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439화 (439/441)

# 439

힐통령 439화

131. End Game(4)

“기분이 어때? 네가 과거에 이오스에게 했던 짓을 똑같이 재연해 본 건데.”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뮬딘은 이오스를 비롯한 하위 신들의 몸에 마나를 주입했고.

자신은 뮬딘의 몸에 마기를 주입했다는 것 정도다.

“큭…… 크큭.”

여전히 손이 묶여 있는 뮬딘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상태로, 고개를 숙이며 끅끅거렸다.

들썩거리는 어깨만 봐서는 그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판별해낼 수 없었다.

“재미있군.”

정답은 웃음이었다.

고개를 든 뮬딘의 입가에는 비틀린 미소가 걸려 있었으니까.

그의 두 눈에는 가소로움이 한아름 깃들어있었다.

“천계에 두 명밖에 없는 최상급 신과,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하위 신을 동급으로 보다니? 이거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뮬딘이 가볍게 목을 몇 바퀴 돌렸다.

“나의 신성력이 체내에 들어온 마기를 정화시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1시간? 2시간? 이까짓 건 30분이면 충분해!”

뮬딘이 이를 드러내며 버럭 소리쳤다.

호오, 가볍게 감탄한 카이가 입을 열었다.

“30분이면 충분하다고? 그거 참 우연이네. 나도 30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카이는 으르렁거리는 뮬딘과는 대조적으로 피식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아, 그리고 누가 일어나래?”

쿠웅!

뮬딘의 한 쪽 무릎이 바닥에 그대로 쳐박혔다.

산산조각난 대리석을 쳐다보던 뮬딘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네가 아무리 쎈 척을 해봤자, 지금의 넌 최상급 신이 아니야. 끽 해봐야 하위 신격이겠지.”

그 정도라면 초월자의 격으로도 충분히 타격을 줄 만하다.

“……지금의 그 당당함이 30분 후에도 여전할지 궁금하군.”

“궁금해하지 마. 어차피 넌 못 봐.”

30분 후면 뮬딘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그게 아니면 내가 곤란해져.’

만약 그의 신성력이 마기를 모두 몰아낼 때까지 결과를 내지못한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무조건 30분 안에 승부를 내야 한다.’

자신과 뮬딘의 격 차이가 좁혀진 지금이 유일한 기회.

스르르릉.

카이가 성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운 신성력이군.”

뮬딘이 중얼거렸다.

여동생의 신성력을 본신으로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전히 빛나는구나. 눈이 부실 정도로.”

그가 자신의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세상의 모든 어둠을 걷어내는 태양교의 신성력과는 달리.

모든 것을 뒤덮어버리는 어두운 연기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것이 악신 뮬딘의 신성력.

‘힘이 약해지긴 했군.’

뮬딘은 이러한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보유한 대부분의 신성력들은 현재 체내의 마기를 정화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때문에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신성력은 기껏해야 절반 정도.

‘뭐, 충분하겠지.’

뮬딘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손목을 묶고 있던 신성 사슬이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물어 뜯어라.”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기자, 어둠의 신성력들이 뭉치며 늑대의 형상을 취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정원을 내달리며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서걱!

카이의 손에 들린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검의 궤적은 아름다웠다.

하나 그 안에 담긴 기운은 패도 그 자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어둠의 늑대는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이런 잔기술로 시간 벌려고?”

“시간을 벌어? 웃기는군. 네놈 따위가 뭐라고?”

코웃음을 친 뮬딘이 검지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미중유의 힘이 카이를 허공에 붕 떠올렸다.

“스스로의 주제를 알거라. 벌레 같은 존재여.”

뮬딘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움직이자, 카이의 몸이 정원에 우뚝 솟은 기둥에 처박혔다.

와르르르르!

기둥 몇 개를 부수고 나서야 멈춘 카이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잔기술.”

뮬딘이 고개를 살짝 젖히자, 그의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검신이 코 위를 스쳐지나갔다.

카이는 제 기습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찌르기를 내려베기로 바꾸었다.

마치 처음부터 의도를 한 것처럼 부드러운 연결이었다.

“호오.”

그 자연스러운 연결에는 뮬딘마저 감탄을 뱉어냈다.

‘확실히 평범한 인간의 경지는 벗어났군.’

나노 초 단위로 이루어진 공방에서 이만한 반사신경을 보인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쩌어어엉!

검이 내려친 뮬딘의 얼굴에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덮인 상태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엇인가가 카이를 등 뒤에서 끌어당겼다.

뒤를 돌아보니 어둠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었다.

카이의 뒷목을 움켜진 손은 그를 바닥에 찍어눌렀다.

“크윽!”

인상을 찡그린 카이가 신출귀몰을 사용해 손아귀에서 벗어난 순간.

화악!

그가 이동한 위치로 어둠의 창 세 개가 기다렸다는 것처럼 날아왔다.

파악! 파악! 푸욱!

시간 차를 두고 쏘아진 세 개의 창 중 하나가 카이의 어깨죽지에 박혔다.

“아픈가?”

뮬딘의 질문에 카이가 헛웃음을 삼켰다.

“뒤나 봐.”

그 말과 동시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던 태양 분신이 뮬딘의 배후를 기습했다.

“신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 오만한 말과 동시에 바닥에서 솟구친 어둠의 가시가 분신의 몸을 꿰뚫었다.

[태양 분신이 소멸되었습니다.]

“아주 잘나셨어. 크윽.”

어깨에 뽑힌 창을 뽑아 땅바닥에 던진 카이가 중얼거렸다.

“지난번에 그러지 않았나? 나에게 자유를 가르쳐 준다고.”

뒷짐을 진 뮬딘이 물었다.

“왜, 알고 싶어?”

“그다지. 하지만 네놈 같은 벌레는 과연 자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할지 궁금하긴 하군.”

“내가 추구하는 자유는 간단해.”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긴 카이가 입을 열었다.

“내 마음이 가는 데로 행동하는 것. 단, 지켜야 할 규율은 지키는 선에서 말이지.”

“모순이다. 자유는 그 어떠한 것에도 구속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헌데 정해진 규율을 따른다? 그것은 더 이상 자유가 아냐.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니까.”

뮬딘의 말에 카이가 씨익 웃었다.

“그것 참 이상하네. 네가 항상 하던 말은 대를 위해선 소가 희생해야 한다는 거 아니었나?”

“정확하다.”

“한 사람이 규율을 따르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면, 다수의 사람은 그로 인해 자신들의 ‘자유’를 침해 받게 되지. 이 경우엔 소를 위해 대가 희생하는 꼴 아닌가?”

말문이 막힌 뮬딘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잠시 시간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힘있는 자의 자유 의지는 당연히 약자들의 자유를 무시할 권리가 있다.”

“거봐, 결국 약육강식의 논리잖아.”

자유라는 프레임만 씌워놨을 뿐, 결국 알맹이는 힘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소리다.

“지난 번에 네놈과 대화를 실컷 한 뒤. 곰곰이 생각을 해봤단 말이지.”

스스로의 검에 자유라는 신념을 담았지만, 정작 자유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 자신의 신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성물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있나.”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카이의 머릿속을 떠다녔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뮬딘의 논리처럼, 자유라는 이름 아래에선 모든 것이 용납되는가?

그게 사실이라면 현대 사회에서의 자유는 선보다는 악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오랜 생각 끝에 카이가 도달한 결론은 단 하나였다.

“자유라는 건 말이야. 개인이 소유하고, 다룰 수 있는 형태의 것이 아니야.”

오히려 모든 사람이 누릴 자격이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다.”

“…….”

카이의 말에 뮬딘은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고수했다.

“……재미있군.”

뮬딘은 정말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품을 수 있는 거지? 따지고보면 네놈도 강자의 영역에 들어선 존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레들을 존중해주겠다는 건가?”

“내 말 뭐로 들었냐. 자유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그 자유는 나의 자유와는 다르군.”

뮬딘이 손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어둠의 물결에서 날카로운 창들이 빼곡히 돋아났다.

“말로는 결론이 안 나니, 힘으로 증명할 수 밖에.”

“힘, 좋지.”

파바박!

뮬딘이 쏘아낸 수백 개의 창들을 바라보던 카이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볍게 쓸었다.

그 단순한 손짓에 수백 개의 창들이 비틀리며 땅에 떨어졌다.

“또 그 기술인가…….”

무형검의 발동 원리를 알 수 없던 뮬딘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내가 너에게 자유를 가르쳐준다는 건, 빈말이 아니야.”

카이가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 잠들어있던 방대한 신성력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한 올, 두 올…….

태양교의 신성력이 수십만 가닥의 가느다란 실타래가 되어 섬 전체를 뒤덮었다.

상하전후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신성력의 실만이 존재하는 완벽한 백색의 공간.

그곳에서 색을 지니고 있는 것은 카이와 뮬딘만이 유일했다.

“하찮은 짓을.”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뮬딘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의 몸에서 거칠게 뿜어져나온 어둠의 신성력이 백색 공간을 두드렸다.

쩌정!

“……!”

하나 백색 공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뮬딘을 향해 카이가 천천히 다가갔다.

“헬릭 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성물이란 신념을 잠깐 덜어놓는 그릇에 불과하다고.”

시미즈가 품은 수호의 신념이 담긴 성의.

체란티아의 안식이 담긴 반지.

패트릭의 멸악(滅惡)이라는 의지가 담긴 광휘의 검까지.

모두 신념을 잠깐 덜어놓은 그릇에 불과할 뿐, 신념 그 자체가 되지는 못한다.

“과연 어떤 물건이 자유라는 신념을 품을 수 있을까. 나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지.”

스스로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 같았다.

-자유를 담아놓을 수 있는 그릇은 이 세상에 없다.

어떤 것에도 구속, 속박되지 않는 것이 바로 자유니까.

“이런 공간조차도 자유를 담아놓을 순 없어. 잠시 붙잡아두는 정도겠지.”

편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던 카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스르륵.

백색의 공간이 천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카이의 몸에 깃들어있던 신성력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음?”

뮬딘이 돌연 비명을 내질렀다.

“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카이의 신성력이 바위처럼 꿈쩍도 안 하는 것처럼, 뮬딘의 몸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아까 가르쳐 줬잖아? 한쪽이 일방적인 손해를 감내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그러니 상대의 신성력을 봉인하려면, 자신의 것도 봉인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뭐, 그래봤자 5분 정도가 고작이겠지만.”

심드렁하게 중얼거린 카이가 뮬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안타깝게 됐네.”

뮬딘은 이런 싸움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격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최상급의 신.

산과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쪼개는 경천동지의 대결을 원했을 것이다.

“그래도 딱히 미안하진 않아.”

“크읏!”

카이가 손을 뻗자 뮬딘이 몸을 뒤로 날렸다.

하나, 카이는 신성 스탯이 없어도 힘 스탯만 무려 5천이 넘는 괴물.

신성력이 봉인된 뮬딘이 육탄전으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뮬딘을 짐짝처럼 질질 끌고 섬의 끝자락으로 걸어가던 카이가 입을 열었다.

“조금 아플 거다.”

맑은 하늘, 구름이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높이의 하늘에서, 카이는 뮬딘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크, 큭. 이런…… 다고 내가 죽을 것 같나?”

목이 붙잡힌 뮬딘이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반드시 살아서…… 네놈을 찢어죽이고…… 헬릭…….”

화악!

카이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손을 놔버렸다.

지지대를 잃어버린 뮬딘은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멀어져가는 그를 내려다보던 카이가 손가락을 튕겼다.

“미믹.”

뀨!

바닥에 소환된 미믹이 빠르게 카이의 몸을 타고 그의 어깨 위로 올라섰다.

손가락으로 녀석을 부드럽게 간지럽힌 카이가 명령했다.

“저 녀석, 깔아뭉개 버려. 최대 무게로.”

카이의 명령을 접한 미믹의 모습이 순식간에 와이번으로 변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미믹의 날카로운 발톱이 추락하던 뮬딘의 가슴 살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

카이가 미믹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중력장.”

미믹에게 가해지는 중력이 20배로 껑충 뛰어올랐다.

더 이상 날갯짓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중력.

때문에 미믹은 오히려 날개를 접고 공기와의 마찰을 최소화시켰다.

아래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는 미믹의 속도는 이내 음속을 돌파했다.

쐐애애애애액!

“젠장!”

미믹의 발톱에 박힌 뮬딘이 짜증을 드러냈다.

평소라면 손 하나 까딱하지도 않고 죽여버릴 수 있는 미천한 생물이다.

하나 지금은 체내에 투입된 마기가 미쳐 날뛰는 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성력 또한 봉인된 상태.

한마디로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대륙.’

바닥을 향해 추락하던 뮬딘의 시야에 조그마한 점이 들어왔다.

그 점은 순식간에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통칭 중간계라고 불리는 대륙이었다.

뮬딘은 살을 에는듯한 바람 속에서도 대륙의 모습은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었다.

대륙 전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뮬딘 교가 수백 년 동안 음지에서 양성한 군대가 모습을 드러냈고, 인간과 아인종들은 이에 맞서 싸웠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수십 마리의 드래곤들 또한 보였다.

‘…….’

그들을 보니 다시 한 번 속이 쓰려왔다.

무려 1만 년 동안 공을 들인 계획이 무너졌다는 것이 새삼 실감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그들은 지상의 태양교를 모두 박살내야 했다.

하나 지금은 그 반대.

오히려 뮬딘 교의 군대들을 학살하는 중이었다.

‘곧 떨어지겠군.’

뮬딘이 눈을 감고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는 순간.

미믹이 돌연 자신의 형태를 바꾸었다.

구오오오오오오오!

미믹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 중 가장 거대한 모습.

도시와 비견해도 절대 꿇리지 않는 크기를 지닌 뮬딘 교의 초거대 생물체.

자탄이 맑은 하늘 위에서 그 위용을 드러냈다.

“크읍!”

자탄의 뱃살에 짓눌린 뮬딘이 거친 호흡을 터트렸다.

마치 태산이 자신을 누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이건 위험하다는 경종이 머리를 울리는 것과 동시에.

자탄은 구름 몇 개를 연달아 터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쿠우우우우우우웅!

그들이 떨어진 자리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되었다.

분화구를 연상케하는 하는 깊은 구멍의 땅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펄펄 끓었다.

엄청난 충격의 여파였을까, 상당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미믹이 순식간에 역소환되었다.

물론 뮬딘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탄의 밑에 깔려 바닥과 충돌한 그의 경우에는 더욱 심했다.

“……!”

그는 자신의 뼈와 내장이 바스라지는 기분을 아주 생생하게 느껴야했다.

대부분의 생물은 고통을 느끼면 비명을 내지른다.

하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고통을 느끼는 감각, 그 이상의 고통이 가해졌을 때 생기는 일이다.

지금 뮬딘이 딱 그러했다.

뼈는 흔적도 없이 바스라졌고, 내장은 모두 터져 전신의 모든 구멍에서는 피가 터져나왔다.

그 때문인지 사고를 담당해야 할 뇌가 순간적으로 작동을 멈추었다.

말이 안 될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생각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버린 것이다.

하나 아무리 마기가 체내에 투입되었어도, 뮬딘에겐 방대한 신성력이 존재했다.

어둠의 기운으로 뭉친 악신의 신성력.

카이의 자유 의지에 의해 굳어있던 신성력이 천천히 움직이며 그의 몸을 수복하기 시작했다.

초월자인 카이가 뮬딘의 신성력을 봉인시키는 것은 이 정도의 시간이 한계였다.

“꺼…… 꺼으으…….”

순식간에 형체를 복구한 뮬딘의 입이 그제서야 벌려졌다.

뇌를 태워버릴 정도로 강렬했던 고통은 여전히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끄으……으으…….”

뮬딘의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이것은 세계가 만들어지고, 주신이 자신을 만든 이래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다.

헌데 그 고통의 수준이 생물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고통에 대한 내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던 뮬딘이 이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치 게임의 시작부터 끝판왕을 만난 듯한 느낌.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몸을 뒤집는 그의 옆으로 빛의 입자가 모여들었다.

“아프냐.”

뮬딘과는 달리, 신출귀몰로 편하게 내려온 카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뭐, 아프겠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부터 떨어졌는데 아프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카이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뮬딘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비틀, 비틀.

마치 갓 태어난 사슴이 홀로 서기 위해 몇십 번을 넘어지듯.

뮬딘은 제자리에 똑바로 서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카이는 절대 불쌍하다는 생각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딱 좋은 상태.’

눈앞의 나약한 존재는 자신의 ‘사냥감’이었으니까.

나약하고 빈틈이 많은 사냥감은 사냥꾼의 입장에선 호재일 뿐이다.

카이의 주먹이 그대로 뮬딘의 얼굴을 강타했다.

콰드드득!

코뼈가 으스러진 뮬딘이 머리부터 땅에 쳐박혔다.

카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채 경련만을 일으키는 뮬딘을 빤히 쳐다보았다.

“끝내자.”

목숨에 위협을 느낀 뮬딘이 본능적으로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의 의지를 받든 신성력이 분출되며 카이를 향해 파도처럼 몰아쳤다.

하나 카이의 검은 허공을 격하고 뮬딘에게 날아들었다.

‘무형검.’

그의 검은 색(色이) 없었고, 향(香)도 없었으며, 형(形)마저 없었다.

서걱!

게임을 하면서 수천, 수만 번은 들었던 날카로운 절삭음.

“아, 아, 안…… 돼…….”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뮬딘의 입에서 공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의 눈에 깃들어있던 야망과 오만함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만이 그의 눈동자에서 활활 불타올랐다.

회광반조(回光返照).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화려하게 타오르던 그 눈빛마저 천천히 메말라갔다.

뮬딘은 뻥 뚫린 가슴에서 새어나오는 신성력을 향해 손을 갈퀴처럼 뻗었다.

하나 손가락으로 바람을 잡을 수는 없는 법.

어둠의 신성력은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로 스르륵 빠져나갔다. 마치 모래알처럼.

카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 뮬딘이 있던 자리를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되살아날까 싶어서.

자신의 승리가 믿어지지가 않아서.

때문에 그는 제 귓가에 알림이 울리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띠링!

[파괴와 어둠의 신, ‘뮬딘’을 처치하셨습니다.]

[스페셜 칭호, ‘어둠을 거두는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태양신 헬릭이 봉인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선행 스탯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주신, ‘라무스’가 당신을 유심히 쳐다봅니다.]

[라무스가 당신과의 대화를 원합니다. 하나 당신의 격이 모자라서 주신의 처소에 방문할 수 없습니다.]

[라무스가 이를 안타까워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스탯 포인트를 350개 획득했습니다.]

[뮬딘의 죽음으로 메인 에피소드 : 어둠의 신 발동 조건이 파괴되었습니다.]

[어둠의 신 에피소드가 소멸됩니다.]

[이에 관련된 하위 퀘스트 52,135개가 함께 소멸됩니다.]

[뮬딘의 죽음으로 이에 뮬딘 교의 명맥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뮬딘 교와 관련된 직업 13종이 영구 소멸됩니다.]

[뮬딘 교와 관련된 아이템 244종이 그 힘을 상실합니다.]

“…….”

드디어 끝났다.

하늘을 가만히 쳐다보던 카이는 메시지들을 몇 번이고 읽어내렸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주신 라무스라.”

짐 루이스 박사가 만든 슈퍼 A.I 라무스.

그것은 미드 온라인의 모든 시스템과 서버를 총괄 관리하며, 대다수의 퀘스트와 이 대륙의 역사까지 스스로 만들어냈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격이 모자라서 처소에 방문할 수가 없다?’

그 문구를 곱씹어보던 카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칭호 도감.”

눈앞에 떠오른 칭호 도감을 펼친 카이는 어느 한 페이지에서 손을 멈추었다.

[에피소드 종결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메인 에피소드의 보스를 처치한 자에게 주는 칭호.

효과 : 영웅의 기개를 이용하여 단 한 번, 그 어떤 조건도 없이 원하는 NPC와 독대 가능.

자탄을 해치우고 얻었던 스페셜 칭호는 두 개.

재앙 파괴자와 에피소드 종결자.

‘그 어떤 조건도 없이.’

칭호의 효과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피소드 종결자 사용.”

띠링!

[독대를 원하는 NPC를 지정해 주십시오.]

두말할 것도 없다.

“……주신 라무스.”

카이의 시야가 천천히 암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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