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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61/120)

제61화

“무슨 말인지 물었습니다.”

리온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되물었다. 어째서 어제 봤던 엘르가 사라진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들었으면서 뭘 묻지?”

에드가는 리온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뻔히 황실에 신고하는 내용을 들었으면서 확인하듯 묻는 이유는 믿기 싫어서겠지.

“……이해가 될 거라 봅니까?”

“네가 이해하든 말든 그건 나와 상관없지.”

에드가의 심드렁한 어조에 리온은 주먹을 쥐었다.

“어디로 숨겼습니까.”

“숨기다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군.”

에드가는 느릿하게 턱 끝을 매만지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붉디붉은 머리카락이 흔들리자 엘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리온은 먹색 눈동자에 쳐진 장막을 보며 침음했다.

맑고 푸른 엘르의 눈과는 달랐다.

“당신의 목숨이 제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랬나? 이 또한 엘르를 위한 길이라면?”

제 목숨이 달려 있는 상황에서도 에드가는 침착했다.

그 모습에 오히려 리온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엘르가 위험에 처하기라도 했단 걸까.

“돌려 말하는 건 딱 질색이라서 말입니다.”

“엘르의 몸에 문양이 나타났더군.”

“……문양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리온은 제 손목을 감싸며 에드가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래, 그렇지. 하지만 그 누구도 반기지 않을 문양이라면? 네놈이 뭘 할 수 있지?”

에드가는 궁금했다.

아무리 어릴 때 목숨을 구해 준 이가 엘르라고 하지만, 이토록 하나만 바라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려로 각인되었다면 모를까.

“그러고 보니 네놈도 언제부터인가 액세서리를 차고 있군.”

모든 걸 꿰뚫어 볼 것만 같은 그의 눈동자가 리온에게 닿았다. 그래,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지.

리온에 대한 엘르의 강경한 태도도 의문이었다.

에드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 끝으로 리온의 손목을 가리켰다.

“널 지극히 아끼는 그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줬을 리가 없지.”

“홍보를 위해 착용한 것뿐입니다.”

“그래? 그런데 나는 궁금해져서 말이야. 꼭 봐야겠는데.”

에드가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리온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경계했다.

문양의 색을 확인하고 제니스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에드가는 저를 패로 사용하려 들 것이다.

황실에 대적할 최고의 무기일 테니.

그러나 리온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제니스의 반려인 것도 싫었고, 그녀와 에드가를 위해 희생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자신은 오직 엘르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니까.

“보게 되면 후회하실 겁니다.”

“……후회라.”

에드가는 검을 거두며 웃었다.

리온의 손목에 무엇이 있든 에드가가 알게 된다면 이용당할 것은 뻔했다.

“네놈과 어떤 감정도 얽히고 싶지는 않군.”

무슨 이유든 엘르가 숨기려 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테니까.

에드가는 손을 휙휙 내저었다.

“이만 가 봐. 날 살리지 않으면 엘르가 슬퍼할 테지만, 그것 역시 네놈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

리온은 그 말에 으득 이를 갈았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는 모양이다.

* * *

델테르는 신고된 내용을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제니스가 갔다 온 다음 날에 엘르 나타시아가 실종이 되었다라…….

누가 봐도 작위적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제니스와 엘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일 테니까.

더 나아가 황실과 벨루아 가문의 관계에 대해서도.

“제니스, 이 일에 대해 할 말 없나?”

“저는……. 어제 분명 엘르 영애를 보았고, 별일 없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기억을 되짚었다.

리온과 저를 본 후 엘르의 태도가 조금은 이상하긴 했지만, 곧이어 평소처럼 돌아왔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리온 외에 다른 일에는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날 봐.”

델테르는 제니스의 턱을 잡아 제 쪽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을 보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뭘 속이고 있는 거지?”

“무, 무슨 말인지…….”

“벨루아 가문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잖아.”

“없었어요.”

제니스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여기서 들킨다면 모든 게 어그러질 것이다.

‘리온의 마음을 드디어 확인했는데 여기서 무너질 수 없어.’

조금 더 독해져야 했다.

더 나아가 제 자신까지 속여야 황실의 눈을 완벽히 가릴 것이다.

“확실해?”

“네, 그럼요. 제가 거짓말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단지 연회를 열면 꼭 초대를 해 달라는 말만 했어요.”

“……초대?”

델테르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에드가가 깨어나지 못한 지금 벨루아 가문의 가주는 엘르 나타시아였다.

……잠시.

“그럼, 이 신고는 누가…….”

에드가 백작이 깨어났다. 그게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이 이해가 설명되기 힘들다.

“읏.”

델테르는 제니스의 얼굴을 잡았던 손을 떼어 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 났군.”

그대로 죽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운명의 신은 제 손을 들어 주지 않은 모양이다.

“제니스, 벨루아 가문에 달라진 점이 없었나? 이를테면 에드가 백작을 보았다든지.”

“에드가 백작이요……?”

제니스는 눈을 굴렸다. 자신은 곧장 응접실로 갔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다.

“아뇨, 못 봤어요.”

“어리석은 질문을 했군.”

생각해 보니 저 같아도 에드가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제니스는 황실의 일원이었으니까.

델테르로 인해 에드가가 죽을 뻔했으니 깨어났다고 알릴 리는 없었다. 다만 평생 숨길 수는 없으니 연회를 열어 에드가의 건재함을 보여주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뭘 꾸미고 있는 거지?”

“네? 벨루아 가문 말인가요……? 제가 봤을 땐 똑같았어요.”

“리온 그놈, 역시 거슬려.”

없애 버렸어야 했는데.

분명 그놈이 벨루아 가문에 가고 난 뒤에 에드가가 깨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리온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다는 것.

“그런데 에드가 백작님은 왜요? 일이 바빠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거 아닌가요?”

제니스의 질문에 델테르는 입을 꾹 닫았다.

“그렇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 신경 쓰지 마.”

그렇다기엔 시시각각 델테르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제니스는 델테르가 리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만 같아서 초조함마저 들었다.

“저도 황실의 일원이에요. 무슨 일이 있는 거죠? 전하가 제게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은데.”

“황실의 일원이긴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황녀. 황제의 사랑을 받아 기반이 단단해 여기저기 이용당하기 딱 좋은 말.

“그럼 말해 주세요. 벨루아 가문을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건지.”

“네가 알아서 좋을 게 없어. 무엇보다 내가 말해 줄 의무도 없고.”

“그렇지만……!”

제니스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델테르는 손을 들어 말을 제지했다.

“반박은 받지 않아.”

힘이 탁하고 풀렸다.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더는 물을 수도 없었다.

“자, 이제 누가 먼저 찾느냐의 게임인 것 같은데.”

델테르는 창문을 보며 손짓했다. 그러자 숨어 있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 고개를 숙였다.

“찾아, 엘르 나타시아. 죽여도 상관없다.”

“전하? 그게 무슨!”

델테르의 말에 화들짝 놀란 제니스가 입을 떡하고 벌렸다.

지금 그녀를 죽이라 명령한 거야?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제니스는 손이 달달 떨렸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저렇게 무미건조하게 말을 내뱉을 수 있다니.

“나서지 마. 이게 내 마지막 경고야. 그리고 제니스, 좀 솔직해지는 게 어때.”

델테르는 제니스의 팔을 잡아 제 쪽으로 당기곤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가 사라지면 제일 좋은 건 너 아닌가?”

“……왜 그렇게 생각하죠?”

“왜냐니, 너 그놈을 마음에 품었잖아.”

픽 하고 웃는 그의 비릿한 미소에 소름이 끼쳤다.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제니스는 델테르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놈은 항상 다른 이를 보고 있지.”

그가 씁쓸한 눈동자로 제니스를 보았다. 그건 마치 제 이야기 같아서 마냥 웃을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널 도와주는 셈이지 않아? 제니스.”

“그건, 그러니까…….”

제니스는 혼란스러웠다. 엘르만 없으면 정말로 리온이 저를 보게 될까.

아니, 어차피 반려의 각인은 시작되었다.

그러니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이뤄질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제가 명령한 것은 아니었으니…….

“그래도 그건 안 돼요.”

“넌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제니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을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걱정해야지.”

델테르는 제니스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그놈에게 찾아가 말해. 엘르 나타시아가 위험하다고 말이야.”

“……날 보내 주긴 할 건가요?”

“물론이지.”

델테르는 제니스에게서 떨어지며 손을 들어 보였다.

문 쪽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하자 그녀의 몸이 천천히 돌아갔다.

“어서 가 봐.”

“…….”

그녀는 질끈 눈을 감고는 문 쪽으로 망설임 없이 걸었다.

“아 참, 그놈은 이미 찾기 시작했다더군. 반쯤 미친 것 같다던데.”

델테르의 말에 문고리를 잡았던 제니스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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