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20)

제66화

리온은 델테르의 끄나풀을 처리한 곳으로 갔다.

뒤처리를 제대로 못한 것도 있었지만, 혹여나 델테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흐음, 주인이 버리는 개였던가.”

그는 내심 아쉬웠다.

델테르의 절망 가득한 시선을 보고 싶었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몸을 숨긴 채 보고 있자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델테르는 아닌데.’

기척을 숨기는 게 매우 능숙했다.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리온의 눈동자가 흥미로 물들더니 입꼬리가 위로 솟았다.

“델테르가 아니라 에드가의 그림자가 왔네.”

흔적을 처리했어야 했나?

에드가라면 곧바로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제힘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혀를 짧게 차곤 그림자의 행동을 응시했다.

“잔인하게 죽였군.”

“에드가 님께 가서 보고해. 나는 좀 더 살펴보고 갈 테니.”

“하지만, 엘. 위험할 것 같습니다. 이놈 망설이지 않고 행동한 걸로 보입니다.”

“그럼 너도 함께 남아서 살펴보고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엘, 최대한 빠르게 파악한 후 돌아오십시오.”

그들은 재빠르게 분업했다. 리온은 다리를 꼬고 앉아 상황을 지켜봤다.

저걸 어떻게 할까.

에드가의 그림자니 손을 댈 순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찝찝하단 말이지.

그는 지붕에 걸터앉은 채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며 고민에 잠겼다.

‘엘르 보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도 엘르 생각을 하다니. 스스로가 우스웠지만 어쩌겠는가.

“아, 잠시도 딴 생각을 못하게 하네.”

정말로 신이 저를 미워하기라도 하는 게 아닐까. 리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저 멀리 보이는 인영에 눈살을 찌푸렸다.

안 올 리가 없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만히 참고 있을 성격이 아니지 않나.

리온은 에드가의 그림자와 델테르가 마주하는 걸 원치 않았다. 뭐, 그들이 들킬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조금은 도와줘 볼까.

그는 빠르게 그림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물론, 복면으로 얼굴은 가리고서.

“……제법이군. 네놈이 이렇게 만든-”

“날 기억하면 서로 곤란해질 테니 잊자고.”

리온은 손을 뻗어 그림자의 얼굴을 덮었다. 반격할 틈도 없이 그림자의 몸이 축하고 늘어졌다.

“누구지?”

엘은 재빨리 리온에게서 제 동료를 구해 떨어졌다.

“아, 그렇게 도망가려고 하면 곤란한데.”

“뭘 숨기려는 건지 나야말로 묻고 싶군.”

“지금 본 모든 거. 날 봤다는 거조차 잊어 줘야겠어.”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건 정체를 알려 주기 위함이 아니었나?”

“아아, 그건 저기 오고 있는 델테르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리온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그의 흑색 눈동자가 엘을 빗겨 나가 뒤로 향했다.

그제야 엘이 고개를 돌렸다.

“이런.”

제 앞에 나타난 남자의 말대로 델테르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살기를 지우지 않은 채로.

이건 제 존재를 숨기지 않겠다는 의미고, 여기서 마주한 이가 누구든 편히 보내지 않을 생각이 분명했다.

“시간이 없으니 무례해도 이해해 줬으면 해.”

리온은 그대로 엘의 뒷목을 쳐 기절시켰다.

바닥으로 무너지는 엘의 몸을 받치곤 다른 쓰러진 놈까지 들쳐 매곤 빠르게 그곳에서 벗어났다.

한편 현장에 도착한 델테르는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누군가 왔다 갔군.”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제가 푼 개들이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당장 찾아내.”

“안 그래도 다른 이들이 빠르게 수색 중입니다.”

“단번에 숨통을 끊어 냈군…… 이 정도면.”

솔직히 이런 힘을 가진 이가 있다면 제국에 큰 파란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제니스가 가진 능력보다 더 욕심나는 힘이지 않은가.

어쩌면 황실을 위협할 힘이었다.

델테르는 좀 더 머리가 아파 왔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당장 폐하께 보고를- 아니지, 그랬다간.”

내 입지가 더 좁아지겠군. 결과적으로 저로 인해 벌어진 일이지 않은가.

에드가의 생명을 위협했고, 그 결과 지금의 상황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제멋대로 행동한 일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고로 델테르는 제 무덤을 판 격이 되었다.

그는 벽을 내려치며 눈을 번뜩였다.

“제니스 황녀, 지금 어디에 있지?”

“황녀님은 지금 별궁에 계십니다.”

“당장 기별을 아니지, 당장 갈 테니 넌 이놈들은 알아서 처리해.”

“명 받들겠습니다.”

델테르의 말에 기사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궁에 피바람이 일 것 같았다. 그의 눈을 보니 온전해 보이진 않았으니까.

* * *

제니스는 초조한 기색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델테르는 어딜 간 거지?”

혹시 에드가 백작의 뒤를 따라 죽여 버린 것은 아니겠지. 아니, 그렇게까지 미친 인간은 아닐 터.

그러나 제 방을 나갈 때의 델테르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의 개들이 죽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럴 만한 힘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제니스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리온.”

그가 벌인 짓이 틀림없다. 심장을 옥죄듯 숨통이 턱하고 막혔다.

알려 주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안 걸까. 그는 분명 제 반려였고, 운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걸까.

리온이 제 입술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였을 때 그녀는 직감했다.

아, 신은 제 편이구나.

그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저를 사랑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확인받은 듯했다.

“그런데도 불안해, 너무 무서워.”

그가 제힘이 되어 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럼 어떻게 해야 제가 살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리온 말고는 없었다.

저를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은 힘을 가진 리온뿐이었으니까.

제니스는 생각을 끝내자 곧장 방에서 나가려 했다.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

그래서 제 반려가 누구인지, 그가 가진 힘을 말해서 황실로 끌어들여야만 승산이 있었다.

“……이거 왜 이래?”

문고리를 잡아당겨도 꿈쩍도 없었다. 와락 얼굴이 구긴 채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밖에 아무도 없어요?”

“…….”

소름 끼치는 적막에 제니스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 안 돼. 밖에 아무도 없어?! 문 열어! 열라고!”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문을 두드렸다.

쿵쿵. 쿵쿵.

두터운 문에 제니스의 온 힘을 다해 실은 힘이 무색할 만큼 어떠한 소리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

“무서워…… 무서워.”

제니스는 두 팔로 몸을 감싸며 주저앉았다.

덜덜덜 온몸이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니야, 괜찮아.”

내게도 힘이 있잖아. 제니스는 손에서 빛을 만들어 냈다.

따뜻하면서도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힘에 차츰 흥분이 가라앉았다. 초조함으로 물들어 있었던 표정이 이내 무덤덤하게 바뀌었다.

“뺏기지 않을 거야.”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제니스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 활짝 열었다.

바람이 천천히 제 머리카락을 흩트리며 살랑거리자 기분이 한결 나았다.

“그래, 괜찮아. 내겐 이게 있잖아.”

그녀는 손목에 그려진 금색 문양을 보며 미소 지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리온이 보고 싶은 밤이다.

창틀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선 제니스는 이내 가뿐하게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

나는 그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건 리온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제니스는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원을 거닐었다.

* * *

그녀가 걷는 끝에는 어김없이 리온이 존재했다.

그를 발견한 제니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리온의 얼굴은 일그러지다 못해 경멸이 슬그머니 자리 잡았다.

“하…….”

리온은 제니스의 팔을 잡아 골목 안으로 이끌었다.

겁이 없는 건지 여기가 어디라고.

제니스는 바닥 여기저기에 흩뿌려진 피를 봤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역시 그가 한 짓이 맞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그를 갖고 싶었다.

“그렇게 미워하지 말아요.”

“상대방의 동의 없는 스킨십은 범죄인 걸 황녀께선 모르는 것 같아서.”

“우린 신이 정해 준 짝이에요. 당신이 싫어할 리 없잖아요. 게다가 거부하지도 않았으면서.”

제니스의 말에 리온이 낮게 웃었다.

“거부하지 않았다라…….”

거부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행동했으면서,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런 제니스의 모습을 엘르도 알고 있는 걸까.

왜 이리도 제게 폭력적으로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제게 하고 있는 행동은 하나부터 열까지 무자비했다.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어차피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 될 거잖아요. 난 리온 당신이 필요해요.”

“이거 봐. 필요에 의해 찾는 주제에 착각하지 마.”

리온은 어떻게 그녀가 저를 찾아왔는지에 대한 것은 궁금하지 않았다.

물어도 대답은 똑같을 테니까.

운명이 날 여기로 이끌었어요. 이딴 말이나 내뱉을 것이다.

“황실에서 날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그와 반대로 난 당신처럼 얽매이게 되겠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건!”

“이만 돌아가십시오.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자체가 거슬리니까.”

리온은 힐끔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델테르가 모습을 감추고 난 후 제니스가 저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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