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441화 (완결) (441/441)

# 441

힐통령 441화

132. New Game

10년이라는 시간은 강과 산의 모양마저 바꿀 수 있다.

하나 그 시간조차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에이온 소프트, ‘군주의 삶’ 시장 점유율 0.7% 대 유지 中, 마의 1% 못 넘나.]

[헬파이어사 신작, ‘우와(WooWa)’ 월 정액제를 포기, 결국 무료화 선언.]

[지난 몇 년간 우후죽순으로 쏟아진 가상현실게임들. 하나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의 벽은 너무 높다.]

[페가수스 사의 미드 온라인 후속작, ‘판타지아 온라인’의 흥행 요인과 인기 유지의 비결.]

[페가수스, ‘판타지아 온라인’ 동시 접속자 수 6천만 명 돌파. 누적 가입자 수 13억.]

[이제는 서비스가 종료된 미드 온라인의 그리운 맵들.]

결전의 날.

카이가 뮬딘을 처치하자, 메인 시나리오는 끝이 나버렸다.

물론 마계 컨텐츠가 남아 있긴 했지만 유저들은 2년이 지나기 전에 그조차 클리어해 버렸다.

여기서 페가수스 사는 깔끔하게 서비스 종료를 공지했다.

물론 바로 서비스를 종료한 것은 아니고, 공지로부터 3년이 지난 후.

지금으로부터는 5년 전에 게임의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그 이후로 틈새시장을 노린 제 2의 미드 온라인, 제2의 라무스가 부랴부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러한 게임들은 하나같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운 슈퍼 A.I를 만든 이들은 천재이기는 했지만 짐 박사만큼은 아니었고.

새로운 슈퍼 A.I들은 충분히 똑똑했지만 라무스만큼은 아니었으니까.

짐 박사가 괜히 한 세기에 한 번 나올 만한 천재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판타지아 온라인이 나왔지.”

전작에 비해 수십 배는 더 커진 맵과 스토리, 더 발전된 시스템까지.

미드 온라인은 끽해봐야 대륙 단위였지만 판타지아 온라인은 가히 행성에 비견될 정도의 크기를 자랑했다.

“뭐, 재미있으니까 사람이 몰리는 거겠지.”

새벽부터 커피를 홀짝이고 있자, 침실의 문이 열리며 아름다운 여인이 걸어 나왔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네?”

유하린이 입술에 머리끈을 문 채로, 제 머리를 묶으며 물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아이를 청년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한 청년을 누군가의 남편으로 만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응. 오늘은 왠지 눈이 빨리 떠지던데.”

“웬일이래? 당신 게이머 은퇴한 이후로는 이렇게 일찍 일어난 적 없잖아.”

“글쎄, 나도 모르겠네. 살다보면 이런 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정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하린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나도 잘 잤…… 앗, 따가워!”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하자, 유하린이 질색한 표정을 지으며 멀찍이 도망쳤다.

그녀의 얼굴 위로 진심 어린 짜증이 떠오르자, 정우가 허탈한 감정을 드러냈다.

“와, 너무해. 이거 마상이야 마상. 마음의 상처.”

“……그러게 아침마다 면도하랬잖아.”

“옛날에는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좋다며?”

“그때는 이렇게 능글맞은 아저씨가 될 줄 몰랐지.”

“……변했어. 누가 내 심장에 칼날 쇄도를 꽂아 넣은 기분이네.”

정우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슬쩍 턱 부근을 문질러보니, 확실히 까칠하긴 하다.

“어째 나이를 먹을수록 수염도 더 짙어지는 것 같단 말이지.”

“그런 말 하니까 진짜 아저씨 같아. 33살의 아저씨.”

“그러게. 33살이면 아저씨, 아줌마나 다름없는 나이인데. 그치 누나?”

정우가 능글맞게 웃으며 유하린의 나이를 거론하자,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또 나이 가지고 놀린다. 이럴 때만 누나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당신이 나보다 한 살 많으니까.”

“……능글맞다니까, 정말.”

5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

이미 부부 생활 5년 차에 접어든 정우와 하린은 예전처럼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때의 설레임이나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같이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내, 남편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 촬영이지?”

“응, 준비해야지.”

유하린은 30대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외모와 몸매로 여전히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10년 전부터 존재하던 그녀의 팬클럽은 이미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가입하는 글로벌 카페가 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화요일이면…… 오늘 방송은 랭커 맘인가?”

“맞아. 예전에 랭커였던 유부녀들이 모여서 수다 떠는 토크쇼.”

“그거 요즘 재미있더라. 그런데 그렇게 스튜디오에만 다니면 그립지 않아? 검 들고 돌아다니던 시절 말이야.”

“헤헤, 그 땐 참 좋았지.”

아련한 과거를 떠올리는 듯, 살짝 눈을 내리깐 유하린의 입가로 싱그러운 미소가 내려앉았다.

“그래도 판타지아 온라인은 뭔가 그때만큼의 두근거림은 없는 것 같아. 이게 추억 보정이라는 건가?”

“뭐, 당시에 미드 온라인은 혁신 그 자체였으니까.”

“언젠가 다시 그때의 설레임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정우가 타놓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유하린이 물었다.

“당신은 오늘 일찍 출근?”

“그래야지 뭐. 자는 사이에 일감이 또 미친 듯이 쌓였다네.”

손목에 감긴 시계 위로 투영된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를 바라보던 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오, 힘내요.”

사랑스러운 아내의 응원에 정우가 낮게 웃었다.

“우리 마님, 방송국까지 데려다줄까요?”

“으으응, 아니야. 밑에 혜정이 기다리고 있어.”

혜정이는 유하린의 매니저 이름이었다.

“아하, 그럼 지금 나가려고?”

“그래야지. 촬영까지 1시간 반 밖에 안 남았으니까.”

정우에게 다가온 유하린은 그의 입술을 가볍게 훔친 뒤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반찬 꺼내놨으니까 아침 꼭 챙겨먹고.”

“알겠어. 방송 열심히 하고.”

“우리 전하도 게임 열심히 해요~”

유하린이 집을 나서자, 정우는 배를 하품을 쩍쩍 뱉으며 밥을 챙겨먹었다.

“자, 그럼 이제 나도…….”

밤새 쌓인 보고서들을 쳐다보던 정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하러 가볼까.”

***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넘어간 차는 페가수스의 한국 지부 입구에 멈춰 섰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기다리고 있던 부하 직원이 차 키를 넘겨받고 주차를 하러 가자, 정우는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보고서 봤어. 또 무슨 일이야?”

“뭐겠습니까. 다들 제2의 언노운이 되어보겠다고 발악 중인 거죠 뭐.”

시스템, 개발사가 정해놓은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나리오를 부수며 자신만의 엔딩을 내는 것.

정우는 게임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위인으로써 게이머들의 갖은 추앙을 받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플레이를 따라하려는 유저들이 많을 수밖에.

“젠장, 골치 아프네. 왜 그딴 걸 따라하려고 하지?”

“그야…… 사장님이 롤 모델이니까요?”

페가수스에 입사한 정우는 강민구가 은퇴하자 그의 뒤를 이어 한국 지사장 자리에 올라섰다.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모니터링, 그리고 과거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랭커들이 일으킬 변수를 사전에 막는 것.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와, 저건 좀 심각하네요.”

“저런 애들도 있죠. 사장님의 그…… 학살하는 모습이 멋있다면서 그것만 따라하려는 악성 PK범들.”

“회사 소속 게이머들은?”

“다들 임무 중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와 계약한 게이머들은 수백 명밖에 안 되는데, 저런 일은 하루에도 수천 건씩 일어나니까…….”

마을 근처에서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른다면, 경비병이라도 출동할 것이다.

하나 요즘 PK범들은 똑똑하다.

정말 똑똑하다.

절대 잡히지 않을 장소에서, 빠르게 초보자들만 학살하고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그 영상을 편집해서 자신을 최대한 언노운처럼 멋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들 스스로가 쾌락을 느끼는 행위였다.

“뭐 어쩌겠어. 내가 들어갈게.”

“어라, 직접 상대하시게요?”

“애들은 다 임무 중이라며?”

“예, 하지만…… 그, 사장님은 캐릭터도 별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 카이야.”

오만하게 대꾸한 정우는 넥타이를 거칠게 당기며 한 쪽에 마련된 캡슐로 들어갔다.

***

“여긴…… 어디?”

헬릭은 스스로를 봉인한 순간, 백색의 공간에 떨어졌다.

아무 향기도 나지 않고, 아무런 물체도, 생물도 없는 순백의 공간.

‘라샤는 이런 곳에서 수백 년이나……?’

말괄량이였던 그녀가 어째서 성숙해졌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으음.”

심심했다.

동시에 뮬딘과 싸울 카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부디 죽지 말거라…… 나의 사도여.”

두 손을 꼬옥 모은 채 기도를 올린 헬릭이 이내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머리 위에 전구(광채)를 반짝이며 박수를 쳤다.

“……일기를 쓰자꾸나!”

그녀는 카이가 뮬딘을 이길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전력상으로는 카이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밀리지만, 그는 언제나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남자였으니까.

언제나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정의를 퍼트리는 하나뿐인 대리자였으니까.

아마 며칠 후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깨워줄 것이 분명했다.

“그때 한 번에 써놓은 일기를 보여주는 것이니라.”

아마 기특하다고 맛있는 과자와 사탕을 줄 것이다.

어쩌면 머리를 쓰다듬어 줄지도 모르고, 엄청엄청 감동을 한다면.

맛있는 스플리트를 사줄 지도 모를 일이다.

“으음. 봉인 첫날…….”

헬릭은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종이와 연필을 소환한 뒤, 엎드려서 열심히 일기를 썼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100일째 일기를 썼을 때.

그녀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릭은 계속해서 일기를 써나갔다.

300장, 500장…… 1,000장.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

무언가 잘못되어 자신이 이 장소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헬릭은 목을 놓고 엉엉 울었다.

울다가 지쳐 잠이 든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

“으음…….”

눈을 뜨자 맑은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가벼운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나른한 기분.

두 주먹으로 제 눈가를 부비부비 닦은 헬릭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자신의 정원이다.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기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으음.”

살짝 어지러움을 느낀 헬릭이 옆에 있던 태양신 조각상을 붙잡았다.

땅이 조금 멀어진 기분이다.

키가 조금 커졌나……?

고개를 갸웃거린 헬릭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섬의 끝자락으로 향했다.

“……우와아.”

하계는 많이 바뀐 상태였다.

그런데 무언가가 좀 이상하다.

“대륙이 넓어지고, 숫자도 여덟 개나 더 생길…… 수가 있나?”

머리 위의 광채가 시무룩하게 반짝였다.

좀 아닌 것 같은데…… 여덟 개나 생길 수 없을 것 같은데…….

설마,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것일까?

자신을 알던 이도, 자신이 아는 이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많이.

‘카이는 인간인데…….’

인간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한다.

덜컥 겁이 난 헬릭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을 포기하고, 등을 돌렸다.

“내 정원…….”

모르긴 몰라도 최소 수 년은 방치되었을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으로 걸어가자, 싱그러운 잔디가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에?”

잔디 위를 걷던 헬릭이 무심코 입을 벌렸다.

‘촉촉해.’

잔디가 촉촉하다.

‘천상의 정원에는 비가 안 오는데?’

헬릭이 고개를 젖힌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봉인 당한 사이에 이제 여기에 비가 오나?

“하늘 맑다.”

다시 고개를 내린 헬릭이 정원을 천천히 걸어 나갔다.

“……!”

무언가를 발견한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이건…….”

고급스러운 액자들이 정원에 주욱 세워져 있었다.

액자 속에 보관된 그림은, 자신이 크레파스로 그렸던 엉망진창의 그림들이었다.

자신과 라샤와 카이와 유하린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림을 보는 순간.

헬릭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조심스럽던 걸음은 점점 대담해졌고, 점점 빨라졌다.

정신을 차린 순간 그녀는 달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화원에 도착한 헬릭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화원에는 그녀가 좋아하던 꽃들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시들어 있는 꽃은 단 한 송이도 없었고, 정원에는 꽃 내음이 가득했다.

“…….”

꽃들을 보며 감상에 젖어 있던 헬릭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내 나무.”

라샤와 함께 심었던 카카오 나무.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푸르댕댕한 새싹이 빼꼼 올라온 것을 본 것이 다였다.

하지만 눈앞의 거대한 나무가 카카오 나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나무가 이만큼 자라면 이름을 지어주자고, 라샤와 백과사전을 보면서 키득거리다가 도서관 사서에게 꾸중도 들었으니까.

“헬릭.”

빼꼼.

카카오 나무 뒤에서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어깨보다 조금 아래에서 짧게 자른 소녀.

라샤였다.

“라샤여…… 나는…… 나는…….”

눈에서 흘러내린 물이 입으로 들어가서 발음조차 잘 되지 않았다.

“뭐야, 왜 울어. 바보야.”

라샤는 헬릭을 타이르면서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하나뿐인 친구를 수십 년 동안 못 만난 서러움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빨리 돌아오려고 했는데…… 그러고 싶었는데…….”

“말하지 마, 바보야. 잘 돌아왔어. 진짜 잘 돌아왔어.”

“으어어어엉. 나는 내가 늦은 줄 알고…… 그래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그럴 리가 없잖아, 바보야.”

훌쩍거리는 헬릭의 눈물을 닦아준 라샤는 억지로 밝은 미소를 띠었다.

“자,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

기다리는 사람.

그게 누구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헬릭은 눈물을 닦고는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걸어 나갔다.

“…….”

잘 걸어가던 헬릭이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익숙한 사제복, 익숙한 후드.

눈물을 줄줄 흘리는 헬릭의 입술이 반가움에 서러움, 안도라는 다양한 감정에 의해 떨렸다.

그러나 두 눈만은 반달처럼 곱게 휘어진 채 웃었다.

“너무 늦게 일어나셨습니다.”

그녀의 앞으로 다가온 사제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 하루만 봐드릴게요.”

“응…… 늦잠 자서, 미안.”

아주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돌아올 줄 알았고.

상대방이 자신을 기다릴 것을 믿었기에.

서로를 웃는 낯으로 바라보기를 잠시.

헬릭이 입을 열었다.

“그대여, 왜 그리 땀을 흘리는 것이냐.”

“아…… 나쁜 놈 좀 때려주고 황급히 오느라고요.”

“선행 점수 계산해야 하는데.”

“괜찮아요. 그건 이제 안 하셔도 됩니다.”

판타지아 온라인에는 선행 스탯이 없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게임인 만큼 태양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는 스스로를 태양의 사제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더구나.”

“예, 그야 다른 세상이니까요.”

카이는 그녀에게 해줘야 할 말이 아주 많음을 느꼈다.

‘눈 떠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라…… 이걸 대체 어디부터 설명을 해드려야 할까.’

뮬딘과 싸우기 전, 짐 박사가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때 그는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했었다.

뮬딘을 죽이고 나면 머지않아 게임이 서비스 종료될 것이라고.

그 때까지 페가수스 사의 운영진으로써 활동을 해달라고.

이에 카이는 그 제안을 수락하는 것을 대가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바로 자신과 친분이 있는 NPC들, 그리고 천계의 데이터를 신작에 이전해 줄 것.

짐 박사는 오랜 시간 고민을 하더니, 그 조건을 수락했다.

페가수스 사는 카이에게 한 가지 갚아야 할 빚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그냥 함께 있는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이렇게 조금 더 보내고 싶었다.

카이는 부쩍 자라나서 15~16살처럼 보이는 헬릭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헬릭 님, 할 이야기가 많아요. 라샤 님이랑 같이 과자랑 케이크 드실래요?”

이에 헬릭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웅!”

무려 10년 만에 듣는, 밝고 명랑한 목소리였다.

<힐통령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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