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불과 며칠 전에 멀쩡했던 얼굴이었는데.
리온이 나를 피했는지, 서로가 볼 수가 없었던 건지 최근에 그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혹시나 무리를 해서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된 나는 정원을 서성였다.
그러던 중 밖에서 들어오는 그를 발견한 것이다.
“리온? 얼굴이 왜 그래?”
아무렇지 않게 나를 보며 웃고 있었지만, 얼굴은 엉망이었다.
“누구야?”
리온은 떨궜던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황망하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그가 나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는 안면 인식 장애가 있었으니까.
“나야, 엘르.”
“미안해. 또 못 알아봤네.”
그의 시선이 내 손목으로 향했다.
어김없이 매달려 있는 푸른색 리본.
나를 발견한 리온의 표정에 어딘가 씁쓸함이 번졌다.
‘한동안 나가지 않더니…….’
속상한 마음에 한걸음에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꽤 상처가 깊었다.
“누구야,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그냥 가다가 넘어진 거야.”
“거짓말.”
나는 매섭게 눈을 뜨곤 리온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손이 제법 매운 놈이 때린 모양이었다.
“내가 저번에 뭐라고 그랬어! 때리면 밑에라도 차 버리라니까!”
“하지만…… 아래는 너무 아프잖아.”
“당연히 아프겠지! 아프라고 차는 건데.”
리온은 울상을 지으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나는 답답한 마음에 허리춤에 손을 올리곤 미간을 좁혔다.
리온의 턱을 죄고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 보았다.
‘아, 잘생긴 얼굴이 이게 뭐야!’
속상한 마음에 화가 치밀었다.
“이 바보야. 맞고 있는 건 안 아파?”
“난 튼튼하니까 괜찮아.”
“맨날 얻어터지면서 튼튼하기는. 복수라도 하던지!”
아차.
나는 방금 전 내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복수를 하고 싶어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니 불가능했다.
“미안.”
“괜찮아. 미안해할 필요 없어.”
리온은 입술에 피가 나고 온몸이 멍투성이였지만,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나도 똑같이 때려 줬어.”
“……퍽이나.”
리온은 내 걱정스러운 눈빛에 어깨를 으쓱였다.
둘러대는 말임이 분명했다. 그가 다른 이에게 손을 댔을 리가 없을 테니까.
훌쩍 키가 컸음에도 그는 여전히 내 보호가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이놈을 어쩌면 좋을까.
“엘르?”
나는 그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섬뜩하리만치 붉은 눈동자가 가만히 내게 향했다.
“한동안 안 나가더니, 뭐 때문에 나간 거야.”
나의 다그치는 목소리에 리온이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손을 잡아당기던 나는 멈춰 선 그로 인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똥파리들이 자주 꼬이곤 했다.
누가 보면 운이 더럽게 안 좋은 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설정 때문이었다.
온갖 일을 겪고 이겨 내면서 단단해지는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리온은 그로 인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당하곤 했다.
나는 내심 그가 걱정되었다.
뭐 내 걱정이나 해야 하지만, 그래도 우린 아직 보호를 받아야 할 14살짜리 아이였으니까.
아버지와 약속을 한 건 그가 성장하기 전까지 보호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지내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사실을 리온은 모르고 있지만.
“네 생일이잖아.”
“아직 멀었어.”
“그래도 내가 제일 먼저 챙겨 주고 싶었어.”
리온은 한쪽 손에 들린 브로치를 보이며 내게로 다가왔다. 상체를 살짝 숙인 그가 옷에 살며시 달아 주며 웃었다.
“예쁘다.”
“……웃지 마. 상처 벌어져.”
붉은 루비가 박힌 브로치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꽤 돈이 들었을 텐데…….
새하얀 드레스에 꽂힌 붉은 브로치는 마치 심장처럼 보였다.
나는 기분이 묘해 한참을 쳐다보았다.
마치 리온의 심장이라도 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저 브로치 하나인데 무슨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지.
나는 서둘러 상념을 지워 냈다.
“그동안 돈을 모아서 산 거야. 마음에 들어?”
내가 에드가에게 받은 돈을 리온에게 전해 줬는데 그걸 모은 모양이다.
‘아버지에게 받은 돈으로 뭔가를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렇네.’
엘르 나타시아의, 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권력에 눈이 먼 사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갖 범죄와 관련된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아버지는 황실에 꽤나 적대적이었다.
그로 인해 제니스에게 위협을 가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제니스 아벨 보니타, 성녀이자 황녀.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인 델테르 카베제르의 배다른 누이.
황제가 밖에서 낳아 와 후에 황녀로 인정받는다. 소설 속 여자 주인공답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을 파란만장하게 만드는 악역 중 한 명이 바로 내 아버지이다.
심지어 내 아버지인 에드가 드 벨루아 나타시아는 제니스의 반려가 리온인 것을 알고 납치까지 한다.
물론 그가 가진 힘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저지른 만행의 결과는 뻔했다.
그로 인해 나는 죽음을 면치 못할 운명이었다. 그것도 델테르 카베제르 황태자에게.
시녀의 말로는 아버지는 내 어머니가 죽고 난 뒤 사람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게 중요해? 일단 지금 나한테는 이로울 게 없는 인간이란 거잖아.’
그래서 리온을 아버지보다 먼저 데려온 것이다.
후에 목숨이라도 살려 달라 구걸하기 위해서.
이 사실을 모르는 리온이기에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지만,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나도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인 모양이다.
그의 마음 씀씀이가 예뻐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를 그려 넣었다.
“응, 예쁘네.”
“엘르, 내 붉은 눈을 좋아했잖아.”
부정하지 않았다. 리온의 붉은 눈동자를 좋아했으니까.
나는 브로치를 만지작거렸다.
혹시 이걸 사서 오는 길에 무뢰배라도 만난 걸까?
리온에겐 딱히 호위가 붙지 않았으니까.
‘이것 때문에 다친 건가?’
리온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볼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엘르, 너 때문 아니야. 길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뿐이야.”
“그래? 요즘 돌부리엔 손이라도 있나 봐. 입술이 터질 정도로 후려친 거 보면.”
나는 홱 하고 몸을 돌리곤 앞장서 걸었다.
“화났어?”
리온은 곧장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조심스레 물었다.
내 옷깃을 잡은 그의 손을 흘깃 보곤 입을 꾹 닫았다.
‘능구렁이.’
나는 그가 내가 좋아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 화를 풀기 위해 하는 행동임을 알아챘다.
함께한 세월이 있었으니 나 또한 리온이 어떤 아인지 대충은 짐작되었다.
“따라와. 치료해야 할 거 아니야.”
짧은 한숨과 함께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 다쳐 놓고 뭐가 좋다고 웃는 거야.”
“그거야. 네가 날 걱정해 주니까.”
“……바보 맞네.”
나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이 났다.
날이 갈수록 리온에겐 말로 이기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커다란 키에도 졸졸 나를 따라오는 모습을 다른 이가 보면 얼마나 웃길까.
‘꼭 어미 오리 같잖아.’
길 잃은 새끼를 보살펴 주는 뭐 그런 거.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리온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디리아를 불러 치료 약을 건네받았다.
한동안 다치지 않아 사용할 일이 없었던 터라 제법 오랜만이었다.
“저런, 이젠 어디 가서 맞고 오실 나이는 아닐 텐데요.”
디리아가 흘깃 리온을 보며 신음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나는 작게 동조하곤 리온의 입가에 소독약을 조심스레 발랐다.
“아가씨, 예쁜 브로치가 생기셨네요.”
그녀가 내 가슴에 매달린 붉은 브로치를 보며 말했다.
디리아는 나와 리온을 번갈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백작님께서 보시면 조금 질투하시겠는데요?”
“아버지가? 왜?”
뜬금없이 나온 인물에 나의 미간이 좁혀졌다.
잘나가다가 왜 웬수가 나오고 그래.
“그래도 아버지니까 제일 먼저 선물하고 싶어 하셨을 텐데.”
“으응? 그럴 리가.”
태어나서부터 단 한 번도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 인간 나한테 관심이 없었던 거 아니었던가? 뭘 새삼스레 처음 선물을 주는 거에 신경을 쓰고 그런데?
“어머, 모르셨어요? 아가씨 생일 때 그래도 매번 선물 챙겨 주셨는데.”
“그 인간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얼굴도 안 비쳤던 인간이 선물은 무슨.
나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디리아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