잘됐네요.”
냉장고에 있던 식혜를 내온 정우가 눈을 빛내며 그의 방문을 반겼다.
“음? 잘되었다니?”
“마침 저도 박사님이랑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요.”
본심을 말하자면 박사와 더불어, 마르코 사장과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지난번에 달아뒀던 빚. 이번에 쓸까 합니다.”
정우의 말에 짐 박사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의 동양인이 젊다고 얕보아서는 절대 안 되었다.
보기엔 어수룩해 보여도, 그는 12억 모든 미드 온라인 유저의 정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