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438화 (438/441)

# 438

힐통령 438화

131. End Game(3)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카이는 사냥을 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보유한 칭호와 스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성물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했다.

결전을 눈앞에 둔 사람치고는 태평한 시간을 보낸 셈이었다.

물론, 그가 태평하다고 해서 다른 이들까지 태평한 것은 아니었다.

[페가수스, 역대급 메인 에피소드 ‘Darkest Faith(가장 어두운 신앙)’ 공개.]

[전세계 모든 유저가 참가하는 이벤트, 뮬딘 교 사냥이 시작되다.]

[게임 초기 때부터 꾸준히 언급되던 뮬딘 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

[세계적인 길드, 파티, 랭커들 대다수가 참여 의사를 밝혀.]

세상은 축제가 한창이었다.

최근 들어 이렇다 할 이벤트가 없었기에 더더욱 반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세계 8대 길드들, 게다가 최상위권 랭커들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고작 이벤트 따위가 아니라는 걸.

그들은 이 게임의 최종 목적지가 뮬딘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때문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벤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부분은…… 정말 미안하게 됐어.’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다른 유저들의 즐거움을 강탈한 것이 되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몇 년 동안 뮬딘 교를 추격하고, 그들의 단서를 찾고, 거점들을 점령해 나가면서 뮬딘 교의 정체가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났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라는 존재가 그 과정을 스킵해 버렸다.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다.’

차분히 눈을 감은 카이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우선 내 레벨은 707.’

그리고 스탯 창에 표기된 수치들은 다음과 같았다.

힘 : 4,387 체력 : 4,212

지능 : 3,724 민첩 : 2,682

신성 : 6,635 위엄 : 2,554

선행 : 1,384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라.’

스탯 창에 수치가 표시되지 않더라도, 자신은 그 이상의 힘을 낼 수가 있다.

특히 뮬딘을 상대할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스페셜 칭호들.’

카이가 여태껏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나오며 얻은 아주 특별한, 이 게임에서 오직 그만이 획득할 수 있는 칭호들 덕분이다.

그의 눈길이 칭호 도감에 가볍게 머물렀다.

‘아오사를 처치한 자…….’

이 칭호 덕분에 자신은 뮬딘 교에 소속된 모든 적들에게 10%의 추가 데미지를 줄 수 있다.

‘대공 처단자.’

마계에서 키네사를 죽이고 얻은 스페셜 칭호로, 자신의 모든 능력치를 10% 상승시킨다.

거기에 자탄을 쓰러트리고 얻은 칭호, ‘재앙 파괴자’의 모든 공격력 10% 상승 효과까지.

‘마지막으로 이번에 얻은 빛의 사자.’

신성 스탯을 10% 상승시키고, 뮬딘 교의 존재와 전투 시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한다.

즉, 정리하자면 이랬다.

‘뮬딘을 상대할 때 나는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 모든 공격력이 10% 상승, 그리고 뮬딘에게 10%의 추가 피해를 준다. 아, 거기에 신성도 10% 상승하지.’

이쯤 되면 뮬딘의 천적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아주 작정하고 대뮬딘 병기로 키워진 수준이었으니까.

“굳이 수치로 나타내자면…… 이 정도 되나?”

힘 : 5,264 체력 : 5,055

지능 : 4,469 민첩 : 3,218

신성 : 8,625 위엄 : 3,069

선행 : 1,384

여기에 블레스와 신성 폭주, 기타 포션 도핑까지 합치면 신성 스탯은 9천을 넘길 수 있다.

현재 자신이 낼 수 있는 베스트.

‘오직 뮬딘을 상대할 때만 발휘할 수 있는 나의 최선.’

이것으로도 그에게 닿지 못한다면, 자신은 무슨 수를 써도 그를 이길 수 없다.

카이는 곧장 화이트홀에 위치한 아야나의 진료소로 향했다.

똑똑똑.

카이를 배려한 것일까?

Close라고 써 있는 문패를 두드리자,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와 있는 아야나의 아버지가 문을 열었다.

“마침 오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이를 안쪽으로 안내한 그는 지저분한 책상을 대충 치우더니 자리를 권했다.

“후,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독한 재료예요. 독해도 너무 독합니다.”

책상 위에 고급스러운 곽을 조심스럽게 올린 그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열어봐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딸깍, 곽을 열자, 두 개의 플라스크에 담긴 포션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이 마왕의 뿔로 만든 포션이고, 보라색이 마계 대공의 심장으로 만든 포션입니다.”

가벼운 설명을 마친 그가 카이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카이 님. 정말로 이걸 드실 생각이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뇨, 하지만…… 제가 재료를 다루면서 알아본 결과, 마기라는 것 자체에 제법 많은 부작용이 있더군요. 가능하면 복용하지 않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인간의 몸에 안 좋은 성분들이 너무 많아요. 검은색 포션 역시 웬만한 영약이나 다름없을 정도의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신성력과의 반발은 역시 무시하실 수 없을 거예요.”

“……그렇군요.”

인간의 몸이라.

이미 초월자의 반열에 들어선 카이와는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하나 그의 말을 경청한 카이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걸 마실 놈은 따로 있으니까.”

“아! 다행입니다. 전 또 카이 님이 드시려는 줄 알고…….”

아야나의 아버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내 분과 아야나에게 인사도 못 드리고 가네요.”

“뭐, 이른 아침이니까요. 두 사람도 이 포션들을 만들 때 워낙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지금쯤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거예요.”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카이 님께서 저희 가족에게 해주신 은혜를 이제야 조금 갚은 느낌인 걸요.”

그의 수척한 얼굴 한 가득 미소가 걸렸다.

“꼭 하시려는 일이 잘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니, 저희 가족은 항상 카이 님을 믿고 응원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믿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

그 고마움을 곱씹어보던 카이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대공의 위(位)에 있으신 분이 이러는 걸 보면 몰매 맞습니다.”

“하하, 아무도 없으니까요.”

은은한 웃음을 흘린 카이는 진료소를 떠나 다시 아르칸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그는 인벤토리에 잠들어있는 포션의 존재를 떠올렸다.

‘지난 보름간 많이 생각했지.’

과연 저 포션들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

그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온 상태.

이제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만 있으면 된다.

똑똑똑.

카이가 방의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라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오셨어요.”

오늘의 라샤는 평소보다도 훨씬 더 성숙한 목소리 톤을 선보이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라고는 말한 적이 없지만,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이 결전의 날이라는 것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무장을 마친 채, 각오를 품은 얼굴을 보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다.

“헬릭은 안쪽에 있어요. 자리, 피해드릴게요.”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카이는 내부로 들어갔다.

평소에 방에 들어오면 항상 침대에서 침을 흘리며 자고 있거나, 찡찡거리며 밀린 숙제를 풀던 그녀였다.

하나 오늘은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날이 맑구나.”

“그러게요. 오늘따라 유독 날이 맑네요.”

날씨는 쾌청했고, 하늘은 청명했다.

거기에 기분 좋을 정도로만 시원한 바람까지.

당장이라도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을 가고 싶은 날씨였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카이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저 오늘 올라갑니다.”

“……응.”

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어딜 올라가느냐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덜컥! 헬릭이 돌연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며 커튼과 그녀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끄으으응!”

듣는 사람의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 헬릭이 입을 열었다.

“후아, 최근 좀 피곤했느니라.”

“그러셨어요?”

“응. 다음 학기의 시험 준비도 열심히 하고, 밀린 숙제도 하고, 카카오나무도 심었고…….”

고작 그 정도로 피곤을 느꼈을 리가 없다.

근래의 헬릭은 카이가 보아왔던 것 중에서 가장 활기차고 밝아보였으니까.

“그러니까 당분간은 아무 생각도 없이 푹 자고 싶구나.”

자신을 걱정시키기 싫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카이는 내색하지 않았다.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푹 주무세요. 깨워드릴 테니까.”

“……너무 늦지 않게 깨워줘야 하느니라.”

헬릭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무서우시겠지.’

신은 자신의 봉인을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봉인을 깨고 나올 수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뮬딘에게 패배한다면 그녀는 봉인을 풀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봉인이 풀리는 순간, 뮬딘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 세계가 어둠에 먹힌다는 것을 아니까.’

홀로 고독을 맛보며 자신의 정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버티는 것.

헬릭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고독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며칠만 주무시면 될 겁니다.”

“……응. 믿고 있느니라.”

그녀가 믿는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카이는 자신을 향한 그녀의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 그 어떤 신이 사도의 말만 듣고 스스로의 존재를 봉인하겠는가.

‘그러니까,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아.’

카이가 한 쪽 무릎을 꿇고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주무시기 전에 한 번 안아봐도 돼요?”

두 팔을 벌리자, 헬릭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깨가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헬릭의 눈물 때문이겠지.

카이는 말없이 헬릭의 등을 토닥였다.

“오래 안 걸려요. 저희도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사탕이랑 과자.”

“준비 해놓을게요. 한 트럭 정도.”

“트럭이 모야.”

“엄청 많이 준비한다는 뜻이에요.”

“트럭 좋으니라.”

말 끝을 수놓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선명히 울렸다.

“그럼 며칠 뒤에 보자꾸나.”

“네, 며칠 뒤에.”

카이가 말을 마친 순간, 이미 그의 품 안에 있던 헬릭은 사라진 상태였다.

무언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깨에 남아있는 축축하면서도 따뜻한 눈물 자국은 그 감정을 더욱 증폭시켰다.

“…….”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는 헬릭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그녀의 폰을 빤히 쳐다보았다.

“잠깐 빌리겠습니다.”

그녀의 폰을 챙겨든 카이의 몸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

뮬딘의 섬에 방문하는 것은 쉬웠다.

드래곤 로드의 기억 속에서라고는 하지만, 카이는 분명 그의 섬에 ‘방문’한 적이 있었으니까.

저벅저벅.

깊은 후드를 뒤집어쓴 카이는 뮬딘의 정원을 거닐었다.

여전히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정원은 1만 년 전과 비교해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정원의 끝으로 향하자, 묵빛이 감도는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보였다.

그 중 의자 하나에는 이미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앉아라.”

섬의 주인, 뮬딘이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이에 카이는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았다.

“헬릭의 기운이 사라졌더군.”

“…….”

“번거로운 일을 했어. 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이기도 해. 그 부분은 칭찬하지.”

“…….”

“오늘따라 과묵하군. 지난 번에는 그리도 말이 많더니 말이야.”

피식 웃은 뮬딘은 전투를 눈앞에 둔 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원하는 것은 내가 중간계로 내려가서 네 놈과 붙는 것이겠지?”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뮬딘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좋아. 어차피 어느 무대에서 싸우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오만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의 자신감.

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자신의 실력에 무한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내비칠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아참, 그리고 내려가기 전에…….”

뮬딘이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동시에 카이의 어둠의 기운이 카이의 몸을 몇 차례나 휘감았다.

[모든 스탯이 20% 하락합니다.]

[모든 공격력이 20% 하락합니다.]

[모든 방어력이 20% 하락합니다.]

[힐, 정화 계열 스킬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난 확실한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피식 웃은 뮬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내려가지.”

뮬딘은 벌써부터 자신의 승리가 확실시 된 사람처럼 굴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파아아악!

“……흠.”

푸른 역병을 뿜어냈다.

이에 뮬딘은 가장 먼저 호흡부터 멈췄다.

‘기습인가.’

당황보다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품고, 무슨 자신감으로 이곳까지 찾아왔는가 궁금했건만.

‘고작 이 정도 수준의 상대였나.’

이토록 시시한 기습이라니?

아주 미약하게 품고 있던 기대감이 우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뮬딘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손을 휘둘렀다.

터어엉!

그의 손길 한 번에 상대방이 그대로 튕겨나갔다.

‘음?’

이에 뮬딘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며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전에 붙었을 때는, 물론 그때는 아트록의 몸을 빌린 채 싸우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나약하지는 않았다.’

뮬딘의 머리에 의심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아닌 그 무엇도 믿지 않는 자였으니까.

‘오늘, 저 녀석이 이곳에 와서 한 마디라도 했던가?’

하지 않았다.

그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앉으라면 앉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고개만 끄덕였을 뿐.

‘설마…… 태양 분신을 이용한 건가?’

뮬딘이 품은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려던 순간.

바닥에 쓰러져있던 카이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후드 안쪽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이상한 수작이라도 부렸을까 봐?”

“…….”

불과 며칠 전에 들었던 그 목소리가 맞았다.

그것이 확인됨과 동시에 뮬딘이 품었던 의심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자신이 너무 앞서나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카이가 보유한 대부분의 스킬들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태양 분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분신은 말을 하지 못한다.’

그 사실은 그에게 약간의 안도감을 주었다.

그것이 실수였다.

“사실, 수작부린 거 맞아.”

아주 치명적인 실수.

“뭣…….”

등 뒤에서 들린 상대의 목소리에 뮬딘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하나, 애초에 기습을 하는 이의 몸놀림이 최소 반 박자 이상 빠를 수밖에 없다.

촤르르륵!

뮬딘의 두 손은 순식간에 신성 사슬에 속박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가늘게 떨리는 뮬딘의 시야에는 두 명의 카이가 담겨있었다.

태양 분신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두 녀석 모두 말을…….”

“이게 문명의 이기, 폰이라는 거다.”

카이가 한쪽 손에 들고 있던 폰을 까딱거리며 흔들었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분신의 후드 안쪽에서도 똑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별 같잖은 수작을!”

뮬딘은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하나 카이는 그에게 잠깐의 틈조차 주지 않았다.

“데스몬드!”

“기다리고 있었다!”

“벌레 같은 것들이…….”

뮬딘이 제 등 뒤에 소환된 흡혈귀들의 군주, 데스몬드를 노려보았다.

강렬한 어둠이 몰아치며 데스몬드의 팔과 다리를 그대로 부러트렸다.

하나, 데스몬드는 그의 임무를 확실하게 완수했다.

콰직!

바로 뮬딘의 어깻죽지를 그대로 물어버린 것이다.

“하, 기껏 생각한 것이 분신을 통한 속임수. 거기에 모기 따위의 흡혈인가?”

뮬딘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최상급 신위를 지니고 있는 그는 이런 모기가 수 백 마리 달라붙어도 당해낼 수 없는 존재다.

심지어 이곳은 천계다.

자신은 그 어떠한 물리적 피해도 입지 않는다.

물론, 그 사실을 카이가 모를 리 없었다.

“아무도 흡혈이라는 말은 안 했는데.”

“……뭐?”

흡혈이라는 말을 안 했다?

그 단어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뮬딘이 고개를 휙 돌려 데스몬드의 이빨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는 자신의 피를 빨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체내에 있는 피를 자신에게 주입하는 중이었다.

‘대체 왜……?’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잠시 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크억…….”

심장과 아랫배 부분이 불에 달군 것처럼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두 장소 모두 신성력이 모이는 장소.

그 부분에 충격이 가해졌다는 것은 단 하나를 의미했다.

‘이 기운은…… 마기!’

데스몬드의 수혈 능력을 통해 마기가 주입된 것이다.

그것도 단번에 정화시킬 수 있는, 어중이떠중이의 질 낮은 마기가 아니었다.

“영광으로 여겨도 좋아.”

지금 그에게 주입 중인 건 무려 마계 대공의 심장이 품고 있던 마기였으니까.

심지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컥…….”

뮬딘이 다시 한 번 신음을 뱉어냈다.

데스몬드의 송곳니를 통해 또 다른 기운이 주입되었기 때문이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아마 더 아파질 거야.”

지금 주입 중인 것은 마왕, 앙골모아의 뿔이 품고 있던 마기.

웬만한 존재에게는 독이 아니라 돈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영약이다.

하나, 최상급 신인 뮬딘의 신성력은 항상 정순해야만 한다.

아무리 깨끗한 마나, 혹은 아무리 정순한 마기라고 해도 그에겐 쓰레기나 다름없다.

“신성력은 신념이 유형화된 기운.”

즉, 신의 신념을 변질시킬 자신이 없다면.

반대로 대상의 신성을 변질시키면 될 뿐이다.

그 둘의 효과는 완전히 똑같으니까.

“축하해. 지금 이 시간부로, 네 신격은 동네 쓰레기통에 처박혔어.”

부들부들.

뮬딘의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동자가 카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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