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정신없이 달려온 에드가의 방 앞에서 곧장 문을 열지 못했다.
나는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호흡을 가다듬고 문고리를 보았다.
“……아가씨, 헉헉.”
헤센이 숨을 고르며 무릎에 손을 짚고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그의 손이 내게 닿기도 전에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쿵 쿵 심장이 거세기 뛰다 못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에 정신마저 아찔했다.
“에드가!”
이렇게 죽는 건 생각도 못했지 않은가.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아무리 밉고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갈 인물이었지만, 황실에 반역을 꾀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게 되었기에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내 어머니의 일과, 이모에 대한 억울한 죽음.
그걸 알고도 에드가를 어떻게 미워하겠는가.
리온을 불러온 것도 그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어?”
뚝뚝. 두 눈에서 눈물이 차올라 흘렀다.
잘근 깨문 입술이 파르르 떨리다 못해 저려 왔다.
천천히 침대 쪽으로 다가간 나는 짧은 탄식과 함께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함께 온몸의 긴장이 풀린 덕분이었다.
“아버지에게 에드가라니. 여전히 건방진 따님이군.”
“……아빠?”
나는 얼빠진 얼굴로 에드가를 응시했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이내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침대에 앉혔다.
“호들갑은.”
그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목소리가 갈라져 지침이 묻어 나왔지만, 에드가는 웃고 있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요!”
“감히 누가 벨루아 가문의 가주인 나를?”
정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죽을 뻔한 사람이란 걸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에드가의 얼굴을 붙잡고 엉엉 울면서 이리저리 상태를 살폈다.
“그러게 제 말을 끝까지 듣고 가셨어야죠.”
“……나는 숨넘어가는 줄 알았지.”
“그러길 바랐던 모양이군.”
에드가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나를 보았다.
그 뒤로 리온이 방으로 들어오자 와락 얼굴이 일그러졌다.
“벨루아 가문의 사람이 아닌 이가 언제부터 마음대로 들어와도 되는 곳이 되었지?”
“조용히 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를 죽음의 문턱에서 데려온 것이 누군 줄 알고!
리온은 에드가에게 다가오더니 이내 손목을 잡았다.
“이게 뭐 하는-”
“짐승도 살려 준 은인에게는 보답을 한다던데.”
리온의 말에 에드가는 얼굴을 굳혔다.
이제야 눈치를 챈 모양이다. 믿기 싫었던지 헤센 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썹을 끌어 올리는 것을 보니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헤센 경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아니길 바랐던 모양인지, 그의 대답에 에드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자기가 내쫓은 이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기분이 묘하겠지.’
그러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잘해 줬으면 얼마나 좋아.
나는 모르는 척 리온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리온은 에드가의 상태를 살피는 건지 제법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이것 좀 놓지.”
에드가는 한결 수그러든 목소리로 리온에게 말했다.
조금은 미안한 기색도 보였다.
“몸이 완전히 다 회복된 것은 아니니 당분간은 제힘이 필요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해하신 그대롭니다.”
“내가 네 녀석의 뭘 믿고, 백작저에 머물도록 할 것 같나.”
뭐야, 저렇게 화내는 거 보니 아직 쌩쌩하네.
나는 둘 사이를 막아서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번갈아 쳐다봤다.
“백작님께서는 그런 말 하면 안 되죠. 그리고 리온도 마탑으로 가야 하잖아.”
“……마탑은 미뤄도 돼.”
“아니, 그러지 마. 나로 인해 피해를 입는 건 원치 않아.”
내 단호한 말에 리온은 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럼, 날을 정해 놓고 오는 건?”
“……그렇게 해 주면 좋긴 한데.”
사실 내 진심은 이곳에 리온이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곧 완전히 발현될 문양을 가진 리온을 이곳에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똑똑똑.
“아가씨,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
그제야 나는 깜빡하고 잊고 있었던 센 공작이 떠올랐다.
에드가 때문에 정신이 없어 그가 오기로 했다는 사실도 까먹은 모양이다.
“……손님이라니?”
“아, 정보상 큰손이 부탁한 일이 있었어요.”
“내가 없는 동안 일 처리를 다 한 건가?”
“그럼, 누가 해요?”
뭘 그런 걸 물어.
나는 황급히 나설 준비를 했다. 꽤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서둘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도 따라갈게.”
“그래, 결론적으로 네가 해결한 셈이니까.”
나는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리온이 내 일을 도와준 것이니 마무리도 함께 하는 게 맞으리라.
“잠시, 큰손이라면……!”
에드가가 뒤에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지만, 지금은 일 처리가 먼저였다.
* * *
“이런, 오셨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아닙니다.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늦었습니다.”
센 공작은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며 나를 반겨 주었다. 조금 늦었음에도 화를 내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 가실까요?”
나는 리온이 범인을 가둬 둔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보상이 운영하는 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여기에 둔 모양이다.
‘그런데 리온은 여길 어떻게 안 거지?’
헤센 경이 알려 준 건가. 뭐, 일단은 범인 확인이 중요하니까.
“문 열어요.”
내 말에 창고를 지키고 있던 이가 문을 열었다. 뭐 어찌나 철통 보안인지 시간이 꽤 걸렸다.
덜컹-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비릿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응?”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곤 리온을 보았다.
“리온.”
“너무 반항이 심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리온은 셔츠를 걷어 올리며 상체를 보여 주었다. 배와 옆에 자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피가 굳은 걸로 보아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입술을 굳게 닫았다. 리온이 내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곧장 깨달았기 때문에.
“고생했어.”
질책할 수는 없었다. 의뢰 때문에 리온도 다친 셈이니까.
센 공작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그들을 보더니 몸을 숙여 그들의 손목을 일일이 살폈다.
“역시 문양이 없는 이들이군요.”
“예상했던 바이지 않나요?”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의뢰는 이걸로 종료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사냥꾼이 궁금하셨던 건가요?”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알 필요가 없긴 했지.
“여기 잔금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처리해 주셨군요.”
센 공작의 말에 내 부하들이 그에게로 다가가 잔금을 받았다.
이천만 프랑크를 곧바로 준비해서 왔을 줄이야.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더 벨루아 가문의 능력에 감탄을 하네요.”
센 공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함께 온 시종들을 시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들을 데려가려 했다.
나는 씨익 웃고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머, 데리고 가도 된다는 말은 안 했는데요.”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니 잡아 달라고 했지, 자기들이 데려간다는 말은 안 했지 않은가.
“저는 분명 범인을 찾아 달라고, 아…….”
센 공작은 자신이 하던 말에 뭔가를 깨달은 듯 턱을 매만졌다.
“그래서 말인데 추가금을 더 주셔야겠어요. 여러 명을 잡았으니 힘이 좀 들었거든요.”
“하, 장사꾼이긴 장사꾼이네.”
그의 얼굴에 곤란함이 설핏 스쳤지만, 상관없었다.
솔직히 이들을 내어 주게 된다면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럼 얼마를 지불하면 됩니까? 충분히 사례는 드리겠습니다.”
“으음, 찾아 달라고 했는데 직접 잡아 와서 얼굴을 보여 줬으니 의뢰는 종료되었답니다.”
뭐, 양아치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알아봐 달라 했고, 나는 그들을 보여 주기까지 했다.
사실 보여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저희는 충분히 할 만큼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을 데려가려면 얼마를 지불해야 합니까?”
“아, 그건 곤란해요. 이들은 저희가 따로 쓸 일이 있어서요.”
“그런……!”
센 공작은 크게 분노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빤히 보았다.
“보다시피 이들의 뒷배는 없었어요. 귀족들이 벌인 짓도 아니죠. 하지만, 공작님께서 데려간다면 제 가문도 곤란해질 것 같네요.”
눈빛을 보아하니 좋은데 쓸 것 같지 않단 말이지.
그러다 우리가 현상금이 걸린 이들을 잡아다 다른 이에게 넘긴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면 타격은 우리가 제일 크게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일을 통해 황실에게 한 방 먹일 기회이기도 했고.
“그러니 이만 돌아가세요. 아, 참. 비밀 조항은 잘 아시죠?”
“뭐, 아쉽지만 그러도록 하죠. 벨루아 가문이 부상하면 저희 쪽에서도 반가운 일이니까요.”
하긴, 벨루아 가문과 좋은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가문이 불법적인 일 말고 있을까?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센 공작은 아쉬운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내게로 다가와 손을 잡고 입을 맞췄다.
“함께 했던 시간이 꽤 즐거웠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지냈으면 합니다.”
“영광이에요.”
나는 그에게 손을 빼어 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쩐지 손목이 화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