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뭐 힘든 일이 있긴 했지만, 하고자 했던 일은 다행히 잘 끝이 났다.
‘노예 사업을 흔쾌히 접을 줄이야.’
나도 그에 응당한 대가를 내어 주긴 했지만. 합법적이면서도 돈을 모을 수 있는 광산을 알려 주었다.
어떻게 정보를 알아냈냐고 물어보기에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긴 했다.
지도를 보다 숨겨진 산맥을 발견했는데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냐고 말이다.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로 본다면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에드가는 흘려듣지 않았다.
“다행이지, 그것도 상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주워들었으니까.”
돌아다닌 것이 이토록 내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이 꽤 유용하게 쓰였다.
광산은 그 산맥에 숨겨져 있었다. 워낙 가는 길이 험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없어 버려진 땅이나 다름없었지만, 광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한마디로 노다지였다.
상인들은 자기들끼리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말해 주곤 했다.
어린아이니 흥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혼을 쏙 빼놓고 물건을 사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 산맥 이야기를 했을 때 내 눈이 번쩍 떠졌다는 것을.
‘그게 사실일 거란 생각은 못했겠지.’
결과적으론 거래는 성공적이었다.
에드가에게 바란 것은 딱 하나였다. 지금처럼 유지하는 것.
리온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주기로 했으니 이것으로 원하는 것은 다 얻은 셈이다.
광산의 10%는 내 것이었으니 앞으로 돈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
도망치게 되더라고 그 돈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숨어 살면 그만이니까.
“엘르? 이거 봐, 화관이야.”
“예쁘네.”
나는 차를 마시며 리온을 보았다. 내 손목에는 어김없이 푸른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리온은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음에도 나만은 알아보았다.
그것은 매일 같은 위치에 묶인 푸른 리본 때문이었다.
그와 가까워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긴 했다.
매일 같이 노력한 결과로 천천히 친해지게 된 것이다.
“이거…… 너한테 주는 거야.”
“와아, 정말?”
꽃을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가 내민 화관을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예쁘다. 리온은 못 하는 게 없네.”
나는 리온을 향해 활짝 웃었다.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툭 하고 내게 닿았다 떨어졌다.
화관을 머리에 쓰곤 리온을 빤히 보았다.
수줍게 붉어진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나 어때?”
저를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에 리온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제대로 나를 알아볼 리 없었지만, 이럴 땐 써서 상대에게 보여 주는 것이 예의였으니까.
“……예뻐.”
“정말?”
나는 리온의 말에 입꼬리가 씰룩였다.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멈칫하더니 이내 비뚤어진 화관을 똑바로 씌워 주었다.
“응!”
와아, 사르륵 녹아내려.
리온의 해사한 미소에 나는 넋을 놓고 그를 응시했다.
내게만 보여 주는 붉은 눈동자가 이내 호선을 그리며 접혔다.
“리온은 웃는 것도 예쁘네.”
어라, 얼굴이 터질 것 같은데.
나는 리온의 더욱 빨개진 얼굴을 보며 손을 뻗었다.
“터질 것 같아. 열나는 거 아니야?”
그의 이마에 살며시 닿은 손에 리온의 몸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나는 이마를 툭 하고 대 보며 시선을 맞췄다.
“리온, 아파? 열은 없는데.”
“아, 안 아파!”
리온이 후다닥 내게서 멀어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삐거덕거리는 걸음걸이로 재빨리 저택으로 향했다.
“같이 가!”
“시, 싫어! 나 잘 거야!”
쟤, 왜 저래?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달려가는 리온을 보았다.
저러다 넘어지겠네.
* * *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나의 뚱한 어조에 아버지가 미간을 좁혔다.
피차 서로 보지 않는 것이 편하지 않은가.
나는 슬며시 리온을 내 뒤로 숨겼다.
리온까지 부르다니. 이건 계약 위반이지 않나?
“요즘 둘이 너무 자주 붙어 있는 것 같은데.”
“가족인데 그럼 붙어 지내죠.”
“……가족?”
아버지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웬수가 오늘은 기분이 썩 좋지 않은가 보다.
나는 똑같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아버지를 보았다.
푸른색 눈동자가 찬찬히 나와 리온을 응시했다.
에드가 드 벨루아. 이름 하나만큼은 멋들어졌다.
사실 외모와 지위도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자식이 나 하나인 것이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엘르?”
“괜찮아. 쫄지 마.”
나는 조심스레 옷깃을 잡아당기는 리온에게 작게 말했다.
몇 번을 봐도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내게 묻는 것이었다.
“알아서 좋을 게 없는 작자거든.”
계속 알아보지 못하는 게 리온에게 좋았다.
그러니 소개를 시켜 줄 필요도 없다.
“저 인간이 하는 말은 귀담아 듣지 마.”
나는 리온을 향해 싱긋 웃으며 손등을 살짝 건드렸다.
“하지만…….”
리온은 불안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저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을 오랜만에 봤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있잖아. 저렇게 무서워 보여도 죽이진 않아.”
아차, 이렇게 말하면 더 겁을 내려나?
그러나 사실 그대로를 말해 주긴 해야 했다. 그동안 리온에게 에드가는 관심을 주지 않았으니까.
지금처럼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지도 모른다.
내 아버지를 봐 온 결과 그는 갱생이 불가할 것 같다.
그러니 거짓말로 두둔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하?”
아버지의 삐뚜름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며 나는 고개를 쳐들었다.
‘뭐, 임마, 왜!’
딸인데 죽이기야 하겠어? 그렇게 개차반은 아닐 것이다.
막상 질러 놓고 보니 걱정이 되었다.
나도 인간인지라 사람이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니까.
아닌가, 저번에 벽에 걸린 검을 쳐다봤던 걸 생각하면…….
괜찮아. 죽이진 않을 거야.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의 당당한 태도에 에드가의 얼굴에 흥미가 서렸다.
“네가 데려온 애가 가족이라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일에 치여서 뭘 하는지 모르는 생물학적 가족보다는 훨씬 더 가족 같은데요.”
“네가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게 누구의 덕인지 알았으면 하는데.”
“아버지의 덕이겠죠?”
다른 사람을 얼마나 등쳐먹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에 대해선 딱히 감사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 나는 위선자임이 분명하다.
“…….”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아버지를 보았다.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적당히 까불어야 할 것 같다.
장난은 이 정도하고 재빨리 나는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둘이 붙어 있는 걸 질투하시는 건 아닐 테고, 용건이 뭔가요?”
“아버지에게 말하는 태도가 별로군.”
“다 배운 거죠.”
나의 느릿하게 깜빡이는 눈을 보며 에드가는 미간을 엄지로 꾹 눌렀다. 두통이 몰려오는 모양이다.
이쯤 하면 가라고 할 법도 한데 그는 타깃을 돌려 리온을 보았다.
“리온이라 했던가. 너와 난 가족이 아니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와! 말하는 것 좀 봐!”
나는 황급히 리온의 귀를 틀어막았다.
저 못된 입이 나불거리는 걸 계속 보고 있다간, 리온이 앙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구슬리고 있는데!’
지금 다 된 밥에 재라도 뿌릴 심산인가?
정말이지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다.
어차피 리온은 아버지의 얼굴 따윈 기억하지도 못할 테니 안심해도 된다.
“리온, 가자. 괜히 심술 나서 저러시는 거야. 너하고 난 가족이야 알겠지?”
“……응.”
리온은 고개를 황급히 끄덕였다.
“저 부르지 마세요! 우리 원래 이런 사이 아니잖아요!”
에드가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리온의 손을 이끌고 집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